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회 산행일지 : 숨겨두고 싶은 산
(강원도 영월, 평창군 백덕산)
일시 : 2007년 5월 26(토)
날씨 : 맑음, 약한 황사
57회 정기산행을 대야산으로 공지하였었는데 당일 저녁 약속이 취소되는 탓에 급히 좀 더 먼 곳의 백덕산으로 산행지를 변경하였다. 전날 청주 출장지에서 미리 총무에게 전화로 대야산과 함께 백덕산 산행에 관한 준비도 부탁하였던 바 총무는 퇴근도 늦어가며 지도랑 정보를 준비하였단다. 어제 밤부터 시작된 황사가 걷히고는 있다는데 그래도 걱정이 컸다. 통영 미륵산(55회)이나 하동 금오산(35회) 산행 때처럼 큰 비가 예고되었음에도 산행을 멈추지 않았지만 그래도 황사는 무섭다. 지금이 5월하고도 말인데 아직도 황사라니... 이러다가 일년 내내 황사걱정을 하며 살아야 되는 건 아닌지도 모르겠다.
이번 산행은 김주봉 장로님께서 동행하기로 하셔서 지하철 대명역 입구에서 20여분 늦게 만났다. 금도현은 칠곡 IC에서 만나기로 하였으나 IC옆 도로공사 주차장에 위생차가 작업 중이어서 주차하느라 10여분을 기다려야 했다. 9인승 스타렉스를 가져와 넓게 앉았다. 중앙고속도로 단양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10시 35분 통행료 8,200원을 지불하고 신림IC를 나와 네비에게 법흥사(영월군 수주면)을 물으니 34km거리이며 88번 국도를 우회전하라고 가르쳐준다.
황둔면에 이르기 전 좌측 산에는 얼핏 자작나무 군락이 보였다. 여기도 찐빵이 유명한지 원조라는 이름의 몇 곳이 가게를 열고 있다. 횡성군의 안흥찐빵은 산 너머 동네인데...
주천강을 지난다. 강 아래쪽 공터에는 축제를 알리는 텐트들이 줄지어 있고 강에는 낚시꾼들이 몇몇 보인다. 강변도로는 경치가 참 좋고 법흥사 계곡물 또한 너무나 맑다. 이 길로 관음사 입구까지 가야 산행이 시작된다. 강 상류에는 펜션들이 이미 많이 들어서 있다. 11시 20분 주차를 하니 ‘영월군 수주면 백덕산 6.2km’라는 이정표와 '법흥사 입구 2.1km'라는 표시가 함께 서있는데 이쪽 방향의 백덕산으로 가면 신선바위봉을 거쳐 가는 먼 길이므로 주의하여야 한다. 관음사 방향의 철제다리를 건너면 좌측에 관음사의 대부분 전각이 가까이 보이고 계곡을 건너면 곧바로 백덕산 산행이 시작된다.
오늘 출발은 7,8명의 한 팀과 동행이다. 처음에는 좁고 조용한 길로 시작한다. 길 너비만 보더라도 이곳을 찾는 사람이 적음을 알 수 있다. 한사람이 서면 양쪽 팔이 주위의 풀이나 나뭇가지에 닿을 정도이다. 흰색 꽃망울을 방금 터뜨린 고추나무의 꽃과 세 장 잎들이 팔 끝을 간질인다. 정겹기도 하고 우렁차기도 한 물소리의 계곡을 두어 번 이상 건너야 한다. 좌측에 폐광지대로 보이는 돌이 쌓여있는 곳이 있고 소나무 숲이 있는 곳에서 다시 계곡을 건너면 삼거리가 나온다. 좌측 길은 아크릴로 된 ‘위험지역 등산로 없음’이라는 안내표시가 길을 막고 있다. 여기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접어들면 백덕산 2.8km라는 이정표가 나무에 매달려 있고 곧 오르막을 시작한다. 이 길이 백덕산의 직등로이다. 여기를 올라서면 식수를 구할 수 없으므로 삼거리 계곡에서 확보하여야만 한다. 총무가 식수를 뜨러가는 동안 잠시 휴식을 취한다.
