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대한 사랑과 문학에 대한 열정
―신익현 시인의 시세계
리헌석
(문학평론가)
1. 신익현 시인 살펴보기
신익현 시인은 1941년 충남 금산에서 태어나고 자란다.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대전과 충남의 중등학교 교사로 후진 양성에 평생을 바친다. 교육자로 재직하는 동안 대전교육감상, 대전광역시장상, 교육부장관상 등을 받으면서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생활로 일관한다.
신익현 시인을 보면서,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한자 성어가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듯싶다. 중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그는 문학에 대한 열망과 태생적인 예술인의 ‘끼’를 발산하게 된다. 교직원 시 모음집 『양지뜸』을 발간하기도 하고, 수필 모음집 『농사 한두 해 짓나』를 발간하여 타오르는 열정을 승화시킨다.
그러던 그가 평생 몸담았던 교육계를 떠나면서, 등산 활동과 문학 창작에 전념하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천성적인 자질을 드러낸다. 2001년에 이르러 계간 《문학사랑》의 신인작품상에 당선하여 등단하고, 그 동안 내공으로 익혔던 시 창작에 나서 놀랄 만한 열정으로 다작의 면모를 보인다. 이어 2002년에 중도일보사와 대전문인협회에서 주최하는 제3회 전국시낭송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여, 평소에 가꾸었던 시낭송 실력을 대외적으로 공표함으로써, 시인이자 시낭송가의 길을 걷게 된다.
여러 권의 시집에 수록된 작품 중에서 그 자신을 명징하게 투영한 작품으로 「대밭머리」를 들 수 있다.
진악산 보석사 뜨락
바위자리 은행나무
재 넘어 원효암
높고 푸른 열두 봉우리
용두산 박금리 마을
인삼 향내 푸르다.
보티재 고향 길도
포화에 눈먼 조국
배우고 가르쳐 온
나이테가 사랑일세.
오늘을 다듬는 문원(文園)
구조(九鳥) 따라 뜰에 선다.
―「대밭머리」 전문
이 시조를 통하여 그는 자신의 사랑과 지향을 명징하게 보인다. 그가 태어난 금산에는 ‘진악산’이 있고, 진악산 자락에 ‘보석사’가 있으며, 그 보석사 경내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장대한 ‘은행나무’가 서 있다. 그 은행나무를 우러르면서 시인은 자신도 그와 같이 위대한 시인이 되고자 했을 터이다.
자신의 고향인 ‘금산’은 바로 <인삼 향내>가 세계에서 으뜸인 곳이다. 또한 ‘보티재’에서 <포화에 눈먼 조국>을 연상하기도 하고, <배우고 가르쳐 온/ 나이테가 사랑일세.>에 이르러 교육자로서의 일생을 회고하기도 한다. 그는 고향을 찾아 자신을 가다듬기 위해 아호(雅號)를 문원(文園)이라 하고, 열정적 시 창작의 길에 나선다.
이 길에 나선 그는 시 창작의 뜨거운 열정을 작품으로 승화하여, 2001년에 첫 시집 『산이 아름다워 산을 사랑하노라네』를 발간한다. 이어 2002년에 두 번째 시집 『아, 산이 좋아라』를 발간하여 산악시인으로서의 면모를 선보이게 되고, 《산시》에 작품을 연재할 만큼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시심은 2004년에 『산이여! 아름다운 산이여!』를 발간함으로써, 산악시인으로서의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게 된다.
세 권의 시집을 통하여 산(山)에 대한 사랑을 담는 동안, 그의 또 다른 삶을 담고 있는 작품 수십 편을 빚어, 2005년에 『은행나무 가지 끝의 새』를 발간하기에 이른다. 이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문원(文園) 신익현 시인의 다양한 문학적 지향을 담고 있는 바, 그에 대한 분석과 정리로 작품세계를 확인하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2. 신익현 시인의 작품 세계
2.1 역사의식의 뜨거움
신익현 시인은 백제라는 역사적 시간과 공간에 인연이 닿아 있다. 그가 태어난 곳이 바로 백제의 터전이었던 금산이며, 역사적 격랑이 일 때마다 금산은 중요한 역할을 맡아온 곳이기도 하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으며, 현대사의 큰 굽이에서 꿋꿋한 기개를 선창하고 있는 ‘칠백의총’이 소재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1960년대에 부여여자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부여와 인연을 맺게 되고, 그 뒤 1980년대 전후에 부여고등학교에 근무하게 되어 더욱 깊은 관계를 맺는다. 그런 연유에서일까, 그의 작품에는 ‘백제’가 자주 등장하고, 백제의 도읍지였던 ‘부여’가 중심 소재로 등장한다.
