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콘텐츠로서 디카시의 역량과 가능성
최호영(문학평론가, 시인)
1. 월경越境의 시 장르, 디카시
2004년 4월 이상옥 시인이 처음으로 디카시를 세상에 선보인 이래 디카시는 빠른 시간 내에 급속도의 성장을 이루었다. 물론 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러 사람들이 기울인 정성어린 노력에 의해 가능한 일이었으나, 통상 디카시의 성장에 가속도를 붙인 동력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거론된다. 먼저, 인쇄매체의 측면에서 볼 때 디카시는 디카詩를 말한다(시와에세이, 2007)와 같은 시론집과 디카시 창작 입문(북인, 2017)과 같은 창작입문서를 통해 정식적인 시 장르로 정착해갔으며, 디카詩 마니아(2006년 창간)와 디카詩(2007년 창간)와 같은 잡지 및 여러 시인들의 기획시집들을 통해 현재적인 시 장르로 거듭나고 있다. 다음으로, 소통의 측면에서 볼 때 디카시는 낭독회와 같은 문화프로그램과 결부되거나 경남고성 국제디카시페스티벌, 황순원문학제 디카시공모전, 이형기 전국 학생디카시백일장 공모전 등과 같은 공모전과 결부하여 독자들에게 상당히 친숙한 시 장르로 다가서고 있다. 이와 함께 포털사이트, SNS, 유튜브 등과 같은 뉴미디어들은 디카시를 대중의 일상생활에까지 보편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디카시는 연령의 제약을 넘어설 뿐만 아니라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장르로까지 부상하게 되었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디카시는 창작 원리상의 측면에서 이미 숱한 존재의 월경을 감행한 산물이기도 하지만, 향유 방식상의 측면에서 수많은 영역의 월경을 감행해온 산물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디카시는 그 자체적으로 이미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갈 수 있는 잠재적인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어떤 면에서 보건대 이는 장차 우리가 디카시를 둘러싸고 해결해야 할 여러 과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그 중에 하나로 ‘문화콘텐츠’의 측면에서 디카시의 전망을 타진해야 할 숙제를 가지고 있다. 그간 디카시가 한국문화의 세계적 확장을 이끌 한류 콘텐츠로서, 디지털 매체 시대를 이끌어나갈 융합 콘텐츠로서 주목받아 왔으면서도, 정작 디카시가 가진 문화콘텐츠로서의 가치에 관해서는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것 같다. 이 글은 바로 문화콘텐츠로서 디카시의 현 단계를 성찰하고, 디카시의 발전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작은 시도라고 볼 수 있다.
2. 문화콘텐츠로서 디카시의 응전력과 현 단계
그러면 현재까지 디카시는 문화콘텐츠의 측면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활용되어 왔는가? 이는 우리가 디카시의 장래를 설계하기에 앞서 디카시의 현 단계를 점검하기 위해 선결적으로 던져야 할 질문일 것이다. 이에 따라 추적 가능한 범위 내에서 디카시가 걸어온 자취를 더듬어보면, 문화콘텐츠의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경향들과 마주하게 된다.
첫 번째로, 디카시는 종래의 매체 틀에 의존하여 보급되고 향유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앞서 언급했다시피, 디카시 성장의 동력원으로는 인쇄매체에서 디지털매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이루고 있으나, 디카시는 이 중에서 인쇄매체에 의존하여 보급되거나 기존의 전시형태를 빌려 향유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인쇄매체의 측면에서 볼 때, 굳이 서구의 매체사학자 마셜 맥루언Marshall McLuhan이나 월터 옹Walter J. Ong의 견해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쓰기의 출현과 대량인쇄의 보급이 근대문학의 태동을 가능하게 하였다는 점은 상식에 속한다. 이에 따라 우리는 신문, 잡지 등과 같은 발표지면의 등장이라든지, 시집과 같은 저작물의 등장으로 인해 근대문학의 현장이 풍부해지고 있다는 것을 목도할 수 있을 텐데, 현재까지 디카시가 대중들에게 보급되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 또한 이러한 범주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달리 말해, 디카시는 기존 문자시가 활동의 무대로 삼았던 인쇄매체에 다소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디카시 자체가 영상으로 표상되는 사진과 문자로 표상되는 시를 결합시킨 뉴미디어 시대의 시 장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앞으로 충분히 고려해볼 부분이라 판단된다. 그리고 향유 방식의 측면에서 볼 때, 디카시는 기존의 전시형태 안에서 독자들에게 다가서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 사례를 들 수 있다.
