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디지털 웰니스의 시대’
류준영 머니투데이 기자
굿테크와 슬립테크
굿테크(GoodTech)는 인간을 위한 기술을 뜻한다. 건강과 웰빙, 지속가능성과 회복력, 안전기술이 여기에 해당한다. 슬립테크(SleepTech)는 수면과 기술의 합성어로 AI, IoT, 빅데이터 등이 인간의 수면상태를 분석하는 데 쓰인다. 굿테크와 슬립테크는 세계 최대 규모의 ICT 융합전시회 ‘CES 2023’에서 제시된 미래 산업의 대표 키워드다. 둘을 산업적 측면에서 합쳐보면 ‘디지털 웰니스’를 나타낸다. 웰니스(wellness)는 육체적·정신적 건강(well-being)과 행복(happiness)을 합친 말이다. 디지털 웰니스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애 전주기 건강과 행복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개념이다.
CES에 출품돼 눈길을 끈 제품들을 보면 △맞춤형 숙면 자세를 위한 스마트 침대 ‘베드’(제조사 에르고스포티브) △생활공기 측정기술을 위한 USB 형태 미세먼지 측정기기 ‘카나리’(피에라시스템즈) △개인 건강정보 수집·분석을 통한 개인별 맞춤형 건강관리 플랫폼 ‘캐즐’(VAZZLE, 롯데헬스케어) △ 나노 기반 센서를 통한 눈 모니터링 및 안구운동 추적 스마트 수면안대 ‘소마슬립’(소말리틱스) △AI 센서 기반 압력 매핑 기술로 신체 균형 및 자세 지표를 제공하는 스마트 목욕 매트 ‘스마트배쓰매트’(비밸런스) 등이 있다. 초고령화, 웰빙 트렌드, 코로나19를 통한 원격의료 확산 등으로 국내에서도 디지털 웰니스가 부상 중이다.
「과학과기술」은 최근 한국디지털웰니스협회가 ‘대전환 시대의 디지털 웰니스’를 주제로 개최한 창립기념 포럼의 발표 내용을 기반으로 디지털 웰니스 기술과 시장, 비전 등을 조망했다. 한국디지털웰니스협회는 지난해 말 건강하고 행복한 디지털 웰니스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비전으로 세워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사단법인이다.
의료·건강서비스 시장 전망 밝아…연평균 18.8% 성장
글로벌 리서치 조사업체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의료·건강서비스 분야의 세계 시장 규모는 전 세계 GDP의 약 10%를 차지한다. 2020년 1,525억 달러(약 205조 원)에서 2027년 5,088억 달러(약 682조 원) 규모로 연평균 18.8% 성장할 전망이다. 마켓스앤마켓스에 따르면 AI 헬스케어 분야 국내 시장 규모는 세계 시장 대비 5.7%로, 다른 디지털 헬스 분야보다 높은 성장성을 지녔다는 평가다. 우리나라도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실버테크’가 더 이상 틈새 분야가 아닌 주류로 떠오른다. 이 또한 디지털 웰니스의 한 축이다.
디지털 웰니스와 챗GPT
챗GPT는 디지털 웰니스 시장에서도 화두다. 최근 챗GPT와 의사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비교하는 흥미로운 실험이 이뤄져 관심을 이끌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챗GPT 답변이 사람 의사보다 더 뛰어나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교 퀄컴연구소팀은 의학 관련 질문을 올리면 의사 면허를 보유한 전문가가 답변해주는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에스크닥스 게시판’에 195개 질문을 무작위로 선정한 후, 해당 질문에 대한 답변을 세 명의 의사에게 블라인드 형식으로 보여줬다. 평가기준은 더 나은 응답, 정보의 질, 공감도 등이다. 이 해답 중엔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의사 말고도 챗GPT가 답변한 것도 있었다. 그 결과 전체 전문가 평가 중 79%가 챗GPT의 응답이 더 낫다고 평가했다. 공감도는 챗GPT가 의사보다 9.8배 높게 나타났다. 이 같은 연구내용은 미국의학협회 학술지 「JAMA 내과학」 최신호에 실렸다.
강용성 와이즈넛 대표이사는 최근 등장한 챗GPT가 헬스케어 분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란 전망에 공감을 표했다. 와이즈넛은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가정의학과 김양현 교수와 함께 만성질환자용 챗봇을 공동 개발한 바이오 스타트업이다. 챗봇의 역할은 다양하다. 치료 전 대화로 환자 상태를 문진한다.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처방 준수 여부, 건강한 생활습관 유지 등의 모니터링도 수행한다. 이를 통해 환자는 생활습관과 운동방법에 대한 조언을 얻고, 챗봇은 환자 상태 및 활동을 환자와 의료진에게 알린다. 또한, 주 또는 월 단위로 환자의 생활습관 정보를 요약해 의료진에게 제공해 준다. 환자의 기억이나 말에 의존한 생활습관 파악보다는 좀 더 객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강 대표는 “챗GPT 같은 생성형 AI는 광범위하고 유연한 대화가 가능한 데다 심리상담, 컨설팅 및 전문상담, 감성 케어 및 시니어 케어 등으로 기존 의료용 챗봇 기능을 확대할 수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맞춤형 영양제 구독 시대
비타민, 밀크씨슬, 루테인, 프로폴리스 등 당신이 하루에 복용하는 영양제는 총 몇 개인가? 못해도 5개 이상 10개 이하라는 답변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 영양제가 내 몸에 맞는지도 궁금하다. ‘남들이 먹으니 나도 먹는다’는 답변이 예상보다 많다.