새벽의 문을 열고
하늘 보는 눈빛이다
이끼 어린 사비성 뜰
즈믄 세월 묻어 놓고
바람은 부소산 중천에
밝은 달을 띄운다
낙화암 기슭에서
울음 울던 궁녀들
사비성 들판에서
목숨 던진 군사들
황산벌 계백의 얼이
갈대꽃을 흔든다.
―「부소산 까치」 전문
시인은 갈대꽃이 만발한 부여의 백마강에 서 있으면서, 백제의 역사를 자신의 프리즘으로 읽어낸다. 낙화암 기슭에서 울던 궁녀들의 모습도 보이고, 사비성 들판에서 목숨 던진 백제의 장졸들도 보이고, 황산벌에서 산화한 계백의 영혼도 떠오른다. 수많은 인물들이 현실의 갈대꽃에 투영되어 시인의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다시 말하면, 부여를 찾은 시인은 이끼 어린 사비성의 뜰에서 천 년 전의 세월을 읽어낸다. 시조 2수 중에서 첫 수는 현실을 반영하는데, <새벽의 문을 열고/ 하늘 보는 눈빛>을 노래하여 긍정적 시심을 보인다. 천 년의 역사도 이끼 어린 사비성 뜰에 묻어놓고, 마음은 부소산 하늘에 밝은 달로 뜬다. 그 달이 백제의 역사를 담아내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백제혼 1」에서도 시인은 망국의 역사에 침잠된 서정을 표현하기보다 내일의 역사 창조에 더 큰 무게를 둔다. <백제의 고도/ 금성산 기슭에 꽃바람 불어/ 도르르 꿈나무가 자란다.>에서 확인하게 된다. 「부소산」에서도 <사비성 옛 영화/ 흔적 없이 사라졌어도/ 나그네 휘파람 가락에/ 피어나는 천년송>을 노래하여, 사라진 영화 속에서도 천년 우람한 소나무를 탐색하여 내면화한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바람 한 잔에도
옛 백제의 혼(魂)이 숨쉬는 연못.
스멀거리는 은빛 햇살에도
호흡을 중단한 지 즈믄 해
다시 피어난 연꽃.
아침을 달리며
극기정진(克己精進)을 다지는
법열(法悅)의 순간.
―「궁남지 1」 전문
궁남지는 백제 무왕의 전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 곳을 찾은 시인은 풀 한 포기나 나무 한 그루에서 백제의 혼을 찾아낸다. 이 곳의 연꽃은 우리나라에서 몇 번째 안 될 만큼 유명하다. 그런 연꽃이 자라고 있는 궁남지에서, 시인은 은빛 햇살이 아름다운 아침을 만나게 되고, 그 연꽃에서 <법열의 순간>을 포착한다.
「연마기」에서 시인은 <적막에 묻힌 세속의 혼탁도/ 티끌로 덮인 세사에도/ 산길에 뒹구는 달빛을 받으며/ 내밀한 집념/ 어둠의 아픔을 뚫고/ 끝없이 이어질/ 새벽의 아침>을 노래한다. 이러한 문학적 사실에 근거할 때, 신익현 시인의 역사관은 과거보다 미래에 맞닿아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역사는 역사 자체로 정직하게 노래하지만, 내일의 희망을 빚어내는 매체로 기능해야 함을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역사를 보는 시인의 심안(心眼)이라 하겠다.
2.2 교육자의 올곧은 자세
신익현 시인은 40여 년을 중등교육에 봉사하여 사도(師道) 확립에 크게 기여한다. 중등학교 교육은 ‘청소년의 인격적 성장’이라는 본래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대학 입시를 위한 준비 단계로 전락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교육과정 속에서도 그는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가, 교육의 근원적 물음에 충실한 교육자로 평생을 보낸다.
그는 교육현장에서 지식을 전수하는 교사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하면서, 정서적 인성을 소중하게 여겨, 시낭송을 통한 문학 예술의 향유를 학생들에게 제공하기도 한다. 명시 100여 편을 암송하고 있을 정도로 열정적인 그의 시낭송은 제자들로 하여금 시를 사랑하게 하는 주요한 매체로 기능했으리라 본다. 이로 말미암아, 물질만능주의와 입시만능주의에 노출되어 있는 젊은 학생들의 정서함양에 지대하게 공헌하고자 노력한다.
