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의 공간을 둘로 나눈다. 내 방과 내 방이 아닌 곳. 나에게 방은 모든 생활의 출발이자 도착점이다. 나는 방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혼자 꼬물꼬물 논다. ‘집’이 세상으로부터 경계를 짓는 외형적 거처라면 ‘방’은 이보다 훨씬 내밀한, 최소의 사적 공간이다. 내게 중요한 건 ‘집’보다 ‘방’이다. 방, 철저히 ‘나’로 있을 수 있는 공간 어려서부터 나는 밖에서 에너지를 쓰고, 집에 들어오면 에너지를 비축했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구별이 뚜렷한 건 지금도 물론이거니와 부모님과 함께 살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은 어린 딸의 프라이버시를 소중히 여기는 분이셨기에 내가 방 안으로 들어가면 더 이상 말을 시키지도, 방에 들어오지도 않으셨다. 나는 내가 원하는 때에 가족들을 만나고 원하는 때에는 언제든 혼자가 될 수 있었다. 방은 그 경계였고 나만의 작은 천국이었다.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방에서 지냈다.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으면서, 때론 음악을 듣고 기도를 하면서. 뒹굴거리며 공상에 빠지는 시간도 좋았다. 방에서 나는 세상의 눈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로 존재했고, 무한한 자유의 상태로 있을 수 있었다. 방은 ‘나의 세상’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누군가와 공간을 나눈다는 것 몇 년 전 일이다. 해외에서 잠시 귀국해 거처가 불분명했던 친구와 세 달간 함께 지낸 적이 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물며 그 친구는 내가 어둠 속을 헤맬 때 든든히 옆을 지켜준, 둘도 없는 소울메이트였다. 하지만 나는 공간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함께 지내기 시작하면서 우리에겐, 아니 나에게 몇 가지 문제가 생겼다. 가장 큰 어려움은 집에서 말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혼자만의 공간에 머물렀던 나는 집에 들어오면 말을 하지 않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결혼을 했던 친구는 퇴근 후 남편과 나누는 소소한 대화가 하루의 기쁨이었다. 늦은 밤, 내가 집에 들어오면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날 있었던 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책이라도 읽으며 쉬고 싶었지만, 친구의 기대에 찬 눈빛을 외면하는 건 쉽지 않았다. 조용히 앉아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하물며 친구는 내가 침대에 누워 책을 펼치고 있어도 시시때때로 말을 시켰다. 서서히 친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기 시작했다. ‘친구와의 수다는 기본적으로 즐겁다’는 명제에 금이 생겼다. 얼마 되지 않아, 집에 들어오는 길에 현관문을 열기 전 심호흡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게다가 친구는 아직 외국에 있는 남편과 밤늦은 시간에 통화, 혹은 채팅을 했다. 문제는 당시 우리 집이 원룸식 아파트였다는 거다. 나는 친구의 통화 소리와 타이핑 소리에 잠을 설쳐야 했다. 다크서클이 내려앉았고 집을 향하는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아주 오랜만의 휴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친구는 나와 무언가를 함께 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나는 조용히 책과 전화기를 챙겨 볼일이 있다며 집을 나섰다. 내가 찾아간 곳은 동네 카페였다. 그래, 나는 피신한 것이다. 나에게는 혼자 있을 공간이 필요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친구는 이런 나의 상태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약속했던 3개월이 지나 친구의 남편이 귀국하고 친구가 집으로 향할 때 생각했다. ‘이제 난 살았어.’ 그렇게 나의 첫 번째 동거는 씁쓸한 기억으로 남았다. 지금이라면 조금 달랐을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누군가와 공간을 공유하는 건, 혼자 있을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 사라진다는 건 나에게는 과도한 도전이라는 교훈을 남겼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걸까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대로 ‘자기만의 방’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걸까. 