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마음
風恬浪靜中(풍념랑정중)-바람 자고 물결 고요한 가운데
見人生之眞境(견인생지진경)-인생의 참된 경지를 보고,
味淡聲希處(미담성희처)-맛이 담담하고 소리가 드문 곳에서
識心體之本然(식심체지본연)-마음의 본 모습을 본다.
채근담(菜根譚)
행자(行者)의 여생을 초발심자경문에 마음을 새긴다 !
인생은 한바탕 꿈이다.
봄에 돋은 싹이 여름에 짙은 푸른 잎으로 변하고, 가을에 단풍(丹楓)이 되어
겨울에 낙엽(落葉)으로 땅으로 돌아간다(落葉歸根).
풀잎의 이슬과 같은 초로인생(草露人生)이다.
이 세상에 가장 행복한 사람은 부부가 서로 해로(偕老)하다가 같은 날 함께
삶을 끝내는 것이 인생 최선(最善)의 행복이지만 그것은 정말 꿈같은
바램으로 기네스북에나 있을 일이다.
대부분 한쪽이 혼자 남아서 인생의 업(業)을 지고 힘들게 살다가 쓸쓸히 떠난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농월, 그동안 30년을 아내의 병 돌보느라 고생 많았는데 이제 큰 짐을 벗었으니
홀가분하게 여행도 다니고 하고 싶은 일도 하면서 남은 인생 즐기라”라고
쉽게 말하는데,
그것은 전혀 그렇지 않다 !
사람이 돈 있고 건강하다고 그렇게 쉽게 살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한 인생일까!
또 세월이 흐르면 지난 일과 슬픔은 자연히 잊어진다고 하는데,
호두알처럼 생긴 뇌(腦)는 퇴색하여 망각(妄覺)할지 몰라도
뇌(腦)아래 저 밑에 있는 “식(識)”은 내 생각과는 관계없이 먼 저간 사람을
기억에 담고 있으니 이 또한 인간의 능력으로는 피할 수 없는 “고(苦)”가 아닌가!
지난번 김동리의 “등신불(等身佛)”을 읽으면서 자식이 어머니의 생전의 업(業)을
갚기 위해 자기 몸을 “소신공양(燒身供養스스로 불태움)”으로 “등신불(等身佛)”이 된 것을 소설로만 읽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마지막 생을 마감할 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으시고(마태복음 27장 46절)
자기 몸을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업(業)을 해탈(解脫)함으로써
인간의 번뇌를 깨끗이 청산하는 것으로 해피 엔딩으로 정리 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예수님과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욕심에 정신이 팔려 죽을 때 까지 그 길을 걸어갈 정리 정돈할 생각을 못한다.
나는 예수님과 부처님을 닮기는 역부족이라
내가 뿌린 업(業)을 감당하기 위해 생불(生佛)을 모시고 행자(行者)의 길을 걷고자 한다.
일부러 골라서 읽은 것은 아닌데 우연히 최근에 읽은 책들이
초기불교의 “숫타니파타” 법정스님의 “물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새로 나온 책 박원자가 쓴 “스님의 첫마음”이다.
“스님의 첫마음”은 현존하는 48명의 유명 스님들의 행자(行者)시절 이야기를
쓴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을 다 설명 할 수는 없지만 한결같이 “첫마음”이 변해서는
부처님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도 “처음 마음을 내는 순간 하늘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라고 강조 했다.
“첫마음”을 변하지 않기 위한 필독서가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이라고 했다.
“처음 먹은 마음을 변하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경고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부끄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는 것은
독서(讀書)를 통하여 종교의 내용을 알고 싶어서
성경, 불경, 사서삼경, 천도교의 동경대전, 코란, 유태인의 지침서인 탈무드,
심지어는 신흥종교인 대순진리회 경전인 도전도 읽어 보았다.
결론은 종교는 독서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고 “종교는 신앙인의 마음으로 보아야”
이해 할 수 있을 느끼게 되었다.
마치 북한을 남한의 눈으로 보지 말고 “북한의 눈”으로 보아야 북핵을 해결 할 수
있는 것처럼
48명의 스님들은 한결같이 “스님의 첫마음”에는
“행자의 마음을 평생 갖고 사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초심(初心 첫마음)”을 잃지 말라는 결심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7,8세 어린나이에서 출가(出家)라는 특별한 길을
걸어온 스님들의 이야기 속에는 환희(歡喜)가 있다는 점이다.
어려움이 있을 때는 스승으로부터 “천천히 하라”는 구절은
백발(白髮)이 되기까지 세상을 살아온 필자에게도 좋은 교훈이 되고 있다.
천천히--
부부간, 연인간, 친구간, 가족간의 변하지 않는 “첫마음”
이 책을 읽으면서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을 알게 되었다.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만 마음에 “연비(燃臂)”하듯 깊게 간직하고 있으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어떤 공부도 더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어떤 종교의 신앙인도 죽을 때까지 “첫마음”을 유지하지 않으면
진정한 신앙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을 읽은 필자의 생각이다.
어디 종교뿐이랴
이 책을 통해 나의 여생에 “행자(行者)의 길”에서 새로운 마음의 평화와
다시 사는 부활(復活)의 길을 찾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천사 같은 마음으로 먼저가신 아내께서 혼자 남은 나에게 남긴
귀한 사랑의 정표가 생불(生佛)이라 생각할 때 감사한 마음이다.
생불(生佛)을 모시는 행자(行者)의 길이 내가 걸을 새로운 길이다 !
※참고
아래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은 필자가 읽고 정리한 것입니다.
저는 초발심자경문의 전문(全文)의 내용을 모릅니다.
이것을 읽으신 분께서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본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내용은 “포항금강불교대학” 강의용입니다.
대부분 어려운 한문(漢文)으로 표현된 단어 내용이라
이 글을 처음 읽으시는 분을 위해서 필자가 임의로 해설문에 한문(漢文)을 우리말로
풀이한 단어가 많습니다.
저의 한문 실력이 별로이고 또 공부삼아 풀이한 것이므로 잘못 설명된 것을
꼭 지적하여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해하기 쉬운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이 있으면 카페에 올려 주십시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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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출가한 사미(沙彌)가 지켜야 할 덕목을 적은 기본규율서다.
내용은
고려 지눌(知訥)이 지은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과
신라의 원효(元曉)가 지은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과
고려 후기 야운(野雲)이 지은 “자경문(自警文)”을 합한 것이다.
야운(野雲)의 “자경문(自警文)”이 고려 후기에 저술된 것을 보면 조선시대 때 합본된
것이 분명하나 언제, 누가 세가지를 합본(合本)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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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눌(知訥)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
夫初心之人 須遠離惡友 親近賢善 受五戒十戒等 善知持犯開遮
但依金口聖言 莫順庸流妄說. 旣己出家 參陪淸衆 常念柔和善順
不得我慢貢高. 大者 爲兄 小者 爲弟 儻有諍者 兩說을 和合
但以慈心相向 不得惡語傷人. 若也欺凌同伴 論說是非 如此出家
全無利益. 財色之禍 甚於毒蛇 省己知非 常須遠璃.
해설(解說)
대저 초발심(初發心)한 사람은 모름지기 나쁜 친구(惡友)를 유리 구슬을 멀리
하듯(遠璃)하고, 어질고 선함(賢善)을 친하고 가까이(親近)하여 오계(五戒)와
십계(十戒)등을 받아서 “지키고(持)” “범(犯)하고” “열고(開)” “막을 줄(遮)”을
알아야 할지니라.
다만 부처님의 설법(金口聖言)에 의존(依存-依止)할지언정 용렬한 무리(庸流)의
망령(妄靈)된 생각(妄說)을 고본고분 따르지(順從) 말지어다.
이미 출가(出家)한 절의 스님(淸衆參陪)일진대 늘 부드럽고 온화(柔和)하고
착하고 순(善順)함을 생각할지언정 능히(시러금) 자기를 자랑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아만(我慢)으로 높은체 하지 말지어다.
