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
독자들에게 송구스럽다. 이 지면을 통해 노래방 이야기를 자주 하는 것 같다. 나는 노래 부르기에 소질도 없는데 말이다. 주변에 보면 노래 부르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몇 해 만에 만난 대학 동창도 그랬다. 서울에서 경제 주간지 기자 생활을 하는 친구와 대구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친구와 나, 셋이서 만났다. 실은 그 중에 한 친구가 나머지 우리 둘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려고 만난 자리였다. 다들 먹고 살기 힘든 때, 이야기는 매끄럽게 흘러가지 못했다. 결국 남은 건 어색하고 서로 미안한 심정뿐이었다. 이른 저녁에 겸한 거북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체증을 남겼다. 덕분에 뭘 더 먹기도, 그냥 헤어지기도 어정쩡한 분위기에서 약속을 만든 그 친구는 바로 앞에 있던 건물 지하 노래방 계단으로 성큼성큼 내려갔다. ‘좋아, 친구지간에 괜히 생긴 찜찜함은 노래로 다 털어버리는 거야!’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은 조용했다. 벽에 걸린 선반 위 TV에서는 한 여자 리포터가 나와서 생기 넘치는 말을 쏟아내었지만, 이와는 대비되게 노래방은 한적하다 못해 침울했다. 우울함이라는 이름의 혹을 떼려 왔다가 혹을 붙인 셈이었다. 방에 앉아서도 우리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고, 적막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어쩌다 시작된 노래는 몇 번 순서가 돌아 시간이 한참 흘렀는데, 남은 시간은 계속 숫자가 늘어났다. 보너스 시간을 자꾸 받아도 되냐는 우리의 말에 주인아주머니의 대답, “손님 없어서 썰렁한데 그나마 한 방이라도 노랫소리 나오면 좋죠.” 그 한 마디가 우리 가슴에 불을 댕겼다.
그날 우리는 목에서 핏기가 올라올 때까지 노래를 불렀다. 심드렁해져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대학가요제 수상곡들도 불렀고(매일춘추 10월23일<대학가요제> 참고), “그것만이 내 세상”에도 도전했다(10월30일 <노래방> 참고). 부를 게 없으니까 팝송으로 넘어갔다. 우리는 “Let's dance"(10월16일 <카세트테이프> 참고), “Bohemian rhapsody”(11월6일 <금지곡> 참고)도 울부짖으며 불렀다.
정에 이끌린 우리 세 명의 절규가 그 가게 판촉에 도움이 되었을까? 우리가 대학 시절 좋아하던 음악 가운데 봄여름가을겨울이 발표했던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이란 곡이 있다. 그 노래 제목과 비슷하게, 우리의 희생이 헛되지 않고 노래방 주인아주머니의 마음이라도 따뜻하게 해드렸을까? 생각해보면, 소비자는 돈을 써가며 광고까지 덩달아 해준다. 가슴팍 티셔츠에 커다랗게 새겨진 브랜드 로고는 말 그대로 움직이는 광고판이 된다. 유리 창가 앉아서 차를 마시는 잘 생긴 남자여자들은 그 자체로 카페의 인테리어 장식이 된다. 이런 사실을 알고나면 그 사람들은 불쾌해할까? 아니다. 이것은 소비사회가 보여주는 참된 허상이다.
(윤규홍, 예술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