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리문답 강설 53 엡2:8-9 2018. 04. 15.
제85문: 우리의 죄 때문에 마땅히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피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우리의 죄 때문에 마땅히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피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하며,1)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속은택들을 전하시는 모든 외적 수단들을 부지런히 사용하는 것입니다.2)
1) 잠28:13; 막1:15; 행20:21 2) 잠2:1-5, 8:33-36; 사55:3; 행2:38; 고전11:24-25; 골3:16
SQ. 85. What doth God require of us, that we may escape his wrath and curse, due to us for sin?
A. To escape the wrath and curse of God, due to us for sin, God requireth of us faith in Jesus Christ, repentance unto life, with the diligent use of all the outward means whereby Christ communicateth to us the benefits of redemption.
제86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무엇입니까?
답: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구원의 은혜이고,1)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복음에서 우리에게 제시된 대로 그분만을 영접하고 의지합니다.2)
1) 엡2:8-9; 롬4:16; 히10:39 2) 사26:3-4; 애3:26; 요1:12, 20:30-31; 행4:12; 갈2:15-16; 빌3:7-11
SQ. 86. What is faith in Jesus Christ?
A. Faith in Jesus Christ is a saving grace, whereby we receive and rest upon him alone for salvation, as he is offered to us in the gospel.
제87문: 생명에 이르는 회개가 무엇입니까?
답: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구원의 은혜이고,1) 이것을 통하여 죄인이 자신의 죄에 대한 참된 의식을 갖고,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신 하나님의 자비를 깨달아2) 자신의 죄를 슬퍼하고 미워하며 그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가고3) 굳은 결심과 노력으로 새롭게 순종하는 것입니다.4)
1) 행11:18; 딤후2:25 2) 시51:1-4; 욜2:13; 눅15:7, 10; 행2:37 3) 렘3:22, 31:18-19; 겔36:31; 눅1:16-17; 살전1:9 4) 대하7:14; 시119:57-64; 사1:16-17; 마3:8; 고후7:10-11
SQ. 87. What is repentance unto life?
A. Repentance unto life is a saving grace, whereby a sinner, out of a true sense of his sin, and apprehension of the mercy of God in Christ, doth, with grief and hatred of his sin, turn from it unto God, with full purpose of, and endeavor after, new obedience.
<원문 직역>
엡2:8-9- 왜냐하면 너희들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너희들로부터 산출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 행위들로부터 산출된 것도 아닌데,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소요리문답을 살펴보고 있는데, 우리는 십계명에 대해서 긴 시간 동안 살펴보았고, 지난주에는 그렇다면 우리가 상고해 보았던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계명 혹은 규례들을 인생이 지킬 수 있는가? 라고 할 때에 인생은 타락하여 부패하였음으로 지킬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에는 경중이 있다는 것도 살펴보았고, 경중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모든 죄는 반드시 형벌을 받아야 할 죄악이라고 하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오늘 소요리문답은 논리적인 순서에 따라서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진노와 저주를 받아야 마땅한데, 이러한 처지에 있는 우리들을 위한 피할 길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소요리문답은 이러한 진노와 저주에서 피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가장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다음으로는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은택들을 우리들에게 전달하시는데 사용하시는 모든 외적인 수단들을 성실히 힘써 사용하는 것이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먼저 살펴볼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소요리문답이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에서 피하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가장 먼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위해서 구속 혹은 구원을 완성하셨고, 그로 인해 완성된 의로움을 우리들에게 주시는데, 믿음이라고 하는 도구를 사용하셔서 우리들에게 선물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빌3:9에서 성경은 우리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인데,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소요리문답이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에서 피하기 위해서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요구하는 것은 회개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용서의 약속을 얻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행3:19에서 성경은 회개를 통해서 죄 없이함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피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모든 외적 수단들을 부지런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외적인 수단들이란 바로 말씀과 성례, 기도와 권징 등입니다. 이러한 외적인 수단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에서 피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외적인 수단이라고 하는 것은 내적 방식이 아닌 외적인 방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86문에서 소요리문답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란 바로 구원의 은혜입니다. 