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인간이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이윤근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지능정보연구본부 연구위원
요즘 챗GPT라는 다소 생소한 단어가 TV 주요 뉴스에 등장하는가 하면, 커피숍에서 들려오는 옆자리의 대화에도 불쑥 나타나곤 한다. 그만큼 챗GPT라는 AI(엄밀히 이야기하면 AI에 사용되는 언어 모델의 한 종류)의 등장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과거 어느 때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챗GPT로부터 생성되는 언어의 내용과 형식이 사람과 구별이 되지 않는 수준에 이르면서 조만간 사람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은 아닌지, 더 나아가 SF에서만 보던 디스토 피아적 미래가 눈앞에 펼쳐질 듯한 우려마저 일고 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인류의 생활양 식을 바꾸어놓은 지 20년 이상 흘렀고, 스마트폰과 AI 기술이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온 지도 대략 10여 년이 되었다. 하지만 챗GPT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충격은 과거와 다른 듯하다. 우리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생활 속으로 침투한 AI는 과연 우리에게 풍요로움을 안겨줄 것인가, 아니면 대재앙을 불러올 것인가?
산업혁명과 AI
인류는 여러 차례의 기술적 혁신을 이루며 발전해왔다. 증기기관, 전기의 발명 등 ‘산업혁명’ 이라 일컬어지는 역사적 분수령을 겪으며 때로는 ‘러다이트운동’과 같은 사회운동을 통해 기술의 발전에 대립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현재 AI의 발전이 과거의 산업혁명을 이끌던 기술 발전 단계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금까지의 기술적 발전은 대부분 인간이 살고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켰지만, AI의 발전은 인간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초기 산업혁명 시대 증기기관의 발명, 기계의 자동화 등은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체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기술의 혁신을 통해 인간의 정신노동에 도움을 주는 형태로 발전되었다. 더 나아가 지금의 AI 기술은 ‘정신노동의 자동화’ 수준에 이르렀 으며, 인간의 높은 수준의 인지 기술이 필요한 작업을 대체하기 시작한다. 즉, 의사결정, 문제 해결, 창작 활동 등 과거에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인지적 작업을 수행할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AI의 발전은 ‘인간의 의식, 지능, 창의성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AI 특이점에 대한 두려움
AI의 미래를 예측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단어가 ‘특이점(singularity)’이다. 특이점이란 ‘어떤 기준을 상정했을 때, 그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점’을 이르는 용어로, 물리학이나 수학 등의 학문에서 사용된다. 이것을 AI에 적용할 경우 ‘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고 스스로 개선할 수 있게 되어 기하급수적으로 능력이 향상되는 시점’을 의미한다. 미래학자들은 대략 2040년에서 2100년 정도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특이점이 발생하면 AI는 급속한 기술 발전을 이루면서 이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의학, 에너지, 우주탐사와 같은 분야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동시에 부정적인 예측으로는 인간이 기계를 더 이상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기계가 자체 목표와 동기를 찾고, 이에 따라 스스로 작동함으로써 인간과 충돌, 대립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최근 챗GPT가 생성해내는 에세이, 소설 등을 접하면서 우리는 AI가 조만간 특이점에 도달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와 걱정을 하게 되고, 그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고 있다.
