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영성은 삶의 입맞춤
만발한 꽃이 꽃비가 되어 내리는 봄이면 누구든 행복에 젖어 든다. 앙상한 가지와 황량하고 추운 겨울을 지나 온갖 만물이 살아나는 새봄은 그렇게 생명으로 충만하여 우리의 눈을 호사시키며 삶의 희망으로 안내한다. 자연의 섭리와 계절의 순환 속에 살아야 하는 모든 존재는 본능적으로 간절히 느끼며 원한다. 하지만 꽃만 좋아해서는 안 된다. ‘꽃을 버려야 열매를 얻을 수 있다’란 말처럼 꽃 이외의 모든 걸 알아야 한다. 나를 안다는 건 함께하는 모든 걸 알아야 한다.
인간의 탐욕은 끝을 모르고 균형과 조화를 버렸다. 어울림이나 생태적 감성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생명의 존엄이나 존재의 가치보다는 부와 이권에 눈이 멀어 소중한 것을 외면했다. 자연과 생태를 떠난 인간사회가 가능한지 우리는 물어야 한다. 첨단의 신도시를 아무리 멋지게 건설해도 자연이 없으면 황무지에 불과하다.
농촌이 없는 도시나, 농업이 없는 과학과 IT산업이 가능한가, 농업은 다른 게 없어도 가능하다는 것을 農者之天下之大本(농자지천하지대본)이란 말이 증명한다. 과학이나 문명의 발전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말하지만, 이면에는 끊임없는 문제와 새로운 숙제를 만들어왔다. 기술과 문명이 첨단화될수록 생존의 난이도는 커졌고 상황은 심각해졌다. 이미 전문가들은 수없이 경고하고 예견해 왔다. 인류가 이렇게 진행해 나간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고 통제 불능의 절망을 맞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의 모든 나라들은 경제성장을 목표로 삼고 이윤추구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자연이나 생태는 물론 생명의 가치를 헌신짝처럼 다루고 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음과 그분을 주인으로 고백하는 창조신앙이다. 세상의 모든 건 우리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무한한 섭리와 은총이 배인 소중한 생명으로 서로에게 유익한 관계로 존재한다. 이것을 가리켜 녹색 은총이라 말한다. 인간의 타락과 범죄로 세상이 저주받았다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간과 함께 자연의 모든 피조물이 제자리를 찾고 저마다의 생명으로 충만해야 한다. 생태적 회심으로 기후 재앙의 시계가 멈춰야 한다. 완전히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하나님과 지구 앞에 서야만 한다.
기독교 신앙은 생태적 영성을 기본으로 한다. 더 이상 자연의 존재를 수단화하거나 평가 절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들의 꽃과 공중의 새를 보며 창조주 하나님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생태와 자연의 생명들을 사랑하며 함께하는 것이 진정한 영성이다. 일상의 삶이 빛나고 의미가 있으려면 신앙의 본질인 생태 영성을 품어야 한다.
종교가 ‘사회 문제’로 전락했다는 탄식이 소음으로 들리는 것은 여전히 기복적이고, 이기적이며, 세속적이라는 뜻이다. 종교나 신앙이 자신에게만 머물고 인간에게서 멈춘다면 그야말로 사이비고 하등종교이다. 종교는 최고의 가르침을 주는 곳이다. 개인의 구원과 변화는 물론 하나님의 창조 세상이 회복되고 온전해지는 것, 그것이 진짜 은총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영성은 세상에 대한 사랑, 곧 삶의 입맞춤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 영성은 사회적이고 성서적이며, 생태적이며 공동체 영성이다. 죄와 허물이 가득한 세상에 오셔서 거룩한 입맞춤으로 우리를 환대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자신과 이웃, 내 밟는 땅과 눈앞의 뭇 생명에게 진실한 입맞춤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머무는 자리에서는 봄날처럼 새싹이 올라와야 한다. 꽃이나 열매만을 원하지 않고 주변의 모든 걸 인정하며 사랑해야 한다. 완벽함을 말하자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으로 삶의 지향성을 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