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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메=_= 이번 편도 오지게 길어요.
점점 감을 잃는가... 왜 이렇게 글이 길어지나 몰라요.
거의 끝나가니까 좀 길어도 참고 읽어주세요 *^-^*
50. 최종 목적지
“.......?”
움직이던 물체가 어느 순간 우뚝 눈 앞에 멈춰선다.
순간, 긴장한 아이들은 굳은 듯 멈춰 그것에서 시선을 떼지 못 한다.
슥… 구부렸던 등을 펴자, 엉켜있던 넝쿨 사이로 긴 머리카락이 흘러내린다.
아주 작은 눈동자와 빨갛게 충혈 된 두 눈이 공중에서 껌뻑껌뻑 움직이며,
무엇보다 연한 녹색을 띤 가늘고 긴 손가락들이 슥 드러난다.
“저.. 저게 뭐야?”
“…사람이야?”
순간, 아이들 모두 경악한다.
그것이 슥 몸을 일으키자, 괴이하긴 했지만 머리 하나와 긴 팔 다리가 사람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마치 그가 숲이고, 숲이 그인 것처럼, 마치 그가 뱀이고, 뱀이 그인 것처럼,
그 깊은 푸름과 어울려 있던 그것이 제 모습을 드러내며 류민호가 밟고 있던 뱀을 손끝으로 가리킨다.
그 가리키는 손만은 연한 녹색을 띄고 있을 뿐 티 하나 없이 맑고 고왔다.
「 놓아줘‥ 그러지마‥ 노‥ 놓아줘」
그 숲속의 사람은 여전히 민호가 밟고 있는 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이들은 겁에 질려 그만하라는 듯 류민호의 팔을 흔든다.
“야. 씨발 그만 하고 가자? 어? 가자고!”
“저거 뭐야‥ 존나 소름끼쳐. 가자, 좀!”
남자아이고 여자 아이고 할 것 없이 겁에 질려 소리친다.
하지만 그 순간 류민호의 얼굴은 묘하게 일그러진다.
「 놓아줘‥ 그러지마‥ 노‥ 놓아줘」라는 저 말이‥ 순간 너무나 귀에 익숙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거 같은데.
언젠가 똑같은 말을 들어본 거 같은데.
겨우겨우 내뱉는 듯한 저 작은 목소리와 쇳소리 비슷한 거친 느낌의 목소리를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어디서.. 어디서 들어봤더라..
“아.....!”
순간, 류민호의 머릿속을 스치는 하나의 기억.
언젠가 아주 어렸을 적, 작은 교실 안에서 들었던 듯한 바로 그 목소리.
“너… 그 새끼지?”
“......”
“초등학교 1학년 때 개구리 처먹던 새끼, 맞지?”
“......”
“왜, 나 이겨먹을라고 지랄 발광하다 지 아버지한테 개처럼 끌려간 새끼. 너 맞지?”
순간 류민호의 얼굴에 비열한 웃음이 걸린다.
그 때의 기억이, 그 때의 감각이, 그 때의 사악함이 다시 살아난 듯이.
어렸을 적, 아이를 괴롭힐 때 짓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난다.
눈앞의 아이는 말없이 숲 아래 언덕길을 손으로 가리킨다.
「 가‥ 당장 사라져라. 여긴 내가 있는 곳이다. 내 공간이다. 당장 여기서 나가‥ 그럼 헤치지 않겠다‥」
여덟 살의 아이가 열일곱의 아이가 되었듯이, 그 소년 또한 자라 있었다.
비록 그 모습이 인간의 것과는 거리가 먼, 숲이기도 하고, 뱀의 수장인 듯도 한 기이한 모습일지라도,
그는 더 이상 나약하게 숨거나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경고하듯 분명히 말했다.
이곳은 자신의 공간이라고. 류민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의 갖은 핍박과 수모를 견디다 못 해
그들을 피해 들어온 숲 속, 그렇게 얻은 자신의 공간을 또다시 침해받지 않겠다는 강경함이 있었다.
