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기 이충호입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올해에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언제나 신묘한 해결책이 나와서 모든 것이 다 해결되리라
기대합니다.
지난 1월 8일, 2011년 아강모 첫 스터디가 덕산에 있는 박상묵 총회장님댁에서 있었습니다.
총 16명이 참석했구요, 1박 2일에 걸쳐 멋있고 맛있고 운치가 만빵에 정감이 줄줄 흐르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해득 사무총장님이 해 주시리라 생각하고, 저는 본연의 임무인 스터디 리뷰를 하겠습니다.
강사 : 박상묵
제목 : 행복한 인생을 위하여
교재 : 없음 (그날의 그 장소, 그 상황이 교재였음..)
형식 : 프리 스타일 스토리텔링
이날 박총회장님의 강의는, [준비 없이] 초대하고 [준비 없이] 올 수 있는, 그야말로 격의 없는 우리들의 행복한 모임에서
마음 속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하는 것.. 바로 그런 시도였습니다.
저도, 들은 그대로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행복한 인생을 위하여, 다음 세 가지가 있어야 하는데,
최선, 정성,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합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에 태어나, 커서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청년이 되고, 그의 꿈은 하늘의 주인이 되는 것으로 커졌습니다.
어느덧 그 청년은 전투조종사가 되고, 사관학교의 대대장이 됩니다.
그는 생도들과 어울리며 어렸을 때의 꿈이었던 선생님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당시 생도들에게는 겉옷을 포함해서 내복, 전투복, 체육복 등 약 30가지의 의복이 지급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의복 중에서 겉옷만 품질이 좋고, 나머지는 헌 옷으로 품질이 형편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의복의 사양을 확인하여 모든 헌 옷을 수거한 후, 납품업체에 돌려보내고 새 옷으로 다시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난리가 났습니다.
헌병대, 예산담당 장교, 기무대 장교에, 학교 고위층까지..
곳곳에서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용기있는 사람은,
갑자기 닥친 위험에 용감히 맞서는 사람보다도, 오히려 서서히 닥쳐오는 위험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옳은 일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결국 그의 뜻이 관철되어, 모든 생도들은 품질 좋은 의복을 입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박수!!!!!)
그러나 이 사건 10개월 후, 그는 전투비행단 대대장으로 가게 되었고, 바로 대령 진급 심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인사참모부의 선배 장교가 그를 불러서 물었습니다.
"아니~ 사관학교 1년 반 동안 도대체 어떻게 지냈기에 인사기록이 이 모양이냐?"
.
.
"5등급이야, 5등급!"
참고로 인사기록 등급은 1~7등급인데, 6~7등급은 전역이고, 5등급은 문제장교로 분류되어 절대 진급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대령진급은 접어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그러나 뚜껑을 열자, 그가 1번으로 진급이 되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다행히도 당시 진급심사위원 중에 예전 사관학교 의복사건의 전말을 아는 사람이 있어서, 왜 그가 5등급을 받았는지를
밝혀주자 몰표가 쏟아졌던 거지요..
그는 대령으로 진급을 하고 '정의는 살아있다'는 자신감에 차서 소신있는 군 생활을 했습니다.
정말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았습니다.
4년 후, 그는 장군심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대령에서 장군으로 진급하면 34가지가 바뀌게 됩니다.
수많은 경쟁자 중 7명만 진급하는 상황에서, 누군가 문 밖에서 서성이는 소리와 함께 멀리서 박수소리가 들립니다.
낙방한 거지요..
현실은 냉혹해서 진급에 실패한 지휘관은 보따리를 싸야 합니다.
그리고 [부시맨]이 됩니다.
부시맨은 [부르지 않는 곳에 가지 않고, 시키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보따리를 싸서 혜미 비행장으로 내려갔습니다.
(지금 덕산 집에서 15분 거리입니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공황상태에 빠져있던 그는 문득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봅니다.
그리고 나에게 부족했던게 무언가..
.
.
그는 그것이 겸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진급에 실패한 지휘관에게는 1년 후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는데, 이때는 티오가 7명에서 2명으로 줄어듭니다.
그는, 1년 동안 겸손하고 낮아지며 최선을 다 하자고 다짐합니다.
덕산에는 악산이 없고, 그래서인지 인심이 후하고 사람들이 부드럽습니다.
그는 어느 날 부인과 함께 시장통을 지나다가 나물을 파는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흥정이 시작됐지요.
박대령 : 할머니 이거 얼마요?
할머니 : 알아서 주세유~
박대령 : 5,000원에 합시다.
할머니 : 됐슈~ 가서 돼지나 삶아 먹이게~
그는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아! 내가 저 할머니의 마음을 몰랐구나..
말이 안되는 가격으로 상처를 주었으니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것이구나..
더 정성을 들여서 마음을 읽었다면.. 그래서 마음을 살 수 있었다면..
그 순간, 예전에도 그랬다면 심사에 고배를 마시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정성을 더해야 했던 것이죠..
