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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중국 저장성에서 체포된 마약사범의 모습,중국산 마약 유입이 급증하면서 사회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 |
“3000만원만 주면 마약 운반을 하겠다는 조선족이 줄섰어요. 잡히면 보통 징역 3년을 사는데 그 값이에요. 걸리지 않으면 수지 맞는 거지요.”
아예 징역을 각오하고 마약을 운반한다는 것이다.
“세관에서 안 걸려요?”
내가 물었다.
“공무원하고 결탁하지 않으면 어떻게 일이 되겠어요. 얼마 전에도 매수해 놓은 담당이 마약을 가지고 들어오는 날 월드컵 경기대회 때 파견 나가는 바람에 마약이 못 들어 왔어요.”
공항이나 항만에는 여러 정부 기관의 직원들이 모여 근무를 하고 있다. 그들은 수시로 밀수나 마약범들의 유혹의 덫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마약범들은 처음에는 사람을 마비시킬 정도의 거액으로 공무원을 유혹한다고 한다. 일단 돈을 받게 되면 그들의 마수에 빠져 들어가 노예가 된다는 것이었다. 현재 중국에는 사형이 확정된 마약범 2명을 포함해서 무기징역형 등 총 21명의 한국인이 감옥에 있다고 한다. 이미 사형되어 외교문제를 일으킨 사람도 있다. 그러나 막상 그들은 마약조직의 진짜 보스는 아닌 것 같았다. 마약범 K가 내게 알려준 보스급의 모습은 의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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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는 평범한 무역회사의 중국 출장이 잦은 직원이었다. 중국에 가는 명분과 그곳에서의 알리바이를 정교하게 만들기 위한 위장 신분이었다. 그는 항상 음지에 있다. 중국에서 마약이 들어오면 직접 손을 대거나 보관하지 않고 바로 도매상들에게 확 풀어버린다. 법에 걸릴 마약을 소지하는 행위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마약 가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주저하거나 흥정하지 않고 마약이 도착하는 대로 전량을 바로 팔아치웠다. 그가 아니라도 마약은 들어오게 되어 있다는 논리였다. 대검에서는 중국산 필로폰 적발량이 98년 15kg에서 2001년에는 151kg으로 급증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의 경우 국내 밀반입량의 99.9%가 중국산이었다. 마약조직 보스들의 철학은 돈 욕심을 너무 세워 시간을 끌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마약상들에게 납기를 지키지 못하면 그들로부터 받은 돈을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보스는 자기통제에도 철저했다. 마약상들 중에는 중독된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보스는 마약을 즐기지 않았다. 심지어는 아무리 술을 마셔도 자세 하나 흐트러지지 않게 깨어 있으라고 후배들에게 교육했다. 그래야 큰다는 것이다. 중국산 마약의 대량유입에 따라 필로폰의 가격이 30% 이상 떨어졌다. 가격이 비싸 손대기 어렵던 학생·농민뿐 아니라 빈곤층에까지 마약이 확산 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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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천구치소의 한 마약범으로부터 이런 편지 한장이 내게 날아왔다. 편지의 내용 중 중요 부분을 그대로 옮긴다.
“전 마약 전과 5범의 부산 청년입니다. 서른 두 살. 인생의 반을 마약 중독과 수인(囚人) 사이를 오가며 살아왔습니다. 지금은 필로폰 판매혐의로 구속되어 인천구치소에 수감 중입니다. 저는 우리나라 마약사범들이 처한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합니다. 마약사범들은 치료받고 마약을 끊도록 돌봐주어야 할 환자들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징역형으로만 다스리고 있습니다. 교도소 내에서도 마약범들이 격리 수용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이 빈번합니다. 이런 맹점들은 마약이 확산되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누바인, 대마초 등 경성 마약 상용자들과 필로폰 사범을 한 방에 수용하고 있는 현재의 수용 방법은 해마다 필로폰 사범이 늘어나는 원인입니다.