“헤쳐? 니까짓 게 나를?
순간 류민호의 얼굴에 비웃음이 걸린다.
그의 기이한 모습에 뒤춤에 있던 아이들이 그만 내려가자고 아무리 류민호를 흔들고 타일러도, 그는 아랑곳이 없다.
한 번의 경험으로 그는 가벼운 판단을 내리고 만 것이다.
녀석은 예전에 내게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다.
나는 이 아이를 괴롭혔던 놈이다.
고로 난 이 녀석보다 강하다.
과거에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럴 것이다 라는.. 얄팍한 논리.
“네까짓 게.”
순간 류민호는 밟고 있던 뱀의 머리를 힘껏 짓이겼다.
“어쩔 건데.”
류민호의 발이 힘껏 그것을 누르자 압력을 이기지 못 한 뱀의 머리가 으스러지며 축 가늘고 긴 혀가 바닥으로 늘어졌다.
...........
그 때와 똑같다.
여덟 살의 그가 소년 앞에서 죄 없는 개구리의 배를 무참히 갈라냈듯이,
지금은 소년의 동지이자 친구인 듯도 한 뱀 한 마리를 무참히 살해했다.
.......
그 모습에 숲 속의 소년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고요히 짓이겨져 죽은 뱀을, 그리고 그것을 죽인 소년을 물끄러미 보다
천천히 몸을 수그려 옆에 있던 풀로 엮어 만든 망 같은 것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야..! 야! 류민호!”
“씨발, 야, 가자! 그만 튀자고!!”
순간 아이들이 혼비백산하여 소리친다.
숲 속의 아이가 망에서 꺼내든 것은 낫이었다.
시골 농가, 풀이나 벼를 벨 때 사용하는 흔한 기구.
그것이 수풀 속 소년의 손에 들려있자 그것은 묘한 긴장감과 공포를 안겨 주었다.
어둠 속, 낡은 듯 겉 테가 검은 물이 든 낫의 안쪽 날은 허공에 번쩍 빛을 일으키며 날카롭게 빛났다.
「 왜‥ 내버려 두지 않는 거지?」
「 왜‥ 괴롭히는 거지?」
「 왜‥ 넌 늘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는 거지?」
그렇게 숲 속의 아이는 한 손에 낫을 든 채 조금씩 조금씩 류민호를 항해 다가왔다.
그 모습이 너무나 괴이했다.
한걸음, 한걸음이 아닌 조금씩 조금씩‥ 마치 바닥을 미끄러지듯 걸음도 없이 아이는 천천히 류민호를 향해 다가왔다.
“......”
“......”
그렇게 두 소년이 마주선다.
거진 10년 만에, 학교라는 공간이 아닌, 이번엔 유린당하던 소년의 영역에서 그들은 그렇게 마주 섰다.
..........
낫을 든 채 앞으로 슥 다가 왔을 뿐, 소년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류민호 역시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손에 들고 있는 횃불을 조금 더 꾸욱 움켜쥔다.
“뭐 어쩌게, 이 새끼야. 와 봐. 와 보라고!”
두려움에 애써 감정을 감추기 위해 류민호가 깐죽이듯 아이를 도발한다.
아이의 시선은 한참을 류민호가 쥐고 있는 횃불을 향해 있었다.
뭔가 멍하니 넋이 나간 듯 혹은, 상념에 빠진 듯 나무 끝에 들린 불꽃을 한참을 본다.
「 난‥ 안 죽였어… 내가 안 그랬어‥ 날 죽이려다‥ 그걸로… 날 죽이려다 자기들이 죽은 거야‥」
“........?”
「 …바로 너처럼. 」
“.......!”
그리고 그 순간 눈 깜짝할 사이에 휙 허공으로 그림자가 드리운다.
마치 움츠리고 있던 무릎을 펴든 것처럼, 가늘고 긴 소년의 다리가 유연하게 솟구치며 서슬 퍼런 칼날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류민호의 고개가 하늘로 들어 올려졌고,
둥그렇게 반원을 그리는 낫의 날이 류민호의 목을 향해 휙 원을 그리며 회전을 했다.
