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속의 김완장군
5월7일[병인/6월16일] 「장계」에서
새벽에 일제히 출항하여 적선이 머물고 있다는 천성 가덕으로 향하여 가다가 오정 때에 옥포 앞바다에 이르자,
우척후장 자도첨사 김완과 여도권관 김인영 등이 신기전을 쏘아 급변한 일을 알리므로 적선이 있음 알고
다시금 여러 장수에게 신칙했다.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 침착하게 태산같이 신중히 행동하라!"고 전령한 뒤에 옥포 바다 안으로 대열을 지어 일제히 들어가니,
왜선 50여 척이 옥포선창에 나뉘어 정박하고 있는데,
대선은 사면에 온갖 무늬를 그린 휘장을 둘러치고,
그 휘장가에는 대나무 장대를 꽂았으며,
고 흰 작은 깃발들을 어지러이 매달았고,
깃발의 모양은 여러 가지 인데 모두 무늬있는 비단으로 만들어졌으며,
바람결 따라 펄럭이어 바라보기에도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도둑떼들은 그 포구에 들어가 분탕하여 연기가 온 산을 가렸는데,
우리 배들을 돌아보고는 허둥지둥 어찌 할 바를 모르면서 제각기 분주히 배를 타고 아우성치며 급하게 노를 저었지만
중앙으로는 나오지 못하고 기슭으로 배를 몰고 있었다.
그 가운데 여섯 척은 선봉으로 달려나오므로 내가 거느린 여러 장수들은 일심분발하여 모두 죽을 힘을 다하니,
배 안에 있는 물건들을 바다에 내어 던지고 바빴다.
화살에 맞은 자는 그 수를 알 수 없으며, 헤엄치는 자도 얼마인지 그 수를 알 수 없고,
또 일시에 무너지고 흩어져서 바위 언덕으로 기어 올라가면서 뒤떨어질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부장 보성군수 김득광은 왜대선 한 척을 때려부수고 사로잡혔던 우리나라 사람 한 명을 산채로 빼앗았다.
전부장 흥양현감 배흥립은 왜대선 두 척을,
중부장 광양현감 어영담은 중왜선 두 척과 소선 두 척을,
중위장 방답첨사 이순신은 왜대선 한 척을,
우척후장 사도첨사 김완은 왜대선 한 척을,
우부기전통장 사도진군관보인 이춘은 왜중선 한 척을,
유군장 발포가장 내군관 훈련봉사 나대용은 왜대선 두 척을,
후부장 녹도만호 정운은 왜중선 두 척을,
좌척후장 여도권관 김인영은 왜중선 한 척을 때려 부수고,
좌부기전통장 순천대장 전봉사 유섭은 왜대선 한 척을 쳐부수고 우리나라 사람으로 사로잡혔던 소녀 한 명을 산채로 빼앗았으며,
한후장 군관 급제 최대성은 왜대선 한 척을,
참퇴장 군관 급제 배응록은 왜대선 한 척을,
돌격장군관 이언량은 왜대선 한 척을,
대솔군관 훈련봉사 변존서와 전봉사 김효성 등은 힘을 합하여 왜대선 한 척을 각각 때려 부수었다.
경상우도 여러 장수들은 왜선 다섯 척을 때려 부수고,
우리나라의 사로잡혔던 사람 세 명을 산채로 빼앗았는데,
합하여 왜선 스물 여섯 척을 모두 총통으로 쏘아 맞히고 때려 부수고 불태우니,
넓은 바다에는 불꽃과 연기가 하늘을 덮었으며,
산으로 올라간 도둑 떼들은 숲속으로 숨어 엎드려 겁내지 않는 놈이 없었다.
나는 여러 전선에서 용감한 사부를 뽑아 산에 오른 적을 따라 잡으려고 하였으나,
거제도는 산이 험준하고 나무가 울창하여 사람들이 발붙이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막 적의 굴속에 들어 있는데 전선에 사부가 없으면 혹 뒤로 포위될 염려도 있고,
날도 저물어가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영등포 앞바다로 물러나 머물면서
군졸들에게 나무하고 물긷는 일을 시키면서 밤을 지낼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오후 네 시쯤 "멀지 않는 바다에 또 왜대선 다섯 척이 지나간다"고 척후장이 보고했다.
그래서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이를 쫓아서 웅천땅 합포(진해시 웅천2동 합개. 학개라고도 함)
앞바다에 이르자 왜적들이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가므로 사도첨사 김완이 왜대선 한 척을,
방답첨사 이순신이 왜대선 한 척을,
광양현감 어영담이 왜대선 한척을,
부통속 방답진에서 귀양살던 이응화가 왜소선 한 척을,
군관 봉사 변존서송희립김효성이설 등이 힘을 합하여 활을 쏘아
왜대선 한 척을 모두 남김없이 쳐부수고 불태웠으며,
밤을 타 노를 재촉하여 창원땅 남포(마산시 합포구 구산면 남포) 앞바다에 이르러 밤을 지냈다.
출처 : 현충사 -> 난중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