믿음의 대상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바로 구원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소요리문답은 이것을 구원의 은혜라고 명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롬3:22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12:2에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믿음을 산출하는 분임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엡2:8-9을 통해서도 성경은 은혜라고 하는 것이 믿음을 산출한 것이고, 그 믿음이 우리의 구원을 산출하도록 한 것이기 때문에 은혜가 모든 구원의 원천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확정적으로 인생이 지닌 모든 행위들이라고 하는 것도 구원을 산출하는데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음을 말씀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를 모든 인생이 자신이 받은 구원을 가지고 자랑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 자신의 은혜만을 자랑할 뿐이지 인생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엡2:8-9에서 성경은 믿음이라고 하는 중대한 도구가 구원을 위해 필수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믿음은 바로 은혜로 인해 가능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고, 앞서 언급했듯이 히12:2은 그 믿음의 저자를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라고 지칭하며 믿음의 조성자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믿음이 가진 성격입니다. 믿음은 진리에 대한 동의이며, 진리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즉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며 생명이라고 하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과 따라서 이제는 진리 되신 하나님의 말씀만을 신뢰하겠다고 하는 의지적인 고백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결코 행위가 아닌 것입니다. 즉 인생 자신의 일, 앞서 엡2:9에서 성경이 말씀하고 있듯이 인생이 할 수 있는 행위 혹은 일에 속하지 않습니다. 단지 믿음은 진리에 동의하고 진리 되신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뿐입니다. 따라서 롬4:1이하에서 성경은 믿음이라고 하는 성격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규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착각할 수 있는 사고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성경은 아브라함을 등장시키면서 아브라함이 얻은 구원은 결코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으며, 따라서 아브라함이 얻은 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엡2:9이 말씀하고 있듯이 어떠한 자랑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성경은 다윗을 등장시키면서 다윗이 얻었던 죄 용서는 일한 대가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은혜라고 하는 행위 혹은 일과 관계없이 주어진 것임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강력한 방식으로 믿음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믿음은 단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에 동의하고 신뢰하는 것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성경은 그 믿음이라고 하는 것, 즉 진리에 동의하고 신뢰하는 것뿐 아무 다른 것이 아닌 것조차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생 안에 심으신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믿음은 선물인 것입니다. 따라서 소요리문답은 가장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구원의 은혜라고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요리문답은 구원의 은혜를 통하여 우리는 실제적으로 구원을 얻기 위하여 복음을 통해 우리들에게 제시된 대로 예수 그리스도만을 영접하고 의지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즉 믿음이란 구원의 은혜인데, 이 구원의 은혜에 의하여 우리는 구원을 실제적으로 얻기 위하여 복음 안에서 제시된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영접하고 그분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분의 진리에 동의하고 그분만을 의지하며 신뢰하는 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있다고 말할 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성경에 대한 이해입니다. 진리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이해,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믿음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신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굳은 믿음은 언제나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라고 하는 토대 위에서 견고한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른 성경의 이해를 위해서 끊임없이 성경의 이해를 위한 교리에 집중하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개혁교회라고 불리는 교회들의 특징이 무엇이냐면 항상 주일 오후 시간에는 다양한 교리서에 따라 성경을 살펴본다는 것입니다. 즉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틀을 끊임없이 연마하기 위해서 수고하는 일들을 쉬지 않는 것이 바로 개혁교회의 특징입니다. 이러한 특징을 통해 개혁교회가 추구하는 것은 바로 교리적인 일치, 즉 믿음의 일치이며, 믿음에 근거를 둔 신앙생활의 일치입니다. 이러한 일치가 바로 교회의 순수성, 성도의 거룩성을 산출하는 것입니다.
이제 제87문에서 소요리문답은 생명에 이르는 회개가 무엇인지에 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마찬가지로 구원의 은혜입니다. 앞서 우리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행위일 수 없는 이유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의 근원이 인생 자신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즉 진리에 동의하고 진리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선물하셔서 산출되도록 하게 하신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을 믿는 행위라고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믿을 수 있는 행위 자체를 하도록 하게 한 것은 인생이 아닌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믿음은 은혜인 것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도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택자들에게 구원을 선물하신 것입니다. 즉 믿음은 도구이고 구원을 베푸신 것은 전적인 은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회개 역시도 생명에 이르게 하는 도구이지 회개 자체가 공로 혹은 일 혹은 행위가 되어 구원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개혁교회에서는 구원의 서정 혹은 구원의 질서라고 하는 구원의 논리적 순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는 하나님 자신의 무조건적 선택입니다. 이 선택을 통해 택자들은 시간 밖에서 구원을 확정 받게 된 것입니다.