“민호야…!”
“꺄아아악‥!”
순간, 소녀의 다급한 외침과 공포에 떠는 여자아이들의 비명과 울부짖음이 공간을 메아리 쳤다.
“하아‥ 하아‥ 하아‥”
류민호는 가까스로 감았던 눈을 힘겹게 떠올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시야로 나뭇잎 사이에 간간히 비치는 햇살이 보인다.
바닥에 뒷머리를 댄 채 쓰러져 있는 것이다.
류민호는 제일 먼저 본능처럼 손을 가져가 목을 만져본다.
그져 ‘붙어있다’라는 것에 안도하며 몸을 일으키던 그는 볼에 느껴지는 쓰라린 통증에 슥 손등으로 얼굴을 부빈다.
가까스로 피한 칼날 끝에 베인 긴 상처가 느껴진다.
「 이번 해만‥ 이번 달만‥ 그저 오늘만‥ 넘기면 되는데… 그러면 한 스님께서 날 데려가 주신다 했는데…
나 역시도… 더 이상 너희를 만나지 않아도 되는데… 왜 이렇게 끝까지… 날 내버려 두지 않니‥?」
소년의 목소리는 너무나 작고, 그리고 너무나 아련했다.
무언가 깊은 슬픔이 차오르는지 붉은 색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하지만 류민호는 그 순간 그가 한눈을 파는 사이 손을 더듬어 아직 불씨가 남아 있는 횃불을 등 뒤로 집어 든다.
“씨발‥ 뻘 소리 지껄이지 말고 오늘 누구 하나 죽자‥ 이 괴물 새끼야‥!!”
그렇게 류민호는 순식간에 몸을 벌떡 일으켜 쥐고 있던 횃불로 마주 하고 있던 소년의 얼굴을 가격했다.
소년이 휙 고개를 돌렸지만 횃불의 끝이 소년의 길게 늘어뜨렸던 머리카락에 옮겨 붙었다.
부서질 듯 바싹 말라있던 머리카락에 순식간이 불길이 일어났고,
불을 끄기 위해 소년은 두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뜯어내듯 그대로 잡아 당겼다.
“쿨럭‥ 쿨럭…!”
“우욱‥! 욱‥ 으윽‥ 씨발 이게 무슨 냄새야.”
그렇게 소년의 머리에 불이 붙음과 동시에 아이들은 허리를 펴지도 못할 만큼 심한 기침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형용할 수 없는 너무나 역한 냄새가 공간에 가득 차올랐다.
무언가 축축한 물기가 어린 듯 음습하고, 또 비릿한. 그와 동시에 단백질이 타는 듯한 냄새가 뒤엉켜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할 만큼 고통스러운 냄새였다.
류민호 역시 허리를 구부린 채 거친 기침을 쏟아내며 눈물과 타액을 동시에 쏟아냈다.
소년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달려들어 류민호의 목을 움켜쥐었다.
“민호야!!!”
“으윽‥ 놔‥ 안 놔?! 이 괴물 새끼야!”
"내가 예전에 분명히 경고 했지‥?
다음엔 니 놈 손가락을‥ 그 다음엔 니 놈 눈알을‥ 니 놈 머리를 다 씹어 먹어 주겠다고‥!
그럼 되겠냐고‥ 놓아 주라고‥ 했잖아‥! 그 때도 내가 말했잖아. 내버려두라고 했잖아‥! 왜‥ 왜‥ 왜‥!!!”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울분을 토해내며 소년은 류민호를 쓰러트리고 그 몸 위를 올라타 힘껏 류민호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이미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의 류민호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 해 허공으로 휘젓는 손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이들은 이미 역한 냄새와 그 괴기스런 광경에 쇼크를 받아, 바닥에 주저앉거나 쓰러진 채 아무도 움직이지 못 했다.
