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잘 만들어진 정통 사극 한 편이 막을 내렸다. ‘정도전’이다. 나는 못내 아쉬워 정도전이 어린 시절을 보낸 영주의 ‘삼판서 고택’을 찾았다. 삼판서 고택은 고려 공민왕 때 형부상서를 지낸 정도전의 아버지 정운경을 비롯하여 세 분의 판서가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택은 서천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1961년 사라호 태풍 때 영주 시내가 대홍수로 물에 휩쓸리자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박정희 장군이 새로 방죽을 쌓아 물길을 낸 자리라고 한다. 고택 역시 구성공원 남쪽에서 수백 년을 이어져 오다가 홍수로 인해 유실되자 이곳에다 복원한 것이다. 뒤쪽에는 서천 직강공사 착공식 때 심었다는 박정희 기념수가 손님을 맞고 있었다. 고택과 기념수의 대비가 절묘하다. 머리 좋은 후손 혹은 눈치 빠른 공무원이 박정희의 5`16과 정도전의 혁명을 접목시켜 본 것일까. 아니면 그저 우연의 일치였을까. 정도전은 고려 말 부패한 사회적 모순에 저항하여 동북면으로 이성계를 찾아가 새로운 왕조의 개창을 제안했다. 혁명이었다. 사람에 따라 국가란 운명일 수도 있고 과정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정통 사대부 집안이었던 이인임이나 이색에게는 고려가 부모에 버금가는 운명이었으리라. 정도전은 어땠을까. 그는 죽을 때까지 정적으로부터 외가 쪽으로 노비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부담에 시달렸다. 이성계 또한 최영이나 정몽주처럼 뼛속까지 고려인이 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의 정치적 기반은 원나라의 지배하에 있던 동북면이었고 증조부 때부터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원나라에서 벼슬을 해 왔기 때문이다. 조정에서는 끊임없이 그를 의심하고 경계했다. “질문 있는데요.” 해설사의 설명을 듣던 일행 중 한 사람이 손을 번쩍 들었다. “만약에 정도전이나 이성계가 출신의 의혹이 없었더라도 혁명이 가능했을까요?” 해설사가 미소를 머금었다. “글쎄요, 역사에서는 ‘만약에’가 통하지 않는다고 하지요?” 하늘이 맑았다. 사랑채 대문에 들어서니 소쇄헌(掃灑軒)이란 당호와 집경루(集敬樓)라 쓴 현판이 보였다. 사람답게 사는 나라, 백성을 위한 민본정치를 펴고자 했던 외로운 선구자의 열망이 함성이 되어 들리는 듯했다. 나는 잠시 두 손을 잡고 현판을 우러르다 발길을 돌렸다. 소진/에세이 아카데미 원장 |
첫댓글 역사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심정이나 외로움을 대변해 주지는 않고 있지요.
우리 후세 사람들은 전해오는 사실대로만 믿고 한 번도 그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 해 보려 하지 않았지요
여러 사람들의 입장에서 대변하고 계신 선생님의 깊으신 안목에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강자의 외로움도 보고 계신 듯하여 감탄하는 마음으로 댓글을 올립니다.
만약에 내가 이성계를 썼더라면 정도전을 썼더라면 그 외로움을 보았을까 하는 의문이??
역사를 보면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곤 하지요.
같은 맥락에서 일방적인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는 것 같구요.
옥선생님늬 댓글이 본문보다 우월하여 감탄합니다.
감사1
깔끔하고 정갈합니다. 짧은 글속에 한 시대를 이끌고 간 강자들의 고독이 모두 담긴 작품에 한번 보고 두번 보고 !!
고맙습니다.
한 번 보고 두 번 본다니 작가로서는 더 이상의 기쁨이 없겠습니다. ㅎ ㅎ ㅎ
ㅎㅎ 부럽습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선생님만이 보실수 있는 과거와 현대를 아우러는 감성 속에
'만약에'가 끓어올랐나 봅니다. 만약에 당신이 그 누구와 사랑에 빠지면~~저는 대중가요가 생각나는데요.ㅎㅎㅎ
팝송에는 'If you go away '라는 곡이 있지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