<장산숲 야외 디카시전 사진(출처: 한국디카시협회/한국디카시연구소/계간디카시 페이스북)>
위의 사진은 디카시 관련 모 페스티벌에서 개최된 야외 디카시전 풍경을 담고 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이 야외 디카시전은 자연친화적인 공간의 속성을 활용하여 독자들의 정서적인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으면서도, 기존 시화전의 형식과 유사하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말하자면, 디카시가 출현한 초창기에 여러 사람들이 문자시의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 사진이나 그림을 덧붙인 포토포엠이나 시화와 디카시의 차별성에 관한 의문을 던졌다는 것을 상기할 수 있다. 물론 그 사이 이상옥 시인을 비롯한 여러 분들에 의해 디카시의 이론화 작업이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시 장르로서 디카시의 위상이 보다 체계화된 바 있다. 그럼에도 최근까지 디카시의 사진이 “시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고1)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면, 디카시가 기존의 전시형태를 빌림에 따라 누군가에게 장르적 차원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디카시가 기존의 매체 틀이나 전시형태에서 벗어나 좀 더 고유한 방식에 따라 보급되고 향유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디카시는 그간 여러 문화사업 및 프로그램과 결부되어 관광자원의 측면에서 콘텐츠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아래의 사례를 살펴보자.
<‘2012 디카시-함안’ 기념품(출처: 한국디카시연구소 홈페이지)>
위의 사진은 각각 에코백, 머그컵을 담은 것으로, 상품이나 기념품의 측면에서 디카시를 활용한 산물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기념품들은 ‘2012 디카시-함안’에서 산출된 문화콘텐츠이다. ‘2012 디카시-함안’은 2012년 9월 22일부터 23일 동안 당시 디카시문화콘텐츠 연구회가 ‘농어촌희망재단’의 주최로 함안 지역 문인들과 함께 개최한 행사로서, 경남 함안 지역문화의 고유성을 다각도로 발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 행사에서는 지역주민 및 예술인들을 대상으로 한 학술세미나 진행, 함안 지역의 경물을 대상으로 한 합동시집 ‘2012 디카시-함안’ 사화집 발간 등을 통해 함안 지역의 문화예술적 가치를 조명하고자 했다. 특히, 이 행사를 위해 기획된 에코백과 머그컵에는 함안 지역 출신 시인 황시은의 디카시 「아라홍련 피어나다」를 수놓고 있는데, 디카시의 내용으로 볼 때 이는 함안 지역의 역사성과 지역적 상징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일회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이후에도 여행프로그램과 결부되어 체험성과 현장성을 디카시 창작의 발판으로 삼는 등 여러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처럼 디카시는 과거의 문화유산이나 지역의 관광자원을 활용한 문화콘텐츠로 거듭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어떠한 관점과 방향에 따라 디카시를 문화콘텐츠로 생산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동안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문화콘텐츠가 주로 시장경제의 논리에 따른 현실적인 관심과 요구를 충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새로운 문화콘텐츠에서는 대중의 일상 영역을 건드리는 문화적 실천들이 보다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2)이런 점에서 보건데 우리는 협소한 목적성에 따라 디카시를 활용하는 데 그치기보다는 문화콘텐츠로서 본질적인 목적에 따라 좀 더 열린 방향으로 디카시를 활용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3. 문화콘텐츠로서 디카시의 가능성과 몇 가지 제안들
앞서 우리는 문화콘텐츠로서 디카시의 현 단계를 성찰해보았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까지 디카시가 다소 기존의 매체 틀과 전시 형태에 의존하여 보급되고 향유되는 경향을 보이거나 여러 문화사업 및 프로그램과 결부하여 관광자원의 측면에서 활용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에 따라 우리는 기존의 협소하고 현실적인 목적에 따라 디카시를 활용하기보다 개방적이고 일상적인 목적에 따라 디카시를 활용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면 디카시는 후자의 측면에서 어떠한 전망을 가질 수 있을까? 이에 관한 실마리를 우리는 문화콘텐츠의 개념 자체를 성찰해보는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기상에 따르면, 문화콘텐츠는 문화적 존재로서 인간의 모습을 부각시키려는 개념으로서 그 속에는 기술을 인간화시켜 인간다운 기술로 만들어보자는 의도가 담겨있다. 