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참여 논쟁(김수영-이어령 간의 불온시논쟁)
(순수시와 참여시는 한국어에서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이 두 가지 표현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순수시: 어떤 사건이나 상황이 처음으로 일어날 때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즉, "처음“
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참여시: 어떤 행위나 사건에 참여할 때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이는 "참여하다"라는
동작을 나타냅니다.)
1960년대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학의 사회성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다는 것이다. 이는 전후 문학이 전쟁을 적극적인 시각에서 해석하지 못하고 단지 그 상처와 피해 의식만 으로 다루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방식이다. 현실적인 면에서 4․19혁명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를 계기로 문학에서는 문학의 사회성에 대한 논의들이 새롭게 대두되기 시작한다. 순수․ 참여 논쟁은 그러한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논쟁이다. 이 당시 활기를 치던 순수와 참여라는 이분법은 새로운 현상은 아니었으나, 그것은 향상 매 시대 편향된 사고와 판단을 유발하는 논리로써 기능해 왔다. 4)
순수 참여 논쟁이 본격화되는 시기는 4․19를 계기로 해서 활발하게 일어난다. 이로 인해 문학적 인식이 변화하였으며, 이전 시기의 문학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신진 비평가들은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을 통해, 새로운 비평영역을 확보하고 전후 불구가 된 문학의 전통을 복원하고자 하였다. 이런 세대간의 입장 차이는 어느 시대나 존재하기 마련인데, 기성세대가 이룩해 놓은 업적에 신진 세대가 과소평가의 발언으로 문제를 제기 한다면 이는 곧 갈등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월 혁명의 시대정신은 1960년대 시인들에게는 역사의식과 현실의식을 확고하게 정립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박두진은 전통적 자연시의 현실 도피적 경향을 역사적 현실 인식으로 전환함으로써 현실주의적 시세계를 새롭게 정립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박목월과 서정주의 경우는 이러한 현실 참여의 시대정신을 외면하거나 거부한 채 여전히 현실 도피적 세계에 침참해 있다. 특히 서정주는 오히려 ‘靈通주의’라는 주술적 세계를 옹호하는 신비주의적 세계인식의 극단으로 치달았다.5)
순수 참여 논쟁은 1930년대 김동리, 유진오의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한국전쟁을 치르고 사회가 제 기능을 발휘해 나가는 과정에서 신진 평론가들에 의해서 다시금 논쟁거리로 대두되었다. 이어령은 『저항의 문학』6)(경지사, 1959)을 통해 기성세대 문인들을 비판한다. 이때 ‘저항’이란 참여의 다른 별칭으로 받아들였다. 이밖에도 이철범, 정태용, 최일수 등이 민족 문학에 대한 모색으로 이러한 논쟁에 관심을 고조시켰다.
지금까지 순수 참여 논쟁에 대한 연구는 대개 다음의 논쟁을 중심으로 정리되어 있다.
첫 번째는 1963년 1964년에 걸쳐 김우종, 김병걸과 이형기 사이에 벌어진 이른바 ‘사회참여’논쟁이며, 두 번째는 1966년 김붕구의 「작가와 사회」(이 글은 1966년 10월 12일 세계문화 자유회의 한국본부 주최의 원탁토론에서 발표된 논문이다)라는 글을 중심으로 선우휘, 임중빈, 이호철, 김현, 임헌영 등이 참가해 벌인 ‘창조적 자아와「앙가주망」논쟁’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어령의 「‘에비’가 지배하는 문화」(『조선일보』, 1967, 12, 28)라는 칼럼에 대해 김수영이 「지식인의 사회참여」(『사상계』,1968,1)라는 글로 비판하면서 촉발된 1968년 ‘시의 불온성’논쟁이 그것이다. 이들 중 김수영과 이어령 간의 문학의 불온성 논쟁은 순수 참여 논쟁의 가장 쟁점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1967년 김붕구 교수의 「작가와 사회」라는 짧은 글이 발단이 되어, 일어나기 시작한 이 논쟁은 김수영, 이어령의 논쟁으로 이어지면서 당시 문인들이나 평론가들 가운데 이 논쟁에 대해서 어떤 형태로든 발언하지 없을 정도로 과열된 분위기를 만들었다. 4․19의 영향으로 참여문학이 전개되었다고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배경은 일인 독재정치의 강화와 급속한 경제 정책의 부작용인, 빈부의 격차와 농촌의 붕괴 현상 등이 60년대 말부터 서서히 드러나 기 시작했던 사실을 그 요인으로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참여문학은 문학인이 지녀야 할 시민으로서의 집단적 삶에 대한 책임과 연대성을 강조하면서, 문학인이 개인적 내면을 벗어나와 사회비판자로써, 고발자로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자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수영은 이어령이 제기한 ‘에비’의 비유를 통해서 당대 지식인의 내면을 감싸고 있는 무의식의 공포가 문화 창조의 장애가 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 이어령과의 논전은 ‘자유-불온논쟁’으로 확대되기에 이르렀는데, 문학의 현실 참여적 가능성을 긍정하는 입장에서 비평해온 이어령이 김수영의 논리를 강도 높게 비판한 배경에는 1960년대 문단의 참여파들의 목적론적 경향, 문학의 도구화 경향도 한 몫 했지만 은둔과 침묵으로 일관한 김수영이 4․19이후 돌연 태도를 일변한 모습에 의혹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후, 시적 자유를 부르짖은 김수영과, 시에서 대상을 배제함으로써 의미를 벗어난 즉물적 이미지들의 결합체가 되게 하겠다는 김춘수와의 순수 참여시 논쟁도 그 뒤를 따르고 있다.
1960-70년대의 참여 문인들의 문학이 비판적이고 실천적이며 체계적인 이념지향성을 지니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서구의 시민, 사회적 정신 속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고, 그것이 주장하는 문학의 불온성이라는 것도 무산계급이념에 바탕을 둔 실천적이고 사회변혁적인 목적성을 지니는 것이기보다는 샤르트르적인 의미, 즉 정치권력에 반항한다든가 부정부패의 사회를 고발한다는 차원의 현실비판에 머무르는 것이었다. 따라서 거기에 강조되는 것은 사회모습에 대한 지식인의 역할이다. 인간의 양심, 자유, 정의의 문제가 시 정신, 시 의식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으며 현실과 역사는 결코 벗어던지거나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을 배경으로 비판과 풍자, 소멸과 은폐의 몸짓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60-70년대의 문학이 대체로 문화적이고, 휴머니즘의 성격을 가지는 것은 김수영, 신동엽의 작품에서도 드러나는 사실이 다. 참여문학은 넓은 의미로 휴머니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참여문학이 70-80년대의 민중을 위한 이념지향성 문학과 다른 것은 이들이 바탕에 깔고 있는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새로움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