그저 겁에 질려 손끝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여자 아이들과, 그대로 얼어붙은 남자 아이들.
허공으로 무기력하게 휘젓던 류민호의 두 팔도 어느새 힘을 잃고 바닥으로 축 늘어진다.
류민호의 검은 눈동자가 눈꺼풀 안으로 들어 올려지며 하얗게 눈이 뒤집히던 순간,
“그만‥ 그만 해…!!”
「 휘이익‥! 」
그 순간, 짧지만 허공으로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휙- 날이 선 무언가가 소년의 앞섬을 내리 찍었다.
“하아‥ 하… 하아…”
그리고 놀람과 두려움, 충격이 뒤엉킨 울음 섞인 숨을 한 소녀가 겨우겨우 토해 내고 있다.
훗날 제보를 한 바로 그 소녀가,
숲 속의 아이가 내려놓은 낫을 들어 그 아이의 두 팔을 내리친 것이다.
여전히 아이의 두 손은 류민호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이미 두 팔이 잘려나간 후에도‥
...........
순식간에 두 팔이 잘려나간 숲 속의 아이가 둥그렇게 잘린 제 팔의 단면을 천천히 들어 눈으로 본다.
진득한 갈색빛 혹은 짙은 보랏빛이 감도는 괴이한 액체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와 사방으로 뿜어졌다.
사람의 것과는 다른 색을 띄는 그 액체는 사람의 것과 똑같은 피비린내를 풍겼다.
그것이 그의 피라면, 그가 느끼는 고통 또한 사람의 것과 똑같았을 것이다.
「으… 으으… 으아아아아악‥! 」
그리고 엄청난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 엄청난 울분을 토해 내는..
숲 속 소년의 비명이 귀를 찢을 듯 공간에 커다랗게 메아리 쳤다.
.........
그것이 1년 전, 끔찍한 기억의 여름날이다.
* * *
“그리고는... 그렇게 이상한 피를 흘리다 바닥에 쓰러져 버렸어요.
내가 류민호를 구하기 위해 순간 그 놈의 두 손목을 잘랐어요..
그리고 나서부터 류민호는 내게 꼼짝을 못 했어요.. 내가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
또.. 우린 그 날 이후.. 아주 찝찝하지만 무서운 비밀을 공유하게 됐으니까..”
소녀는 애써 담담한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작게 떨려왔다.
그 날의 생생한 공포가 되살아나는지 얼굴빛도 금세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 아이는 그래서 어떻게 됐지? 그렇게 손목이 잘리고 나서. 피를 흘리다.. 죽었니, 니들이 보기에?”
혜성은 침착하게 묻는다. 미리 조사했다 시피 요괴에겐 ‘삶’ 과 ‘죽음’의 개념이 없다.
그저 ‘존재’의 개념만 있을 뿐.
하지만 그런 것에 무지한 아이들은 ‘무언가를 죽였다’ 라는 생각에 다른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
“피를.. 이상한 피를 너무 많이 흘렸으니까. 그리고 쓰러져서는 한참을 안 일어났으니까.. 우린 그걸 죽였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무도 우리가 그런 걸 모르게.. 불에 태워서 없애려고 했어요.”
“.......”
“근데 불이 붙지 않았어요. 아무리 해도 머리카락만 조금 타다 말 뿐, 불이 붙지 않았어요..
그래서.. 언덕 아래에 있던 아무 하우스에 들어가서.. 작업용 비닐을 훔쳐왔어요.
그래서 그걸로 그 아이를 감싼 다음에.. 가.. 감싼 다음에..”
“그런 다음에.”
“산 중턱에 있던 저수지에 넣었어요. 그리고 평생.. 그 날의 일은 우리끼리 비밀로 하기로 맹세 했어요.
그런데.. 그 맹세를 했던 아이들이 다 죽은 거잖아요. 이젠.. 나만 빼고.”
“다 죽진 않았어. 가까스로 목숨은 건진 아이도 있어. 손은 영영 찾지 못 할테지만.”
