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인연

[하키키 (정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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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예순 중반의 할머니입니다. 한 대학의 의대 교수인데요. 이제 내년이면 정년이 되어 은퇴를 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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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람 답게 살고 교수까지 될 수 있었던 사연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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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깡 시골에서 태어나서 아주 어릴 때부터 장작 땔 나무를 해오고 집안
허드렛일을 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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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은 아주 가난했고 부모님은 여자애는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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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는 집안 일보다는 공부에 흥미가 많았어요. 몰래 학교 창문으로 들여다 보며 한글을 익히고 산수를 공부하다가 쫓겨나기도 하고 부모님한테 잡혀 와서 혼쭐이 나기도 했어요. 계집애가 공부해서 뭐할 거냐며
살림이나 잘 배우라고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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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제 삶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 건
젊은 여선생님이 오시고부터 였어요.
​시내에 있는 유일한 중학교에 부임하신 선생님은 제가 야트막한 산기슭에서
​쑥을 뜯다 말고 누가 놓고 간 책을 읽는 걸 보시고 저에게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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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아 지금 당장은 이게 너한테 쓸모 없는 것 같아도 언젠가 분명히 도움이 될 날이 올거야 니가 노력하는 만큼
네 인생의 기회도 넓어질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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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생님도 공부 못하게 하는 부모님의 눈을 피해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을 나와 선생님이 됐다고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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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때부터 밤마다 몰래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선생님 댁에 가서
국어 산수 도덕 사회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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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들을 배웠고, 열심히 공부한 덕에 중학교 과정도 배울 수 있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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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엄마한테 들키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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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댁에 가려고 막 집을 나셨을 때 였죠. 엄마는 아버지한테 말하지 말라고
싹싹 비는 저를 보며 한숨을 쉬시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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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키지 않고 끝까지 할 자신 있으면
그렇게 하고, 자식이 좋아하는 거
부모도 못 시켜 주는데...그걸 다 해 주신 다는데 어떻게 안 된다고 하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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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할 거면 내 몫까지 다 하거라"
라며 몰래 다닐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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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년 간 공부가 계속 되면서
저는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대학에 가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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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움이 많아서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공부할 시간도 많아야 하고 문제집도 살 게 많고...
그저 막막하고 걱정을 하자 선생님은 엄마를 만나셨어요.
"순정이는 정말 똑똑해요...누구보다 이해력도 빠르고 머리도 좋고 굉장히 성실하죠... 이런 애가 공부를 안 하면 누가 하겠어요? 부디 어머님께서 순정이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 말이 엄마는 한동안 고민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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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결국에는 저를 밀어주기로 하셨습니다. 아빠 몰래 집안일 하는 시간을 빼 주셨고 문제집 살 돈도 주셨어요. 그 돈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저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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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은 그렇게 뒤에서 조용히 제 앞 날을 위해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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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런 엄마와 선생님께 보답하고자 하루 열 시간 씩 공부를 했고 그러다 보니 점점 더 풀 수 있는 문제들이
많아 지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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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선생님이 갖다 주신 유명 학원 모의고사 문제를 풀었는데 제가 거기서 딱 두 문제만 틀렸어요. 공부 잘하는 고3들도 어려워하는 시헙이라고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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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거 봐...너는 이렇게 할 수
있을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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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공부에 재능이 있다는 뜻이야
거기다 넌 아주 열심히 노력하는
힘까지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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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제가 정말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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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험 성적을 보고도 모르겠어?
넌 이미 전국 수준이라고"
라며 저를 격려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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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말에 힘을 얻어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죠. 그리고 저는 선생님 말씀대로 서울에 있는 의과 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어요. 저는 너무 기뻐서 엄마와 선생님 손을 잡고 팔짝팔짝 뛰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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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너무 좋아서 눈물을 훔치셨고
선생님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죠.
하지만 문제는 아버지 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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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어디 여자애가 혼자 서울에
올라가냐며 펄펄 뛰셨습니다. 그리고 쓸 데 없는 데에 시간을 낭비 했다며 제 책들을 다 버리셨어요. 저는 너무 속상한 나머지 아버지를 원망하며 가출을 결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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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들은 아버지가 다 밀어줘도 못 간 대학 나는 갔는데 왜 나보고는 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 아버지가 밀어준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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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저는 몰래 짐을 싸서 새벽에 기차역으로 갔어요. 그런데 거기에 선생님이 나와 계신 것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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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아 이렇게 가면 안돼...니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집을 나가니? 나가더라도 떳떳하게 모두의 박수를 받으면서 떠나야지 지금 니가 이렇게 무작정