그런 건 독자적 공간을 가질 수 있는 이들의 배부른 욕구는 아닐까. 대가족을 이루어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방이라는 사적 공간의 개념 자체가 없지 않을까. 혹시 나는 어려서부터의 생활 방식에 익숙해진 것은 아닐까. 언젠가 결혼한 친구들에게 “대체 어떻게 계속 한 방에서 (그것도 침대를 공유하면서!) 잘 수 있느냐? 진정 사랑이란 것이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게 하더냐?” 물어본 적이 있다. 친구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장난하냐? 엄청 불편하다”고. 그러면서도 “적응하는 것 같다. 출장이라도 가면 허전하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런 예쁜 답을 한 친구는 딱 한 명. 다수의 친구들은 “뭔 소리냐. 출장은 기회다. 난 친구들 불러서 집안 냉장고 거덜낸다”거나 “그러니 결혼을 하더라도 절대로 방은 따로 쓰자는 확인서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얘들아, 이 글 보면 누가 누군지 다 알 테지만 실명은 거론 안 할게. 한 가정에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구나. 난 다만 나름 한 성깔하는 너희들이 이렇게 지지고 볶으면서 누군가와 한 방에 살고 있는 게 용할 뿐이야.) 본가가 전라남도 순천인 한 지인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동생 셋과 함께 생활했던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어렸을 땐 괜찮았는데 나이를 먹으니까 혼자만의 공간이 없는 게 힘들더라고요. 어느 날, 정말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동생들이랑 사이가 좋았는데도요. 그래서 저는 차를 샀어요. 차에 들어오면 혼자 있을 수 있잖아요. 신기하게 많은 부분이 해소됐어요.” 1년여를 룸메이트와 별 갈등 없이 지내고 있는 친구에게 물어본 적 있다. 힘든 건 없냐고. 친구는 “어, 별로 없어. 우린 냉장고도 칸을 나눠서 쓰거든. 정확하게 나눠져 있지. 그리고 우린 방을 따로 쓰잖아. 일주일에 한번 얼굴 볼까 말까 하는데 뭐. 가족이나 친구가 아니라 룸메이트잖아. 말을 안 걸어”라고 말했다. 몸이 힘들 땐 집에서 누군가가 따뜻한 밥상을 차려놓고 나를 기다려주었으면, “오늘 힘들었지?” 하고 등을 도닥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정말이지 간절하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다. 그 사람이 계속 있다면? 나는 아마 “집에 안 가니?”라고 말하고 싶을 것 같다. ‘자기만의 방’, 에고의 자기장이 부딪히지 않을 만큼의 내적 공간 ‘자기만의 방’은 절대적으로 공간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친구와 함께 지냈던 세 달을 돌이켜볼 때, 나는 그를 위한 마음의 자리 한 켠을 내어주지 못해 힘들어 했던 스스로가 안타깝다. 내 몸에 익은 방식들을 고수하기 위해, 나를 지키기 위해 애썼구나 싶다. 한 공간에 오랜 시간 함께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내 에고의 자기장과 그의 에고의 자기장이 부딪히고, 그때의 갈등은 피할 수가 없다. 그러니 에고의 자기장이 부딪히지 않을 만큼의 공간이 ‘자기만의 방’이 아닐까. 단단하고 두꺼운 내 에고가 사라져서 누구와 함께 있어도 그의 에고와 부딪히지 않고, 그러니 사람으로 북적이는 시장 한복판에 있어도 그저 나로 존재할 수 있다면, 그래서 내가 서 있는 곳이 곧 내 방이 된다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그건 어려울 것 같다. 분리되고 싶은 욕구가 친밀성의 욕구보다 강한 걸 보니, 당분간은 내 에고가 조금 더 작아지길 바라면서 ‘자기만의 방’을 사랑해야겠다. 이게, 지금의 나에게 맞는 생활 스타일이다. 지방에 사는 친구들이 서울에 오면 간혹 재워야 하는 날이 있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방은 하나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 반가워서이기도 하지만, 확실히 내 에고의 경계는 예전보다 훨씬 느슨해 진 듯하다. ‘내 방’을 여는 것도 심하게 괴롭지 않고 밤늦은 시간의 소소한 대화도 나쁘지 않다. 게다가 그들은 “집에선 말 안 시킬게!”라고 먼저 말해주는 고마운 친구들이니 말이다. “그래! 좋아. 기껏해야 하루 이틀이니까. 삼일은 안 된다~! 알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