언어 모델이란 AI가 인간의 언어 능력을 갖기 위해 필요한 지식의 집합체라고 이해하면 된다. 언어 모델을 생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텍스트 데이터를 이용해 모델을 학습시켜야 하는데, 문자, 단어 등의 분포를 통계적으로 학습하게 됨으로써 언어가 사용되는 방식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키게 된다. 학습시키는 데이터의 양을 늘리고 모델의 크기, 즉 모델에 포함된 파라미터의 수를 수천억 개 이상으로 늘리면 AI는 인간과 유사한 언어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언어 모델은 많은 양의 텍스트 데이터를 받아 인간과 같은 반응을 생성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인간의 지능은 환경에서 감각 입력을 받아 언어와 행동 등을 생성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시각, 청각 등 다양한 감각 정보를 포함한 복합적 입력을 처리해 지식화할 수 있으므로 작업 유형 측면에서 챗GPT보다 훨씬 더 적응력이 뛰어나고 다재다능하다. 물론 AI도 문자와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처리하는 등 진화하고 있지만, 아직은 인간의 능력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차이점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 있다. 언어 모델은 통계적 학습 알고리즘에 의존해 데이터를 처리하는 반면, 인간 지능은 훨씬 더 복잡해 주의, 지각, 기억 및 추론을 포함한 광범위한 인지 과정을 포함한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인간은 AI보다 훨씬 빠르게 학습하고 적응할 수 있다. 언어 모델이 단순히 통계적 특성에 의해 작동되는 방식이다 보니 가끔 비상식적인 답변을 하거나 그럴듯한 말로 거짓 정보를 생성하기도 한다. 얼마 전 미국 워싱턴대학교 최예진 교수의 TED 강연(“Why AI Is Incredibly Smart - and Shockingly Stupid”)을 보면 챗 GPT와 같은 AI가 때로는 얼마나 ‘비상식적’인지 알 수 있다. 다음은 그 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챗GPT는 글쓰기(기사, 소설, 블로그 등), 각종 보고서 작성, 요약, 코딩, 번역 등 광범위한 문서 작업들을 자동화하고, 작업 효율성을 높이는 유용한 도구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최근 MS의 빙(bing) 검색에서 보여주듯이 기존의 키워드 중심의 검색 방식도 자연스러운 질문과 대화 형태로 바꾸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챗GPT와 같은 언어지능은 물론이고, Dall-E와 같은 이미지 생성 AI 등 인간의 다중지능을 닮아가는 AI 기술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전해 점점 인간과 유사한 형태로 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AI 기술의 발전 방향을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나, 몇 가지 광범위한 트렌드와 핵심 기술은 포착할 수 있다. 우선 딥러닝과 신경망을 사용하는 구조가 증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중요한 기술로 남을 것이다. AI의 많은 영역 에서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입증된 대규모 모델링 방법에 계속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러한 AI를 학습하고 운영하는 데는 엄청난 양의 컴퓨팅 성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보다 에너지 효율적이고 환경친화적인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하며, 여기에는 새로운 하드웨어 또는 소프트웨어 아키텍처 등의 개발도 필요하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챗GPT와 같은 대규모 모델형 AI는 인간의 지능과 작동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처럼 인지, 행동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 성장하는 새로운 방식의 AI에 대한 연구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AI와 인류의 공존
AI는 인간에게 편리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의 풍요와 웰빙을 증가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AI는 인간이 기후변화, 자원 부족, 공중 보건 위기와 같은 시급한 글로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동시에 일자리 이동, 불평등 심화, AI 시스템이 유해한 목적으로 오용될 가능성 등 잠재적인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도 공존한다. 특히 인간 노동자의 대체와 소수 기업으로의 부의 집중화에 대한 우려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으며, 이를 대비하고 완화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잠재적인 해결책 중 하나로 기본 소득 시스템이 검토되고 있다. 기본 소득은 사람들이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를 잃더라도 자신과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수단을 갖도록 하며, 저임금이나 불안정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안전망을 제공할 것이다. 또한 근로자가 새로운 직업 시장에 대비할 수 있도록 재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함으로써 AI가 자동화할 수 없는 새로운 역할로 전환해야 한다.
기업은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정부는 이러한 활동에 인센티브를 제공 하는 등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가 또는 범국가적으로 부와 권력의 분권화를 촉진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할 수 있으며, 여기에는 누진과세, 반독점 규제와 같은 조치가 포함될 수 있다. 소수 기업으로의 부의 집중을 줄임으로써 사회는 기술 진보의 혜택을 보다 광범위하게 공유할 수 있다. 기술은 분명 끊임없이 발전할 것이며, AI는 점점 인류를 닮아갈 것이다. 이들과 공존하며 살아갈 현명한 방법을 찾는 것은 인류 모두의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