“그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그럼 난 또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할꺼고.. 따돌림을 당할 거고.. 옛날로 돌아갈 테니까..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
언젠가, 류민호도 이외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차라리 죽고 말겠다고.
그들에게 ‘차라리’란 대체 뭘까.
남과 다른 모습. 남보다 뒤쳐진 모습.
그로 인해 자신들이 행했던 것과 똑같은 괴롭힘, 똑같은 수모를 당하게 될 미래를 정작 본인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인가.
“넌 그럼, 네가 마지막 순서가 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니?”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동완이 덤덤하게 묻는다.
소녀 또한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예상은 했어요.. 그 안에 끝나길 바랬지만. 내가 잘랐잖아요. ...그 아이 손을.”
그런 소녀를 물끄러미 보다 동완이 다시 입을 연다.
“넌 이름이 뭐니? ...그 때도 못 물어봤다. 그냥 학생이라고만 불렀지.”
갑자기 왜 이름 같은 걸 묻는 것일까 ..하는 눈빛으로 소녀는 동완을 본다.
“다희요. 김다희.”
“...다희. 많을 다.. 기쁨 희?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라고 지어주셨나보구나.”
동완은 제법 진지하면서도 차분한 말투로 그런다.
그 진지하고 까만 눈동자의 묘한 힘에 소녀는 저도 모르게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을 정작 괴롭히고 있니.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니.’ ...하고 뒷말을 붙이지 않아도,
그 모든 것들이 그저 그 까만 눈동자에서 우러나오는 듯 소녀는 슬며시 고개를 숙인다.
“그 아이의 이름은 뭐였는 줄 아니?”
“......”
“너희가 그렇게 괴롭힌 아이의 이름 정도는 혹시 알고 있니?”
“......?”
동완의 뜻을 알 수 없는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그 아이의 다른 동창이 초등학교를 알려주었어.
그래서 우리가 미리 다녀왔거든. 그 아이 이름이....윤미수야. 아이의 이름은 미수였어.”
“그게.. 뭐 어쨌다는 건데요?”
...미수. 숲속 아이가 가졌던 이름.
아름다울 미(美), 손 수(手).
....아름다운 손을 가졌다고 부모가 그렇게 지은 모양이야.
그나마 그 아이가 가진 가장 사람답고, 가장 예뻤던 부분이었나 봐.
그 손을.. 네가.. 너희가 그 날 앗아간 거야.
뭐 어쨌다는 게 아니라.. 너희가 그랬던 거라구..
그런 너희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는 게,
그리고 또.. 그렇게 살아가도록 지켜야 하는 게 우리 임무라는 게..
지금 이 순간 너무나 회의감이 몰려온다는 거.. 그냥 그 뿐이다.
* * *
“확실해? 오늘 녀석이 이곳으로 올까?”
“와. 내 감으로는.”
그러면서 혜성은 물끄러미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여전히 그들은 소녀의 낡은 아파트에 있었고,
넷은 좁은 테라스에 쪼르륵 기대선 채 도심의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녀석은 달이 없는 날 움직이거든. 그믐이거나.. 비가 오거나.. 구름이 많거나.. 달이 숨거나 보이지 않는 날 움직이더라구.”
“이동 때문인가.”
“아무래도 그렇겠지. 지하 배수로로 인근부분까지 오더라도.. 그 다음은 이 높은 층까지 올라와야 하는 문제가 있으니까.”
하늘엔 달이 없다. 희뿌연 대기 속에 별조차 없다.
눅눅하고 어두운 밤이다. 저도 모르게 코 속 깊이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아이들이 말했던 그 비슷한 냄새가 느껴진다.
비오는 날의 물비린내 같은, 습하고 음침한 향이.
웬지 녀석이 가까이 다가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오늘 밤, 놈은 소녀를 들이닥친다.
그리고 그들 또한 마주하게 될 것이다.
과연 이 모든 만남 사이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런데 우리가 처음 녀석을 만났을 때 녀석에겐 손이 있었잖아. 두 손 모두.”