숲이 깨끗하고 울창하다. 도시 인근의 산들은 비온 후 며칠 만 지나더라도 수많은 발길에 지쳐 먼지만 일렁이는 길이 되고 말지만 부엽토와 습기를 머금은 이곳은 꼽꼽하여 쿠션도 좋아 걷기가 참으로 편안하다. 계속되는 오르막에 힘이 들고 김이돌은 약간씩 뒤쳐진다. 12시경 휴식을 취하자 곧이어 아주머니 두 분이 일행인 남자들을 뒤로하고 맹렬히 따라온다. ‘피톤치드가 많은 백덕산 2km', '싱그러운 백덕산 1.5km' 라고 쓰여진 정겨운 나무판 이정표를 지나자 암릉 능선에 올라선다. 우측으로 백덕산이 아직은 멀리 보이고 아래로는 올라온 길 역시 아득하다. 다시 휴식을 취하지만 금방 아주머니들 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화강암이 아닌 퇴적암류의 바위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용바위를 지나고 ’즐거운 백덕산 가는 길 1km' 이정표를 지나자 이곳엔 철쭉이 한창이다. 그런데 이곳의 철쭉은 나무가 거의 교목 수준이어서 철쭉터널을 지나는 형국이다. 김주봉 장로님은 전혀 힘든 기색도 없이 생각 외로 잘 가신다. 김이돌은 장로님 보고 ‘심마니’같다고 한다. 힘도 들고 오후 1시가 지난 시간이라 배도 고파 우측 적당한 곳에 몸을 부리고 점심을 준비한다. 숲이 정말로 좋다. 5개의 라면과 도시락, 총각김치까지 정확히 다섯 조각, 그리고 숭늉같이 묽은 커피까지 곁들인 식사가 오후 2시에 끝이 났다. 금도현은 쓰레기 봉지를 열어놓고 파리를 잡는데 자못 신중한 모습이다.
갑자기 시야가 환히 열리더니 등산로는 우측 신선바위봉 방면에서 오는 길과 만나 삼거리를 이루고 좌측으로 꺽어진다. 200미터를 가면 오후 2시 30분, 곧바로 백덕산 정상(1,350m, 어느 지도엔 1,348.9m)이다. 비록 10여명 이상이 함께하기엔 다소 비좁긴 했으나 사방으로 열려진 훌륭한 조망, 사방천지 산뿐인 가운데 올라온 관음사 방향과 반대편 평창군 방림면의 밤나무골을 알리는 가느다란 앙증스런 길들, 신선바위봉에서 백덕산을 거쳐 당재를 넘어 사자산에 이르는 웅장한 능선, 연분홍빛 키 낮은 철쭉의 꽃 봉우리 군락들, 그리 크진 않지만 여간 멋지지 않은 고사목 두어 그루 등 눈에 보이는 모두가 너무 좋다.
차령산맥의 근간을 이루며 서쪽방면으로는 치악산 비로봉과 남대봉, 동쪽방향으로는 가리왕산이 20-30km 위치에 보이는 곳이 이곳이다. 8부 능선 위는 아직 초록세상이다. 장로님께서 준비해 오신 꿀물을 한잔씩 마시고 아쉽지만 작은당재, 당재 방향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이 길의 우측은 평창군이고 좌측은 영월군이다. 북쪽사면 즉 평창군으로 떨어진 물방울은 오대산에서 발원한 평창강으로 흘러들고 남쪽사면 즉 영월군 수주면으로 떨어진 물방울은 주천강으로 흘러들어 잠시 이별하게 하는 능선이지만 결국 산은 물을 끊지 않아 여주에 이르면 남한강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된다.
오늘 하산길의 주제는 취나물이다. 먹는 취나물, 먹을 수는 있는데 맛이 덜하다는 취나물로 토론을 벌이는 중에도 은방울꽃의 잎사귀처럼 너른 잎 한가운데로 6장의 흰 꽃잎이 별처럼 앙증스러운 꽃들을 여럿 매단 길다란 꽃대를 뽑아내고 있는 나도옥잠화 군락도 있고 금낭화, 벌깨덩굴, 금강제비꽃 등도 숲의 주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편안하고 아늑한 능선 길을 5분여 진행하면 정면에 N자 모양의 참나무를 만난다. 굵은 가지가 N자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이 아래위로 자라는 방향을 바꾸었다가 결국엔 하늘로 향한 모습이다. 헬기장과 먹골(4.7km)방향으로 빠지는 삼거리를 지나 다시 700여 미터를 편안하게 내려오면 운교사거리를 만나는데 여기가 ‘작은당재’이다. 뒤로 백덕산까지는 1.2km, 우측의 비네소골은 3.1km, 직진하면 당재를 거쳐 사자산, 문재에 이르기도 하는 길인데 이쪽방향으로는 이정표가 없다. 서울 방면에서 백덕산에 오르는 길은 대부분 평창군으로 와서 해발고도 800미터 이상인 문재에서 시작하여 당재, 그리고 이곳 작은당재를 거쳐 백덕산에 이른 후 운교리나 먹골로 하산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는 좌측의 관음사 3.2km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가끔 너덜지대도 만나는 가히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금도현과 김이돌은 이제 경쟁적으로 취나물을 취하고 있다. 긴 세월을 살아온 듯한 굵은 다래나무의 여러 갈래 덩굴이 큰 키의 전나무와 동무하며 하늘로 까마득히 뻗어있다. 아직 새순이 나진 않았지만 그 줄기에서는 물이 뚝뚝거릴 것처럼 싱싱함이 묻어 있다.