저는 지금 14명의 다른 마약류 사범들과 함께 지냅니다. 저는 판매자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제가 취급했던 필로폰에 관심을 갖고 물어보고 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셈이죠. 저 또한 새로운 수요자인 그들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는 판매의 유혹을 느끼고 있습니다. 서로에게 악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저희들같은 마약사범은 국립부곡정신병원같은 치료시설에 모아 치료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 병원의 200여석 병상에는 단지 예닐곱명의 마약 환자들만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전국 대부분의 교도소에서 마약 환자들은 출역해서 검정고시에 응시할 수도 없습니다. 직업훈련도 거의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흉기가 될 수 있는 망치, 톱, 칼 등의 공구가 이유인 듯싶습니다.
마약사범이 범죄자입니까? 환자입니까? 우리나라에서는 범죄자로만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도소 내에서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정신질환자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저는 10여건의 판매혐의와 부산 통영 등지에서 수배된 건수만 4건인 중범죄자가 됐습니다. 마약은 순간의 쾌락의 대가로 저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제가 다섯 차례 대마 흡연과 단순 투약으로 구속되었을 동안 단 한차례도 치료받지 못했고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도 갖지 못하고 더 심각한 마약사범들로부터 격리되지 않아 중증의 각성제 중독과 판매 수법을 배웠습니다. 마약사범을 키우는 국가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단은 없는지요. 그 도움을 청하기 위해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2002년 8월 20일 인천구치소에서 허강석 올림”
마약범 K씨는 교도소 안에서 전국적인 마약조직이 형성된다고 한다. 누가 어떤 물건을 취급하고 누가 수요자인지 시장에 대한 정보가 모두 그곳에서 교환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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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모 보호소에 수감되어 있는 청소년 마약중독자들의 모습 |
한때 필로폰으로 구속됐던 유명 가수가 있었다. 그는 하루에 열시간씩 목에서 피가 나올 정도의 공연으로 녹초가 되곤 했다고 한다. 그럴 때 주위에서 권하는 필로폰을 하니까 컨디션이 좋아지고 몸이 날아갈 듯했다고 말했다. 한번은 그가 미국에 갔을 때 심각한 좌절감을 맛보았다고 한다. 미국의 3류 밴드라고 해도 그 수준이 자신이 따라갈 수 없는 경지인 것을 간파했다는 것이다. 이미 한국에서 명성을 얻은 그였지만 마음 속의 허망함을 달래기 위해서 대마초를 피웠다고 솔직히 고백하기도 했었다. 징역을 살고 나와서 또 하고 그리고 또 잡혀 들어가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한번만 용서해 주면 다시는 안하겠다는 말은 법정에서만 쓰는 형식치레에 불과하다. 그들의 의지는 그걸 이겨낼 수 없는 환자다.
▲5 은밀히 이루어지는 마약사범을 검거하기 위해서 함정수사가 불가피하다. 위장하기도 하고 미끼를 놓고 범인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그 수사에는 최소한의 신의가 있어야 한다. 약속을 하면 지켜야 하는 것이다.
변호사인 내게 와서 사실을 털어놓은 마약범 K씨는 그 자신이 함정에 걸려 마약 투약하는 순간이 수사관에게 촬영되었다고 고백했다. 수사관의 요구에 따라 그는 마약사범을 잡는 사냥개가 되었다. 그러면 봐주겠다고 약속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마약 수사관에게서 받은 소형 녹음기와 공작금을 내게 보여 주었다. 그는 마약사범들을 잡기 위해 그들과 어울려 마약 투약을 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잠입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담당 수사관은 그 말을 듣고 투약부분을 약점으로 다시 자신을 괴롭히더라는 것이다.
그는 사냥개로 이용당하다가 실적이 없으면 그 자신이 수사관이 희망하는 재물이 되어 죽을 것을 예감하고 내게 진실을 털어놓는 것이다. 마약 수사관은 그를 통해 잡은 다른 범인에게도 그가 고발자라는 사실을 은근히 흘렸다. 그들끼리의 배신과 반목을 이용해 새로운 정보를 알아내려는 시도 같았다.
“수사하는 사람들은 ‘몇 킬로 짜리 거물 마약범을 검거했다’라는 기사 앞에 찍히는 자기 이름을 무척 좋아해요. 그런데 더 이상 이용당하기 싫어요. 사냥개 노릇을 하기 위해 투약했는데 그걸 건수로 잡는 건 범죄인 사이에도 없어요.”
잡힌 마약범의 말이었다. 그는 자기가 이용당하다가 기소되면 이 모든 사실을 법정에나 사회에 공개해 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엄상익·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