주지하다시피, 문화콘텐츠는 여러 기술 중에서도 정보통신기술을 매개로 하여 크나큰 발전을 이루게 되며, 무엇보다도 쌍방향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웹2.0의 출현은 문화콘텐츠의 질적 발전을 도모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그러한 기술적인 도약에도 불구하고 문화콘텐츠의 가장 본질적인 역할은 바로 인간과 인간을 다양성, 공존, 창조성 등의 이념에 따라 연결시키고 소통시키는 점에 있다.3) 이런 점에서 문화콘텐츠야말로 이른바 ‘사이-존재’라고 할 만한데, 우리는 문화콘텐츠로서 디카시의 가능성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타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특히 문화콘텐츠 중에서 ‘문화’와 ‘콘텐츠’에 각각 방점을 두어 디카시의 활용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1) ‘문화’콘텐츠로서 디카시의 활용 방안
먼저, 우리가 디카시에서 문화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발굴하고자 할 때 하나의 방향성으로서 ‘문화’에 방점을 둘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문화는 인류를 구성하는 다른 어떠한 요소보다도 인간다움을 상징하는 요소이거니와 인간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변증법적으로 보여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문화라는 개념에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문화의 종류에는 사회에 따라 다종다양한 색채를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라는 말처럼 문화에서 가장 본질적인 측면은 다양한 고유성의 공존이 아닐까 싶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주변 현실에서 수많은 고유성을 발굴하면서 어떻게 거기에 보편적인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인가를 모색해야 할 텐데, ‘문화’에 방점을 둔 디카시의 활용 방안 또한 그것과 같은 맥락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지역문화로부터 고유성을 이끌어내고 거기에 현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고자 했던 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경북 북부지방 여자들은 음력 정월이면 가가호호 식혜를 만드는데, 찹쌀을 고들고들하게 쪄서 엿기름물에 담고 생강즙과 고춧가루 물로 맛을 내 삭힌 이 맵고 달고 붉은 음식을 특별히 안동식혜라고 부른다// 안동식혜를 담아온 사발에는 잘 삭은 밥알이 동동 뜨고 나박나박 썬 무와 배도 뜨고 잣이나 땅콩 몇알도 고명처럼 살짝 뜨는데, 생전 이 음식을 처음 받아본 타지 사람들은 고춧가루에서 우러난 불그죽죽한, 그 뭐라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이 야릇한 식혜의 빛깔 앞에서 그만 어이없어 ‘아니, 이 집 여인의 속곳 헹군 강물을 동이로 퍼내 손님을 대접하겠다는 건가?’ 생각하고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 뿐이야, 금방이라도 서걱서걱 소리가 날 것 같은, 입안으로 들어가면 잇몸이 순식간에 화끈 찌르고 말 것 같은 살얼음이 사발 위에 둥둥 떠 있으니 도저히 선뜻 입을 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안동에 사는 굴뚝새들은 잠 아니 오는 겨울밤에 봉창을 부리로 두드리며 “아지매요, 올결에도 식혜 했니껴?” 하고 묻고, 이런 밤 마당에는 목마른 항아리가 검은 머릿결이 아름다운 눈발을 벌컥벌컥 들이키기도 하는 것이다
- 안도현, 「안동식혜」 전문
식혜
오늘 그녀의 세월을 한 모금 마셨다
짜디짠 혀끝에서 오는
고사리에서 구부러진 나무가 되는
영겁의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웃음의 눈물이 난다
위의 디카시는 안도현의 「안동식혜」를 감상한 한 학생이 원시의 시상에 자신의 체험을 가미하여 쓴 것이다. 필자는 우리 학교 학생들과 시 읽는 수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시와 장소성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안동지역의 문화유산을 대상으로 한 시들을 읽은 바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 수업에서 다룬 시들은 위에서 언급한 안도현 시인의 시를 비롯하여 박승민 시인의 「월영교 능수버들전傳」, 안상학 시인의 「선어대 나루에서 봄을 기다리며―선어모범仙漁暮帆」과 「오래된 사랑―임청고탑臨淸古塔」 등이었는데, 이 시들은 안동지역 문화권 출신의 시인들이 쓴 것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문학이 일차적으로 글쓴이 자신의 토착적인 경험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으며, 그에 따라 유년시절이나 고향과 같은 것들이 주된 주제가 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시들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 따라 우리가 안도현의 「안동식혜」를 보면, 이 시에서 시인은 자신의 원초적인 경험을 토대로 하여 안동식혜의 재료, 조리법, 빛깔과 맛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가운데 그에 관한 각별한 애정을 표출하고 있다. 