그런 마음으로 그는 교단생활을 하고, 그 생활 속에서 보람을 느끼게 되고, 그로 인하여 쉼 없이 매진하는 데에 평생을 투자한다.
5월은 계절의 여왕
푸르름 속에 이글이글 연소하고
다함없는 일과로 흐르는 시간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교단생활
오늘이 어제보다 알차게
내일이 오늘보다 보람 있게
언제나 이상보다 아쉬운 현실
매화 주목 청송 향 벚나무
수림의 향훈…
은은히 풍겨오는 교정에
개미와 별들의 합창
―「교정 일지 1」 전문
교육자의 일상은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생활이다. 아침에 출근하여 수업을 하고, 하루 종일 학생들을 지도하고, 퇴근에 임해서는 방과 후 지도를 한다. 새 학기가 되면 학생들이 입학을 하고, 한 학기가 지날 때쯤 방학을 맞고, 다시 반복하여 한 학년을 마치는 것도 해마다 되풀이되는 일들이다. 또한 입학한 학생들이 졸업하면, 다시 새로운 학생이 입학하여 괄목상대(刮目相對)하게 성장하여 다시 졸업한다. 이처럼 학생들은 해마다 순환되지만, 교육자들은 비슷한 일과를 영위하게 된다.
이러한 교단생활에서 신익현 시인은 <오늘이 어제보다 알차게/ 내일이 오늘보다 보람있게>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반복되는 일상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한다. 그리하여 교정에 퍼지는 <개미와 별들의 합창>까지 들으며 교육자로서의 보람을 얻는다.
문학잡지를 통해 문학의 왜소화를 비판하는 「절차탁마」에서 시인은 작은 절망에 빠진다. <책장을 넘기며 진리를 찾는/ 배움의 자세로 살아가기엔/ 세속은 너무나 변해 있>다는 안타까움 속에서 <덕을 쌓는 참 인격을 닦는 인생 수업>을 쉬지 않는다. 교육의 길이 한없는 <가시밭 시련의 길>이라는 결말에 이르게 되지만, 그 속에서도 시인은 <일과를 마무리 짓는 오후/ 조용히 나래를 접고/ 내일의 비상>을 꿈꾸는 걸 잊지 않는다.
비상의 의지로
정상의 가지 끝에서
관조하는 날개의 정수(精粹)
무성한 초록의 광장에
깃을 펴는 생동의 미감
날아가고 싶다
멀리 산 너머로
새의 눈은
세상을 보다가 하늘에 멎는다.
아득한 태고
천연(天然)의 순수를 찾는다.
―「은행나무 가지 끝의 새 1」 전문
학생들을 교육하면서 시인의 가슴에 가꾼 아름다운 꿈은 시인 스스로에게 전이되어 <천연의 순수>를 탐구하게 된다. 비상하려는 의지, 그리하여 도달한 정상의 가지 끝에서 그는 날개의 본질을 해석한다. <새의 눈은 세상을 보다가 하늘에 멎는다.>는 노래에서 시인의 질정(質定) 없는 비상의지를 확인하게 된다. 그 비상은 세속의 욕망이 아니라, <아득한 태고/ 천연의 순수>라는 점에서 그가 지향을 확인하게 된다.
<초록의 광장>은 현실적인 봄과 여름이라는 계절일 수도 있으나, 교육자로 평생을 보낸 사실에 근거할 때, 그와 함께 했던 수많은 청소년기의 삶으로 연상되기도 한다. 그 초록의 광장에서 <깃을 펴는 생동의 미감>은 바로 순수를 향한 젊음의 비상의지로 보아도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이 그의 작품에는 교육자의 지향과 삶이 진솔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그의 내면은 그가 추구하는 미래와 맞닿아 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가꾸는 것, 이것이 바로 그가 추구하는 진정한 교육자의 모습이라 하겠다.
