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고향을 다녀왔다. 지난 추석 이틀 전에 옆집할머니 돌아가셔서 다녀온 이후로 처음이니 두달하고도 보름여 만에 고향을 다녀온 셈이다.
마음은 늘 고향과 혼자계시는 어머님 생각 간절한데, 좀처럼 시간을 내기가 어렵고, 마땅히 핑계 만들기도 힘들었는데, 어머니가 쌀을 가져가라 하시고, 어부인도 겸사해서 처제내줄 쌀도 사오라 하여, 오랜만에 작심하고 고향엘 다녀왔다.
요즈음은 중, 고등학교 기말고사 기간이라 애들과 어부인을 동반한다는 것은 어렵기도 하거니와(요즘은 평소에도 애들이나 어부인이나 늘 바쁘다), 나도 이제는 혼자 가는 것이 오히려 홀가분하기에 토요일 아침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서니 1시간 조금 넘어 천안지나 목천 나들목에 도착한다.
박문수 어사묘 입구에 도달하여 고향인 가전리에서 오이 농사하는 태환이 생각이 나서 전화를 하니 마침 오이하우스에서 일한다기에 잠깐 들르니 역시 고향에서 농사짓는 창석이도 같이 일을 하고 있다. 오이를 따서 담는 바구니를 도루레로 이동시키는 장치를 달고있다가 간식으로 라면을 먹는 중이었다.
고향을 지키는 친구들은 갈색피부에 조금은 거칠지만, 건강하고 혈기왕성하게 살고 있고, 바쁜 철이 지나면 조금은 목가적인 여유를 갖고 산다. 친구들을 통하여 또 다른 고향친구들의 근황을 듣고 일어서니 어느새 점심이다.
부지런히 달려 고향에 들어서니 텅빈 들판이 황량하다. 추수를 끝내고, 말끔히 정리된 들녁과 낙엽도 모두 진 쓸쓸한 고향은 언제나 말없이 그대로이다.
고향집마당에 들어서니 더더욱 적막하다. 은행나무, 감나무 모두 빛 바랜 잎새들만 바스락거리며 뒹구는데, 아들이 이렇게 일찍 올 줄은 모르시는지, 시동끄고 문닫는 소리에 놀라서 버선발로 뛰어 나오신다.
저녁에나 올 줄 알고 점심도 안 했다는 어머니는 아랫목에서 베지밀 하나 꺼내 나가시며 오늘 점심으로 먹으려 했다고 하신다. 이제는 여든셋에 하루종일 거동도 적으시니 끼니도 대충하시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리다.
어머니의 손길은 언제나 마법 같아서, 부엌에서 삼십 여분 달그락 그러시더니, 그새, 하얀 쌀밥과 걸죽한 두부된장국, 그리고 곰국을 끓여놓으시고는 부르신다. 어머니의 손길에서 오늘의 내 모든 살이 만들어졌기에, 된장국하나만 있어도 밥 한그릇 뚝딱이지만, 오랜만에 맛보는 어머니의 모든 것이 최고이다.
이제는 걷기도 어려워서 마치 나비가 날아가듯 하늘하늘 걷는 모습이 너무나 가냘픈데, 세월을 잡을 수만 있다면 그냥 세월을 묶어두고, 언제까지나 어머니 옆에서 이렇게 세상을 잊고 살고 싶다.
거나하게 먹은 점심을 소화도 시킬 겸 뒷산에 오르는데, 경사가 급하고 이제는 두툼하게 쌓인 솔잎이 어찌나 미끄러운지, 집에 있는 운동화 대충 신고 나섰다가 땀을 후즐근히 흘렸다. 뒷동산은 10여분이면 올라가는 낮은 산이지만, 능선을 따라 백여미터만 가면 나오는 매봉산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확 트이며 가슴이 뻥 뚫리는듯한 기분이다.
매봉산 정상에는 가문의 영광이고 고향의 영웅이신 유관순 누나가 봉화를 올리던 곳을 기념하여 봉화탑이 있고, 이은상 선생이 쓴 봉화탑 찬가가 있다.
매봉에서 바라보면 병천이 한눈에 들어온다. 매봉 아래 유관순 사당 건너편에 우리의 초등학교가 정면으로 보이고 병천 시내가 길게 보인다. 어릴적, 2층집이라고는 친구네 방앗간이 유일했었는데, 이제는 규모는 작지만 제법 도시화된 병천의 모습은 고향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맛이다.
