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화!
뭔가 생각나는 것 없나요?
의정부 103보충대던가
여하간 입대하던 날
처음 지급받은 전투화 크기가
10문 5였답니다.
"전투화가 너무 작습니다."
"야 임마! 여긴 군대야. 까라면 까는 거야. 신발에 발을 맞춰. 그러면 간단해."
처음 전투화를 신던 날!
곱던 발이 온통 물집 투성이였음을 기억해내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답니다. 전투화!!!!
그림에 나와 있는 전투화는 그래도 세련되어보입니다. 제가 제대 말년쯤 되니 보급되기 시작하던 전투화였습니다. 그러나 발을 뜯어먹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래도 전투화 신고 행군하던 시절이 좋았다고요? 저는 그래도 두 번 다시 군대는 가지 않으렵니다. 억만금을 준다고 할지라도. 그러나 어찌하오리까? 젊은 청춘을 다 보낸 한 시절의 아픔인 것을.
작은 그러나 꼭 맞는 전투화를 신고 자대로 입대를 했습니다. 물집 투성이인 발의 고통을 군인 정신으로 참아가면서 그렇게 말입니다. 선착순에 뺑뺑이! 한밤중에 완전군장 구보! 그 거역할 수 없는 심란한 세월 동안 목에 걸려 있었던 군번 그리고 군번줄!
![](https://t1.daumcdn.net/cfile/cafe/131962204A8E4F7C4B)
사나이의 증명처럼 목에 걸리던 군번줄! 그 지겨운 군 생활동안 한번도 목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던 군번 그리고 군번줄. 행군을 할 때도 구보를 할 때도 휴가를 나올 때도 GOP 전선에서 조국을 지킬 때도 늘 목에 걸려 체온을 조절해주던 군번줄.
병으로 입대해서 얻은 군번줄, 그리고 분대장요원으로 착출되어서 부여받은 군번줄 또 하나. 군인의 상징인 군번줄의 그 차가운 감촉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는데 귀밑머리 허옇게 변해버린 중년이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네요.
30년 안팎의 세월이 흘러간 지금 군번줄을 보니 그 시절의 혈기 왕성한 젊음이 새록새록 기억됩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가야하는 줄 알고 간 군대에서 군대는 줄이고 빽이라는 말을 처음 배웠을 때의 그 배신감! 아들을 낳으면 절대 군대를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서일까요, 서른 일곱이란 늦은 나이에 딸만 달랑 하나 낳았답니다. 군대 보낼 일 없고 차가운 군번줄의 촉감에 몸서리칠 일이 없기에 나는 좋습니다. ㅎㅎㅎㅎ. 세월이 그렇게 흘러갔답니다. 고향 산천이 변한 것처럼 그렇게.
![](https://t1.daumcdn.net/cfile/cafe/151962204A8E4F7D4C)
동서를 가르며 남북을 둘로 나누어 놓은 비운의 땅 GOP. 그 동토의 땅 아니 사계절이 뚜렷한 아름다운 우리 강산에서 유일하게 계절의 변화가 없이 얼어붙어 있는 땅 철책! 얼고 얼고 또 얼고. 겨울이면 모든 것이 얼어붙고 말던 땅 GOP에서 여름 한철을 제외하곤 늘 껴입고 살았던 깔깔이(?). 맞나요?
참으로 따뜻한 옷이었다는 기억이 선명한데 이제 다시 보니 참으로 촌스런 옷이구나 하는 생각 때문에 웃음이 절로 납니다. 저 멀리 잘린 조국의 또 한 쪽을 지키는 병사들의 움직임이 보이고, 제대로 주입된 투철한 반공 정신으로 긴 밤을 지새울 때도 작은 육신을 지켜주던 옷.
제가 군대 생활할 때는 단추가 달려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진을 보니 요즘 옷은 지퍼로 무장이 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총알도 뚫고 들어가지 못할 만큼 단단하게 말입니다. ㅎㅎㅎㅎㅎ
예비군도 끝나고 민방위도 끝나고 어느새 국가도 나를 버렸지만 젊은 날 군바리(절대 비하하려는 의도가 없음) 시절의 기억만은 뚜렷해지는 것은 그 시절이 삶에 있어 그만큼 중요한 시기였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 좋다는 젊은 날을 국가를 지켜야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보내고 난 지금의 우리 아니 나에게 국가는 과연 어떠한 의미로 새겨질까요?
![](https://t1.daumcdn.net/cfile/cafe/161962204A8E4F7D4D)
분대장이었던 저의 어깨에 야간 훈련때마다 늘 걸려 있던 후라시(후레쉬가 맞는 표현인 듯한데 그냥 후라시가 정겹네요.)
빨강 파랑 색깔별로 정해진 신호가 있었다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다. 기역자 후라시를 어깨에 걸로 야간 훈련에 참가하여 분대원들을 지휘할 때면 그 어떤 넘들도 무섭지 않던 시절의 세뇌된 아둔함.
다 지나간 시절의 아슴한 기억입니다. 오늘 인생의 허리를 반 이상 꺾어 살아온 지금, 이 땅에, 아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에 두번 다시는 전쟁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아린 생각이 가득한데, 친구의 아들이 군대를 가고 지구촌 어디선가 또 누군가 전쟁의 한 가운데서 죽어가고 있답니다.
아둔한 인간의 탐욕스러움을 언제나 끝낼 수 있을까요. 이 작은 땅에서 철조망이 사라지고 군복이 사라지고 전투화가 사라지는 그날을 보고 죽어갈 수 있는 행운이 내게 주어졌는지 모르지만 오늘 인류의 상황은 암담하기만 합니다.
김대중 전대통령 조문을 위하여 잘린 허리의 또 한 쪽에서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들이 조문을 하는 모습을 TV를 지켜보면서 괜시리 가슴이 설레어 술을 한 잔 마셨습니다. 오늘의 조문 정국이 도화선이 되어 영원히 전쟁이 없는 땅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팔월이 기울어갑니다. 우리 살던 고향에도 어김없는 절기는 더위를 물리치며 나아가고 있겠지요. 언제인가 고향에서 선후배가 한번 모여 어우러질 그날을 꿈꾸며 오늘은 여기저 접습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