2.3 산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
일천 봉우리 이상을 등반하고, 그 중에서 700여 봉우리를 시로 노래한 신익현 시인은 산악인 중의 대표시인이라 하겠다. 그는 첫 시집의 서문에서 <산에 반쯤 미친 사나이로서 아직도 산행의 참된 의미를 만끽하기에는 스스로 미진함을 느낀다. 그래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배우는 자세로 산을 찾아 오를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산에 반쯤 미친 사나이>로서 그는 두 번째 시집의 서문에서 <산은 나의 친구요, 연인이요, 동반자요, 宗敎요, 神>이라고 역설한다. 세 번째 시집의 서문에서는 <春風秋雨 아늑하고 포근한 산의 품속에서 삶의 歡喜와 絶頂의 멀티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다면서, 산에 대한 절대적 사랑을 실토한다.
그리하여, 앞으로 <일천 개의 산에 올라 일천 편의 아름다운 산시의 꽃>을 피우겠다고 다짐한다. 이렇듯이 산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그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산의 이미지를 원용한다. 산에 대한 세 권의 시집 시리즈와 달리, 그의 내면을 다양하게 담은 네 번째 시집에도 산에 대한 작품이 여러 편이다. 몇 작품을 통하여 산에 대한 사랑을 조명하기로 한다.
너의 품에 안기면
열리는 열반(涅槃)의 문(門)
천년 전 솔바람도
시루봉을 넘어가고
보문산 흰구름 같은
고운 마음 솟더군.
산딸기 이슬 머금은
아들 바위 솔솔한 자리
장수(長壽) 약수터
맑은 물빛 환한 세상
사슴도 지순(至純)한 눈으로
세상 고개 넘더군.
―「산 5840」 전문
시인은 근교의 야산이나 전국의 명산을 찾아 자연을 벗 삼기도 하고, 세계적 명산을 찾아 호연지기를 배양하기도 한다. 앞의 작품은 대전 근교의 보문산에서 찾은 깨달음을 형상화한 것이다.
시인은 ‘보문산’에 안기면 열반의 문이 열리는 느낌을 받는다. 천년 전에 불던 솔바람도 현대의 시루봉을 넘어가고, 시루봉을 포함한 보문산에는 흰구름이 솟아오른다. 흰구름을 바라보면서 시인은 <고운 마음>을 지향한다. 흰구름이 깨끗하기 때문에 <고운 마음>을 지향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시인의 내면이 원천적으로 순수하기 때문에 그러한 지향을 보이는 것이리라. 산딸기 이슬 머금은 모습도 신선하고, 장수 약수터의 맑은 물빛을 마시면서 <환한 세상>을 실감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그런 맥락에서 고개를 넘는 사슴의 눈이 <지순>하게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산과 함께 있을 때 속세의 미련이나 고통에서 해방된다. 「산(山) 넷」에서 <산바람이 부서지는 아침/ 너는 비상한다./ 눈부신 햇살 속에/ 화알짝 열리는/ 가슴의 門>을 체험을 바탕삼아 노래한다. <산과 내가 하나>가 되어 <호흡 속에 이글대는 불꽃>을 간직하고 <開眼>의 경지에 이른다. 이러한 시 창작은 그가 바로 산이면서 사람이고, 사람이면서 산이라는 물심일여(物心一如)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오르는 산길
가을이 익은
산의 품속은 아늑하다.
천인단애 단풍 곱게 물든
계룡의 계곡에서 울리는 메아리
하늘은 호수가 된다.
멀리 시공으로 손바닥 만하게
한밭 시가가 열리고
호연지기 마시는 바람
혈맥을 흐른다.
골짜기마다 타오르는 불꽃
흐드러진 가지가지
무상의 잎을 달고
남매탑을 지난다.
―「계룡산에 올라」 전문
시인은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삶의 과정 또한 그러함을 깨닫는다. 이러한 깨달음이 있기에 산을 인생에 비유하는 것이리라. 시인의 눈에는 산이 곧 호수이며, 호수가 곧 산이라는 선적(禪的) 경지에 이른다. <천인단애 단풍 곱게 물든/ 계룡의 계곡에서 울리는 메아리/ 하늘은 호수가 된다.>는 정의는 <호연지기 마시는 바람>이 시인의 <혈맥>에 흐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며, 공기와 물을 같은 성질로 파악하는 선적 경지에 이르렀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시인은 자연 속의 아름다움을 완상하면서도, 삶에 대한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골짜기마다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흐드러진 가지가지>가 <무상의 잎>을 달고 남매탑을 지난다고 서술한다. <불꽃이 무상으로 남매탑을 지난다>는 것은 정말 이르기 어려운 경지로서 선사(禪師)들이 할(喝)함으로써 깨우치는 경지와 동질적이다. 현실에서는 말할 수 없는 화려함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래서 시인은 그러한 정경에 감탄으로 완상하지만, 그 중심에서 자신의 본성을 천착(穿鑿)하는 것이다.
