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주최씨 上系 세거지는 12世이전은 주로 황해도를 비롯한 이북5도와 서울, 강원도, 경기지역에 세거해오다가 12世 이후 27個派가 派生한후 전국 각지역에 퍼져 집성촌을 이루거나 도시지역에 산재, 세거해온 것으로 파악되는데 그 세거지를 派별로 요약기록 한다. 11世 최련(崔連)의 증손인 14世 최상기(崔尙淇)는 사정공파조(司正公派祖)로 그 후손들은 황해도, 해주, 연안, 재령 등지에 세거해왔고 현재 남한에는 인천과 성남등지에 세거해 있다. 그리고, 최련(崔連)의 고손인 최린(崔璘)은 교리공파조(校理公派祖)로 그후손이 황해도 연백에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해오고 있으며 6.25때 많은 후손이 남으로 내려와 서울, 경기, 강원지역에 세거해오고 있다. 11世 최득전(崔得全)은 전리총랑(典理總郞)을 역임하고 경기도 포천에 뿌리를 내려 네 아들중 세 아들은 각기 파조가 되었고 현손(玄孫) 셋도 각기 파조가 되었다. 큰아들 언의 현손 15世 하(河)는 직제학공파조(直提學公派祖)로 그 후손이 북에 세거해오고 있고, 15世 숙(淑)은 문정공파조(文貞公派祖)로 그 후손이 충남 아산, 서천, 예산, 전북 익산등지에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해오고 있으며, 15世 승순(承順)은 집의공파조(執義公派祖)로 그 후손은 평북(平北), 영변(寧邊)에 거주하다가 갑자화(甲子禍)로 전남 화순으로 피난하여 내려와 현재는 충북 제천에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해오고 있다. 최득전(崔得全)의 둘째아들 단(鄲)은 대령군파조(大寧君派祖)로 네 아들을 두었는데 맏아들 13世 최변(崔汴)의 후손들은 강원도 홍천과 경북의성에 뿌리를 내려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해왔고 일부는 함북 정주에도 세거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둘째 13世 최첨(崔沾)의 후손은 충남 당진군 송산면에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해오고 있으며 셋째 최호서(崔虎掃)의 후손은 함경도 함흥, 주서, 신동, 기천, 가평, 장동등지에서 세거해오고 있으며 일부는 남으로 내려와 서울, 경기지역에 산재 세거해 오고 있다. 그리고 넷째아들 13世 지하(智賀)는 나주목사(羅州牧使)를 역임하고 그아들 14世 상길(爽吉)이 충남 예산군 고덕면으로 낙향하여 뿌리를 내려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해오고 있다. 최득전(崔得全)의 셋째아들 최용(崔용)은 서운부정공파조(書雲副正公派祖)로 그 후손은 함북 경원과 평북, 의주, 삭주, 안주, 재령등에 세거해오고 있고 이남에는 현재 경기도 포천, 여주등지에 세거해오고 있으며 서울과 대전에도 일부 산재해있다. 그리고, 최득전(崔得全)의 넷째아들 최용기(崔龍起)는 전서공파조(典書公派祖)로 그 후손은 대부분 평남 안주와 그 외 교항, 금산, 자산, 영변, 개천, 법리등지에 세거해오고 있고 일부는 서울, 경기, 충청지역에 세거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4世 최만리(崔萬理)는 다섯아들을 두었는데 각각 파조가 되었다. 큰아들 최각(崔塙)은 현감공파조(縣監公派祖)로 그 후손은 전남 강진과 경기도 김포에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해오고 있다. 둘째아들 최정(崔埥)은 좌랑공파조(佐郞公派祖)로 이 派는 해주최씨 전체의 약 35%를 차지하는 큰 派로 집성촌만도 서울 면목동, 경기도 구리, 여주, 충남에 예산, 홍성, 광천, 결성, 보령, 청양, 경북에 영천, 칠곡, 대구등지에 세거해오고 있고, 이북의 해주에도 많이 세거해오고 있으며 그 외 전국 각지에 광범위하게 산재 세거해 오고 있다. 셋째아들 최당(崔塘)은 생원공파조(生員公派祖)로 그 후손은 충남 보령과 홍성, 예산 그리고 경북 예천에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해 오고 있다. 넷째아들 최은(崔垠)은 진사공파조(進士公派祖)로 그 후손은 황해도 연백과 봉산에 세거해온 기록이 있고 충남 당진과 경북 문경에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해오고 있다. 다섯째아들 최연(崔堧)은 전한공파조(典翰公派組)로 그 후손은 경기도 안성과 파주, 충남 홍성, 천안, 전남 영암에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해오고 있으며 서울과 인천, 충남 공주, 청양등지에도 산재 세거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3世 최용(崔溶)은 판사복시공파조(判司僕寺公派組)로 후손들은 주로 인천에 뿌리를 내려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해오고 있다. 15世 최윤범(崔尹範)은 승지공파조(承旨公派組)로 후손들은 전남 화순과 무안에 뿌리를 내려 집성촌을 이루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일부는 각지역에 산재 세거해 있다고 본다. 그리고, 15世 최윤망(崔尹望) : 진사공파조(進士公‘尹望‘派組)의 후손과, 15세 최효종(崔孝宗) : 장사랑공파조(將仕郞公派組)의 후손, 15세 최윤탁(崔尹卓) : 진사공파조(進士公‘尹卓‘派組)의 후손들은 전남 장성과 보성, 광주지역에 세거해오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2世 최안덕(崔安德)은 좌윤공파조(左尹公派組)로 후손들은 경기도 부천과 충남 공주에 세거해오고 있고, 12世 최중습(崔仲濕)은 감찰공파조(監察公派組)로 그 후손들은 경기도 안성과 이천, 전남 함평에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해오고 있으며 그 외 서울, 경기, 경남등지에 산재 세거해 오고 있다. 13世 최제(崔悌)는 사평공파조(司評公派組)로 그 후손들은 평북 의주에 세거해오고 있고 일부는 서울과 경기 성남등지에 산재 세거해오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2世 최덕해(崔德海)는 소윤공파조(少尹公派組)로 그 후손들은 강원도 홍천군 서면에 뿌리를 내려 세거해오고 있고, 13世 최하(崔河)는 전서공파조(典書公派組)로 그 후손들은 주로 충남 서산시 음암에 뿌리를 내려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7世 최빈(崔賓)은 해능군파조(海陵君派組)로 그 후손들은 충남 예산과 서천, 전북 익산에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해오고 있고 그 외 충남 부여, 경기도 수원과 화성등지에 산재 세거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4世 최만현(崔萬玹)은 현감공파조(縣監公派組)로 그 후손은 이북 강서(江西)에 근거를 두고있으나 후손일부가 서울지역에 산재 세거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5世 최부(崔溥)는 복야공파조(僕射公派組)로 다른 係派보다 7~10世이상 먼저 派組가 되었으나 후손이 번창하지 못해서인지 그 수가 얼마안되며 경기도 옹진에 근거를 두고 있고, 일부는 서울과 경기지역에 세거해오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외 이북에 황해도 해주시 벽성군 서석면, 연백군 호남면, 송봉면, 신계군 적여면, 신천군 궁흥면, 평남 순천군 후탄면, 중화군 간동면, 강서군 초리면, 평원군 검산면등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