민우가 문득 이상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그런다.
소녀가 잘라냈다는 두 손은 지금 버젓이 그의 몸에 달려 다른 아이들의 손목을 잘라내고 있지 않은가.
“녀석은 뱀승려인 제 아비의 습성을 닮았을 거야.
숲 속에서 뱀들의 우두머리처럼 군림했던 것도 자신과 가장 비슷한 습성의 동물이었기 때문이고.
뱀의 기본습성은.. 허물을 벗는 거잖아. 끊임없이 자기를 다시 생산해 낼 수 있지.”
혜성의 대답에 민우는 더욱 혼란스러운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렇다면 말이야.. 스스로 손이 재생되어 자생하는 원리를 지녔다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평생 두 손을 잃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그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아닌데.. 원한도.. 복수도.. 고리가 너무 약하지 않아?”
그 물음에 혜성은 여전히 허공으로 시선을 향한 채 피식 웃는다.
“글쎄.. 정작하고 싶은 말은.. 다른 거인지도 모르지..
아이들의 손목을 가져가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복수와는.. 다른 메시지일지도 몰라.”
복수와는 다른 메시지‥?
그렇게 알 듯 모를 듯 아리송한 말을 내뱉는 혜성을 향해,
이번엔 정혁이 뚱한 얼굴로 툭 어깨를 치며 그런다.
“근데 넌 대체 언제부터 안 거냐.”
“뭘.”
“이 제보소녀가 마지막 표적이라는 거. 이 집 애가 최종 우두머리였던 거.
넌 우리보다 뭐든 한 발 먼저 알잖냐. 어떻게 된 거야.”
“아아.. 그거야 뭐..”
하고 혜성은 대수롭지 않은 듯 피식 웃더니 아무렇지 않게 툭 말을 뱉는다.
“딸기냄새 때문에.”
“뭐? 뭔 냄새?”
“으이구. 바보들.. 니들 처음 이 요괴한테 협박장 받아 왔을 때, 내가 어떻게 했는지 기억 안나?”
처음.. 협박장을 받아 왔을 때라..
다들 머리를 맞대고 신기한 듯 편지를 읽었었지.
늘 혼령만 상대하다 실제하는 것에게 그런 편지를 받은 건 처음이었으니까.
이게 도전장이냐 협박장이냐 하며 정혁과 민우가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 받았고,
곁에서 혜성이 편지글의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듯 꼼꼼히 읽다가..
“그래 맞아. 하나 하나 세세하게 읽다 말고 갑자기 신혜성이 냄새를 맡았지.”
혜성이 갑자기 편지지를 들어 코에 바짝 들이대고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기를 반복하는 기이한 행동을 했었다.
그 때 그걸로 충재와 몇 마디 말을 주고 받았던 게 기억 난다.
「형 왜 그래? 이상해.. 변태 같아」
「...달달해서.」
「..어?!」
「편지가 달달..하다고. 연애편지처럼.」
“맞아. 그랬었지 참. 그게 무슨 말이었냐, 대체.”
정혁이 여전히 모르겠다는 듯 그러자 혜성은 가방에서 두 개의 편지를 꺼내든다.
“처음 니들이 가져온 소녀의 제보편지.. 그리고 요괴가 우리에게 보내온 이 편지.
둘 다 달달한 딸기 냄새가 나더라고.
그 얘긴 무슨 뜻일까. 같은 사람이 썼다는 얘기지. 같은 펜으로 말이야.
그것도 딱 여고생이 쓸 법한 향기가 나는 볼펜, 그것도 딸기향이 나는 볼펜으로 말이야.”
“잠깐, 요괴가 보내온 편지가.. 실은 저 제보소녀가 쓴 거라고?”
“녀석이 불러줬을 거야. 내용을. 그리고 소녀가 받아 쓴 거지. 둘은 이미 안면이 있는 사이였기 때문에.. 가능한 거였지.