큰(先出家)이는 형(兄)이 되고 작은(後出家)이는 아우가 되나니 혹 다투는 자가 있거든 서로 다른 의견(兩說)을 화합(和合)하여 다만 자비의 마음(慈心)으로써 서로 향할지언정 능히(시러금) 악한 말(惡語)로 사람을 해롭게 하지 말지어다.
만일 같은 길을 걷는 동반(同伴)을 속이거나 능멸(凌蔑)하여 시비를 주장(論說)할진대 이같은 출가(出家)는 전혀 이익이 없나니라.
재물과 색(財․色)의 화(禍)는 독사(毒蛇)보다 심하니 몸을 반성해 잘못됨을 알아서 항상 모름지기 세상을 멀리(遠離)할지어다.
無緣事則不得入他房院 當屛處 不得强知他事 非六日 不得洗浣內衣
臨盥漱 不得高聲涕唾 行益次 不得搪突越序 經行次 不得開襟掉臂
言談次 不得高聲戲笑 非要事 不得出於門外 有病人 須慈心守護
見賓客 須欣然迎接 逢尊長 須肅恭廻避
해설(解說)
휘어잡고 의지(依支)하여 기어올라갈(攀緣) 일이 없은즉 능히(시러금) 타인의 방(房院)에 들어가지 말며 고요한 곳에 마땅히(當) 능히(시러금) 타인의 일을 억지로 알려하지 말며, 6일이 아니어든(지나지 아니하면?) 능히(시러금) 내의(內衣)를 세탁(洗濯)하지 말며
양치하고 세수함에 임(臨)하여 능히(시러금) 큰소리(高聲)로 코풀거나 침뱉지 말며
행익차(行益次공양할 때 진지함을 말함)에 능히(시러금) 당돌히 순서(次序)를
넘게하지말며 지름길(徑行次)을 가면서 능히(시러금) 옷깃을 열고 팔을 흔들지 말며
말할 때(言談次)에 능히(시러금) 고성(高聲)으로 희롱하거나 웃지 말며
요긴(要緊)한 일이아니어든 능히(시러금) 문밖에(門外)에 나아가지 말며
병자(病人)가 있거든 모름지기 자비심(慈心)으로 지키고 보호(守護)하며 손님(賓客)을 보거든 모름지기 기쁘고 반가히(欣然) 영접(迎接)하며 손윗사람(尊長)을 만나거든
모름지기 엄숙하고 공손(肅恭)히 몸을 비켜(回避)줄지니라.
辦道具 須儉約知足 齊食時 飮啜 不得作聲 執放 要須安詳
不得擧顔顧視 不得欣厭精麤 須黙無言說 須防護雜念 須知受食
但療形枯 爲成道業 須念般若心經 觀三輪淸淨 不違道用.
해설(解說)
도구(道具)를 마련하여 준비(辦備)할때 모름지기 검약(儉約)히 하여 족(足)한줄 알며
공양(齋食식사)할 때에 음식을 씹을 때(飮綴음철) 능히(시러금) 소리를 내지 말고
물건을 들고 놓을 때(執放) 조용히 모름지기 찬찬하고 자세(安詳)히 하며
능히(시러금) 낯을 들어 돌아보지 말고 능히(시러금) 정밀한 것과 거친 것(정추精麤),
좋아하고 싫어(欣厭)하지 말며, 모름지기 침묵(沈黙)하여 말로 설명(言說)하지 말고
모름지기 잡념(雜念)을 막아 내어 보호(防護)하며, 모름지기 밥을 받음이 다만
몸이 여윈 것(形枯)을 치료하여 불도(佛道-道業)을 이루기 위함인줄 알며,
모름지기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외우되 삼륜(三輪-施者․受者․物質)이 청정(淸淨)한줄 나타나게(觀)하여 포교(布敎-道用)를 어기지 말지어다.
赴焚須 須朝暮勤行 自責懈怠 知衆行次 不得雜亂 讚唄祝願
須誦文觀義 不得但隨音聲 不得韻曲不調 瞻敬尊顔 不得攀緣異境.
須知自身罪障 猶如山海 須知理懺事懺 可以消除 深觀能禮所禮-皆從眞性緣起
深信感應 不虛 影響相從.
해설(解說)
부처 앞에 향불을 피우고 예불(焚修.焚香․禮佛)에 나아가되 모름지기
아침 때와 저녁 때(朝暮)에 부처 앞에서 독경(讀經-勤行)하여 스스로 게으름(懈怠)을
책(責)하며 대중(衆行)과 함께 순서(次序)를 알아서 능히(시러금) 뒤섞여 어지럽(雜亂)게 하지 말며, 염불(贊唄)하고 축원(祝願)하되 모름지기 글을 외워 의(義)를 볼(觀)지언정 능히(시러금) 음성(音聲)만 따르지 말고 능히(시러금) 염불의 곡조(韻曲)가 고르지 않게 하지 말며 불상의 존안(尊顔)을 우러러 존경(瞻敬)하여 능히(시러금) 다른 경지(異境)에 휘어잡고 의지(依支-攀緣)하지 말지어다. 모름지기 자신의 죄악(罪惡-罪障)이
마치 산해(山海)와 같은줄 알고 모름지기 죄를 뉘우치는 참회(理懺)와
기도로 죄(罪)를 뉘우쳐 회개(悔改-事懺)로 가히 해소(消除) 할줄 알며
깊이 부처님께 예를 올리는(能禮) 중생과 예경을 받는 부처님(所禮)이 다 거짓이 없는 진성(眞性)으로 좇아 연기(緣起)함을 관(觀)하고 깊이 감응(感應)이 헛되지 않아서
효과(影響)가 서로 따르는줄 믿(信)을지니라.
居衆療 須相讓不爭 須互相扶護 愼諍論勝負 愼聚頭閑話
愼誤着他鞋 愼坐臥越次 對客言談 不得揚於家醜 但讚院門佛事
不得詣庫房 見聞雜事 自生疑惑.
해설(解說)
여러사람이 치료받는 곳에(衆療)에 잇을때에 모름지기 서로 양보하여 다투지 말며
모름지기 서로서로 도와서 보호(扶護)하며 이기고 지는(勝負) 상대편의 견해를
비난하고 공격(諍論)함을 삼가하며 머리를 모아 쓸데없는 말함을 삼가며
그릇 타인의 신발(鞋)을 신음을 삼가며 앉음과 누울 때(坐臥)에 차례(次序)를
넘음을 삼가하며 손님(客)을 대해 생각이나 느낌을 말함(言談)에 능히(시러금)
집안의 좋지 못한 일(家醜)을 드날리지 말고 다만 절집안(院門)의 불사(佛事)를
찬성(贊)하며 능히(시러금) 고방(庫房창고)에 나아가서 온갖 자질구레한 일(雜事)을
듣고 보아 지식(見聞)을 얻어 스스로 의혹(疑惑)을 내지 말지어다.
非要事 不得遊州獵縣 與俗交通 令他憎嫉 失自道情.
儻有要事出行 告住持人 及管衆者 令知去處 若入俗家
切須堅持正念 愼勿見色聞聲 流蕩邪心 又况披襟戲笑 亂說雜事
非時酒食 妄作無碍之行 深乖佛戒. 又處賢善人 嫌疑之間
豈爲有智慧人也.
해설(解說)
요긴(要緊)한 일이 아니어든 능히(시러금) 이골에 놀고 저골에 다니면서 세상사람(俗人)과 더불어 교통(交通)하여 타인으로 하여금 미워하고 질투(憎嫉)하게 하여 자기의 도 닦는 뜻(道情)을 잃지 말지어다. 혹 요긴(要緊)한 일이 있어 밖에 나가(出行)거든 주지인(住持人)과 및 대중을 책임지는 스님(管衆者)에게 고하여 하여금 거처(去處)를 알게 하며 만일 속가(俗家)에 들어가거든 간절히 모름지기 불법의 모든 법(正念)을 굳게 가져서 삼가 색(色)을 보거나 소리를 듣고 사심(邪心)을 산란(流蕩)하지 말것이어든
또 하물며 옷깃을 헤치고 실없이 희롱으로 웃어(戲笑) 온갖 자질구레한 일(雜事)을
어지럽게 말(亂說)하며 때가 아닌데(非時) 술과 밥(酒食)으로 망령되이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無碍) 행동하여 깊이 불계(佛戒)를 어기랴.