혜미에는 천주교 성지인 생매장터가 있습니다.
천주교인을 박해했던 역사의 현장인데, 시장 바닥에 십자가를 놓아두고 사람들에게 밟으라고 해서 밟지 못하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생매장시킨 곳입니다.
그는 새벽 5시에 생매장터에 가서 초심을 지켰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부터 그는 생의 이정표를 설정하였습니다.
모든 일은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더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9개월 후, 그는 극적으로 진급을 합니다!
(다시 박수!!!!!)
진급하여 덕산을 떠나며, 그는 다짐합니다.
은퇴 후, 여기로 다시 오리라..
세월이 흘러 그는 그 다짐을 실행에 옮깁니다.
일산에 있던 32평 아파트와 약간의 펀드를 정리하여 덕산에 뿌리내릴 터를 찾고 찾았습니다.
어느날 아들과 함께 고건축 박물관을 지나가다가 마음에 드는 땅을 발견하였습니다.
(지금 집 거실에서 창 밖으로 박물관 전체가 보입니다..)
여인이 두 발을 벌리고 누워있는 형상에 계곡에는 물이 흘러 촉촉한 어머니의 자궁같은 모습이고,
좌로는 백월산이, 우로는 문필봉이 감싸고 있어, 문무가 겸비된 기운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건 무조건 내꺼야!'를 외치며 여기에 정착을 결심합니다.
그런데 이 곳은 은퇴자 마을로 조성되어 30세대가 들어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맨 꼭대기를 원했는데, 맨 아래 첫 집으로 당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맨 꼭대기 지구 외에 집을 지으려고 주민들과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해 갑니다.
그리고 집터에 십자가를 6개 묻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을 추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고, 거기에 정성을 더하는 그의 진심이 주민들에게 통했습니다.
결국 지구 외 꼭대기에 집을 지을 수 있게 되었는데, 그는 집 안에 있는 성모상을 옮기다가 성모상 밑에서 놀라운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의 집에는 가보로 내려오는 성모상이 있는데, 이사를 32번 하면서도 항상 그 성모상은 가장 먼저 챙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모상 밑에 쪽지가 있었습니다.
그 쪽지에는 부인의 필체로 [클레멘스가 원하는 곳에 정착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는 기도가 적혀 있었습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 누구나 최선을 다하지만, 거기에 정성이 더해져야 한다.
그래도 안 되는 것이 있을터인데, 기도하는 마음으로 임하면 진정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다는
실로 감동적인 강의였습니다.
추가로 집의 컨셉을 소개하였습니다.
소유의 개념을 버리고, 보이는 것이 내 땅이라는 컨셉입니다.
사실 현역 시절 공관에 살 때에는 공간이 넓었기 때문에 은퇴 후 서울에서 32평에 살기에는 너무 협소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을 포기하니, 덕산에 1,000평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집은 412평이지만, 보이는 것은 수만평이 되도록, 집을 설계할 때 전면을 모두 유리로 하였습니다.
부엌에도 전면을 모두 창으로 하여 일을 하면서도 밖이 보이도록 하고,
침실도 전면을 유리로 해서 밤에는 별이 쏟아지고, 아침에는 해가 떠오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삶의 방향과 개념을 바꾸면 삶의 질이 달라진다..
무엇이든지 다 얻을 수는 없고, 한 가지를 희생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서울을 포기하고, 난방을 포기하니, 보이는 것이 다 나의 소유가 되더라..
여러분 모두 행복한 삶, 풍요로운 삶을 사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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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마무리로 강의를 마쳤습니다.
나중에 피드백과 코칭을 해 달라고 하셨는데, 그냥 너무 부러워서 생략했습니다. ^^
다시 한 번 축하드리구요, 멋진 인생, 행복한 인생, 풍요로운 인생, 마음껏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덕산 GO!
