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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 2024.4.30. 화. 비^(~ 수리수리마수리 저팔계 🐷 꿀꿀꿀 ! Que Sera Sera(Be OK !)
특집 2 연재 : "금마대생의 봄야유회"
초등학교 동창들이 코로나 이후 오랫만에 만나 당일치기 여행을 한다. 거의 5년만에 만난다.
저마다 밝은 표정이지만 나이들이 60대 중반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니 저마다 노인내 티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모처럼의 만남이기에 더할나위 없이 반갑고 당일치기 일정아라 아쉬움이 크다.
그렇지만 회장단이 알차게 진행했던 하루일정 덕분에 여행담을 족히 몇 부작으로 써내려 갈만할 것 같아 여행중에 놓치거나 빠진 내용들을 보완하여 추억을 더듬어 보고자 한다.
이 연재를 통해 오늘의 아쉬움이 다음의 반가운 재회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친구들의 애독을 삼가 청한다.
6학년2반 반장 최인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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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금마대학 40회"
제2부 " 대교공원 : 월계천변 참수터 "
길이 많이 막혀 '금마대생'들을 태운 버스는 예정보다 두어시간 늦게 '대교공원' 의 맞은 편 도로변에 나타났다.
이곳은 오늘 목적지로 가는 중간 기착지로서 홍성 등지에서 거주하는 고향친구들이 합류하기로 한 곳이다.
이삼분거리에 홍성의 대표적인 맛집으로 소문난 '삽다리 곱창'이 자리잡고 있다. 주인장은 이정숙 친구다.
어느 식도락가가 홍주 2박3일 여행기에 삽다리 곱창집에 대한 소개를 올린 글이 있어 옮겨본다.
".....홍주읍성과 용봉산행 갈림길 사거리에 ‘삽다리곱창 집’은 1992년에 문을 열었으니 한 세기를 거뜬히 넘긴 곱창전문집이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두께에 내려앉은 듯한 삽다리곱창집은 맛과 푸짐한 인심으로 꽤째째한(?)식당분위기를 일신시킨다.
잡냄새 없는 푸짐한 돼지곱창을 음미하다보면 쇠곱창 맛은 까맣게 잊는다.
냉이 듬뿍 넣은 곱창전골과 비빕밥의 별미 또한 한 세기를 버텨낸 비장의 맛일 것이다."
위 식도락가의 묘사는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서 저녁만찬을 하며 사실임이 우리의 까다로운 입맛으로 입증되었다.
고향친구들이 탑승하면서 수도권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환한 얼굴로 마주잡는 손마다 '53년전 코흘리개의 우정'이 복원돤다.
나는 서울차편을 이용하기가 여의치 않아 개인차로 따로 내려왔다. 대교공원 무료주차장에 주차하고 주변을 돌아보 다가 천안에서 내려온 정지원, 멀리 청주와 대전에서 달려온 이경숙과 이종례를 만났다.
버스가 도착하려면 1시간 남짓 시간 여유가 있어 함께 대교공원을 거닐게 되면서 공원에 숨은 역사적 실화에 접하게 된 것이다.
대교공원은 조양문에서 덕산방면으로 나가는 쪽에 있고 시내권 명소라 주변에 맛집도 많다. 홍성전통시장과도 가깝다.
이곳은 내가 홍성중학교 다닐 때 근방에서 자취하며 신문배달한 구역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잡초만 무성한 월계천변 길가에 벚꽃나무들만 있었지 싶다.
하천정화사업이 시작되면서 개천쪽으로 산책로도 생기고 벚꽃터널도 잘 조성되어 이제는 봄만 되면 주민들로 북적이는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 월계천변 대교공원 서쪽 산책로 옆에는 '참수터 표지석"이 하나 서있다.
1800년대 초기 조선에는 천주교가 조상을 배척하고 제사를 거부하는 등 당시 유교문화의 근간을 흔드는 불손한 이교도라 하여 온갖 박해가 가해졌다.
홍주(홍성의 옛지명)도 전국에서 두 번째로 순교자가 많은 곳으로 그 흔적이 서려 있는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천주교는 처음에 서울과 경기도를 중심으로 전파되다가, 이존창에 의해 현재의 충남 서부지역인 홍주지역으로 전파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이곳은 초기 천주교 신앙의 중심지이면서 동시에 가장 가혹한 박해의 피해지가 되기도 한다.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홍주목의 진영에서 온갖 문초에 시달리다가 결국 이곳을 포함한 여섯 곳의 참수터에 끌려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오늘날 대교공원으로 새롭게 단장된 이곳은 그당시 여섯군데의 순교터 중에 제 5의 순교터인 ‘참수터’이다.
북문교 건너 오른쪽 방향의 월계천변인 이곳은 예로부터 홍주의 처형지로 이용돼 온 곳이며,
일반적인 형장의 조건인 개천과 백사장이 있고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장소였기 때문에 참수 터로 이용됐다고 한다.
천주교 신자로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된 복자 황일광 시몬이 처음으로 이곳에서 참수형을 받았고, 병인박해 당시에는 유마르타가 참수형을 받은 자리이다.
순교 제6터인 ‘순교 생매장터’는 홍주의사총과 인접해 있으며 참수 터에서 대교공원을 따라 걷다 보면 십자가의 길을 만나게 되는데, 생매장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은 천주교 4대 박해 중 최대 박해인 병인박해 때 많은 내포의 천주교인들을 수용할 감옥이 부족하자 그 대응책 으로 일부 천주교 신자들을 생매장한 곳이다.
월계천과 홍성천이 만나는 합수머리로 가장 넓은 모래사장이 있어서 죄인들을 생매장하거나 시신을 이곳에 버리기 적합한 장소였다고.....
자칮 잊기 쉬운 역사의 거친 숨결과 통곡의 메아리에 잠시 숙연한 마음으로 벚꽃길을 거닐다가 뻐스가 도착했다는 소리에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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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에서는 서해바다를 관할하는 충청 수영성(오늘날 해군기지)이 있는 오천항과 죽도를 중심으로 금마대생들의 역사기행 겸 이야기를 펼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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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을 꾸기에 인생은 빛난다 - 모짜르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