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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유로2008>의 주인공은 독일이다!? |
흔히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약속된 것도 없고, 미리 연습한대로 진행되지도 않는 스포츠의 속성은 그 과정에서 연출되는 기막힌 승부와 만나 그 어떤 예술 작품 못지 않은 감동을 전해준다.
하지만, 때로는 이 모든 게 누군가의 각본에 의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의 4강 진출 과정처럼 승리의 과정이 기막힌 스토리로 구성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번 대회의 독일이 그렇다. 시나리오 작가가 독일을 주연으로 캐스팅한 뒤, 그 배우에 맞춰 대본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독일이 결승에 오르는 과정이나 그 상대팀들이 겪는 시련과 패배는 묘하게 아귀가 들어맞는다. 독일이 큰 대회때마다 좋은 성적을 내는 이유는 대본이 늘 그를 주연으로 씌여지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허무맹랑하다고? 뭐, 그러면 또 어떤가. 이것 역시 드라마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식인것을. 그리하여, 이번 시간에는 이 가상의 작가가 독일 주연의 드라마를 어떻게 써내려갔는 지를 재구성해보기로 했다. 축구가 드라마요, 소설이라면... 이번 유로2008은 독일을 주연으로 이렇게 씌여진 것일수도 있지 않을까? :)
발단
시작은 이번 대회가 독일의 접경국인 스위스-오스트리아의 공동 개최로 결정된 것이다. 그 뒤, 독일은 본선 조 추첨에서 폴란드-크로아티아-오스트리아와 한 조에 속했다. 무난하게 조별 리그를 통과할 수 있는 수월한 조 편성이라 대회 개막 전부터 유럽의 베팅 회사들은 독일을 우승 후보 1순위에 올리기 시작했다.
전개
조별 리그가 시작되고 첫 경기 폴란드 전부터 풍부한 스토리가 시작됐다. 지난 독일 월드컵에 이어 폴란드를 만난 독일에는 두 명의 폴란드 혈통 선수들이 공격 일선에 나섰다. 그리고 이 두 명의 폴란드 출신 골잡이(포돌스키, 클로제)는 모국을 상대로 맹활약을 펼치며 폴란드를 꺾어 그라운드 위에서는 피보다 땀이 진하다는 사실을 곱씹게 했다. 특히 포돌스키의 경우 2골을 넣는 활약에도 불구하고 환호하지 않아 수 많은 미담 기사(?)가 쏟아지게 했다.
위기
두 번째 경기인 크로아티아 전은 주인공 독일이 위기에 봉착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잉글랜드와 러시아를 제치고 조 1위로 예선을 통과한 크로아티아는 독일 전에서 신명나는 경기력을 펼치며 독일에 좌절을 안겼다. 여기서 주춤한 독일은 이어진 오스트리아와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신통찮은 경기력으로 우승 후보답지 않은 힘겨운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리고 이 2경기에서 각각 슈바인스타이거와 뢰브 감독이 퇴장당하는 시련이 이어진다.
(가상의) 시나리오 작가는 이 대목에서 위기에 빠진 주인공(독일)이 이를 바탕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스토리를 이어 붙인다. 작가는 흔들리던 독일이 주장 발락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전력을 재정비하는 기회를 제공하기에 이른다. 발락은 선수들이 대회 기간 중 아내나 여자친구와 만나지 못하도록 내규를 정하고 또 뢰브 감독과의 긴 미팅 끝에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고 본인이 전진 배치되는 전술 변화를 이끌어내 팀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다.
절정
그렇게 한 단계 도약한 독일은 이제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다. 본격적인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독일은 만만찮은 상대 포르투갈을 상대로 경이적인 경기력으로 완승을 거둔다. 그리고, 작가의 힘은 이때부터 발휘된다. 독일의 4강 상대를 결정짓는 터키-크로아티아 전이 온전히 독일을 위한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 경기에서 터키는 조별 리그에서 독일을 꺾은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멋진 역전승을 거둬 독일을 웃음짓게 한다.
더군다나 안그래도 부상 선수가 많았던 터키는 주포 니하트가 이 경기에서 다쳐 터키로 돌아간데다 툰차이, 엠레 아시크 등 핵심 선수들이 두 번째 경고를 받아 4강에 출전할 수 없게 된 상태. 크로아티아 전을 연장까지 치러 체력도 떨어진 터였다. 지친 14명의 선수만이 출전할 수 있는 팀을 4강 상대로 골라준 것은 주인공(독일)을 결승에 올려놓기 위해 작가가 배치한 상투적이면서도 능숙한 클리셰다. 그렇게 맞이한 4강전에서 독일은 터키를 상대로 고전하지만 결국 람의 막판 결승골로 극적인 승리를 이끌어내며 결승 진출에 성공한다.
결말
자, 이제 남은 건 결말이다. 이 드라마의 대미는 어떻게 장식될까. 이번 대회 (가상의) 작가가 독일을 주연으로 우승 드라마를 집필한 것이라는 본 글의 설정이 맞다면 작가는 분명 해피 엔딩을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에는 희극만이 아니라 비극도 있는 법. 작가가 준비한 것이 주인공의 새드 엔딩일 수도 있다. 시청자(!)들의 성화에 따라 결말이 바뀌는 법도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다.
먼저, 해피 엔딩으로 끝맺기 위한 장치는 이미 마련됐다. 러시아를 상대로 낙승을 거둔 독일의 결승전 상대 스페인의 주포가 불의의 부상으로 쓰러지게 한 것이다. 이번 대회 득점왕을 노리던 다비드 비야(4골)는 러시아 전에서 프리킥을 차다 쓰러졌고 결국 이른 시간에 교체됐다. 독일이 우승으로 가는 길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둔 것이다.
하지만 새드 엔딩의 단초도 무시할 수 없다. 비야 대신에 투입된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맹활약을 펼친 것처럼 스페인은 이번 대회에 참가한 그 어떤 팀보다 선수 층이 두터운 팀이다. 그러니, 이런 장치를 설정했다 하더라도 주인공(독일)의 유로2008이 해피 엔딩으로 끝나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주인공 독일을 위해 많은 스토리를 풀어낸 작가라 하더라도 그를 위해 준비한 결말이 해피 엔딩이 아니라 새드 엔딩일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하지만, 어떤 결말이든 시청자인 팬들이 최고의 감동을 느끼게 하는 것이 이 가상의 작가에게 주어진 미션일 터이니 우리는 이번 결승전에서 또 어떤 드라마가 펼쳐질 지를 기대하면서 흥미진진하게 킥오프를 기다리면 그 뿐이다. 물론, 그 사이에 또 어떤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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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 잘썼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