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에 대한 나의 대처법
“비켜라 아가야! 나 바쁘다. 비키라니까.” 엑셀레이트를 위협적으로 밟았다. 2차 선에서 바로 앞에 끼어든 대형 트럭은 2차선의 비슷한 트럭을 추월하겠다고 비켜주질 않는다. “이노무 시키, 시불 니불” 트럭 꽁무니에 제트엔진을 붙여 주듯이 욕을 해댔다. 옆자리에 딸아이가 숨을 죽이고 있다.
“크크 운전을 하려면 욕을 잘 배워 두어야 돼 아가씨야” 대단한 운전 교육을 시키듯이 딸아이에게 욕설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아유 참 어머니 핑계 좋다. 뭐 나도 욕은 할 줄 안다.”
“그래 다행이다!. 운전할 때 욕은 태연하고 부드럽게 해야 한다. 잘못하다가는 상대방이 차문을 열고 내리는 날에는 끔찍할 수도 있단다.”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로 부터 욕설을 하면 안 된다는 훈육을 받고 자랐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런 어른들로부터 욕설을 배우고 자랐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딸에게 운전의 기본(!)을 대물림한 셈이다.
나는 스틱으로 운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손과 발 눈과 머리가 함께 조화롭게 움직여야하기에 무척 재미가 있다. 거기에 입까지 보태면 더욱 재미있어진다. 네비게이션 안내 멘트와 이야기를 하는 운전자도 있다고 했다. 혼자 운전을 하는 날이면 무선 이어폰을 귀에 낀다. 어느 때보다 긴 통화가 시작된다. 세상에서 부딪치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차피 그분은 시간이 많은 분이라 마음 놓고 통화를 하게 되었다. 가슴 짠한 서러운 이야기도, 가족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못하는 속 터지는 일도 편안하게 이야기하게 되었다. 신기한 것은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면 실꾸리가 풀리듯이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책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운전대만 잡으면 서슴없이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통화가 시작되었다. 한참을 통화 중이었다. 그분이 중얼거리셨다.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 같기도 한데” 하시더니
“너 혹시 했던 이야기 또 하는 거냐?”
순간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 했던 이야기 또 하고 지난이야기 또 하는 노인네가 된 것일까 하고, 통화를 멈추고 되짚어보니 저번에 나누었던 이야기였다. 순간 빵 터진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고개를 젖히고 웃다가 마침 신호대기 중이던 옆 차 운전자와 눈길이 마주쳤다. 그는 나를 미친 사람이라도 본 듯이 곁 눈길로 계속 바라보았다. 내가 이상하게 보이나? 귀를 만져보았다. 아뿔사! 이어폰을 끼지 않고 있었다. 급하게 휴대폰을 들다가 슬그머니 내리고 귀에 이어폰을 다시 끼웠다. 그리고 태연하게 통화를 하는 척 말을 이어갔다.
“신과의 나눈 이야기“의 저자 닐 도날드월쉬는 49세의 어느 날, 새벽 4시경에 일어나 엉망진창이 된 자신의 인생을 신에게 항의하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월시는 자신의 물음에 신의 대답을 받아 적게 되었고 그것은 무려 3년간이나 계속되었다고 한다. 작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은 미국전역에 10만부이상 팔려나갔고 그 이야기는 3권의 시리즈가 되어 읽히고 있다. 나 역시도 그의 글을 읽으면서 꼬여지는 삶과 신의 존재에 대해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 할 수 있었다. 인간은 이야기를 가진 존재이다. 특히 가슴에 짐스러운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해야만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닌가한다. 카톨릭에는 고해성사로 자신이 지은 죄를 사제를 통해 신에게 고해 올린다. 회계와 정화를 통해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다.
운전대를 잡으면 쏟아지는 마음속에 이야기들, 어느 누구의 침범도 받지 않는 공간에서 고통과 고뇌의 보따리를 풀어 헤친다. 그러다가 북 받히면 엉엉 울기도 하고 화가 나면 조선 팔도 욕부터 미국 욕, 일본 욕까지 해대었다. 욕창에 진공 폐쇄 드레싱을 하듯이 마음의 상처에 집중한다. 욕설은 적나라할수록 보람이 있었다. 나의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풀어줄 만한 무게의 욕을 퍼 붓고 나면 그럴 수 없이 시원했다. 분노를 내려 놓으면 또 다른 세상이 보이기도 했다. 그것은 마치 물이 넘치는 내를 금방 건너온 사람의 기분이랄까.
병중에 “화“병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 여인들은 화병에 낯익다. 조선시대부터 칠거지악이라는 편협한 관습에 길들여져 대물림 되어 왔다. 긴 세월 억눌린 억울하고 서러운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 자책이랄까. 누군가는 이렇게 가슴 밑바닥에 꾹꾹 눌러 담아 삭이는 것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한계에 닿을 때 짐이 되지 않을까. 내가 가끔 자식들에게 욕설을 부추기는 이유는 인내의 한계까지 가서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는 당부이기도 했다.
이어폰을 끼고 신과 통화를 시작한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사람들은 우울증으로 또는 화병으로 고생하면서 자신의 고통을 숨긴다. 주위사람들은 어떤가? 마음 편하다고 털어 놓은 비밀을 공식적인 비밀로 옮긴다. 무슨 정신병인양 치부하기도 한다. 화가 난다고 마구잡이 쌈닭이 될 수도 없다. 남에게 교양 있게 우아하게 보이는 것도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픔을 달래기 위해 행복감의 증진을 위해 나는 오늘도 이어폰을 낀다. 훗날 어느 때인가는 이어폰이 없어도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을 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