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전통지식과 생활관습을 공유하다
작성일2022-08-30
작성자문화재청
조회수23
보유자 없는 국가무형문화재의 등장
국가무형문화재 하면 함께 떠오르는 것이 보유자이다. ‘기·예능보유자’ 혹은 ‘인간문화재’로 불리는 사람 혹은 단체가 그 종목과 함께 주목받는 것이다. 그런데 2015년을 전후해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특정하지 않은 종목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례는 2015년 새롭게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 이 제정되면서 무형문화재 지정 범위가 확대된 이후 더욱 많아졌다. 2015년 ‘아리랑’을 시작으로 ‘제다’(2016), ‘씨름’·‘해녀’·‘김치 담그기’(2017), ‘제염’·‘온돌문화’·‘장 담그기’(2018), ‘전통어로방식-어살’(2019), ‘활쏘기’·‘인삼 재배와 약용문화’(2020), ‘막걸리 빚기’·‘떡 만들기’·‘갯벌어로’(2021), ‘한복생활’(2022) 등의 종목이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고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들 종목을 보유자나 보유단체 없이 지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관련 종목을 전승할 적절한 기량을 가진 사람이 없어서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전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과는 다른 차원에서 국가무형 문화재 종목 지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는 전통지식과 생활관습 등의 분야에서도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이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전문적인 전통 공연예술이나 공예 중심으로 이루 어지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이 전통지식, 구비전승, 생활 관습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면서 보유자 혹은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은 국가무형문화재가 늘고 있다.
공동체의 일상이 된 무형유산, 공동체종목
2022년 주목할 만한 무형문화재 관련 법률 용어가 등장한다. ‘전승공동체’가 그것이다. 2022년 1월 일부 개정되고 7월에 시행된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전승공동체란 “무형문화재를 지역적 또는 역사적으로 공유하며 일정한 유대감 및 정체성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실현·향유함으로써 전승하고 있는 공동체”를 말한다. 이러한 전승공동체 용어의 법제화에 발맞추어 ‘공동체종목’이라는 용어 또한 등장했다. 2015년 무형문화재법 제정 이후 새롭게 나타난 지정 종목을 지칭하는 용어로 공동체종목이 제안된 것이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공동체종목이란 “해당 국가무형문화재의 기능·예능 또는 지식이 보편적으로 공유되거나 관습화된 것으로 특정인 또는 특정단체만이 전형대로 체득·보존해 그대로 실현할 수 있다고 인정하기 어려워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은 종목”을 가리킨다. 그동안 이들 종목을 ‘종목만 지정한 종목’이라는 다소 어색한 이름으로 불렀는데, 이를 개선한 것이다. 그 정의에 따른다면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총 154종목 중 공동체종목은 15종목이다. 앞에서 살펴본 ‘아리랑’, ‘제다’, ‘씨름’, ‘해녀’, ‘김치 담그기’, ‘제염’, ‘온돌문화’, ‘장 담그기’, ‘전통어로방식-어살’, ‘활쏘기’, ‘인삼 재배와 약용문화’, ‘막걸리 빚기’, ‘떡 만들기’, ‘갯벌어로’, ‘한복생활’ 등이다.
공동체종목에서 보유자나 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해당 종목을 전승할 기량을 갖춘 적임자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아서이다. 김치 담그기는 가족, 친족, 이웃 간에 그 전승이 이루어지고 향유되고 있는 우리의 무형유산이다. 장 담그기 또한 우리나라 전역의 각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전승되고 있는 생활관습이자 문화이다. 한반도 전역에서 환경에 적응하고 대처하며 발전시켜온 온돌문화는 말할 나위도 없다. 한복생활 역시 여전히 의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살아 있는 문화이다. 아리랑을 부르지 못하는 국민은 거의 없으며, 씨름 한번 안 해 본 사람도 쉽게 찾을 수 없다.
차를 만드는 기술인 제다는 한반도 남부 지방의 차 산지에 기반을 두고 다양한 방식과 여러 형태로 그 지식이 공유되고 전승되고 있다. 바닷물을 이용해 소금을 얻는 지식인 제염도 유사하다. 제주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여성 중심의 생업인 물질과 관련 문화 전반을 지정한 해녀 역시 전승자와 향유자를 한두 사람이나 단체로 특정할 수 없는 종목이다. 마찬가지로 전통어로방식-어살이나 갯벌어로, 인삼 재배와 약용문화도 지역적 제한이 있기 는 하지만 수많은 전승 주체가 존재한다. 보유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지정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 때문에 공동체종목은 살아 있는 우리 무형유산의 대표이자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긍심도 책임감도 우리 모두의 몫
공동체종목으로 지정된 무형문화재의 경우 국민 대다수 혹은 특정 지역의 공동체 대부분이 그 지식이나 관습을 공유한다. 따라서 그들 모두가 전승자이자 향유자가 될 수 있다. 공동체종목에 포함되는 15종목은 대부분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사실상 일상이자 삶 자체여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한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정된 종목 모두 우리 문화에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동체종목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겨 왔던 우리의 오랜 지혜와 솜씨 그리고 생활 속의 신명이 가지는 가치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최근 문화재청은 이러한 공동체종목을 지원하고 활성화 하기 위한 법령을 만들었다. 문화재청이 공동체종목을 특정하고 관련 법령을 만들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 종목이 갖는 특성을 염두에 두고 지원과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공동체종목은 우리 모두 혹은 다수의 주체가 전승자이고 향유자라는 점을 특징으로 한다. 그런데 모두 혹은 다수가 전승의 주체라는 것이 전승의 책임을 모호하게 만들 개연성이 있다. ‘우리 모두’가 전승자라는 것은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종목이 활발하게 전승되기 위해서는 각각의 자율성을 존중하되 모두가 능동적인 책임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공동체 전체가 자기 스스로 보유자이며 인간문화재라는 자긍심과 더불어 책임감도 공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름만 공동체종목인, 공동체 없는 무형유산이 생겨날 수 있다. 생활이나 삶과는 유리된 기형적인 공동(空洞)의 무형유산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오랜 지혜와 솜씨 그리고 생활 속의 신명을 전승하는 역할이 이제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다. 장이 펼쳐졌으니 이제 전에 없던 전승의 지혜와 개성을 발휘할 때다.
공동체종목이 활발하게 전승되기 위해서는 각각의 자율성을 존중하되 모두가 능동적인 책임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공동체 전체가 자기 스스로 보유자이며 인간문화재라는 자긍심과 더불어 책임감도 공유해야 한다
글. 허용호(경주대학교 문화재학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