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計 破産(가계 파산) 재촉하는 우리 교육
조선일보 : 2014.11.26 05:29
김홍수 경제부 차장
![김홍수 경제부 차장 사진](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mage.chosun.com%2Fsitedata%2Fimage%2F201411%2F25%2F2014112503822_0.jpg)
'엉터리 수능' 논란이 우리 교육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김용 세계은행 총재 등 외국 명사들은 한국 교육의 우수성을 극찬하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한국 학생들이 우수한 성적을 내는 걸 보고 그런 것 같은데 실상을 제대로 아는지 의문이다. 뛰어난 성적의 이면엔 청소년 자살률 세계 1위, 노인 빈곤율 세계 1위라는 '그늘'이 도사리고 있다.
한국 경제가 여기까지 온 데는 남다른 교육열이 큰 몫을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교육이 경제발전의 견인차가 되기는커녕 걸림돌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이 가계 경제를 옥죄고 있다. 가계 지출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14.5%·2013년 기준)은 선진국 대비 최대 9배에 이른다. 교육비 중 80% 이상이 사교육비다.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낳아 결혼까지 시키는 데 자녀 한 명당 3억5528만원이 든다. 이 중 초·중·고와 대학 과정에 들어가는 돈이 2억4000만원에 이른다. 이 자금의 상당 부분은 빚으로 조달된다. 최근 한국은행 조사에서 1년 뒤 빚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답한 사람 중 20% 이상이 '교육비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제학의 생애주기 가설에 따르면 연령대별 소비성향은 소득이 낮은 20~30대에 높다가 상대적으로 고소득을 올리는 40~50대가 되면 낮아진다. 저축이 늘기 때문이다. 그 후 노년에 접어들면 다시 높아져 U자(字) 모양이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특이하게 W자를 그린다. 중장년층이 교육비 부담 때문에 저축을 못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노년 빈곤'이다.
이런 상황을 언제까지 개인의 선택 영역이라고 방치해 둘 것인가.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이 과연 하고 싶어서 하는 선택인가. 대학 입시 전형을 3000가지나 만들어 종잡을 수 없게 하고, 학원들의 공포 마케팅이 한껏 위력을 발휘하게 만든 건 정부의 잘못이다. 전 국민을 무모한 투자로 내몰아 '노년 빈곤' 위험에 빠트리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은 개혁돼야 한다. 경제 혁신 3개년 계획, 농업 혁신 3개년 계획은 만들면서 교육 혁신 3개년 계획은 왜 안 내놓는지 모르겠다.
PISA에서 한국 학생들의 수학 성적이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총 공부 시간을 반영해 다시 계산한 시간당 점수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꼴찌권으로 떨어진다. 투자 대비 효율이 떨어지는 '쥐어짜기'식 점수라는 뜻이다. 이런 실력으론 어차피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별 변별력도 없는 수능시험 한 문제 더 맞혀 명문대에 간다 해도 취업률은 50%밖에 안 된다.
학부모들은 지금처럼 무리한 사교육 투자를 계속할 것인지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중학교 이후엔 사교육비를 월 100만원 더 쓰는 것보다 혼자 공부를 하루 1시간 더 한 경우가 성적 향상에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노부모의 소득과 자녀 접촉 빈도의 상관관계를 국가별로 비교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들 딸들은 부모의 소득이 높으면 더 자주 찾아뵙고, 반대이면 발길을 끊는 행태가 두드러졌다. 학원비 대느라 노후 준비를 포기하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가족관계도 망가뜨린다는 얘기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