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7일(토) 촬영
낙가산 보문사 입구입니다. 인천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이곳에 왔습니다.
보문사 일주문입니다. '낙가산 보문사'란 편액이 걸려 있네요. 여초 김응현의 글씨입니다.
13명이 함께한 기념사진 한 장 남김니다. 일주문 안에도 한 분이 있는데 잘 안보이네요.
그런데, 일주문을 들어서며 깜짝 놀랐습니다. 보문사가 너무 많이 변해 있어서요.
길도 넓어진 것 같고, 우측에 테크로도 새로 만들어 경내가 시원해 보였습니다.
건물도 여러 채 새로 지었네요.
많이 넓어 보이죠.
좌측의 축대와 건물도 못보던 곳 입니다..
하나,
둘,
셋.
보문사 사적기 옆, 400년이나 된 보호수인 은행나무를 봤다고 인증을 하신 분들입니다.
나무의 키는 20m이고, 둘레는 3m나 된다는 이 은행나무는 2000년 11월 17일에 보호수로 지정됐습니다.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새로 지은 건물인 용왕전입니다.
절 마당으로 들어서면 우측으로 새로 지은 법음루와 윤장대도 있습니다.
절마당 전면에는 전부터 있던 석실과 삼성전 그리고 보문사의 정전인 극락보전이 보입니다.
고목이 오래 살다보니 속이 다 썩었습니다.
보문사 석실(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입구 입니다.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에 회정대사가 처음 건립하고, 조선 순조 12년(1812년)에 다시 고쳐 지은 석굴사원이다.
천연 동굴을 이용하였으며 입구에는 3개의 무지개 모양을 한 문을 만들었다.
동굴 안에 불상들을 모셔 놓은 감실을 설치하여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미륵보살과 나한상을 모셨다.
이들 석불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어떤 어부가 그물에 걸린 돌덩이를 꿈에서 본 대로 모셨더니 큰 부자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현지 설명문 내용-
석실 입구에 있는 동자상.
석실 내부의 모습입니다.
23구의 석상(석가모니불, 미륵불, 나한상)이 모셔 있습니다.
석실 앞에 있는 보문사 향나무입니다.
보문사 향나무 /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7호.
보문사 석실 앞 큰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는 이 향나무는 기묘한 형태를 지니며, 오래된 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나무의 나이는 7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20m, 둘레는 3.2m 정도이다.
생긴 모습이 마치 용이 용틀임을 하고 있는 듯하여 기묘한 느낌을 주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6, 25 전쟁 중에는 죽은 것 같이 보였으나 3년 후에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현지 설명문-
석실 앞의 풍경입니다.삼층석탑 뒤로 범종각, 윤장대, 범음각이 보이고 우측에 용왕전과 오백나한과 석탑이 있습니다.
3층석탑도 새로운 모습이네요.
석실 우측 위에 있는 삼성각입니다.
좌로부터 독성단, 치성광 여래불, 산신단이 모셔 있습니다.
치성광 여래불입니다.
삼성각에서 본 풍경. 우측에 보이는 전각은 와불전입니다.
와불전이 보이는 풍경입니다. 바위 아래는 석실입니다.
극락보전의 뒷모습과 마애석불좌상이 있는 눈썹바위로 오르는 계단길입니다.
극라보전 앞 마당을 높이는 작업을 하고 있네요.
극락보전은 보문사의 정전입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석모도 낙가산 보문사는 신라 선덕여왕4년(635)에 회정대사가 창건하여,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산의 이름을 따서 낙가산이라 하였고,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의 원력이 광대무변함을 상징하여 절의 이름을 보문사라 하였습니다.
극락보전 내부 모습.
해수관음성지. 보문사.普門寺
한국의 해수관음 성지는 예로부터 강화 보문사, 양양 낙산사, 여수 향일암을 꼽아왔습니다.
관음성지는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이란 뜻으로
이곳에서 기도발원을 하게 되면 그 어는 곳보다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잘 받는 것으로 널리 아려져 있습니다.
좌로부터, 대세지보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보문사는 공사 중.
마애석불좌상으로 올라 가는 길에 있는 봉황각 벽에 있는 옥으로 만든 불상 중 일부.
마애석불좌상으로 올라 가는 길
공덕비.
휴.... 다리 아프다.
용과 마주하다.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이 석불좌상은 금강산 표훈사 주지 이화응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가 1928년 낙가산 중턱의 일명 눈썹바위 암벽에 조각한 것이다.