어질고 착한 이들(賢善人)과 싫어하고 의심(嫌疑)하는 사이가 된다면
어찌 지혜(智慧)있는 사람이라 하겠는가.
住社堂 愼沙彌同行 愼人事往還 愼見他好惡 愼貪求文字
愼睡眠過度 愼散亂攀緣.
해설(解說)
공부하는 처소(社堂)에 머물 때는 어린 사미(沙彌)와 함께 행동하기를 삼가고
세속의 사람들과 서로 오가(往還)는 것을 주의하며, 다른 이의 잘하고 잘못함(好惡)을 밝히려 하지말고 지나치게 문자(文字)를 구하려(貪求) 하지 말며, 잠 자는 것(睡眠)도 정도가 지나치지(過度) 않도록 삼가고 마음이 산란해져서 부여잡고 의지하는
(攀緣)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若遇宗師 陞座說法 切不得於法 作懸堐想 生退屈心 或作慣聞想
生容易心 當須處懷聞之 必有機發之時 不得隨學語者 但取口辦.
所謂蛇飮水 成毒 牛飮水 成乳 智學 成菩提
遇學 成生死-是也.
해설(解說)
만일 宗師의 법좌(法座불도를 설하는 자리)에 올라 설법(說法)함을 만나거든 간절히
부디 법(法)을 듣고 벼랑에 매달린 것(懸崖) 같은 생각을 하여
(나 같은 범부가 어찌 까마득이 높디높은 법을 이룰 수 있으랴 하는 생각)
물러서려는(退屈心) 마음을 내서는 아니 되며
또는 익히 들어본 법문(慣聞)이라는 생각에 그렇고 그렇구나 하는 식의 쉬운 마음을
지어서도 아니 된다.
법문을 들을 때는 마땅히 모름지기 생각을 비워 들으면 반드시 깨달음의
기연(機緣)을 만날 때가 있을 것이니 반드시 말만 배우는 자를 따라서 다만 입으로
판가름(辦斷)하는 것을 취하지 말지어다. 소위 뱀이 물을 마시면 독(毒)을 만들고
소가 물을 마시면 젖을 만듬과 같아서 지혜로운 배움(智學)은 보리(菩提)를 이루고
어리석은 배움(遇學)은 생사(生死)를 이룬다고 함이 이것이니라
又不得於主法人 生輕薄想 因之於道 有障 不能進修 切須愼之.
論 云如人 夜行 罪人 執炬當 若以人惡故 不受光明
墮坑落塹去矣라 聞法之次 如履薄氷 必須側耳目而聽玄音
肅情塵而賞幽致 下堂後 黙坐觀之 如有所疑 博問先覺 夕愓朝詢
不濫絲髮. 如是 乃可能生正信 爾爲懷者歟.
해설(解說)
또한 법사(法師-主法人)에 대해 경박(輕薄)하게 업수히 여기는 생각을 내지 말라.
그런 생각으로 인해 도(道)에 장애(障碍)가 생기어 능히 도(道)를 닦아 나아가지(進修) 못하게 될 것이니 지극히 삼가하고 삼갈 할지어다.
논(論)에 이르되 “어떤 사람이 밤길을 가는데 죄진 이가 횃불을 들어 앞길을
비춘다고 할 때에 만약 그 사람이 나쁘다는 이유로 불 비춰줌을 마다할 것 같으면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 것이다” 라 하였다.
그런 뒤 법사(法師)가 당에서 내려가면 묵묵히 앉아서 관(觀)하되 의심되는 게 있거든 먼저 깨달은 사람(先覺)에게 널리 물을 것이며 아침 저녁으로 간절히 공경(恭敬)하게 물어서 의심나는 것을 털끝(絲髮)만큼도 넘기지(混濫) 말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아야 능히 바른 믿음을 지녔다 할 수 있고 도(道)로써 자기 마음자리를
삼는 자라 할 것이다
無始習熟 愛欲恚癡-纏綿意地 暫伏還起 如隔日瘧
一切時中 直須用加行方便智慧之力 痛自遮護 豈可閑謾 遊談無根
處喪天日 欲冀心宗而救出路哉. 但堅志節 責躬匪懈 知非遷善
改悔調柔. 勤修而觀力 轉深 鍊磨而行門 益淨.
해설(解說)
무시(無始)로 버릇처럼 익혀(習熟)온 애욕(愛欲)과 성냄과 어리석음(恚痴)이 잠시 마음에 칭칭 얽혀(纏綿)어 잠시 숙어진듯 했다가도(調伏) 다시 일어나는 게 마치 하루 걸러 앓는 학질(瘧疾)과 같나니 먹고 잠자고 일하는 일체시(一切時)에 모름지기 수행을 돕는 방편(如行方便)과 지혜의 힘으로써 스스로 뼈를 깍는 아픔으로 막고 지킬지언정(杜護) 어찌 한가하고 게으른(閑謾) 마음으로 근본 없는 잡담을(無根之說) 즐기면서 귀한 세월(天日)을 보내며 마음깨치기(佛心宗)를 바라고 삼계(三戒)로부터 벗어날(出離) 길을 구하고자 할 것인가.
다만 출가한 발심(發心)한 뜻과 지절(志節)을 굳게 다지고 스스로 채찍질해 게으르지 않도록 하고 잘못된줄 알면 바르게 고치며 회개하고 뉘우쳐 마음을
단련하고 갈아(鍊磨) 행문(行門)이 더욱 정(淨)해지리라.
長起雜遭之想 道業 恒新 常懷慶幸之心 終不退轉. 如是久久
自然定慧圓明 見自心性 用如幻悲智 還度衆生 作人天大福田
切須勉之.
해설(解說)
수행의 길에 복잡한 것을 만나(雜遭) 생각(想)을 일으키면 불도수행(道業)이 늘 새롭고 항상 경사(慶事)스럽고, 다행(多幸)한 마음을 품으면 마침내 보리심을 잃어 아래로
떨어짐(退轉)이 없으리라.
이와 같이 오래오래 하면 자연히 선정(禪定)과 지혜(智慧-定慧)가 원만히 밝아(圓明)
자기의 심성(心性)을 보며 헛보이는 것(幻)과 같은 것은
중생(衆生)을 구제(救濟)하는 자비(慈悲)와 불과(佛果)를 깨닫고자 하는
지혜(智慧)를 써서 중생(衆生)을 제도하여 사람과 하늘(人天)의 큰 복밭(福田)을 지으리니
부디 간절히 바라노니 모름지기 힘쓰고 힘 쓸 지어다
지눌(知訥)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 끝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해동사문 원효 술(海東沙門 元曉 述)
수행인(隨行人)이 부처될 마음을 일으켜 거룩한 행을 닦는 요긴한 말을 적은
총 706자의 사언절구(四言絶句)로 된 짧은 글이다.
내용은
(1)애욕을 끊고 수행할 것 (2)참된 수행자가 될 것
(3)늙은 몸은 닦을 수가 없으니 부지런히 수행할 것 등이라는 수행자의 결심과 그가
지녀야할 태도를 가르친 내용으로서, 지(智)와 행(行),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는 같은
것이고, 진정한 행은 보살행(菩薩行)을 실천하는 데 있으며, 이 도(道)는
인욕(忍辱), 지계(持戒), 정진(精進)에 있다는 내용으로
서론·본론·유통분(流通分)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효는 모든 부처님이 열반(涅槃)의 적멸궁(寂滅宮)을 장엄한 것은 한량없는 세월 동안
욕망을 버리고 고행 정진을 쌓은 때문이고, 중생들이 고해(苦海)의 불 속에 사는 것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때문이며, 입산수도(入山修道)한 모든 사람들이
큰 도(道)를 성취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애욕에 구속되어 실천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또한, 이 몸뚱이는 허망한 것이고 곧 무너질 것이므로 아무리 아끼고 보호해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니, 세속에 대한 미련을 끊고 계행(戒行)을 철저히 지켜서
조사(祖師)가 되고 부처가 될 목표를 세워 정진하라고 하였다.