첫댓글 와우^^ 또다시 이충호 회장님의 리뷰에 제일 먼저 댓글을 달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되어 기쁨만땅입니다. 박상묵 총회장님댁은 주변의 경치와 풍경과 실내장식이 함께 어우러진 사진들이 첨부되어야만 설명이 가능할듯 싶어요.... 한마디로 드라마 셋트장같기도 하고, 귀족이 사는 커다란 성같기도 하고, 산꼭대기에 둥둥 떠있는 비행기같기도 하고요(박총회장님께서 집지으실때 생각한 컨셉) 암튼 이제껏 본적 없는 멋진 곳, 멋진 집, 멋진 분들과, 아주 멋진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그곳에 왜 집을 지으셨는지.....서두는 그렇게 시작되었던 박총회장님의 특강은....이충호 회장님께서 거의 완벽하게 리뷰를 해놓으셨네요^^
여섯 살 때 동네 친구가 "복주머니 택시 7개 보면 행운이 온다"라는 말을 듣고는 큰 길가에 나가 앉아서 복주머니 택시를 기다리던 기억. 안타깝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했지요. 그 감정이 얼마나 생생하면 아직도 기억이 날까요. 글이 나올 때가 지난것도 같고 또는 나오지 않을 요량인 것도 같기도 하고 그랬지요. 예로부터 선빵이 잘 들어가야 후빵도 먹힌다는 말이 있지요. 대장님이 치고 나가셔야 쫄짜도 몇 글자 끄젹이는 영광을 누릴텐데 워낙 트라우마와 마주하시기를 새색시 첫날밤처럼 하시니 어디 나와야 말이지요. 바둑에서 큰 집 보다는 급한 집을 먼저 막는다는 말처럼 워낙 바쁜 일이 많으시니 너그러이 이해해 드리겠습니다. ^^
제가 원래 임팩트 받지 않는 사람인데 말이죠, 포근한 산자락 맨 위 거실에서 전면 통유리로 먼 산과 아래 경치를 내려다 보는 것은 저의 심박을 뛰게 했지요. 전문용어로 기막힌 산 조망, 투명하다 못해 영험한 공기 조망, 피라밋에 들어온 것 같은 무소음 조망, 소중한 여러분들 조망(!) 총회장님의 감미로운 색소폰 소리와 사모님의 화려한 집안장식 뒤의 소박하신 웃음 정말 잘 어울렸습니다. 설명하기 쉽지 않게 맛있는 어리굴젓도 다시 먹고 싶구요, 평소 가지 않았으나 이번에 고양이 끌려가듯 간 새벽 사우나도 아주 개운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커다란 난로 위에서 노릇노릇 구워진 군고구마! 다음번엔 이빠이!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하루 종일 군기 잡히느라......멋진 소식 잘 전해 듣고 있습니다. 축하 드립니다. 행복한 삶과 명강의!!
스터디 리뷰는 .....................감동입니다. 대한민국 대표 언론사들.....뭤하는지 모르겠어요^^ 글로벌 최고 기자 역량(?)을 가지고 계신 분을...........그냥 두고 계시니.......참!!!!!
항상 최선을 다하시며 가치를 위하여 과감히 도전하시는 선배님 인생의 멋진 결실을 드뎌 보는 것 같아서 행복합니다.
회장님 총회장님 덕산에 그날을생생하게 다시해주셨내요/ 정말 리뷰 회장님 따를 사람이없는듯합니다. 울회장님 짱이십니다.
다녀오지 않아도 그날의 일을 정말 생생하게 요약하시는 능력이 대단하십니다. 함께 하지 않았어도 함께 한 느낌이 듭니다. 이야기를 들으니 총회장님댁에 정말 가고 싶네요. ㅎㅎㅎ
리뷰만 봐도 감동이 있고 정이 넘치는 자리였겠습니다.
총회장님 댁이 어떠한지 그려집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그려보는 그런 집인 것 같습니다.
이충호회장님의 리뷰는 늘 마음을 움직입니다.
감사합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한해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었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이 가진 것은 참으로 쉽게 보일떄가 많이 있습니다,.하지만 더 많이 알고 배울 수록 그런 생각이 얼마나 무지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삶에 이유없는 댓가는 없는 것 같습니다,
내 삶에 정성을 다해서 2011년을 열심히 살아보렵니다,
멋진 글 감사합니다,
총회장님의 행복 안착 스토리를 회장님께서 불후의 명작으로 승화를 시켜 주셨습니다. 저는 지난 주 월요일부터 비상이 걸려서 카페에 너무 격조했습니다. 다음 주 업무보고시 올해 인재개발원 과정운영을 어떻게 어떤 프로그램으로 가져 갈지 기획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집에도 결혼식 때문에 어제 오늘 겨우 잠깐 들렀다가 왔습니다.
선배님의 열정이 한세기의 한파를 잊어버리게하는 열기로 와 닫는 것 같습니다. 11월말에 군제대를 첫아들 시키고 이어서 1.11전번 주 둘째를 군에 보내느라 정신 없다가 잠시 들렀습니다. 선배님들의 열정을 계속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부럽습니다.. 아름다우신 선배님....
저는 아강모 방을 매일 방문을 못하고 시간 될때만 방문하여 늘 뒷북을 치면서 늦게 댓글을 달아서 미안합니다.
글을 읽는 동안 과정이 눈앞에 풍경으로 펼쳐지면서 행복했습니다. 겸손, 최선이라는 말을 가슴에 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이 멋진 강의를 반밖에는 듣지 못했습니다. 늦게 찾아가는 바람에 ^^;. 그렇지만 역시나 우리 이충호 회장님께서 듣지 못한 반과 이미 들었던 반을 다 연결할 뿐만 아니라 더 깊이를 느낄 수 있는 글 솜씨로 그 때의 그 느낌을 다시 되살려주고 계시네요 하~~~~~ 참 그 때 그 시간이 그립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떠날 때 아쉬워하시는 총회장님과 사모님의 모습도 아른거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