서울에 가면 어디서 받아줄 거 같아?
지금 그러지 말고 돌아가자...안 그러면 니가 지금까지 노력한 게 다 헛수고가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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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결국 선생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 오게 되었어요. 집에서는 가출하려고 했던 것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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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어떻게 하신 건지 대학교
입학금과 등록금을 마련해 오셨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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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버지께 "이건 제가 순정이한테 주는 대학 합격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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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1등만 한다고 하는 애들도 떨어지는 의대에 합격했잖아요.
이만한 선물은 받을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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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이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수 있게 해주세요.분명히 아버님께 효도하는
딸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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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몇 번이고 되풀이한 간곡한 설득 덕에 결국 아버지는 저를 서울로 보내기로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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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선생님께 "이 은혜를 다 어떻게 갚아요...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하며 펑펑 울자 선생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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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그리고 훌륭한 의사가 돼서 갚으면 돼"
라며 제 어깨를 토닥여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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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러겠다고 굳게 약속했고
대학에 가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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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때 다들 해본다는 미팅도 하지
않았고 다른 애들과 몰려다니며
놀지도 않고 공부하고 학생 과외만
열심히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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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학기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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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 드릴 선물을 사가지고
시내 중학교로 갔더니 선생님이
그만 두셨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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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된 일인지 영문을 묻자 결핵에 걸려서 수업 시간에 피를 토했고
그 이후로 학교를 그만 두고 요양을
떠났다고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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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제 앞으로 편지를 남겨 놓으셨 더군요.편지를 서울로 보내지 않은 건
제 공부를 방해하기 싫어서 였다고 적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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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아 너는 언젠가 꼭 훌륭한
의사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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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그렇게 믿어 그러니 건강 유의하면서 공부해야 한다.
건강 잃으면 아무 소용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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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선생님이 어디로 가셨는지
학교 선생님마다 붙잡고 물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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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선생님이 어디로 요양
가셨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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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에게도 말 안하고 떠나셨다는 거였습니다.요즘 같으면 인터넷으로
어떻게든 찾을 수 있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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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시에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저는 선생님을 찾으려고 알 만한
사람들을 찾아다녀 봤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방학이 끝나 학교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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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자취방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결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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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선생님을 다시 만났을 때
자랑스러운 제자가 될 수 있게
열심히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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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도 열심히 하고 돈도 열심히 벌자.
그게 선생님께 보답하는 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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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때 이후로 정말 더 이를 악물고 공부했어요. 잠 한 숨 안 자고 며칠씩
공부하다가 병원에 입원도 해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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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책상 앞에 앉아 있어서
엉덩이가 온통 짓무른 적도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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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일주일 치
주먹밥을 만들어 놓고 냉동실에
넣어 놨다가 하나씩 꺼내 녹여서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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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은 시골에서 보내준 김치 한 가지 였구요. 어려운 의학 용어들은 다양한
연상법을 이용해 달달 외우고
또 외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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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거울 옆에도 외워야 할
단어들을 잔뜩 써 놓고 이빨을
닦으면서도 외우고 또 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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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열심히 한 덕택에 저는 인턴 후 봤던 시험도, 레지던트 4년 후 봤던 내과 전문의 시험도 모두 한 번에 합격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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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합격할 때마다 선생님을
떠 올리고 마음 속으로 감사하다고
인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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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좋은 기회가 있어서 미국으로
연수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대학병원에서 계속
일을 하다가 순환기 내과 교수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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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정

[김영대]

멋쟁이 상남자 하키키님!
저희 여식 자연이에게 읽어주고싶은 감동글이네요.
오늘도 좋은글 감사합니다

[하키키 (정민환)]

몇년전에 올렸던글인데 내용이 너무 좋아 다시 올렸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인연이란게 정말 중요한듯 합니다
항상 생각나는사람
기억에 남는사람
은혜를 잊지못하는사람 으로 산다는것이 가장 평범하면서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요즘세상 인듯 합니다

[소백산]

다음은요?

[천봉산(김종왕)]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