만약 계행을 깨끗이 지녀 지키지 못하면 타인의 지도자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시주의 공양(供養)과 예배도 받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수행할 때는 계(戒)와 지혜를 함께 닦을 것을 강조하였으며,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대승행(大乘行)을 닦아 청정한 마음으로 행하면 하늘이 찬양할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여래(如來)의 사자좌(獅子座)에 나아간다고 하였다.
끝으로 세월의 덧없음을 강개 절묘한 문장으로 환기하여,
부서진 수레는 짐을 실을 수 없고 늙은 몸은 닦을 수 없는 것이니
발심수행이 급하고 급함을 간곡히 당부하였다.
夫諸佛諸佛 莊嚴寂滅宮 於多劫海 捨欲苦行 衆生衆生 輪廻火宅門
於無量世 貪慾不捨. 無防天堂 少往至者 三毒煩惱 爲自家財
無誘惡道 多往入者 四蛇五欲 爲妄心寶. 人誰不欲歸山修道
而爲不進 愛欲所纏. 然而不歸山藪修心 隨自身力 不捨善行.
해설(解說)
모든 부처님과 부처님들이 적멸궁(寂滅宮)에 장엄(莊嚴)해 계시는 것은
한량없는 바다(劫海)와 같은 세월 욕심을 버리시는 행업(行業)하신 결과이고,
중생(衆生) 중생(衆生)이 불타는 집(火宅門)에 윤회(輪回)하는 것은
끝없는 세상(無量歲上)에 탐욕(貪慾)을 버리지 못한 탓이다.
막지 않는 천당에 도착한 자가 적은 것은
삼독의 번뇌로(貪瞋痴탐진치)으로 자기 집의 재물로 삼는 까닭이고
유혹(誘惑)하는 자 없는 악도(惡道 지옥 나쁜길)에 많이 들어가는 것은
독사 네 마리와 같은 사대(地.水.火.風=몸)로서,
오욕(五慾 財.色.食.名.睡)하는 미망심을 마음의 보배(寶貝)로 삼는 까닭이다.
사람이면 어느 누가 산으로 들어가 수도(修道)할 생각이 없으랴만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애욕(愛慾)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비록 산(山)에 들어가 마음은 닦지 못할 지라도
자신의 힘에 따라 선행(善行)을 버리지 말라.
自樂 能捨 信敬如聖 難行 能行 尊重如佛. 慳貪於物 是魔眷屬
慈悲布施 是法王. 高嶽峨岩 智人所居 碧松深谷 行者所捿.
飢餓木果 慰其飢腸 渴飮流水 息其渴情. 喫甘愛養 此身 定壞
着柔守護 命必有終. 助響岩穴 爲念佛堂 哀鳴鴨鳥 爲歡心友.
拜膝 如氷 無戀火心 餓腸 如切 無求食念.
해설(解說)
세상의 쾌락을 능히 버릴 수 있으면 성인(聖人)처럼 믿음과 공경(信敬)을 받을 것 것이며
어려운 일(難行)을 참고 능히 행할 수 있으면 부처님과 같이 존중받을 것이다.
재물만을 아끼고 탐(貪)하는 것은 불도(佛道)를 방해하는 마군(魔軍)의 권속(眷屬)이고
자비스런 마음으로 보시(布施)하는 것은 보살(法王子)이다.
높은 산 험한 바위는 지혜인(智慧人)이 머무르고
푸른 솔 깊은 골짜기는 수행자(修行者)가 살아갈 곳이다.
배고프면 나무 열매로 주린 창자를 위로하고
목마르면 냇물을 마셔 갈증나는 마음을 쉬게 할 것이다.
단맛 음식을 먹어 사랑으로 귀히 길러도 이 몸은 반드시 무너질 것이며
부드러운 옷을 입어 지키고 보호할지라도 이 목숨은 필연코 마침이라.
메아리(助響) 잘울리는 바위굴(岩穴)을 불당(佛堂)삼아 염불하니
슬피 우는 기러기(鴨鳥) 소리가 환희심의 벗(歡心友)이되었네.
절하는 무릎이 얼음같이 시려도 불(火)을 생각하는 마음없고
주린 창자가 끊어지는 듯 하여도 음식 구할 생각이 없네.
忽至百年 云何不學 一生이 幾何 不修放逸. 難心中愛 是名沙門
不戀世俗 是名出家. 行者羅網 狗皮象皮 道人戀懷 蝟入鼠宮.
雖有才智 居邑家者 諸佛 是人 生悲憂心 設無道行 住山室者
衆聖 是人 生歡喜心.
해설(解說)
홀연(忽然)히 백년세월 잠간인데 어찌 배우지 아니하며
일생(一生)이 얼마나 되는데 수행(修行) 않고 제 멋대로 난봉이나 부리고 함부로
놀(放逸) 것인가.
마음속의 애(愛) 욕심(慾心)을 떨쳐버린 이를 사문(沙門출가승려)이라 하고
세속(世俗) 일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을 일러 출가(出家)라 한다.
수행자(修行者)가 비단옷을 입는 것은 개가 코끼리 가죽을 쓴(象皮) 격이고
수도자(修道者)가 세속(世俗) 연(緣)을 품는 것은 고슴도치가 쥐구멍(鼠宮)에 들어간 꼴이다.
재주 지혜 있더라도 세속마을에 사는 사람은 부처님께서 그를 큰 슬픔으로 걱정하며
설사 도행(道行)이 없더라도 산중에 머문자는 부처님(衆聖)께서 이 사람에게
환희심(歡喜心)을 내게하니라.
雖有才學 無戒行者 如寶所道而不起行 雖有勤行 無智慧者
欲往東方而向西行. 有智人 所行 蒸米作飯 無智人 所行 蒸沙作飯.
共知喫食而慰飢腸 不知學法而改癡心. 行智具備 如車二輪 自利利他
如鳥兩翼.
해설(解說)
비록 재주와 학문이 많더라도 계율수행(戒行)이 없는자는
보배(寶貝) 있는 곳에 인도하여도 그 보배를 갖지 않는 것과 같고
부지런하여도 지혜(智慧)가 없는 자는
동쪽으로 가려면서도 서쪽을 향해가는 것 같다.
지혜로운 사람의 수행(修行)은 쌀로 밥을 짓는 것과 같고
지혜 없는 사람의 수행은 모래로 밥을 지으려 하는 것과 같다.
모두들 밥을 먹어 주린 창자를 달랠 줄 알면서도
불법(佛法)을 배워 어리석은 마음을 고칠 줄은 모르는구나.
수행(修行)과 지혜(智慧)가 모두 갖추어 지는 것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고
스스로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것은 마치 새의 두 날개와 같다.
得粥祝願 不解其意 亦不檀越 應羞耻乎? 得食唱唄 不達其趣
亦不賢聖 應慚愧乎?. 人惡尾蟲 不辨淨穢 聖憎沙門 不辨淨穢.
棄世間喧 乘空天上 戒爲善梯 是故 破戒 爲他福田 如折翼鳥-負龜翔空.
自罪 未脫 他罪 不贖. 然 豈無戒行 受他供給.
無行空身 養無利益 無常浮命 哀惜不保.
해설(解說)
죽(粥)을 얻고 축원을 하면서 시주(施主)의 뜻을 알지 못하면 시주자(施主者-檀越)에게 수치스런 일이며 음식을 얻고서 찬불(讚佛)하되 시주취지를 못이루면 승려(僧侶賢聖)께 부끄럽지 아니하랴.
