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비밀(2007)
한눈에, 그것도 가장 빠른 시간 내 서로가 서로임을 알아보는 것을
‘소올 메이트’ 관계라고 했던가. ‘Secret’ 이라는 악보를 연주해서
미래로 와 처음 보는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는 이 영화 소재의 착상이
기발하다. 그 상상력에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구성과 음악, 그리고
캐스팅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꼬집을 곳이 없다.
그래서 한번보고 재차 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드는 이 영화는 작지만
눈길이 가는 아이디어 상품을 보는 듯하다.
살아가면서 가끔은 ‘만약에’ 라는 가정의문문에 기대어 보곤 할 때가 있다.
그런데 부질없이 해본 ‘만약에’가 정말 현실이 된다면 어떨까. 신나는 일
정도가 아닐 것 같다. 모든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가 그랬듯이 이 영화
역시 ‘과거가 변하면 미래도 변한다.’는 설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과거
로 가서 사랑하는 사람을 살린다는 <시월애>, <데자뷰>, <나비효과>나 과거의
상황을 바꿔 놓지만 또 다른 상황을 맞게 되는 <프리퀀시> 그리고 동일상황이
반복되던 <이프 온리> <사랑의 블랙홀> 등 비슷비슷한 내용임에도 매번 높은
관심도를 보임도 결핍을 보완하고 싶은 방어기제인 공상의 발현이겠지만, 그
중에서도 이 영화에 유독 시선이 가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미래
로 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사람만 자신을 알아 볼 수 있다는 독특한
설정이 흥미롭다. 그리고 이런 시간여행 시나리오의 핵심요소인 사랑의 필연성
즉 왜 과거를 변하게 해야 하는지, 상대를 잊지 못하는지의 절절함이 선명하다.
그래서 쉽게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또 새로운 상황을 암시하는 열린
결말처리와 깔끔한 마무리가 단연 돋보인다.
그리고 감독, 각본, 주연의 1인3역을 한 20대의 주걸륜의 존재감이다. 그의
등장은 마치 40년 전 같은 나이에 <남과 여>라는 불세출의 영화를 만들었던
프랑스의 명감독 끌로드 를르슈의 환생을 보는 듯하다.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는 그는 대만 예술학교시절에 이미 재능을 인정받은 재원이다. 이 영화도
학창시절 자신의 경험에 상상력을 불어 넣었다지만 그의 짧은 연륜을 무색케
할 정도로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높다. 마치 이 시대 영화가 갖추어야 할 미덕
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꿰고 있는 듯하다. 다시 찾는 고객의 심리를 알고 있는
카페 주인처럼 말이다.
서사는 예술학교로 막 전학 온 상륜(주걸륜)과 샤오위(계륜미)와의 숙명적인
만남에서 출발한다. 천천히 움직이는 카메라 워킹과는 달리 도입부분은 적극
적이고 빠르다. 숙명적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처럼 급속히 서로에게 빠지지만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실체는 인물들의 갈등이 극으로 치닫기까지 수면
아래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의 피아노 솜씨로 초반부터 관객을
압도하지만 감독은 그 가운데 여자의 삐치는 모습까지 세심하게 터치하며
관객의 심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차분히 흐르던 이야기는 드디어 이들 사이
상륜을 짝사랑하는 칭의(증개현)로 인해 증폭된 오해로 대단원으로 가는
분수령이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자의 시점에서 전개되던 서사는 108걸음의
애절한 사연을 지닌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이제 남자
쪽으로 옮아간다. 급기야 맑은 날 소나기를 만난 걸음처럼 급해지는 남자는
실의에 빠져 과거로 돌아 간 여자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는 모험을 하게 되는데,
과거에서 재회하는 이들의 표정에서 전혀 새로운 상황만 암시한 채 급히
시나리오를 닫는다. 마치 압축 파일을 푸는 일은 관객의 몫이라는 듯이 말이다.
또 관객에게는 영화의 복선을 찾는 몫도 있다. 서사는 처음부터 대놓고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음을 전제하며 시작한다. 마치 ‘무엇이 비밀인지
찾아보세요.’ 라는 듯, 감독은 관객과 게임을 즐기듯 샤오위의 대사와 표정
으로 복선을 반복한다. 그 시작은 도입부분인 상륜이 전학 오던 날 하굣길에서
샤오위에게 이름을 묻는 장면이다. 앞서가던 샤오위가 ‘쉿’하며 자신의 존재를
말할 수 없는 비밀임을 말할 때, 마침 앞서 가던 칭의(증개현)가 뒤돌아보며
“이미 알려줬을 텐데”라며 대답하는 장면이다. 여간한 주의력이 아니고선
상황을 알아차리기가 어려울 것 같다. 또 샤오위의 집 옥상 데이트 장면에서
샤오위가 ‘이 아이스크림을 처음 먹어 본다’ 라던가. ‘네 뒷모습이 맘에 들어서’,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 하는 곡이야’, ‘구 연습실에서 이곡을 연습하면 안돼.’
등 너무나 자연스럽게 흐르는 대사이기에 샤오위의 비밀을 알기 전까지는 누구도
예감하기 어려운 복선들이다.
이 영화의 매력, 볼 때 보다 보고난 후가 더 궁금해진다는 것이다. 내용은
간결하고 단순하지만 결코 간단간단치 않다. 또한 화려하지는 않지만 섬세하다.
메이컵을 잘하고 나타난 여인을 보는 듯하다. 극 중 딴청 피우는 남자의 옆구리를
살짝 꼬집는 장면에서는 관객의 허리에까지 그 여주인공 손의 질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그리고 누가 봐도 연애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샤오위역의
계륜미는 맞춤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특히 그녀의 대사나 표정처리는 관객의
오감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비밀스런 샤오위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지 못하는
상륜에게 “넌 날 좋아하니? 난 널 좋아해!” 라며 빗장을 밀 때에는 버틸
방어선이 세상 어디 있을까 싶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특히 관객의 마음을
뺏는 장면이라면 배우들이 손수 연주하던 ‘피아노 배틀’ 장면이 아닐까 싶다.
쇼팽의 피아노 연습곡(5번)과 왈츠(7번)의 흑건을 위한 곡을 백건으로 변주하던
이들의 퍼포먼스나 감독 자작인 ‘비밀’이나 ‘연탄곡’들은 피아노를 조금이라도
다루어본 사람이라면 조용히 백기를 내걸고 말 것 같다. 분명 판타지이지만 아닌
것도 같고, 전부를 보고서도 못 본 부분이 더 많을 것 같은, 영화가 주는 상큼함에
몇 번이고 뒤돌아보게 한다.
참신한 아이디어 상품을 보고 나온 느낌이라면 나만의 생각일까.
첫댓글 너의 이야기 잘 참고해서 영화 한번 봐야겠다..
이번에는신작 007을봐야겟네....추석연휴에 맘마미아를 아이들과 봤는데 뮤지컬과는 또다른 느낌이 있어 좋았다...친구들에게 강추한다.맘마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