학교앞길은 고사하고, 지금은 잘 포장된 신작로(21번국도)조차도 포장 안되었던 그 시절의 자갈길은 여름엔 뙤약볕과 먼지로, 겨울엔 눈보라와 개미기 찬바람과 싸우며 걸어 다녔던 추억이 가득한 그 길이 아련하다. 이제는 비포장 길 들은 간데없고, 사방으로, 없던 길 새로 만들며 거미줄처럼 잘 포장된 도로가 도시화를 더욱 촉진하고 있다.
병천의 도시화는 왼쪽으로 더욱 뻗어나간다. 왼쪽 뒤로 한나라당 연수원이 있고, 고개 넘으면 한국기술교육대가 있고, 좀더 뒤쪽으로 독립기념관이 멀리 보이고, 21번 국도가 4차선으로 곧게 뻗어 병천 왼쪽으로 돌아간다.
고속철의 개통에서 시작하여 신행정수도로 한껏 바람이 불어 온천지 돈풍년이 들고, 고향 인근 주민들의 가슴만 부풀게 하고는 풍선 터지듯 세상은 하루아침에 차갑게 식어버린 거품이 되어버렸지만, 이미 파헤쳐지고 건설되어지는 도시화는 우리 고향도 예외가 아니다.
초등학교를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나오는 개미기는 그야말로 첩첩산중의 숨겨진 그늘 같았지만, 이제는 작성산 아래까지 개발의 바람이 불어 올라 갔다.
개미기 바람을 가슴에 담으며 오른쪽으로 더 올라가면 나오는 아우내 중학교, 면실, 그위에 봉황리…아우내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논정위에 봉황리가 있고, 거기에 또 다른 초등학교가 있음을 알았다. 그 깊고도 먼 봉황리에도 많은 친구들이 살고 있었다.
병천은 저렇게 벗겨지고 개발되고 도시화되어가고 있다.
능선을 따라 다시 내려오면 마을어귀에 있는 유관순 생가와 교회가 나온다. 일찍이 서구의 선교사들이 들어와 세웠다는 매봉교회는 이 조그만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게 유서가 깊고, 우리 민족의 영웅을 만들어주었다.
지금은 거창하게 위용도 당당하게 서있는 매봉 교회는 팔십 노인네들이 주로 교인인 겨우 20여호의 조그만 마을에서 이화여고 재단의 도움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어릴적 꿈이 담겨있고, 추억이 그득한 예배당이다.
교회오른쪽으로 생가가 복원되어있고, 교회 앞쪽으로는 유관순 누나의 막냇동생이 살던집을 허물고 기념으로 대가 집처럼 복원되어 있다. 어릴 적에는 교회자리에 조그만 시골 교회가, 생가자리엔 유관순열사의 생애를 찬양하는 비석이 있었고, 넓은 마당은 비석 마당이라 하여, 일요일엔 마당 쓸고 잡풀 뽑는 일이 큰 일이었다.
마을의 끝 집인 우리집 뒤로 하여 뒷동산을 오르고, 능선을 따라 마을 어귀로 내려와 다시 마을 들녘을 돌아 집으로 돌아오니 그래도 두어 시간의 산행이나 다름이 없다. 저녁은 오랜만에 외식하기로 하고,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어머니와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눈다.
옆집은 동네 들어오는 논당고개 아래 천수답 닷마지기를 삼억오천이나 주고 팔았다며, 사는 집터도 못사서 쩔쩔 매더니 횡재했다고 하고, 그 옆집 누구네는 창뜰고개밑에 땅을 팔아서 또 이억을 받았다는 둥, 조그만 동네에도 제법 많은 돈이 흘러 들어온 모양이다.
우리 아버님은 젊을적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착하게 사셨는데 왜 남들처럼 여기저기 남겨진 땅이 없을까 했더니, 큰형 장가들제, 누이 시집갈 때, 그리고, 셋째와 막내 대학 다닐 때 팔아버린 땅들을 얘기하시며 아버님이 젊을적 사들인 땅은 그렇게 모두 팔아야만 했다고 하신다.