이제 선택된 자들은 역사라고 하는 시간 속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생애를 위해서 태어나고 자신의 생애 속에서 한 순간을 선택 받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리는데 이것을 우리는 소명이라고 명명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택자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부르시는 것인데, 복음이라고 하는 것, 즉 말씀을 통해 자신의 백성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말씀 혹은 복음을 통해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방식에 따라 거듭나게 되는데 이것을 우리는 중생이라고 합니다. 즉 다시 태어나는 것, 거듭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 살아 의로운 자로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중생이라고 하는 것은 인생이 의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의지대로 중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겔36:26-27에서 성경은 우리 속에 새 영과 새 마음을 허락하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게 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부패된 육체의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것이고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중생한 자는 자신의 의지로 죄에 대해서 돌이키고 슬퍼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 다루고 있는 회개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중생의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 나타는 것이 바로 자신의 의지를 담은 회개인 것입니다. 소요리문답은 회개는 구원의 은혜이고, 이 구원의 은혜를 통해서 죄인된 우리 자신이 죄에 대해 참되게 의식하는 것을 회개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회개란 죄에 대해서 분명하게 의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범한 죄악들을 슬퍼하고 철저하게 증오하며 미워함으로 죄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악을 슬퍼한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 앞에서 범한 죄악들을 위해 슬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를 증오하고 미워한다는 것은 이미 범죄한 죄악들을 미워함과 동시에 죄악을 멀리하겠다는 다짐들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죄악에 대해서 참된 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죄의 본질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죄라고 하는 것의 본질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 혹은 그분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임을 의식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불순종한 결과 인생의 처지가 가장 비참하게 되었다는 것과 그 형벌로써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에 대한 참된 깨달음이 없으면 인생은 결코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자비를 기대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출34:6-7을 통해서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께서 인자를 천대까지 베푸시고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롬2:4에서 성경은 더 분명하게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회개하게 하시는 은총과 자비하심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후5:18에서 성경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대속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랑으로 인해 택자에게 제공되는 것이기 때문에 택자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자비가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것인지를 깨달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가 깨달아지면 우리는 죄에 대해서 슬퍼하게 됩니다. 즉 인생을 비참한 신분이 되게 하여 가장 비천한 삶을 살게 하며, 가장 악랄한 범죄를 범하게 하며, 지옥의 고통을 겪게 하는 죄에 대한 진정한 슬픔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64:5이 말씀하고 있듯이 인생에게는 단 하나의 의로움도 없음을 깨닫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슬픔이 항상 눈물을 동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자에게는 눈에 눈물이 너무 흔해빠져 자주 눈물을 흘리지만 마음에 슬퍼함이 없는 경우가 있으며, 어떤 자에게는 눈에 눈물이 거의 없어 울지 않지만 마음에 슬퍼함이 극심한 경우가 있습니다. 즉 눈에 눈물로 우는 것보다 마음의 눈에 눈물로 우는 것이 진정한 슬픔이고, 마음의 눈에 눈물로 우는 것이 없는 슬픔은 참된 슬픔은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죄에 대한 슬픔은 회개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며, 이러한 슬픔이 없이는 우리는 죄를 증오하거나 미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슬픔은 죄에 대한 증오를 낳으며 죄에 대한 증오와 미워함은 죄를 범하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즉 죄에 대한 증오함과 미워함이 큰 만큼 죄에 대항하여 싸울 무기가 더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에 대한 증오함과 미워함은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먼저는 마음에 가득한 죄악을 멀리하며 죄악에서 돌이키는 것이고, 행위에 있어서 죄악을 멀리하며 죄악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죄악으로부터 돌이키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새롭게 된 자는 죄악으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새로운 순종을 하고자 하는 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알고 그것을 위해 애쓰며 살아가게 되는데 이것을 소요리문답은 회개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즉 회개란 구원의 은혜인데, 이 구원의 은혜를 통하여 택자들은 자신의 죄에 대해 참된 인식을 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공로 안에서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용서하심의 자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어 자기 자신의 죄를 몹시도 슬퍼함과 동시에 그 죄악들을 참으로 증오하며 하나님께로 전적으로 돌이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새로운 순종을 삶의 최고 목적으로 삼고 이것을 위해 애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회개를 단지 죄에 대한 잘못만을 아뢰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고, 죄에 대한 슬픔과 증오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성도의 수고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 삶을 살아가는 것을 회개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