불상은 뒤의 둥근 빛을 배경으로 네모진 얼굴에 보석으로 장식된 커다란 보관을 쓰고,
손에는 정병(세속의 모든 번뇌와 마귀를 씻어주는 깨끗한 물을 담은 병)을 들고 있으며, 연꽃 받침 위에 앉아 있다.
얼굴에 비해 넓고 각이 진 양 어깨에는 승려들이 입는 법의를 걸치고 있으며, 가슴에는 커다란 '만(卍)'자가 색겨져 있다.
보문사는 우리나라 관음 신앙의 3대 성지로서 중요한 곳이다. -현지 설명문-
보관에 새겨 있는 부처님.
가슴에 새겨 있는 만(卍)자.
마애석불에서 본 보문사
공양간으로 내려 가는 길.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공양간에서 본 바다.
표고버섯을 말리고 있는 장독대입니다.
범종각 철문
범종(梵鐘)이란, 사찰에서 시간을 알릴 때나 대중을 집합시키고, 의식을 행할 때 쓰이는 종이다.
그 소리가 장엄하고도 청명하여 듣는 이의 마음을 청정히 참회토록 하며 불교의 무한한 이상과 신앙심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그리고 범종은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들까지 구제할 수 있는 믿음이 있어 사찰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의식법구 중에 하나이다.
범종의 기원에는 몇 가지 설이 있으나, 대체로 중국의 용종(甬鐘)이라고 불리우는 동기(銅器)에서 변화, 발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통일신라 시대인 8세기 이후의 작품들이다. 우리나라의 범종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독특한 의장과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그 세부장식이 정교하고 울림소리가 웅장하여 동양 삼국의 종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한 마리의 용으로 구성된 용뉴 뒤에는 음통이란 대롱이 부착되었으며, 종신의 위아래에는 문양띠가 둘러지고 윗문양띠 아래에
방형의 유곽을 만들고 유곽 안에는 36개의 종유를 장식하였다. 아울러 종의 몸체 아래로는 활짝 핀 연꽃잎 모양의 원형 당좌를
앞, 뒷면에 배치하고 여백면에 비천상, 주악천인상, 공양상을 장식하였다. 이러한 특징을 지닌 통일신라 시대 범종으로서는
상원사 종(725)이 가장 오래된 예이며 성덕여왕 신종(771)은 크기나 아름다움이 단연 뛰어난 작품이다.
고려시대에는 초기까지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계승한 것이 만들어지나, 말기에 이르면 원나라를 통해 새로이 중국의 양식이
도입됨으로써, 우리나라 종 양식의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점차 중국화된 양식과
우리나라 전통 범종양식, 그리고 혼합형 등의 다양한 양상을 지닌 조선시대 범종으로 정착하게 된다.
윤장대(輪藏臺)
윤장대란 책장의 일종으로 경전을 넣고 중심에 기둥을 세우고 기둥에 의지하여 원형 또는 다각형의 나무장을 올린 뒤
여기에 경전을 넣고 손잡이로 돌릴 수 있도록 만든다.
경전은 경장뿐 아니라 율(律)과 논(論), 여러 고승들의 장소(章疏)도 함께 넣어 둔다.
또한 불도를 믿으려 하나 글을 알지 못하거나 불경을 읽을 겨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한 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은 것과 공덕이 같다고 한다.
더불어 경전을 넣고 돌리면서 소원을 빌거나 소원을 써서 윤장대 안에 넣고 돌리는 등 소원을 빌 때 사용한다. -현지 설명문-
법음각(아직 완공되지 않았습니다)
운판(雲版)
운판은 조석 예불과 법의식에 치며
구름무늬 모양의 뉘앙스와 같이 날아다니는 조류와 죽은 영혼을 천도하여 극락세계로 인도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목어(木魚)
목어는 목고(木鼓) 또는 목판이라고 하며, 조석 예불과 법의식 때 두드리며, 수중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수행자들에게 항상 눈을 뜨고 열심히 수행하라는 의미와
경전을 외울 때나 사찰내의 대중 스님들을 운집하는데 쓰이는 법구입니다.
법고(法鼓)
법고는 조석 예불과 법의식 때 치며 축생과 땅 위의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는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법고는 중생들에게 고통(사고四苦, 생노병사)에서 벗어나 해탈케 하며, 북소리는 마치 중생의 번뇌를 대군이 북치듯
진군하여 쳐부수는 것과 같아서 부처님의 설법을 법고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현지 설명문-
오백나한과 사리탑입니다.