특히, 시인은 시중의 식혜와는 다른 안동식혜만의 빛깔이라든지, 상당히 차가운 식감에 대한 타지인의 반응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줌으로써 안동식혜에 독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들과 달리 그에게 식혜는 잠 안 오는 한겨울에도 강렬한 갈증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며 공동체의 친화력을 북돋아주는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시인에게 안동식혜는 자신의 삶에서 특별한 가치를 지닌 것이면서 그가 나고 자란 안동지역의 특수한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는 엄연히 시인 개인의 영역에 속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보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감각과 정서는 자기의 삶 속에서 추체험하게 될 때 진정한 가치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학생들에게 시 자체의 감상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시의 소재와 장소를 체험하도록 하였으며,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자신의 체험을 통한 디카시를 쓰도록 하였다. 그 중 하나가 위의 디카시이다. 원시와 마찬가지로 이 디카시에서도 “짜디짠 혀끝에서 오는”, 즉 안동식혜 특유의 맛이 주된 이미지로 등장하고 있으나, 이 학생은 거기에 오랫동안 식혜를 만들어온 그녀, 즉 할머니의 인생 족적을 담아내고 있다. 말하자면, 식혜의 짠 맛에는 “고사리”, “구부러진 나무”와 같은 할머니의 신산스런 삶이 담겨 있기에, 그것을 음미하는 동안 “그녀의 웃음의 눈물이 난다”는 역설적인 표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위의 사례에서 과거의 문화유산이 개별적인 체험 속에서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문자시에서 디카시로의 전환을 통해 현대적인 색채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비단 일회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지도
한 그릇에 세계지도가 보인다
얇고 길쭉한 당면은 젓가락으로 잘 집어야 한다
울퉁불퉁한 감자의 고향은 저 멀리 눈 덮인 산이란다
닭은 내 이웃집에도 살고 바다 건너에서도 산다
우리는 한 그릇의 배를 타고 세계지도를 그린다
학생들은 기존의 문자시를 디카시로 전환하는 작업을 한 이후 안동의 다른 문화유산으로 경험의 폭을 넓혀서 자신의 체험을 담은 디카시를 작성하였다. 그 하나의 사례가 바로 위의 디카시이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이 디카시는 안동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로 안동찜닭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현재 안동의 신시장에는 안동찜닭 골목을 이루고 있으며 안동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이곳을 필수코스로 생각할 만큼 안동찜닭은 안동의 향토음식이라 할 만하다. 흥미롭게도 이 학생은 그러한 안동찜닭으로부터 세계적인 가치를 읽어내고 있는데, 이는 ‘세계지도’라는 제목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주지하다시피, 안동찜닭에 들어가는 재료 중 당면은 청나라에서 유래하였다는 점, 감자는 안데스 산맥에서 유래하였다는 점, 그리고 닭은 세계 곳곳에서 사육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 학생이 안동찜닭으로부터 세계지도의 이미지를 읽어내고 있는 점은 충분히 납득될 것이다.4)
이처럼 우리는 과거의 문화유산들이 디카시를 통해 문화콘텐츠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앞선 사례들은 비단 안동지역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타 지역 시인들의 시에서도 살펴볼 수 있으며, 이것들은 또한 디카시로 전환되거나 창작될 여지를 안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실천들이 활성화될 때 이는 현실적인 요구와 맞물려 전시회, 지역 홍보, 관광프로그램 등과 같은 효과로 나타날 수 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육사문학관의 전시 자료>