사람들이 맑고 깨끗함(淸淨)과 지저분하고 더러운(穢汚)것을 안 가리는 회충이 싫듯
성현들도 사문(沙門)들이 분별하지 못함을 싫어한다.
세간(世間)의 시끄러움(喧雜)을 벗어 버리고 천상(天上)으로
오르는 데는 계행(戒行)이 훌륭한 사다리(善梯)이다.
그러므로 계행(戒行)을 깨뜨린 이가 남의 복 밭(福田)이 되려는 것은
마치 날개 부러진 새가 거북을 업고 하늘에 오르려 하는 것과 같다.
자기죄를 벗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남의 죄를 풀어 줄 수 있겠는가.
그러니 계행(戒行)을 지키지 못하는 이가 남의 공물(供物)을 받을 수 있겠는가.
수행 없는 헛된 몸은 보양(保養)해도 이익이 없으며,
무상(無常)하고 덧없는 목숨은 아끼더라도 보존하지 못한다.
望龍象德 能忍長苦 期獅子座 永背欲樂. 行者-心淨 諸天 共讚
道人 戀色 善神 捨離. 四大-忽散. 不保久住 今日夕矣
頗行朝哉. 世樂 後苦 何貪着哉 一忍 長樂 何不修哉.
道人貪 是行者 羞耻 出家富 是君子 所笑.
해설(解說)
고덕석학(高德碩學)한 승려(僧侶)의 사후(死後) 덕(德-龍象)을 바라거든 오랜고통을
능히 참고,
고승의 자리(獅子座)를 기대하거든 욕망과 쾌락을 영원히 등지라.
수행자(修行者) 마음이 청정(淸淨)하면 천신(天神)들이 모두 찬탄하고
수도자(修道者)가 여자를 생각戀色)하면 불법을 지키는 신(神)들은 버림받아 떠나 버린다.
사대(四大-地水火風)는 홀연히 흩어지는 것이라, 보존하여 오래 머물지 못한다.
오늘 저녁이 될지도 모르니 아침부터 서둘러 행해야 할 것이다.
세속(世俗) 쾌락(快樂)은 고통이 뒤따르는 것인데 어찌 탐내어 붙들 것이며
한 번 참(一忍)는 것이 길게 즐거울 것인데(長樂) 어찌 수행하지 않겠는가.
수도자(修道者)의 탐욕(貪慾)은 수행인(修行人)의 수치요
출가(出家)하여 부귀(富貴)하면 군자(君子)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遮言 不盡 貪着不己 第二無盡 不斷愛着 此事無限
世事不捨 彼謀無際 絶心不起. 今日不盡 造惡日多 明日無盡
作善日少 今年不盡 無限煩惱 來年無盡 不進菩提. 時時移移
速經日夜 日日移移 速經月晦 月月移移 忽來年至 年年移移
暫到死門 破車不行 老人不修. 臥生懈怠 坐起亂識.
幾生不修 虛過日夜 幾活空身 一生不修 身必有終 後身 何乎.
莫速急乎 莫速急乎.
元曉 發心修行章 終
해설(解說)
이런말(방패막이) 할 말이 끝이 없는데 만족(滿足)할 줄 모르고 더욱 사물(事物)에
집착(執着-貪着)하여 그침이 없고
재차 다시 하지말라 해도 끊지 않고 애착(愛着)한다.
이 일이 한이 없으므로 세상일을 버리지 못하고
생각하는 일이 많으므로 끊을 마음 일으키지 못한다.
오늘 하루로서 다하지 않는데 날로 죄악 짓기를 많이 하고
내일이 다 함 없어도 날로 선행(善行) 짓기를 적게 한다.
올해 다 하지 못함으로 번뇌(煩惱)는 한이 없고
내년에도 다 함 없어도 지혜(智慧) 보리(菩薩)에 정진않네.
시간 시간 옮겨가고 하루 밤이 신속히 지나가고,
하루하루 옮기고 옮겨 초하루 그믐이 신속히 지나고,
한 달 한 달이 옮기고 옮겨 문득 동지(冬至)에 이르고,
한 해 한 해 옮기고 옮겨 잠시간에 죽음의 문에 이른다.
부서진 수레는 구르지 못하듯 늙으면 수행(修行)을 할 수 없다.
누우면 게으름만 생기고 좌선(坐禪)하면 생각이 어지러워진다.
몇 생(生)을 수행(修行) 않고 밤낮을 보냈던가.
이 빈 몸이 얼마나 살 것인데 일평생을 수행(修行)하지 않는가.
육신(肉身)은 반드시 끝나리니 후세(後世) 몸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어찌 다급하고도 화급한 일이 아니겠는가.
원효(元曉)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끝
▲야운(野雲) “자경문(自警文)
野雲 比丘 述
主人公 聽我言 幾人 得道空門裏 汝何長輪苦趣中 汝自無始已來 至于今生
背覺合塵 墮落愚癡 恒造衆惡而入三途之苦輪 不修諸善而沈四生之業海
해설(解說)
주인공(主人公)아 내말 들어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서 깨달음 얻었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그토록 오랜동안 고통의 세계에서 돌고도는가.
그대가 그 비롯을 알 수 없는 때로부터 금생(今生)에 이르도록
깨침의 길을 등지고 속진에 묻혀서 어리석은 길에 굴러 떨어져
언제나 온갖 악업을 지으니 삼악도(三惡道)의 괴로운 굴레에 빠져 들었으며
두루 선행(善行)을 닦지 않아서 사생(四生)의 업해(業海)에 잠긴 것이로다.
身隨六賊故 或墮惡趣則極辛極苦 心背一乘故 或生人道則佛前佛後
今亦幸得人身 正是佛後末世
嗚乎痛哉
해설(解說)
몸으로는 육근(六根)이 상대하는 경계를 따르는 까닭에 악취에 떨어진 즉 신고(辛苦)가 극에 달하고 마음으로는 위 없는 부처님 법(法)을 등진 까닭에 혹 사람의 몸을
받았어도 부처님 나시기 전이나 그 후로다.
금생(今生)에 또다시 다행스럽게도 사람의 몸 받았으나 바로 이 때가 부처님 아니 계신 말법(末法)시대이니
아아! 슬프고 애닯도다.
是誰過歟 雖然 汝能反省 割愛出家 受持應器 着大法服 履出塵之逕路
學無漏之妙法 如龍得水 似虎靠山 其殊妙之理 不可勝言
해설(解說)
이 누구의 허물인가.
(사연은) 비록 그러하나 그대가 능히 반성하여 애욕을 베어버리고 출가하여 바루를
들고 법복(法服)을 입어 (바른 법을 받아 지니고자) 티끌 세상을 벗어나는 지름길을
밟아 번뇌(煩惱)에 물듦이 없는 무루(無漏)의 묘법을 배우면 마치 용이 물을 얻은 듯,
호랑이가 산중에 들어간듯 하리니 그 수승하고 오묘한 이치는 말로써 다할 수 없느니라.
人有古今 法無遐邇 人有愚智 道無成衰 雖在佛時 不順佛敎則何益 縱値末世
奉行佛敎則何傷 故 世尊 云 我如良醫 知病設藥 服與不服 非醫咎也
又如善導 導人善道 聞而不行 非導過也 自利利人 法皆具足
해설(解說)
사람에겐 옛사람과 지금 사람이 있을지언정 법(法)에는 멀고 가까움이 없으며
사람에겐 어리석고 슬기로움이 있을지언정 도(道)에는 성(盛)하고 쇠(衰)함이 없나니
비록 부처님 재세시(在世時)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으며 비록 말법시대를 만났다하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행한다면
어찌 해로움이 있으리오.
