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는 호수공원 뒤쪽에 위치했었으나 얼마전 이전, 지금은 백석동 고양 우편집중국 바로 옆 디아뜨 크리스탈빌딩 2층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1991년 한국으로 귀순, 가수로 데뷔했던 김용씨는 방송생활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합니다. 억양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는데 트로트나 발라드등 대중음악도 어색했고, MC는 더더욱 힘들었겠죠. 밤업소 출연은 체질에 맞지않아 결국 북한국가대표 선수들의 식단을 담당하는 주방장으로부터 전수받은 비법을 기초로 외식사업에 뛰어 들었던 것입니다. 탈북 후 4년째 되던 해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정착금이며 방송출연료며 모아둔 모든 돈을 한꺼번에 잃어버리고 절박한 상황에서 꺼내 든 히든카드가 적중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어린시절 스케이트 국가대표였던 그가 4년동안 주방에서 일을 돕다보니 어느새 주방장의 수제자가 되어 있었고, 이런 우연찮게 쌓은 음식솜씨 덕택에 이 땅에서 살아 남을수 있었고, 지금은 탈북자 가운데 가장 성공한 사업자로 손꼽히고 있는 것입니다.

일산에 본점을 두고 있는 모란각의 내부는 호수공원 근처에 있을 때보다 훨씬 깔끔해지고 더 넓어진듯 합니다.
친절한 종업원이 안내해주는 테이블로 와 앉아 있자니 물같은 서비스가 없어 테이블 위를 보니 육수가 보온병안에 들어 있어 따라 먹기만 하면 되겠습니다. 육수도 살얼음 낀 냉육수와 뜨끈한 육수 두가지 중 골라 따라 마시면 되겠네요.


전 뜨거운 온육수로~ 어제의 막걸리와 소주짬뽕 속풀이를 냉면육수로 할 줄이야~ 속 시원히 풀립니다.
주문은 물냉면인 평양냉면(6,000원)과 비빔냉면(6,000원).



일부인들에 의해 다소 심심하다고 느껴진다는 평양냉면의 육수맛은 진한 맛보다는 단백하고 깊은 맛을 즐기는 제게 안성마춤이었죠. 시원스레 살얼음이 낀 육수가 가득한 평양냉면 맛은 부드럽고 끈기있는 쫀득한 면발과 같이 한여름 별미로 적당합니다.
사실 북한냉면을 맛 본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가지라고 합니다. "너무 심심하다"와 "너무 진하다" 개개인에 따라 입맛이 제각기 다르겠지만 젊고 남한출신일수록 "심심하다"는 반응. 나이가 많고 북한 출신일수록 "너무 진하다"라는 반응. 이는 당연한 일이라는 모 대학 식품공학과 교수는 '설탕이나 조미료같은 량신료와 고기류 등 풍부한 맛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맑고 시원한 북한식 평양냉면 맛에 만족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란각의 경우 이젠 너무 남한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어져 있으므로 그 맑고 단백함이 특징인 맛이 변해가고 있다고 하기도 하지만 어차피 대중적인 맛을 지녀야 음식점이 살아 남을 터. 이를 굳이 아쉬워 하거나 안타까워 할 일도 아니라고 볼수도 있겠네요.
그렇다 하더라도 대다수 사람들이 밍밍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모란각의 냉면은 여전히 독특한 북한식 평양냉면 맛의 계보 안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에 비하면 비빔냉면은 거의 우리 맛에 적응(?)이 확실히 되어 버린 맛이랄까요? 맵지만 달짝지근함이 돋보이는 양념에 깊은 맛이라기 보단 대중적인 맛이랄까요? 아주 훌륭하다고 말 하기 뭣하지만 누구나가 좋아할 수 있는 맛입니다. 다만 조금만 덜 달짝지근하다면~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냉면의 양은 적다고 생각되는 집의 거의 두배 정도 될 정도로 양이 많답니다. 또한 모란각은 꿩만두와 평양만두, 녹두지짐, 이북순대, 온반등의 요리들도 인기가 있는 편이지만, 다음 기회를 이용해 보기로 하죠
냉면에 관한 한 최고의 미식가로 알려져 있는 한국화가 유양옥씨는 "평양냉면은 질기거나 육수가 달착지근하면 실패작"이라며 "아무것도 타지 않은 냉면국물을 먼저 쪽 들이키고, 자르지 않은 면발을 씹지 않고 급하게 삼키면 백속이 시원해지는데, 이 느낌이 진짜 냉면 맛"이라고 강조하기도 한답니다. 아무래도 그 육수 맛이 냉면 맛을 좌우하는 큰 요인이 되지 않을수 없겠지요.


한쪽에선 김치, 만두,냉면의 북한식 식자재와 백두산 들쭉술과 강계머루주등을 판매하기도 합니다. 실제 홈쇼핑을 통해 판매에 나선 모란각김치는 4회 방송에 1만 3000박스나 팔리는 대박이 나기도 했답니다.
한때 김용씨는 모란각 연 매출이 360억원에 육박 준 재벌소리를 들을만큼 성공가도를 달리기도 했지만 과도한 욕심이 화를 불러오기도 했답니다. 모란각 말고 따로 뛰어든 사업이 네트워크마케팅. 김용씨는 일본에서 화장품과 건강식품을 주입해 방문판매 형태로 유통시키는 네트워크마케팅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중국 레져사업에도 뛰어 들었고 까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계속되는 재투자에 결국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전 재산을 처분해 채무정리에 나서야 했으나, 다행히도 모란각 일산본점 터가 공원부지에 편입되면서 적잖은 보상금이 나왔던 것. 빛을 정리하고 모란각 경영에 복귀한 지 1년도 안돼 모란각의 재기를 이끌어 낸 것이었죠. 아직 전성기엔 미치지 못하나 본점 매출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회복됐다 합니다.
자본주의 세상에 와서 볼것, 못볼 것 다 봤다고 하는 김용씨, 지난 4년간의 지독한 슬럼프에서 빠져 나오는 김용씨의 모란각은 한때 위기로 몰렸지만 올 여름 지독히도 더울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벌써부터 그의 성공이 쉽사리 점쳐지는 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