위의 사진은 안동에 있는 이육사문학관의 전시내용 및 형식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문학관은 국내의 모든 지역에 존재할 만큼 그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라 할 만하며, 시민들의 여가생활을 풍성하게 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라 할 만하다. 주지하다시피, 대부분의 문학관에서는 유품, 소장품 등을 활용하여 문인의 생애를 사실적으로 복원하는 한편, 육필원고, 발표지면 등을 활용하여 문인의 작품세계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서 나아가 최근에는 그림, 이미지, 동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전시에 동원하여 문인의 삶과 문학에 관한 입체적인 이해를 도모하고 있으며, 이러한 매체와 결부된 여러 체험활동을 통해 관람객들의 자연스런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다. 위 사진 중 첫 번째 사진은 이육사의 시 「청포도」 전문을 그림과 함께 제시하는 한편, QR코드를 통해 시에 관한 해설을 제공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두 번째 사진은 이육사의 생애, 활동, 문학세계를 시청각자료를 통해 제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작품의 측면에서 볼 때 대부분의 문학관에서는 여전히 기존의 문자성에 국한된 전시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람객들에게 친숙한 정서를 유발하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어 보인다. 따라서 문학관 내 상주작가나 지역문인 등 인적자원을 통해 문인의 작품을 디카시로 전환하거나 문인과 관련한 주제를 디카시로 창작하는 등 다채로운 전시형태를 도입할 수 있다. 실제로 몇 년 전 지역문학관 특성화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평사리문학관에서 디카시 전시회가 개최된 사례가 있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시도들은 충분히 현실화될 여지를 안고 있다.
2) 문화‘콘텐츠’로서 디카시의 활용 방안
다음으로, 우리가 디카시에서 문화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발굴하고자 할 때 또 다른 방향성으로서 ‘콘텐츠’에 방점을 둘 필요가 있다. 범박하게 말해, 앞서 문화에 방점을 두고 문화콘텐츠로서 디카시의 방향성을 모색하고자 할 때에는 주로 내용적인 층위를 고려하고자 했다면, 이는 그러한 내용을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형식적인 층위를 고려한다고 할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서울지하철역 스크린도어에서 짤막한 시를 게재하여 시를 일상화하고 대중화하는 데 적잖은 계기가 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문학 장르보다도 시는 대중들에게 친숙한 장르로 다가설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 중에서도 디카시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이른바 놀이로서의 시 쓰기를 구현할 수 있는 여지를 다분히 안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디카시가 일상생활에 통용되는 디지털 카메라로 영감이 되는 사물과 풍경을 포착하고 이를 짧고 강렬한 문자로 담아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디카시의 원리로부터 디카시가 충분히 대중친화적인 장르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거니와 실제 그동안 단시간에 전개된 디카시의 행보에서도 그러한 측면을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일상생활에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디카시를 창작하려고 할 때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은 현재로선 상당히 제한적인 것 같다. 물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메모 기능을 사용하여 디카시를 쓰든, 아니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PC 한글파일을 사용하여 디카시를 쓰든, 이는 개인의 창작방식에 달린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간 디카시에 ‘놀이로서의 시 쓰기’라는 레테르가 붙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우리가 문화콘텐츠로서 디카시의 전망을 타진하기 위해 필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현재 스마트폰에 있는 구글 ‘Play 스토어’에 디카시를 검색해보면, ‘글그램―사진에 글쓰기’, ‘글쓰다―사진에 글씨쓰기’와 같은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들은 사실 글씨의 시각적 효과를 위해 사진을 기능적으로 활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이라는 점에서 디카시와는 엄연히 거리가 멀다. 따라서 우리는 장차 대중들의 일상생활에 디카시를 적극적으로 보급하거나 활발하게 향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플랫폼의 구축이 필요하다는 암시를 받게 된다. 여기서는 소박하게나마 필자 나름대로 교육적인 측면과 창작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디카시 전문 애플리케이션’의 구축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디카시 전문 애플리케이션에서는 디카시의 구성 요소 및 원리를 활용하여 디카시 감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학습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다음 사례를 들어 살펴보자.