그러고는, 돌아가시기 전, 어머니 두 손을 꼭 잡고 평생을 고생만 시키고 이제 편히 살려고 했는데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 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다는 얘기를 담담히 하신다. 내가 대학 마치고 취직하여 신입사원으로 막 직장생활 시작하고, 졸업식을 열흘 앞두고 위암으로 돌아가셨으니, 이제 만 이십년 전 얘기이다.
어느새 막내도 사십대 후반이니, 어머니의 그 고단한 삶의 여정도 까마득한 옛일이 되고, 같이 늙어가는 큰아들과 둘째 아들을 생각하시며 이제는 갈 때가 되었다고 하신다. 정년퇴직하면 돌아와 살 집터를 얼마 전에 계약한 둘째 형이 오기 전에 가야 하는데 하시길래, 적막한 고향에서 둘째 형도 쓸쓸할 텐데, 어머니가 오래오래 사셔야 둘째 형도 행복할거라고 말씀 드렸다.
저녁은 아랫동네 길가에 있는 황토오리고기집에 미리 예약하여 오리 한 마리를 먹고 왔다. 오리 속에 찹쌀과 은행, 밤, 대추, 호박씨, 그리고 여러 종류의 한약재를 넣은 뒤 황토 흙으로 쌓아서 세시간 동안 불에 구운 오리는 살점이 부드럽고 맛이 좋았다.
어머니는 맛있는 요리를 먹는다는 것보다 아들과 함께 외식한다는 게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겨우 두어 점 드시고는 배부르다 하시더니 수저를 놓으시고는 막내아들 챙겨주시느라 분주 하시다. 시골의 외딴곳 길가에 있는 오리고기집도 주말이라 그런지 가족끼리의 외식 손님들이 제법 있어서 썰렁하지는 않았다.
적막한 고향의 겨울 밤을 어머니와 둘이서 보내니 나는 어느새 어릴 적 막내로 돌아간다. 이제는 친구도, 아이들도 모두 떠난 쓸쓸한 고향을 지키는, 이제는 대부분이 팔십 노인네들인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모두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기원해본다.
부러버라~ 바쁘면 바쁜대로 망중한이면 망중한대로 휴가면 휴가대로....ㅋㅋㅋ.... 그 회사 무지 좋다. 엠티도 스키장으로 가구...게다 이쁜 후배 얼굴 덤으로 보는 곳으로나 출장 보내주고...난 뭐여~ 요 12월 휴일은 반납인데...천정이 코 앞에 다가오면 일어나는 행복 상실...19일 3차 시험 보는 아들 땜시...하루 종일.
첫댓글 아침이면 다들 컴을 보니 고향사진이 달랑 한 장 나온 후 잠자구... 집에 가서 봐야하겠지만 도균이 시험기간이니 것도 쉽지않구...
사진링크를 컴내꺼로 했는데, 고작 12시간만 유효한거라네....다시 다음카페사진실로 옮겨서 올렸슈
ㅋ~ 오늘은 제대로 봤슈.... 아니 허구헌 날 바쁜 사람이 고향 가서 느긋이 한가로운 사진을 다 담아 오구...하여튼 대단한 초우~
망중한이라자녀~ 혼자서 고향가면 또 남는게 시간아니우....체질이 여기저기 누구 불러서 술먹는걸 별로하니 그냥, 산이나 오르고, 들녘을 산책하고 하면서 시간보내고....사진은 그냥 생각나면 누르면 되니까...나, 지금 또, 스키장으로 1박2일 엠티가요~
부러버라~ 바쁘면 바쁜대로 망중한이면 망중한대로 휴가면 휴가대로....ㅋㅋㅋ.... 그 회사 무지 좋다. 엠티도 스키장으로 가구...게다 이쁜 후배 얼굴 덤으로 보는 곳으로나 출장 보내주고...난 뭐여~ 요 12월 휴일은 반납인데...천정이 코 앞에 다가오면 일어나는 행복 상실...19일 3차 시험 보는 아들 땜시...하루 종일.
엠티를 회사돈으로 간게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걷은 상조회비로 갔으니 좋은 회사라고 할 수는 없지요....아들 3차는 잘 봤겠지? 언제 발표여?
대장은 역시 효자네 연로하신 어머머님과 오붓한 시간을 가진 그 시간 얼마나 값진 시간인가? 덕분에 고향 다녀온거나 마찬 가지일세 메주 쑤며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보며 이글과 사진을 보니 고향이 그리워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