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우씨세보서(신유 단오, 1981년) 丹陽禹氏世譜序(辛酉 端午, 1981年)
존조목족(尊祖睦族)의 도(道)는 수보(修譜)에 있는 것이다. 백세(百世)의 아래에서 백세의 위을 알고, 계통이 같고, 다름을 살피며 전승(傳承)의 오래고 가까운 것을 분별하는 것이 족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의(義)가 엄하고, 그 일이 곧은 것이니 어찌 중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세대가 멀고 자손이 번성하였다 합(合)해서 대동보를 하기가 어려우면 자기의 파(派)만 합하여 수보(修譜)하는 것이니 이것이 파보(派譜)인 것이다.
우리 단양(丹陽)의 우(禹)는 고려(高麗) 향공진사공(鄕貢進士公)을 시조(始祖)로 하고 잠영 (簪纓)이 대대로 전하며 명공거경이 끊어지지 않아 드디어 동방(東方)의 제족(著族)이 되었다.
우리파선조 문강공(文康公)의 관적과 도학은 일세(一世)에 빛나며, 참판공 휘(諱) 겸(謙)과 판서공 휘(諱) 신(愼)과 군수공 휘(諱) 근(謹)과 단양군 휘(諱) 수노(秀老)와 진사공 휘(諱) 사명 (思明)과 오곡공(梧谷公) 휘(諱) 각(恪)은 다 우리파의 들난 할아버지라.
그 분들의 쌓은 덕과 두터운 그늘이 우리 후손들의 무궁한 아름다운 복이되게 하였으니 참으로 성(盛)하도다.
슬프다 지금 상해(桑海)가 변복하고 인심이 옛날이 아니며, 서구의 풍조가 밀어닥쳐 천현민이 (天顯民彛)을 강(講)할 곳이 없어 혹 친(親)이 다하지 않은데, 그 할아버지를 알지 못하고 복(服)이 면치않는데 그 촌수도 알지 못한 자가 많으니 어찌 세교(世敎)를 위하여 깊이 한탄하지 않겠는가
그 종족끼리 단합하고 풍속을 두터히 하는 것이 조상을 높이고 족보를 편찬하는데 있는 것이므로 급급히 문강공파보를 중간(重刊)코저하여 족질영창보(族侄永昌甫)와 족숙댁인씨족 제상근보(族叔宅麟氏族第相根甫)와 함께 협의하여 각처에 발문하니 제종(諸宗)들이 다 기뻐하며 소임을 정하고 일을 맡아 일년이 못되어 이 성역(盛役)을 마치었으니 우리 종중의 행사이며 임사(任事) 여러분의 현노(賢勞)함에 인한 것이니 어찌 그 정성에 깊이 감복하지 않겠는가 경현(慶鉉)은 견문(見聞)이 부족하고 나이 칠십이 넘어 쇠퇴함이 심하여 하나의 일도 도웁지 못하고 그저 수수방관하였은 즉, 참으로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는 바이다.
무릇 족보를 같이한 여러종족은 오늘날 족보를 중간하는 것 만이 다행으로 생각말고 마땅이 항상 조상을 높이고 종중을 소중히 여기며 종족간 친목하여 시례를 힘쓰고 효제를 행하여 선덕을 닦은 연후에 가풍이 다시 성할 것이요, 조상의 혼령이 반드시 내가 후손이 있다고 하실것이다.
서로 서로 힘쓰소서 첨종(僉宗)의 부탁을 사양치 못하고 이와 같이 쓰니 참망(僭忘)한 죄(罪) 참으로 크도다.
신유(辛酉, 1981년) 단오(端午) 후손(後孫) 경현(慶鉉) 근서(謹序)
출처 : 단양우씨세보 상(단양우씨문강공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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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단양우씨 문강공세보에 신유년(辛酉年) 1981년에 세보서를 작성한것으로 기재되어있습니다
이 세보가 1982년 임술년에 발행된 것인가요?
감사합니다. 왕명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