원래 사진을 비교해보면 알겠지만 위의 디카시들은 동일한 소재, 즉 경남 하동 평사리의 명물인 부부송으로부터 영감을 얻었으면서도 서로 다른 시적 형상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우리는 디카시 전문 애플리케이션에서 하나의 사진을 제시한 후 두 개의 문자시 중에서 이것과 호응하는 것을 선택하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디카시에서 사진은 자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시인의 시상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되거니와 디카시 자체가 사진으로 표상되는 영상언어와 시로 표상되는 문자언어가 절묘하게 결합된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독자의 입장에서는 사진과 문자시의 호응이라는 내적 원리에 따라 위의 사진과 가장 적절하게 결합할 수 있는 문자시로 (나)의 「평사리 부부송」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나)에서는 (가)와 달리 부부송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 “땅 속 깊이 깍지 낀 뿌리들”과 같은 시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 등이 사진의 이미지와 호응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비해 (가)에서는 부부송을 교단에 선 선생님에, 그리고 모내기를 마친 모들을 학생에 비유하는 가운데 조회시간이라는 상황을 설정하고 있는 점이 실제로 부부송과 논의 풍경을 원경으로 담아낸 사진과 호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사례는 결코 우연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기존의 디카시를 살펴보면 디카시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사물이나 풍경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 인간 사회에서 파생하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디카시에서도 같은 소재나 주제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디카시에서 사진과 문자시를 매칭matching하는 학습으로 감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도 확장해볼 수 있다.
위의 디카시에서는 각각 제목이 빠져 있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사진과 문자시로부터 제목을 유추해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디카시에서 제목은 순전히 문자시에 속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영상언어와 문자언어를 잇는 교량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우리는 디카시에서 제목이 소재적인 차원에 그치거나 사진에 등장하는 대상을 제시하는 것에 그치기보다 사진과 충돌하는 이미지를 취하게 될 때 독자에게 좀 더 신선한 감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점에 따라 첫 번째의 디카시를 보면, 사진에서 우리가 길가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인형 뽑기 기계를 담고 있고, 문자시에서 시적화자가 그 인형들로부터 누군가에게 뽑히고 싶다는 욕망을 담아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인형 뽑기 기계가 자본주의의 산물이라는 점, 그리고 시적화자가 그걸 알면서도 “뽑히고 싶다”는 욕망을 표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디카시의 제목으로 ‘취업’을 이끌어낼 수 있다. 두 번째의 디카시는 어떠한가. 이 디카시에서는 사진에서 크기가 다른 두 개의 배관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풍경을 담아내고, 문자시에서 사람들이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듣기보다 자신의 입만 크게 벌리고 소리치고 있는 세태를 담아내고 있다. 말하자면, 이 디카시에서는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말을 전달하려는 자세보다 경청을 통한 쌍방향 의사소통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목으로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위의 디카시에서 다른 제목을 이끌어낸다고 해서 틀린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보다 우리에겐 디카시를 향유할 수 있는 놀이의 계기가 중요하며, 이러한 학습들이 쌓이게 될 때 디카시를 보는 안목이 생기게 될 것이다.