고로 세존(世尊)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좋은 의사와 같아서 병을 알아 약을 주노니
먹고 안 먹고는 의사의 허물이 아니며
(나는) 또한 좋은 길잡이와 같아서 길을 잘 인도하되
듣고도 가지 않는 것은 길잡이의 허물이 아닌 것이라,
제게도 이롭고 남에게도 이로운 것이 법에 다 갖추어져 있나니
若我久住 更無所益 自今而後 我諸弟子 展轉行之則如來法身 常住而不滅也
若知如是理則但恨自不修道 何患乎末世也 伏望 汝須興決烈之志 開特達之懷
盡捨諸緣 除去顚倒 眞實爲生死大事 於祖師 公案上 宜善參究 以大悟 爲則
切莫自輕而退屈
해설(解說)
만약 내가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다해도 다시 더 이로운 바가 없을 것이라.
지금으로부터 나의 여러 제자들이 법(法)을 널리 펼치고 행할 것인 즉 여래(如來)의
법신(法身)은 (시방삼세에) 상주(常住)하여 멸(滅)하지 않느니라”하신 것이다.
만약 (여래의 법신은 상주불멸인 줄로) 이같이 진리를 알은 즉 다만 제 스스로 닦지
아니함을 뉘우칠지언정 어찌 ‘말세로다’하고 근심하리오.
엎드려 바라노니 그대는 모름지기 결연하고 맹렬한 뜻을 일으키며 궁극의 이치를 깨우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모든 세속 인연을 말끔히 여의고 (그림자같은 경계에 끄달리는)
뒤집힌 생각을 몰락 놓으며 참으로 생사의 큰 일(일생 일대사 깨우침)을 위해 조사들의 가르침(공안)을 따라 마땅히 잘 참구하여 대오 견성을 철칙으로 삼아 부디 제 자신을 업수히 여겨서 물러서는 일이 없도록 할지어다.
惟斯末運 去聖時遙 魔强法弱 人多邪侈 成人者少 敗人者多 智慧者寡 愚痴者衆
自不修道 亦惱他人 凡有障道之緣 言之不盡 恐汝錯路故 我以管見 撰成十門
令汝警策 汝須信持 無一可違 至禱至禱
해설(解說)
생각컨대 이런 말법시대에 부처님 가신지 아득하여
마군은 강성하고 정법은 약해져 사람마다 삿되고 호사스럽나니
바르게 이끄는 이 적고 남을 그르치는 이 많으며
지혜로운이 적고 어리석은 이 무리를 이루니
제 스스로 도를 닦지 않으며 또한 다른 이들까지 괴롭히나니
무릇 도에 장애되는 인연은 말로 다 할 수 없느니라.
그대도 빗나갈까 두려운 까닭에 내 좁은 소견으로써
열가지 문을 가려 지어서 그대로 하여금 경책을 삼게 하노니
그대는 모름지기 믿고 간직하여 한가지도 어긋남이 없기를 간절히 빌고 비노라.
頌曰
愚學不學增憍慢 痴意無修長我人
空腹高心 如餓虎 無知放逸 似顚猿
邪言魔語 肯受聽 聖敎賢章 故不聞
善道無因誰汝度 長淪惡趣苦纏身.
해설(解說)
게송으로 말하리라,
어리석은 마음에 배우지 아니하면 교만한 마음만 늘고
어리석은 생각으로 닦지 아니하면 아상·인상(내로다, 너로다 하는 상)만 늘게 되네.
닦은 것도 없으면서 뽐내기만 하는 모습은 마치 주린 범과 같고
아는 것도 없으면서 방탕·안일하면 마치 거꾸로 매달린 원숭이 꼴이로다.
삿된 소리 마구니 말은 즐겨 귀담아 들어도
성현의 가르침엔 귀 기울이지 않는도다.
바른 길에 인연 없음이니 누가 그대를 제도하리오.
삼악도에 잠겨 오래도록 고통에 얽매인 몸 될뿐이네.
其一 軟衣美食 切莫受用 自從耕種 至于口身 非徒人牛 功力多重
亦乃傍生 損害無窮 勞彼功而利我 尙不然也 況殺他命而活己 奚可忍乎
해설(解說)
첫째, 좋은 옷 좋은 음식을 부디 받아 쓰지 말지어다.
밭 갈고 씨 뿌리는 일로부터 먹는 것, 입는 것에 이르기까지 사람과 소의 공력이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이때에 뭇 생명들의 손상도 한량없거늘
상대가 수고한 공으로 내가 이로운 것도 오히려 그러려니하기 어려운 데
하물며 다른 목숨을 죽여서 이 몸을 살리는 게 어찌 차마 견딜 일이겠는가
農夫 每有飢寒之苦 織女 連無遮身之衣 況我長遊手 飢寒 何厭心
軟衣美食 當恩重而損道 破衲蔬食 必施輕而積陰 今生 未明心 滴水 也難消
해설(解說)
농부도 매양 춥고 굶주리는 고통 속에 지내고
베짜는 여인도 늘 몸을 가릴만한 옷이 없는데
하물며 나는 오래일하지 아니하니 주리고 추운 것을 어찌 싫다 할수 있으랴.
부드러운 옷, 맛있는 음식은 마땅히 그 은혜 무거워 도를 덜어내고
헤진 옷에 나물 밥은 시주 은혜 가벼우므로 반드시 음덕이 쌓이리니
금생에 이 마음 밝히지 못하면 물 한방울조차 소화하기 어렵나니라
頌曰,
菜根木果慰飢腸 松落草衣遮色身 野鶴靑雲爲伴侶 高岑幽谷度殘年
해설(解說)
게송으로 말하노라,
풀 뿌리 나무 열매로 주린 창자 달래고
솔가지 풀 옷으로 몸을 가리네
노니는 학과 푸른 구름 벗 삼아
높은 뫼 그윽한 골짜기에서 여생을 보내노라.
其二 自財 不悋 他物 莫求. 三途苦上 貪業在初 六度門中 行檀居首
慳貪 能防善道 慈施 必禦惡徑 如有貧人 來求乞 雖在窮乏 無悋惜
해설(解說)
둘째, 자기 재물 아끼지 말고 남의 재물 탐하지 말지어다.
삼악도 괴로운 길에는 탐하는 업이 첫째요
육바라밀 제도문 중에는 보시행이 첫머리라.
간탐은 마음공부 길 능히 가로 막고
자비 보시는 반드시 나쁜 길·악도를 방어한다.
가난한 사람이 와서 빌고 구하거든
비록 궁핍하더라도 아끼고 애석해 하지 말라.
來無一物來 去亦空手去 自財 無戀志 他物 有何心 萬般將不去 唯有業隨身
三日修心 千載寶 百年貪物 一朝塵
해설(解說)
올 때 한 물건도 없이 왔고 갈 때 또한 빈 손으로 간다
자기 재물에도 연연할 게 없거든 남의 재물에 어찌 마음 두랴
만반으로 갖춘 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오직 업만이 이 몸을 좇을 것이라
사흘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가 되어도 백년 탐낸 재물은 하루 아침에 티끌이 되느니라.
頌曰,
三途苦本因何起 只是多生貪愛情 我佛衣盂生理足 如何蓄積長無明
해설(解說)
게송으로 말하노라.
삼악도 고통은 본래 어디로부터 왔는가.
다만 여러 생에 탐애한 정이로다.
우리 부처님 의발로 법다이 족했거늘
어찌해 재물 쌓아 무명을 기르려는고
其四 但親善友 莫結邪朋 鳥之將息 必擇其林 人之求學 乃選師友
擇林木則其止也安 選師友則其學也高 故 承事善友 如父母 遠離惡友 似寃家
해설(解說)
넷째, 다만 좋은 벗과 친할 뿐 사악한 자와 벗하지 말라.
새도 쉬고자 하면 반드시 숲을 가리며
사람이 학문을 배움에는 스승과 벗을 가린다.
수풀을 잘 가리면 머물기 편안하고
스승과 벗을 잘 고른 즉 배움이 높아 지리라.
고로 좋은 벗 받들어 섬기기를 부모 같이 하고
나쁜 벗 멀리하기를 원수진 집처럼하라
鶴無烏朋之計 鵬豈鷦友之謀 松裏之葛 直聳千尋 茅中之木 未免三尺
無良小輩 頻頻脫 得意高流 數數親
해설(解說)
학은 까마귀가 벗하려 하지 않나니 대붕이 어찌 뱁새와 벗하기를 도모하리오.