5. 신익현 시인 다시 보기
신익현 시인은 역사에 대한 특별한 의식을 시화(詩化)하여 제시한다. 역사 그 자체를 노래하면서, 동시에 역사는 현실을 반영해야 하고 미래에 대한 기능을 다하여야 함을 역설한다. 그는 또 평생 교직에 봉사한 교육자로서의 양식을 노래하기도 한다. 교육 현실은 부정적이지만, 내일의 꿈을 가꾸기 위해서 교육의 필요성과 역할을 강조한다.
그는 산을 종교적 경지로 인식하여, 산에서 무한한 깨달음을 얻는다. 그 깨달음 속에서 삶의 본질을 형상화하여 새로운 감동을 생성한다. 자연을 사랑하는 시인, 반쯤 산에 미쳐버린 시인이라서, 신익현 시인은 삶의 고단함을 극복하기 위해 산사(山寺)에 간다. 산과 절의 합일적 이미지는 일상의 피곤함을 극복하고 내면의 안식을 유도한다. 또한 잊었던 자신을 찾을 수 있게 작용한다.
사는 일이 허전하면
나를 찾아 산사 간다.
바위 이끼 보료 삼아
살며시 눈 감을 제
마곡사 범종소리는
해탈문을 열더이다.
백범선생 겨레 사랑
솔빛으로 푸르르고
대광보전(大光寶殿) 용마루에
청기와 한 장 보듯
태화산 풀꽃 떨기에
새 얼굴을 보고 온다.
―「마곡사 여정」 전문
산사(山寺)를 찾으면, 시인의 일상에서 포착된 삶의 질곡이 씻겨진다. 바위에서 자라고 있는 이끼 위에 앉아 살며시 눈을 감을 때 들리는 마곡사 범종소리는 <해탈문>을 열어 평소에 잊고 살았던 <나>를 찾게 한다. 마곡사에서 잠시 머물렀던 백범 선생의 겨레 사랑도 가슴에 담아내고, 그 겨레 사랑이 솔빛으로 푸르름을 다시금 깨달으면서, 마곡사의 주산(主山)인 태화산에서 자라는 풀꽃 떨기에서 자신의 새로운 <얼굴>을 찾는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태화산’이라는 깨달음의 배경, ‘마곡사의 범종소리’라는 깨달음의 매체, 그리고 스스로 깨우치는 ‘주체적 자아’, 이렇게 삼위일체(三位一體)가 융합하여 빚어낸 절창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절창은 억지를 써서 창조된다기보다는 시인의 순수한 지향과 한없는 열정에 의해 창조된다. 수없는 시도(試圖) 끝에 자연스럽게 빚어지게 마련이다.
들국화 지면서
산은 더없이 붉어지고
우람한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생명수
단풍잎 곱게 단장한
삼매(三昧) 젖은 강산이다.
사색(思索)도 바람 따라
진주알로 영그는데
갈대꽃은 손 흔들며
누구를 기다리는가.
안으로 다지는 마음
가을바람 덕이다.
―「가을과 함께」
신익현 시인의 열정적인 시혼 속에서 이처럼 관조적이고 사색적인 시가 생성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렇지만, 고요하게 흔들리는 바다와 같은 그의 내면을 염두에 둔다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발산되는 열정도 수용하게 된다. 평생 동안 속으로 쌓은 내공이 어느 날 화산처럼 폭발하여 그를 시인이자 시낭송가로 자리하게 하고, 갇혔던 ‘끼’가 드러난 것이다.
앞으로도 그는 이러한 창작 경향을 오랜 기간 유지할 것 같다. 안으로 다지는 내면의 ‘달궁’ 속에서 무지개처럼 피어나는 시 정신을 그는 감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열정적으로 작품을 빚고, 시를 전파하는 신앙적 차원에서 시낭송가의 역할을 다하리라 확신한다.
이런 믿음으로 그의 시 작품에 대한 짧은 기행을 마치고자 한다. 그의 삶과 여정처럼 다양한 작품을 빚어내고 있지만, 집필의 편의상 몇몇 갈래로 정리함으로써 <불기(不羈)의 시혼(詩魂)>에 누가 되지 않았는가, 조심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