두 번째로, 디카시 전문 애플리케이션에서는 일상생활에서 디카시 창작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플랫폼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다른 문학 장르보다 디카시의 강점으로는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창작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온라인상으로 유통되고 있는 디카시를 살펴보면, 기존의 문인들을 비롯하여 일반인들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창작 주체를 확인할 수 있거니와 창작자들의 연령대 또한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창작자들이 실제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디카시를 선보일 수 있는 가장 편리한 플랫폼으로 SNS, 블로그 등을 거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것들과 차별화되는 플랫폼을 구축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Daum에서 운영하고 있는 플랫폼 중 브런치를 생각해볼 수 있을 텐데, 실제로 브런치는 웹상에서뿐만 아니라 애플리케이션의 형태로도 운영되고 있어 사용자의 근접성을 높이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디카시 전문 애플리케이션에서 또한 창작 활성화 플랫폼을 구축한다거나 이를 브런치 북brunch book과 같은 온라인상 개별 창작집의 발행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방향을 모색해볼 수 있다. 물론 현재 여러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 백일장이나 공모전 또한 디카시 분야의 탁월한 인재를 선발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 전에 우리는 대중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다카시 창작을 실천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점,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플랫폼의 구축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4. 보다 더 많은 이종異種의 디카시(들)을 위해
지금까지 이 글에서는 문화콘텐츠의 측면에서 디카시의 현 단계를 점검하고 향후 디카시가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타진해보았다. 그간 여러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디카시는 대중친화적인 장르로 정착해왔을 뿐만 아니라 한류와 같은 글로벌 문화콘텐츠로 부상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디카시가 여전히 기존의 매체 틀에 의해 보급되고 향유되었다거나 관광자원과 같은 현실적인 요구와 결부되어 유통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문화콘텐츠의 측면에서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우리는 다양성, 공존, 창조성 등의 이념에 따라 인간과 인간을 연결시키고 소통시키는 점에 문화콘텐츠의 본질이 있다고 보고서 디카시를 활성화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보았다. 특히, ‘문화’에 방점을 두는 문화콘텐츠로서 디카시는 지역의 문화유산에서 현대적인 가치를 발견하여 문화공간의 확장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 ‘콘텐츠’에 방점을 두는 문화콘텐츠로서 디카시는 디카시 전문 애플리케이션의 구축을 통해 디카시의 감상과 창작을 대중의 일상생활 속에서 실현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생각해보았다.
물론 필자가 이 글에서 제기한 사례나 아이디어 중에는 실현 가능성의 측면에서 소박함이나 불완전함을 면치 못하는 측면 또한 없지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이 자리에서 디카시 자체가 영상언어와 문자언어의 경계를 가로지른 혼종hybrid의 산물임을 기억해보자. 향후 인공지능, 메타버스가 미래사회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에서 디카시는 보다 더 많은 이종異種의 장르로의 모험과 시행착오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앞으로 후속논의들이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 본 글은 황순원문학관에서 주최한 제3회 한국디카시인협회 디카시 학술 심포지엄 발제문이다. 인용된 내용 중 디카시의 개론과 다른 부분도 있음을 밝힌다.
참고문헌.
1). 최근 이민호 시인이 토포포엠(topopoem)의 결과물에 관해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부분을 참고할 수 있다. “물론, SNS에서 장소와 시를 같이 병렬해놓은 ‘디카시’가 있긴 하다. 디지털 카메라로 한 장소를 찍고 그 곳에 대한 감상을 시로 적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디카시의 사진은 시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사람들이 시를 어려워하니까 사진으로 시의 의미를 설명해주려는 의도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토포포엠에서는 서로 다른 예술 장르인 시와 그림이 독자적이고 대등한 관계에 놓인다. 이들이 예술적 승화를 이룬다는 점에서 다르다.”
2). 보다 자세한 사항은 태지호, 「문화콘텐츠 2.0,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문화콘텐츠에서 인터콘텐츠로」, 콘텐츠문화연구 1, 콘텐츠문화학회, 2019를 참고할 수 있다.
3) 보다 자세한 사항은 이기상, 「문화콘텐츠 학의 이념과 방향―소통과 공감의 학」, 인문콘텐츠 23, 인문콘텐츠학회, 2011을 참고할 수 있다.
4) 위의 사례들에 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최호영, 「다매체 시대의 문학교육과 디카시(dica-poem)의 교육적 활용 방향―체험 활동과 결부한 디카시 교육 사례 분석을 중심으로」, 문화와융합 43(8), 한국문화융합학회, 2021을 참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