400여 미터를 정신없이 내려오면 그야말로 숨겨진 천혜의 계곡을 만난다. 벌써 물줄기는 폭포를 이루고 계곡의 바위에는 빛이 나리만큼 영롱하고 싱싱한 이끼가 가득 덮고 있다. 정말이지 깨끗하고 비경일뿐더러 물소리까지 예술적이다. 때묻지 않은, 원시의, 감추인, 창조의 원형같은 등등의 갖은 형용사를 붙이더라도 부족할 듯하다. 나만이 간직하고 마음속에나 꼭꼭 숨겨두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발을 담그자 곧바로 아려오고 등줄기가 서늘해 온다. 배낭에서 꺼낸 아직 얼음이 남은 생수보다 이 물이 더욱 차고 맛있다. 탁족을 끝내니 16시 15분, 아직 관음사까지는 2.6km를 더 내려가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하산길이 헷갈린다. 거의 원시림에다 인적이 드물어서인지 길의 구분도, 시그널도 거의 없다. 경사도 급하고, 계곡을 따르다가도 비탈을 만나기도 하고...겨우 발견한 ‘청송산악회’라 적힌 붉은 색 시그널이 무척 반가웠다.
거의 한 시간 정도를 힘들게 하산하여 우측의 당재로 오르는 삼거리를 만나고서 부터는 길이 쉽고 비교적 편안하다. 작은당재에서 여기 삼거리까지는 특히 주의하여야할 구간이다. 특히 여름에 계곡 물이 불으면 훨씬 위험하게 될 소지가 충분히 있다. 나만이 간직하고 싶은 욕심에서가 아니라 단독 혹은 두어 명의 작은 그룹으로서는 고려해보아야 한다.
삼거리에서 좌측의 낙석지대를 지나면 곧바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백년폭포와 폭포를 떠난 물들이 잠시 머무는 속살까지 환한 중형의 소(沼)를 만난다. 세수를 하면서 우리 뒤를 이어 하산하고 있는 아주머니가 포함된 일행들의 하산을 걱정한다. 작은당재에서 백년폭포에 이르는 약 1.5km의 이 계곡은 김생곤이 일러준 ‘계곡만 다녀와도 잊지 못할 산행이 된다’는 어느 산행기의 글처럼 잊지 못할 산행, 진실로 마음으로 숨겨두고 싶은 계곡이다.
광산에서 사용함직 했던, 철원의 녹슬은 철마 머리를 닮은 발동기를 지나고 곧 삼거리 즉, 오전의 등산길에 우회전 하였던 ‘위험지역 등산로 없음’ 안내 표시를 넘어선다. 소나무 숲과 백년광산의 폐광터를 다시 지나 관음사, 다시 철제 다리를 건너 출발선으로 돌아왔다. 출발로부터 여섯 시간 30분에 걸쳐 걸려 약 10km의 산행을 마치고 18시에 하산 완료. 주천면에 들어 아침에 보았던 축제장에 가봤으나 자리는 이미 파한 뒤였고 낚시꾼들도 없고 동네 아이 몇이서 물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다. 주천지구대(파출소의 새로운 이름)에 주차한 후 파장 직전의 조그마한 주천장을 둘러보고 ‘30년 전통’이란 간판에 끌려 제천 식당에 들었다. 두부찌개 3인분, 비빔국수 2인분을 시켜 싹 비웠다. 직접 만들었다는 두부와 삼겹살이 양념과 조화를 이룬 찌개가 특히 맛있었다. 늦은 일곱 시 30분 주천을 출발해 10시에 가까워 대구에 닿았다. 오늘의 시그널은 붉은 천에 노란글로 시원하게 새긴 ‘산앙(山仰)’을 꼽았다.
登?苦?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