소녀는 겁에 질려 시키는 대로 했을 테고. ...내 생각엔 녀석이 글을 읽고 쓸 만한 가정환경을 지니진 못 했거든.
그렇게 류민호를 죽이고 나서 녀석은 자신만만하게 우리에게 편지까지 보내온 거야.”
“왜 그렇게까지 한 거지?”
“나도 아직 단 하나 걸리는 게 그거야. 녀석은 좀 더 정확히 말해, 우리가 아니라 ‘선호’에게 보내온 거야.
선호 방에 가져다 놓는 손목들도 협박이 아니라 일종에 ‘헌납’ 내지는 ‘헌종’ 같은 거랄까.”
헌납.. 내지는 현종이라...
“친밀감의 표시이자, 숭배의 의미지.
오직 이선호에게만 반복해서 아무런 대가나 협박 없이 제가 해온 제물을 바치고있어.
무슨 이유에서인지 선호를 자신보다 우위에 있는 모셔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거 같아.
그래서.. 아이에게 집착하는 거 같고.”
“왜. 대체 왜.”
정혁이 얼굴을 쓸며 답답한 듯 물었고, 혜성은 고개를 젓는다.
“나도 아직 거기까진 모르겠다. 대체 무슨 사연 인지는.”
그렇게 네 남자의 자뭇 심각한 이야기가 한참을 이어지도록
말 한마디 않고 있던 동완이 문득 휙 구부리고 있던 상체를 쳐든다.
“......!”
그리곤 갑자기 빼앗듯이 혜성의 손에 들린 편지들을 낚아채서는 저도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기를 반복한다.
“왜 저래, 갑자기 뭐야. 김동완.”
그리고는 진지해진 얼굴로, 무언가 상념에 빠진 듯 빠르게 허공으로 눈동자를 굴린다.
“그래.. 그래.. 냄새.. 내가..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마치 독백하듯 혼자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동완을 일행은 어리둥절해서 본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과 당황한 듯 크게 떠진 눈이 평소의 그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래.. 그거였어.. 내가 왜 그 생각을 진작 못 했을까.”
“야.. 너 실성한 놈처럼 왜 그래... 어? ...야! 김동완!”
그리고 그 순간, 일행들이 말릴 틈도 없이 동완은 테라스에서 휑하니 거실 쪽으로 들어가 빠르게 소녀의 방으로 직행한다.
“저거 왜 저래, 갑자기.”
“그러게 말이다.”
영문을 알 길 없는 일행들은 얼떨결에 동완을 따라 소녀의 방으로 들어간다.
소녀의 방으로 들어서자, 동완은 더 알 수 없는 기이한 행동을 하고 있다.
"......?"
한 쪽 벽면 가득 물든 검은 얼룩. 요괴가 지나가고 난 자리에 남는 얼룩을 정성스레 두 손으로 쓸어보며
그것에 바짝 얼굴을 가져가서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미친거냐, 갑자기 왜 이래?”
눈이 휘둥그레 해진 혜성이 답답한 듯 묻는다.
다른 일행들 역시 동완의 돌발 행동에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다.
그 순간, 동완은 박차듯 몸을 세워 그들을 향해 다급하게 외친다.
“아니야! 그게 아니었어! 놈은 오늘 소녀에게 오지 않아.”
“......?”
“놈은 오늘 밤.. 이곳이 아니라.. 선호에게 모습을 드러낼 거다.”
“........!”
“집엔 지금 어린 녀석들뿐이야..
주축인 우리를 이리로 몰아넣고 녀석은 지금.. 선호를 찾아 갔을 거라구!”
그래.. 내가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녀석의 마지막 목적지는 이 소녀가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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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이야기가 끝나간다고 해서, 긴장줄 놓으시면 안 돼요.
전 이만.. 정신줄 놓기 전에 자러갑니다.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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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호좀 냅둬라 아오 ㅠㅠㅠㅠㅠㅠ
사유님.기다릴께요
증말.. 사유님은 그저 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