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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열풍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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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 김연아 스크랩 소통을 위한 `뱀파이어의 키스`
무한의주인공 추천 5 조회 4,558 13.07.10 00:24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피겨의 뿌리는 인간이 얼음 위에서 어려운 기술로도 얼마나 아름답게 움직이는 가하는 데 있다. 때문에 숱한 스포츠 중 예술성이 가장 두드러진 종목이다. 체조며 다이빙이나 수중발레 등 몇몇 종목에 예술항목이 있긴 하지만, 찰나의 순간과 경기장소 뿐 아니라 기술적 한정에 묶인 동작들이라 몸짓 자체에서 자연스레 우러나는 아름다움은 뒤쳐진다. 예술성도 기술 자세를 짚을 뿐이다. 스포츠댄스와 에어로빅 역시 수행기술 중심이지, 음악 자체를 풀어내는 몸짓은 아니다. 때문에 피겨와 더불어 그 안무는 저작권법조차 비껴간다. 계속 발을 구르고 얼음을 지치며 다리를 쓰는 기술에 몸짓이 매여서 대여섯 개의 연결동작이 똑같이 이어지는 노골적인 모작(模作)이 아니면 발전을 위해 공유(共有)가 바람직하다는 것이 그 바닥의 목소리임을 법조계마저 거들어준다. 또 전통이기도 하다. 발레와 무용에서 빌려온 동작들로 피겨 아카데미인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스쿨을 세웠던 무용가 잭슨 헤인즈(J.Hains)가 사망한 후 그 졸업생들이 1892년에 꾸린 단체가 국제빙상연맹이다. 체조에 이어 가장 오랜 역사를 내세운다. 피겨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때라 안무를 본뜨며 서로 새로운 동작을 나눴던 것이다. 즉 발전을 위한 나눔이었다. 지금은 미리 드러나지 않게 신경을 곤두세우긴 한다.

뭇사람들이 알기보다 스포츠는 역사와 전통에 자못 괴까닭스럽다. 1963년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몇몇 유럽 국가만으로 첫 세계선수권대회를 열었던 리듬체조가 1881년에 세워진 국제체조연맹에서 기를 펴지 못하는 이유도 한참 뒤떨어진 곁가지인 탓이다. 역사와 전통만큼 고정관념도 사뭇 깊다. 빙판 위의 발레로 빗대지는 데 반해, 동작을 나뉘듯 연기하기 좋은 비슷비슷한 음악을 즐겨 쓰며, 피겨에 굳어진 색안경은 몹시 두텁고 짙다. 당연히 다양성이 턱없이 떨어진다. 슈즈를 벗어던진 춤사위로 미국에서 허덕이다 끝내 영국을 거쳐 독일에서 꿈을 피울 수밖에 없었던 현대무용의 어머니 이사도라 던컨이 딱 그 짝이다. 19세기 후반이었던 당시까지 문화예술의 중심은 아직 유럽에 있었다. 그들을 쫓느라 미국은 미처 새로움이 자리매김할 상대성이 없었다. 훗날 줄리아드음악재단이 1946년에 뒤를 받치던 뉴욕의 음악예술연구원(Institute of Musical Art)을 끌어들여 음악학교를 일으켰던 배경도 자국의 인재들이 클래식을 배우러 유럽으로 건너가는 환경을 따라잡기 위함이었다. 서로 물고 물린 상대성은 곧 다양성을 낳는다. 음악으로 시작해 무용과 드라마에 재즈연구를 통해 클래식부터 브로드웨이를 거쳐 텔레비전과 영화에서 졸업생들이 공연예술학교(performing arts conservatory)로 줄리아드의 이름을 드높이는 오늘날과 같다. 다양성을 꿰는 상대성은 다시 전체에 대한 통찰(洞察)을 맺는다. 폭 넓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 거듭 새로운 개발과 표현으로 그 장르만이 아니라 1, 2백년씩 사회 발전을 앞서 부추기는 문화예술의 무서움은 역사에 훤히 드러나 있다.