소나무 숲의 칡은 하늘 높이 곧게 솟아 자라고
억새풀 숲 가운데 자라는 나무는 석자를 넘겨 자라기 어렵나니
좋지 못한 소인배와는 어서어서 떨어 지고
높은 뜻을 지닌 무리와는 자주자주 친교할지어다.
頌曰,
住止經行須善友 身心決擇去荊塵 型塵掃盡痛前路 寸步不離透祖關
해설(解說)
게송으로 말하노라
머물고 그치고 행보함에 모름지기 선우와 함께 하고
몸과 마음 결택하여 가시 티끌 (애욕 집착)버릴지니
가시 티끌 쓸어내어 앞 길 뚫리면 (번뇌 망상 몰락 놓아 한 생각조차 쉬면)
한 발짝도 아니 떼고 조사관문 꿰뚫으리
其五 除三更外 不許睡眠 曠劫障道 睡魔莫大 二六時中 惺惺起疑而不昧
四威儀內 密密廻光而自看 一生空過 萬劫追恨 無常刹那 乃日日而驚怖
人命須臾 實時時而不保 若未透祖關 如何安睡眠
해설(解說)
다섯째, 삼경(저녁9시~새벽3시)외에는 잠자지 말라.
아득한 옛부터 도를 가로막는 것은 수마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12시 중(하루 24시간 중)에 늘 또렷하여 의정이 끊이지(흐리지) 않아야 하며
행주좌와 중에 세밀하고 세밀하게 마음자리를 돌이켜 비추어 안으로 살펴라.
한 생 헛되이 보내면 만겁을 두고 한이 따를 것이니 덧없는 세월 찰나이라.
날이면 날마다(세월 흘러감을) 놀래고 두려워 할 것이요.
사람 목숨 잠깐 사이이니 실로 시시각각 보존됐다 할 것이 아니니라.
만약 조사 관문 뚫지 못할진대 어찌 편안히 잠 잘 수 있으리요.
其六 切莫妄自尊大 輕慢他人 修仁得仁 謙讓 爲本 親友和友 敬信 爲宗
四相山 漸高 三途海益深 外現威儀 如尊貴 內無所得 似朽舟 官益大者 心益小
道益高者 意益卑 人我山崩處 無爲道自成 凡有下心者 萬福自歸依
해설(解說)
여섯째, 망념되이 저를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지 말라.
어짐(참다운 길)을 닦아 이루는데는 겸손과 양보(하심)가 근본이 되고
벗(도반)과 사귀는 데는 공경과 믿음이 으뜸된다.
네가지 상(아·인·중생·수자상)이 높아지면 삼악도 고해는 더욱 깊어진다.
겉보기 형상·거동은 존귀해 보이나 안으로 관하여 터득하는 바 없다면 (이몸은)
마치 낡은 배와 다를 바 없느니라.
벼슬이 높으면 높을 수록 마음은 더욱 왜소해지고
도가 높으면 높을 수록 뜻은 더욱 낮아지느니라.
내다, 너다 둘로 보는 상이 무너진 곳에 함이 없는 도는 절로 이뤄지나니
무릇 하심하는 이에게는 만복이 절로 돌아와 의지하느니라.
頌曰,
驕慢塵中藏般若 我人山上長無明 輕他不學躘踵老 病臥呻吟恨不窮
해설(解說)
게송으로 말하노라.
교만한 마음(교만이라는 티끌)속에 반야지혜 묻혀 버리고
아상·인상 높은 뫼엔 무명만 자라네.
남을 없수히 여겨 배우지 않고 뒤뚱뒤뚱 이 몸 늙으면
병들어 자리보고 신음·한탄 끝이 없네.
其七 見財色 必須正念對之 害身之機 無過女色 喪道之本 莫及貨財
是故 佛垂戒律 嚴禁財色 眼覩女色 如見虎蛇 身臨金玉 等視木石
해설(解說)
일곱째, 재물과 여색을 보거든 모름지기(가르침 따라) 바른 생각으로 대하라.
몸을 해치는 기틀로 색정보다 더한 게 없고
도를 상하게 하는 근본으로 재화에 미칠 게 없다.
이러므로 부처님께서 계율을 세우사 재물과 색을 엄격히 금하시되
‘여색을 보거든 마치 호랑이·뱀을 본듯이 하고
금·옥이 수중에 들어오거든 목석과 한가지로 보라’ 하셨다.
雖居暗室 如對大賓 隱現同時 內外莫異 心淨則善神 必護
戀色則諸天 不容 神必護則 雖難處而無難 天不容則 乃安方而不安
해설(解說)
비록 어두운 방에 홀로 있어도 큰 손님 대한듯이 하고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두운 방에 있어도 귀한 손님 마주 대한듯 위의지키고)
보일 때나 안보일 때나 한가지로 같아서 마음과 행실이 다르지 않을지어다.
마음이 청정한 즉 신장이 반드시 지켜주고
색을 그리워 한 즉 하늘이 용납치 않으리니 (※ 선신과 제천은 제불보살 또는
자성불의 의미임)
신이 반드시 지켜주는 즉 비록 어려운 처지라도 어려움이 없고 (마음이
여여함을 의미함) 하늘이 용납치 않은 즉 이에 편안한 곳에서도 (마음은)
편치 못하리라.
頌曰,
利慾閻王引獄鎖 淨行陀佛接蓮臺 鎖拘入獄苦千種 船上生蓮樂萬般
해설(解說)
게송으로 말하노라.
이욕에 빠지면 염라왕이 지옥에 가두고
마음 청정하면 아미타불이 연화대로 영접하리
쇠고랑 차고 지옥에 들면 괴로움이 천가지요
배(바라밀)에 올라 연화대로 나아가면 즐거움이 만반이로다.
其八 莫交世俗 令他憎嫉 籬心中愛曰沙門 不戀世俗曰出家
旣能割愛揮人世 復何白衣 結黨遊 愛戀世俗 爲饕餮 饕餮 由來 非道心
人情濃厚 道心疎 冷却人情永不顧
해설(解說)
여덟째 세속과 사귀어 다른 이로 하여금 증오·질투케 하지 말라
마음 속 집착애욕(갈애) 여의니 사문이라 하고
세속 인연 그리워 않으니 출가라 한다.
이미 갈애를 능히 베고 인간 세상 뿌리쳤으니
다시 속인과 무리지어 교유하겠는가.
세속을 심히 그리워 함은 도철이니
도철은 본래로 도 닦는 마음이 아니다.
사람 사는 정이 짙으면 도심은 성글어지니
냉정하게 인정 물리쳐 영영 돌아보지 말라.
若欲不負出家志 須向名山窮妙旨
一衣一鉢 絶人情 飢飽 無心道自高
해설(解說)
만일 출가(出家)의 뜻을 저버리지 않고자 할진대 모름지기 명산(名山)을 향해
묘지(妙旨)를 궁구(窮究)하되 일의(一衣)와 일발(一鉢)로 인정(人情)을 끊어서
기포(飢飽)에 무심(無心) 하면 도(道)가 스스로 높아지나니라.
頌曰,
爲他爲己雖微善 皆是輪廻生死因 願入松風蘿月下 長觀無漏祖師禪
해설(解說)
게송으로 말하노라
남 위하고 저 위하는 것 비록 작은 선이나
이것이 다 생사윤회의 원인이라
원컨대 솔 밭 칡넝쿨 숲 달 빛 아래
망상 여읜 조사의 마음자리 오래 관할지어다.
