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글쓰기의 세계
네이버블로그/ 술술 잘 읽히는 글을 쓰려면
⑧ 쉽게 읽히는 글을 쓰려면
힘을 들여서 읽어야 하는 책을 보면 독서는 지루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만 봐도 그렇다. 유명한 작품이긴 하지만 만연체로 쓰여서 가독성이 떨어진다. 만연체는 보통 상황이나 심정을 장황하게 드러내고 싶은 글이나 자유로운 서술을 하고 싶은 글에서 쓰이지만 자칫 독자를 당혹스럽게 할 수 있다.
반면 한두 장 읽다보니 어느새 끝까지 다 읽어버리는 책이 있다. 이런 책을 읽고 나면 ‘나도 이런 글을 써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누구나 어린 시절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글을 읽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내겐 『해리 포터』 시리즈와 『키다리 아저씨』가 그랬다. 이런 책은 독자들을 환상의 세계로 초대한다. 마치 그 세계에 빠져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고 끊임없이 읽고 싶게 만든다. 도대체 어떤 마법을 부려놨기에 쭉쭉 읽히는 걸까?
첫째로, 재미있는 이야기와 캐릭터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해리 포터』 시리즈처럼 마법과 모험이 읽힌 이야기는 꿈과 현실을 넘나들게 해주고, 『키다리 아저씨』에 나오는 것처럼 따뜻하고 재치 있는 캐릭터들은 마치 우리 주변의 친구들과 같은 느낌을 준다.
또한 이런 책들은 단순한 문장 구조와 쉬운 어휘를 사용한다. 어려운 언어나 복잡한 문장이 없어서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따라가게 만든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읽히는 문장들은 독자들을 지루함에서 해방시켜주고 독서를 즐겁게 한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도 단숨에 읽히는 글을 쓰는 학생이 있다. 올해 서른여섯, 울산에서 아기 하나를 키우며 살고 있는 ‘잘생긴 애기아빠’ 학생은 벌써 내게 일 년 가까이 수업을 듣고 있다. 처음 줌을 켰는데 잘생김이 묻은 얼굴이 딱하고 나타났다. 귀여운 얼굴을 좋아하는 편이라 수업할 때마다 눈이 호강하는 느낌이 들었다.
첫 수업 때는 언제나 그렇듯 수업을 신청하게 된 계기부터 말하고 시작한다. 학생은 원래 다른 곳에서 웹소설 쓰기 수업을 들었다고 했다. 강사님은 쓰고 싶은 글보다는 팔리는 글을 쓰기를 바랐지만, 자기는 쓰고 싶은 글을 써보고 싶다고 했다. 꽤 고집 있어 보였다. 피드백을 듣지 않으면 가르치기가 힘든데 어쩌지 하는 생각도 했다.
심지어 학생은 퓨전사극을 쓰고 싶어 했다. 푸전사극이라니, 이 학생의 정체가 도대체 뭐지? 지금껏 퓨전사극을 쓰겠다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해당 장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장르문학을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소재도 특이했다. 창귀, 즉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사람 귀신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어쩌다 이런 소재를 선택하게 됐느냐고 학생에게 물어봤다. 학생은 가수 안예은의 〈창귀〉라는 노래를 듣고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역사에 관심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역사학을 전공했다고 했다.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예전부터 김훈 작가처럼 역사를 소재로 멋진 글을 써보고 싶었고, 역사 글쓰기가 최고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혼자서 학생과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되도록 학생이 쓰고 싶어 하는 글을 쓰게 내버려둔다. 내가 준 아이디어보다 더 좋은 글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학생이 써온 초고를 읽기 전까지는 걱정이 많았다. ‘어렵게 써오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큰 오산이었다. 아이를 보느라 일 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너무나도 쉽게 술술 읽히는 글을 써왔다. 나는 화장실 가는 것도 잊은 채 단숨에 그의 글을 피드백해주며 고쳐나갔다. 그의 작품 「호랑이 부름」은 ‘서태금’이라는 청년이 호랑이에게 물려간 아버지를 찾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아래는 작품의 도입부다.
영조실록 39권에 따르면, 영조가 즉위한 지 10년 되던 9월 30일의 일이다. 그러니까 1734년에 호환이 심해 팔도의 장계가 거의 없는 날이 없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죽은 자가 총 140명이나 됐다.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으면 호식이라 한다. 호식 당한 사람은 창귀가 돼 호랑이에게 영혼이 붙들리는데, 이를 벗어나려면 다리 놓기로 새로운 사람을 호랑이에게 바쳐야 한다. 그리고 호랑이는 사람을 잡아먹고 그 일부를 남기는데 그 시체가 발견된 곳에는 돌을 쌓아 호식총이라는 돌무덤을 만들고 그곳에는 아무도 찾아가지도 않고 제사도 지내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밤새 마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호랑이 소리가 사라졌다. 날이 밝자 어제 낮에만 해도 평화롭고 조용했던 마을이 시끄러워졌다.
“어제 호랑이 소리 들었는가? 마을에 무슨 사단이 난 것이 분명한데 누구 집에 사라진 사람 없는가?”
마을 주민 중 한 명이 외치자 너도나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밤새 봉변을 당한 집이 어디인가 찾아다닌다. 그때 한 청년이 집밖으로 나와 통곡하며 외쳤다.
“아이고 아버지! 우리 집에 아버지가 없어졌어요.”
이 학생의 글을 분석해 보자. 이 글의 문장은 상대적으로 짧고 구조가 간단하다. 복잡하지 않아서 읽기도 쉽다. 구어체와 일상어를 써서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야기 형태로 구성돼 있으며 ‘누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관한 정보를 순차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또 특정한 문화적 요소를 다루기도 한다. ‘호식’과 ‘호식총’처럼 한국의 전통 이야기나 민속적인 코드를 담고 있어서 독자들이 더욱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잘생긴 애기아빠는 얼마 전 둘째 아들이 태어나 수업을 계속 쉬고 있다. 내가 선물로 기저귀를 보내자 친구들은 애기아빠를 좋아해선 안 된다며 회개하라고 했다. 뭐 그럴 것까지야.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나. 잘생긴 남자와 결혼하고야 말겠다는 나의 말에 ‘화이팅’을 날려주고, 종종 카톡으로 인생 상담도 해주는 그는 나에게 둘도 없이 고마운 학생이다.
마법처럼 읽히는 작품은 우리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즐겁고 흥미로운 독서를 위해, 나의 글을 읽을 미래의 독자들을 위해 최대한 힘을 빼고 글을 써보자. 어느새 우리의 글쓰기 실력은 부쩍 올라가 있을 것이다. < ‘잘 쓰겠습니다, 일탈 강사 김연준이 들려주는 솔직담백 글쓰기 라이프(김연준, 서교출판사, 2024.)’에서 옮겨 적음. (2024. 4.15. 화룡이) >
첫댓글 감사합니다
최대한 힘을 빼고 글쓰기!
죽비소리로 간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