네이버·카카오로부터 18억 원의 초기 투자를 받아 주목을 이끈 디지털 웰니스 스타트업 가지랩은 웰니스 큐레이션를 통해 맞춤형 건강관리 전략을 제안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지녔다. 근래 개인의 성향·경험·환경에 따라 스스로 건강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볼 수 있는 ‘나를알아GAZI’ 설문을 출시, 소비자의 호응을 얻고 있다. 김영인 가지랩 대표는 “앞으로 건강검진 정보와 문진을 통해 본인에게 맞는 영양제를 조합해 구독하는 서비스가 대중화될 것이며, 이는 건강기능식품으로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니어 메타버스 시장도 각광
미국에서도 노인의 고립 문제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이와 관련한 디지털 치료제 개발에 투자가 집중된 가운데, 가상 현실(VR)을 통한 회상요법 서비스 효과가 꽤 뛰어나다. VR 회상요법은 입체영상 기술로 노인이 지난 세월에 겪었던 환경을 최대한 비슷하게 재현해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다시 경험케 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를 통해 우울증이나 치매 예방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예컨대 노인을 위한 맞춤형 VR 플랫폼을 개발한 미국 업체 마인드VR(MyndVR)은 집에 혼자 사는 노인에 초점을 맞춰 서비스를 제공한다. 젊은 시절을 상기시키는 공간으로 순간 이동하는 듯한 경험은 물론 200여 개 이상의 가상여행, 레크리에이션, 역사 교육, 음악·예술 콘텐츠도 제공한다. 이를 사용한 노인의 70%에서 정신과 약물 사용량이 감소하는 효과를 가져왔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MIT 연구팀이 2018년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VR 회상요법은 노인의 정신 활동을 자극해 고립감을 해소하고 인지 기능을 향상시킨다. 조금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오픈XR(확 장현실)융합연구단장은 “최근까지도 가상현실이 다양한 정신건강 장애뿐만 아니라 노인의 인지기능 평가, 개선에 효과적이라는 연구논문이 전 세계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최근 디지털 친화력이 강한 시니어층이 늘면서 VR·증강현실(AR)도 실버테크 분야의 한 축으로 각광을 받는 추세”라고 말했다.
룩시드랩스는 메타버스 기반의 사용자 멘탈 헬스케어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VR 기반의 인지건강관리 코치 ‘루시(LUCY)’를 통해 5분 동안 간단한 게임을 마치면 치매 가능성을 검사할 수 있다. 회사 관계자는 “VR 기기에 부착된 뇌파 센서를 통해 사용자가 VR 게임을 하는 동안의 지속 주의력, 작업 기억력, 공간 지각력 등을 측정한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측정한 결과가 전문가의 진단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사용자의 인지 능력 수준을 확인해 포괄적인 진단을 내리고 논의 하는 보조도구로는 사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앞으로 VR·AR 관련 기기 보급이 늘면서 관련 시장도 폭발적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애플은 올해 복합현실 (MR) 헤드셋을 선보일 예정이다.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오는 6월 세계개발자컨퍼런스(WWDC)에서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 소니는 앞서 지난 2월 플레이스테이션 VR2(PS VR2)를 출시했다. 메타는 고글형 VR 기기인 ‘퀘스트3’를 올 하반기에 선보일 예정이다. 삼성전자도 퀄컴, 구글과 함께 XR 기기를 공동 개발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고령자를 위한 메타버스 기반 실버 헬스퀘어 기술 보급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조 단장은 “스마트폰 등을 익숙하게 잘 다루는 디지털 시니어들이 증가하고, 관련 기술이 발전하면서 앞으로 시니어 메타 버스 시장은 더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디지털 웰니스 산업 육성을 위해 국가 바이오 데이터 공유 플랫폼을 구축하고, 12대 핵심기 술을 선정했다. △첨단뇌과학 △디지털 치료제 △전자약 △바이오닉스 △마이크로바이옴 △첨단신약 △디지털 그린팩토리 △병원체 극복기술 △유전자 편집 △줄기세포 지도 △AI 신약 플랫폼 △오가노이드 등이다.
최희윤 한국디지털웰니스협회장은 “챗GPT 등 빠르게 변화 하는 디지털 세계 동향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그것을 우리의 건강과 행복에 연결시키는 일은 중요하다”라며 “디지털 웰니스 생태계를 구현해 건강 격차 해소와 디지털 포용 등 세계에 선한 영향력을 확산할 수 있길 바란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