자연히 문화예술과 사회는 뗄 수 없는 상대성을 떠안는다. 경제생활개념, 즉 어떻게 먹고 사는 가에 따라 소비부터 달라진다. 기초학문이 발달할수록 가지가지 여러 갈래의 관점으로 사회를 들추며 다각적인 생산을 끌어낸다. 우리 문화시장의 과제이기도 하다. 방송영상을 끼고 자라 자신을 알아갈 시간조차 없이 열에 여덟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를 희망하는 초등학생들이 그 흐름이다. 피겨 역시 매한가지다. 전문가들조차 피겨를 전체 문화예술과 복잡다단해진 사회 속에서 하나의 장르로 헤아리기보다 오로지 전통에 붙들려 있다. 전통이란 본받아 따르되 오늘에 맞춰 되살릴 때 생명력이 웃자라는 법이다.뱀파이어의 키스는 공포 속에서 흡혈귀에게 물린 여인의 고통이 음악과 몸짓으로 서늘하게 파고드는데, 해외 중계자들마다 차갑고 열정이 시들어 보인다하며 곧잘 느끼고도 정작 선입견으로 연기에 의구심을 갖는다. 그들이 보는 눈이 낮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피겨를 너무 잘 아는 전문가들이라 자기경험의 울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김연아 선수에겐 고정관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빠른 스피드도 모자라 가속도를 붙여 너무나 쉽게 날아오르는 점프에, 링크 곳곳을 누비는 무대장악력만이 아니라 중심이동이 큰 깊은 에지는 시원스런 몸짓을 풀어내고, 시선부터 손끝이며 발끝까지 몸 자체로 음악을 타니, 높디높은 기대치가 결국 그들의 선입견만 더더욱 부풀린다. 지금껏 안겨준 명작들 때문이기도 하다. 쇼트만 봐도 록산느의 탱고, 죽음의 무도, 007메들리로 자신의 세계기록을 저 혼자 깨왔으니, 가파른 바람이 드세기 마련이다.

결국 새로운 시도 자체가 어렵다. 물론 모든 창작 작업은 그 반응을 가늠해 대중에게 드러내야 하는 상대성을 안고 있지만, 지나치면 저만의 때깔을 잃어버린다. 미국과 러시아 포럼에 들어가 보면 심지어 레미제라블조차 감동어린 연기는 좋아도 그 음악은 싫다는 글이 아주 간간이 올라와 있다. 그만큼 입맛은 저마다 상대적이다. 깨알 같은 대중을 낱낱이 어루만질 수는 없다. 예전부터 데이비드 윌슨은 다양한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뜻을 언뜻 내비쳤다. 입말은 얼핏 달라도 해보고 싶은 음악이 많다하는 인터뷰를 김연아 선수도 했다. 올림픽에 맞출 프로그램은 지나친 모험을 하기 힘드니, 그 갈증은 아이스쇼에서나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무릇 나무만 보면 숲은 살피지 못한다. 전체로부터 눈길을 옮겨갈 때 그 하나하나가 뚜렷하게 담겨진다. 컴퓨터로 소설이며 만화나 영화 등 문화생활을 줄줄이 잇기도 하는 요즘은 극예술과 그 비슷한 피겨가 살아남기 위해선 전문가들부터 작품의 창의력을 바르게 거들어줘야 한다. 내가 꼭 옳을 순 없다. 아니, 옳고 그름이 아니라 문화예술과 사회가 지닌 속성을 그저 큰 줄기로 엮은 데 지나지 않다. 어느 장르나 이 잣대를 피하진 못한다. 김연아 선수가 그 인기를 지펴주길 바라는 데이비드 윌슨의 부푼 바람대로 새로운 음악과 안무는 일명 노인정 피겨를 넘어 젊은 세대에게 다가가는 소통(疏通)이다. 소치올림픽에 따라 그 바람은 커다란 날개가 활짝 돋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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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7.12 16:47

    첫댓글 전 이 뱀파이어의 키스 참 좋은데... 걸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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