其九 勿說他人過失 雖聞善惡 心無動念 無德而被讚 實吾慙愧
有咎而蒙毁 誠我欣然 欣然則知過必改 慙愧則進道無怠 勿說他人過 終歸必損身
해설(解說)
아홉째, 남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비록 좋은 소리 나쁜 소리 듣더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하나니
덕이 없는데 칭찬 받음은 참으로 부끄럽고
허물있어 헐뜯는 소리 듣게 됨을 진실로 기뻐 할 일이라
흔연히 받아들인 즉 허물알아 반드시 고치고 부끄러워 하는 즉 도 닦는데
게으르지 않으리라
남의 허물 입에 올리지 말라 마침내 되돌아와 반드시 내 몸 손상케 한다.
若聞害人言 如毁父母聲 今朝 雖說他人過 異日 回頭論我咎
雖然 凡所有相 皆是虛妄 譏毁讚譽 何憂何喜
해설(解說)
만약 남을 해치는 말 듣거듣 마치 부모 헐뜯는 소리라 하라
오늘 아침 비록 남의 허물 입에 올리나 다른 날 되돌아 내 허물 거론하는
말 듣게 되리라 비록 그러하나 무릇 모든 형상이란 다 실체가 따로 없는 것이니,
나무라고 헐뜯고 칭찬 함에 어찌 근심하거나 기뻐하랴
頌曰,
終朝亂說人長短 竟夜昏沈樂睡眠 如此出家徒受施 必於三界出頭難
해설(解說)
게송으로 말하노라
아침부터 하루종일 남의 잘 잘못이나 떠벌이다가
밤새도록 흐릿하여 잠이나 즐기누나.
이 같은 출가 헛되이 보시나 축내는 것이라
참으로 삼계 윤회 벗어나기 어렵도다.
其十 居衆中 心常平等 割愛辭親 法界平等 若有親疎 心不平等
雖復出家 何德之有 心中 若無憎愛之取捨 身上 那有苦樂之盛衰
平等性中 無彼此 大圓鏡上 絶親疎 三途出沒 憎愛所纏 六道昇降 親疎業縛
契心平等 本無取捨 若無取捨 生死何有
해설(解說)
열째, 대중 가운데 머물어도 마음은 항상 평등 (평상심)할 지어다. 사랑 버리고 어버이 떠난 것은 법계 평등 그것이라(법계가 본래 평등함을
아는 실천인데) 만약 친밀하고 소원함(성김)이 있다면 마음으로 평등치 못한 것이라.
비록 다시 출가하나 무슨 덕이 있으리오
마음 가운데 만약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취하고 버림이 없다면
몸에 어찌 괴로움과 즐거움의 성하고 쇠함이 있으리오.
평등한 성품 가운데는 너와 나가 따로 없고,
둥글고 큰 지혜의 자리엔 가깝고 멀고가 끊어졌나니 (뚜렷이 밝은 마음자리엔
너·나의 차별 없어 둘 아니게 평등하고 여여하나니)
삼악도를 드나 듦은(마음이) 미움과 사랑에 얽힌 바(까닭)요
육도를 오르 내림은 친소 차별 업에 묶인 탓이다.
마음 평등한 자리에 계합하면 본래 취하고 버릴 것이 없나니
만약 취하고 버림이 없다면 생사가 어찌 있으리요.
頌曰,
欲成無上菩提道 也要常懷平等心 若有親疎憎愛計 道加遠兮業加深
해설(解說)
게송으로 말하노라
위 없는 보리도 이루려거든
평등심 언제나 지녀 가짐 요긴하니
만약 친소 애증 따진다면
도는 더욱 멀어 짐이여, 업은 더욱 깊으리라.
主人公 汝値人道 當如盲龜遇木 一生幾何 不修懈怠 人生難得 佛法難逢
此生 失却 萬劫 難遇 須持十門之戒法 日新勤修而不退 速成正覺 還度衆生
해설(解說)
주인공아, 그대가 사람 몸 받은 것 응당 저 눈먼 거북 나무토막 만난 격인데
한 생이 얼마나 된다고 닦지 않고 게으르리오.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려운데
이번 생 놓치면 만겁이 지나도 (다시) 만나기 어려우니
모름지기 이 열가지 계법 잘 지녀서 날마다 새록새록 부지런히 닦아 물러서지
않아서 속히 바른 깨달음 이뤄 돌이켜 중생을 제도토록 하라.
我之本願 非謂汝獨出生死大海 亦乃普爲衆生也 何以故
汝自無始以來 至于今生 恒値四生 數數往還 皆依父母而出沒也
故 曠劫父母 無量無邊 由是觀之 六道衆生 無非是汝 多生父母
如是等類 咸沒惡趣 日夜 受大苦惱 若不拯濟 何時出離
해설(解說)
나의 본래 서원은 「네 홀로 생사대해를 뛰어 나는 것(깨달음)」을 말함이
아니고 (깨달아) 또한 널리 중생을 위하고자 함에 있나니 어인 까닭인가 하면
그대 스스로 무시이래 금생에 이르도록 항상 사생의 세상을 만나서 (네가지 형태,
난생·습생·화생·태생으로 몸 바꿔 오면서)
수도 없이 가고 옴에 다 부모의 몸을 빌어 드나들었거니.
그러므로 아득한 옛날부터 내 부모가 한량없고 가 없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미루어 살피건대 육도의 모든 중생들은 그대의 여러 생애에 부모아님이 없는
지라 이 같이 한가지 무리인데 악도에 빠져서 밤낮으로 큰 고뇌 받고 있으니
만약 (이들을) 제도하지 않는다면 어느 때에 벗어날 것인가.
嗚呼哀哉 痛纏心腑 千萬望汝 早早發明大智 具足神通之力
自在方便之權 速爲洪濤之智楫 廣度欲岸之迷倫 君不見 從上諸佛諸祖 盡是昔日
同我凡夫 彼旣丈夫 汝亦爾 但不爲也 非不能也
해설(解說)
아아, 슬프고 애닯도다. 가슴 아프고 애간장 타는 구나.
천만번을 그대에게 바라노니 어서 빨리 큰 지혜 일으키고 밝혀서 신통력 갖추고,
자재방편 권도로서 속히 만경창파 거친 파도에 지혜의 돛대되어
탐욕의 언덕 미혹에 잠긴 무리들을 널리 건질지어다.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위로는 제불조사들이 옛날에는 다 나와 똑같은 범부였도다.
제불조사 저들이 이미 장부라면 그대 또한 장부려니 다만 그리되지는 않았을
(깨닫지 못했을) 지언정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古曰道不遠人 人自遠矣 又云我欲仁 斯仁 至矣 誠哉 是言也
若能信心不退則 誰不見性成佛 我今 證明三寶 一一戒汝 知非故犯則 生陷地獄
可不愼歟 可不愼歟
해설(解說)
옛 말씀에 「도가 사람을 멀리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멀리하는 것」이라 했다.
또 말하기를 「내가 어질고자 하면 (도를 닦고자하면) 그 어짐(도)이 다다른다」
하였으니 진실하도다 이 말씀이여.
만약 믿음이 굳어 물러서지 아니한다면 누군들 견성 성불하지 못하리오.
내가 이제 삼보전에 증명하고 하나하나 그대에게 경계하노니
그른 줄 알면서 짐짓 범한다면 살아서 지옥에 떨어지리라.
가히 삼가해야지 안 그런가. 가히 삼가해야 하지 않겠느냐.
頌曰,
玉兎昇沈催老像 金烏出沒促年光 求名求利如朝露 或苦或榮似夕烟
勸汝慇懃修善道 速成佛果濟迷倫 今生若不從斯語 後生當然恨萬端
해설(解說)
게송으로 말하노라.
옥토끼 오르내려 (달이 뜨고 지고 하는 모습 세월의 흐름을 말함) 늙음을
독촉하고 금까마귀 드나들며 (해 뜨고 지는 것) 세월을 재촉하네.
명리를 구함은 아침 이슬같고
괴롭다 영화롭다 저녁 안개(연기) 흡사하다.
그대에게 은근히 수도하길 권하노니,
어서 빨리 불과 이뤄 미혹중생 제도하라.
금생에 이 한말 따르지 않을지면
후생에 반드시 온갖 한탄 크고 크리.
야운(野雲) “자경문(自警文)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