보문사 오백나한과 사리탑
오백나한과 사리탑은 천인대라는 큰 바위 위에 조성되었습니다.
천인대는 길이 40m, 폭 5m의 큰 바위로 창건 이후로 법회 때 설법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는데 그 크기가 넓어서 천 명이 앉을 수
있다하여 '천인대'라 이름 붙여졌습니다. 오백나한은 2009년 와불전과 함께 천인대에 조성되었습니다.
진신사리가 봉안된 33관음 보탑을 중앙에 두고 오백나한이 감싸는 형상입니다.
나한은 부처의 제자로 아라한과 증득한 존자를 말하며, 해탈하여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보문사의 오백나한상은 모습과 표정이 모두 달라 각각의 개성적인 모습을 자유분방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현지 설명문-
사리탑.
오백나한.
나한이란 아라한(阿羅漢)의 약칭이며 아라한은 범어 아르한(arhan)의 음역이다. 오백비구, 오백상수라고도 한다.
아라한은 공양 받아 마땅한 자(應供), 공양으로 복을 심은 밭(福田), 진리에 상응하는 자(應眞),
나고 죽는 윤회에서 벗어난 자(不生), 더 이상 배울것이 없는 자(無學) 등으로 불린다. 나한은 불제자들이 도달하는 최고의
계위(階位)로, 이들은 더 이상 생사윤회의 흐름에 태어나지 않으므로 최고의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하며
매우 덕이 높은 성자로 추앙받았다. 나한이 보살과 다른 점은 대개 실존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처음에 아라한은 부처님을 가리키는 명칭이었다.
그 뒤 부처님과 아라한이 구별되고, 부처님의 제자가 도달하는 최고의 깨달음의 경지를 의미하게 되었다. -현지 설명문-
오백나한상 위쪽에 와불전이 있습니다.
와불전으로 가며 본 풍경.
와불전.
내부 모습.
와불전의 와불(臥佛)은 열반하는 부처의 누워있는 모습으로 본래 보문사에 있는 천인대(千人臺)라는 바위에 새겨 조성했다.
천인대는 이 절의 창건 당시 인도의 한 큰 스님이 불상을 모시고 이 천인대에 날아왔다고 한다.
그 뒤 이 바위는 법회 때 설법하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는데 이 바위 위에 일천명이 능히 앉을 수 있다고 하여 천인대라고 한다.
전각의 내부는 부처님의 뒤로 공간이 있어 주위를 돌면서 참배를 할 수 있다.
부처님의 누워계신 모습과 손의 모양, 불의(佛衣)의 주름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고 운양이 새겨진 열반대는 구름모양이
수려하고 아름답게 조각되어있다.1980년에 조성을 시작하여 2009년 3월에 조성 완료되었다. 너비 13.5m, 높이 2m이다.
와불을 오른쪽으로 돌며 본 모습.
첫댓글 설렁 설렁 다녀온 보문사.
바위솔님 덕분 자세한 설명과 함께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보문사가 엄청 변하였네요
관음성전으로써 전국의 기도처로 이름 날렸던 옛시절이
하~ 그리움으로..
컨디션 난조로 친견 할까 말까로 고심하다 친견하길 잘 했슴다
이모 조모 잘 담아 주셔서 더욱 감사 합니다
수고 하셨슴다..^.~
와~보문사가 넘보기좋아요
보문사는 오래전에 갔어서
계단 오른 기억만 갖고 있었는데
바위솔님의 수고로 세심하게 둘러봅니다.
법당내부는 조심스러서 문 열어보기도 쉽지 않은 일.
사진과 설명으로 공부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고맙습니다 _()_
5년 전 가보고 두번째 방문 보문사였어요.
바위솔님 덕분에 보문사 더욱 세세하게 익혀지네요.감사합니다
혼자가기 힘든 보문사를 함께 가니 좋았어요.
절이 좋아서 언제 또 올지 몰라 구석구석 봤는데,
바위솔님 사진속엔 제가 놓친 곳들이
다 담겨 있어서 보는내내 감탄 했습니다.
역시 길위엔 전문가가 필요하단것을 또 깨닫고...ㅋ
오랜만에 공양도 하고
처음 얻는 절 달력도 사고...
뿌듯한 보문사 행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