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이렇게 시작된다
절에서는 하루가 통상적으로 새벽 3시에 시작된다. 경내를 돌며 목탁소리로 대중을 깨우는 도량석이 끝나면 법당으로 들어가 예불을 올린다. 아침 먹고 나면 오전 7시 안짝이며, 이때부터 선방에선 참선하고 講院에선 경전 공부한다. <주역>에서는 '하늘은 자시에 열리고 땅은 축시에 열리고 사람은 인시에 깬다(天開於子 地闢於丑 人生於寅)'고 했다. 曆法으로 밤 11시~1시를 子時, 1시~3시를 丑時, 3시~5시를 寅時라고 하는데, 모든 만물이 깨어나고 우주의 기운이 가장 맑은 시간이 寅時다. 도교의 道士들은 '인시에 일어나 묘시에 변을 보고, 진시에 밥을 먹고 사시에 일을 시작하면 건강에 좋다'라고 한다.
나는 대개 밤 11시에 잠들고 새벽 5시경에 기상한다. 그 시간대가 수면의 질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기상하면 잠시 침대에서 꼼지락 거리다가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글을 몇 줄 쓰기도 하고, 유화를 그리기도 한다. 이 시간이 우주의 기운이 가장 맑고 인간의 정신도 맑다. 6시 되면 친구가 보낸 카톡을 읽는다. 고교 동창인 그는 1년 365일 매일 6시에 시를 보내준다. 소중한 친구다. 나는 답신으로 늘 꽃사진을 보내는데, 내가 사는 아파트 옆 성복천에 들장미, 접시꽃, 원추리, 비비추, 코스모스가 핀다. 나는 봄에 개천가에 비비추와 벚나무 몇 그루 심었다. 아파트 정원엔 무궁화 심고, 작약 씨도 심고, 백합 구근도 심었다. 요즘은 양재동에서 사 온 카사불랑카 몇 그루가 순백의 꽃 향기를 풍긴다. 꽃이야 늘 아름답지만. 자기가 심은 꽃은 더 감동적이다. 날이 밝자마자 꽃부터 보고 싶어 한다. 불교에선 천지를 華藏世界라고 부른다.
반바지 입고 나가면 팔다리를 부드럽게 감싸주는 바람이 시원하다. 감사하다. 냇물이 옆에 있어 감사하고, 수목이 있어 감사하다. 시원한 공기 에워샤워는 피부 건강에 약이고, 폐 건강에 보약이다. 폐장 깊이 공기를 마시면서 천천히 참선보행을 한다. 40년 전에 거금도 송광암 스님한테 배운 보행법이다. 발가락, 발바닥, 발뒤꿈치 모두 지면에 닿도록 신경을 집중하며 걷는다. 行住坐臥가 다 참선이다. 絶壁은 험할수록 아름답고, 娑婆도 거칠수록 아름답다. 참선하면서 중생이 般若龍船 타고 苦行의 바다 건너는 생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은퇴 후론 절제와 감사가 중요하다. 냇물 속의 잔물결에 반짝이는 햇살, 낙엽송 부드러운 잎에 비치는 햇살을 한참 바라본다. 神은 빛을 통해 천지를 장엄한다. 풀잎에 맺힌 이슬도 감사하게 바라본다. 빛에 관심 많았던 화가가 모네일 것이다. 그는 시간과 방향에 따라 빛이 변하는 걸 표현키 위해 수집 장의 垂蓮 그림을 그렸다. '빛의 화가'란 명성의 모네는 화폭에 단순히 빛의 변화만 그렸을까. 神에 대한 감사를 그렸을까. 산책하면서 모네를 생각한다.
돌아오면서 아파트 뒷문 신호등 앞에서 천사들을 만난다. 학교 등교하려는 아이들이다. 나는 그 속에서 미켈란젤로의 역작, <천지창조>에서 빠진 천사의 시선을 발견한다. 엄마 손 잡은 아이가 엄마 바라보는 시선, 엄마가 아이 바라보는 시선이다. 聖畵에 꼭 그려 넣었어야 할 시선인데, 미켈란젤로는 그걸 빼먹었다. 수선화처럼 청초한 소녀, 공을 들고 있는 소년, 미소 고운 소녀, 모두 생기 가득하고 천진난만하다. 나는 혹시 아이 등에 날개가 있는가 살펴본다. 천사는 다 날개가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엄마 품에 안긴 갓난아기가 나를 보고 방끗 웃는 바람에 몹시 놀랐다. 혹시 애기 천사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모습이 온화하여 성모 마리아 같았다. 하늘 위의 하늘을 天中天이라 부른다. 거길 불교에선 극락이라 하고, 기독교에선 천국이라 한다. 여하튼 아침마다 나는 천사들을 만나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