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99A8AE345C1F771033)
2010년 판,<충돌과 반동>
2002년, 금호갤러리에 걸렸던 사진가 이갑철의 <충돌과 반동> 연작은 큰 충격을 안겼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경계를 허물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충돌과 반동>의 여운은 컸다. 한국인의 죽음과 한, 원시성을 그대로 간직한 샤머니즘 그리고 종잡을 수 없이 펄펄 뛰는 기氣가 사진들 속에 녹아 있었다. 2002년 전시회 당시 펴냈던 사진집 『충돌과 반동』이 다시 나오는 이유는 세월이 흘러도 ‘기’가 전혀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갑철 | 포토넷 | 245×296mm | 144쪽 | 70,000원 | 2010년 4월 1일 발행
<충돌과 반동> 복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사진이란 주어진 대상을 기계적으로, 정확하게 재현해 내는 도구다. 눈에 보이는 것을, 눈이 보는 의식세계를 촬영해 내는 것이다. 반면 이갑철은 그 같은 사진의 속성을 통해 이른바 무의식적인 세계까지도 포착하고자 한다. 서구적 시선의 기계적 실현이 사진이라면 그는 그 같은 시선과 인식의 도구를 통해 다분히 동양적인 어법, 감성과 느낌, 정신을 잡아내는 도구로 번안해내고 있다. 아마도 이런 지점이 한국 사진의 진정한 근대성일 것이다. 이갑철 사진의 의미가 그 지점에 맺혀있다는 생각이다. 그 주옥같은 사진들은 그의 사진집 <충돌과 반동>에 담겨있다. 이 사진집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출판계에서 거의 팔리지 않는 것이 사진집일 텐데 그의 이 책이 다시 복간되었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박영택_경기대학교 교수, 미술평론가
[사진가 이갑철]
1959년 진주에서 태어났으며 1984년 신구대학 사진과를 졸업했다.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다니며 삶의 정한과 끈질긴 생명력을 사진에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1988년 서울 경인미술관에서 <타인의 땅>, 2002년 금호미술관에서의 <충돌과 반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의 개인전 등 국내 다수의 전시와 더불어 미국 휴스턴 ‘포토페스트 2000’, 프랑스 몽펠리에 <한국 현대 사진가 초대전>등에 참가했다. 현재 프랑스 뷰Vu 갤러리 소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갑철
1959 진주생
1984 신구대학 사진과 졸업
개인전
2007 이갑철 사진전 氣 (한미사진미술관, 서울)
2002 충돌과 반동 (금호미술관, 서울)
이갑철 사진전 (한미사진미술관, 서울)
1988 타인의 땅 (경인미술관, 서울)
1986 Image of the City (한마당 화랑, 서울)
1984 거리의 양키들 (한마당 화랑, 서울)
단체전
2007 제1회 세계 이미지 페스티발 (브랑리 미술관, 프랑스)
2006 대구 사진비엔날레 (대구 EXCO, 대구)
2005 한국 사진가 3인전 (Gap City, 프랑스)
Paris Photo (루브르 박물관, 파리, 프랑스)
2002 한국현대사진 (포토 갤러리, 몽펠리에, 프랑스)
2000 FOTOFEST 2000 (윌리엄스 타워 갤러리, 휴스턴, 텍사스, 미국)
1998 한국 사진의 역사전 (예술의 전당, 서울)
1996 사진은 사진이다. (삼성포토갤러리, 서울)
인간의 숨결 (LA 한국문화원, 로스엔젤레스, 미국)
1994 Visions From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Korea
(피마대학 예술센터, 투손, 아리조나, 미국)
작품소장
금호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
동강사진박물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사진집
충돌과 반동(다른세상)
한국의 정원 ‘선비가 걸리던 세계’(다른세상)
이갑철 사진집(한미문화예술재단)
수상 경력
2003 동강 사진 대상 수상
2003 일본 사가미하라 아시아 사진가상 수상
2005 이명동 사진상 수상
- 프랑스 에이젼시 뷰(VU) 전속 사진 작가
![](https://t1.daumcdn.net/cfile/cafe/99EF8D405C1F78231E)
초현실적인 구도로 세상 들여다보는 중견 사진가 이갑철의 근작전 - 氣
봄꽃 핀 나무가 춤춘다. 미친 여자처럼 가지를 풀어헤쳤다. 연꽃에는 불꽃이 올라붙었다. 곱게 위로 훨훨 타오른다.
중견 사진가 이갑철씨(49)의 흑백사진 틀에는 카메라와 함께하는 몸부림이 느낌으로 남는다. 정밀 광학기계인 카메라가 난장판 사물놀이의 꽹과리처럼, 굿판 벌이는 방울처럼 신명의 소품이 된다. 퐁퐁 튀어오른 개울 물방울, 빗살처럼 이지러진 일본 교토 절집 부처님, 찰나 지나가버리는 중국 윈난성 물소떼의 등에 렌즈가 춤을 추며 달라붙었다. 카메라 앵글은 주인이 ‘마음 잡혔다’는 느낌이 올 때 속사포처럼 잽싸게 미친 듯이 약동한다. 신명과 광기의 스냅일까. 작가는 그 작업이 거의 의식 없이 직감으로 이뤄진다고 털어놓곤 한다.
남한 땅 곳곳은 물론, 중국 윈난성과 일본 교토 등지를 전전하면서 그곳의 사람들과 하늘, 땅 자연의 모습을 찍은 출품작들은 여전히 흔들린 화면에, 생명의 약동을 거칠게 드러내고 있다. 전북 임실의 눈 덮인 설산이 아래 언덕에 피어오르는 망자의 장례식 연기에 다소곳이 앉아주는 풍경은 생물체처럼 교감하는 산기운을 초현실적 구도로 드러낸다. 경남 합천의 소나무숲에 날리는 폭설은 광기를 머금었으나, 사천의 숲에 내리는 함박눈은 살뜰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지난 5년 동안 작가는 불경 <반야심경>에 나오는 ‘공즉시색 색즉시공’(空卽是色 色卽是空)의 세계를 꾸준히 생각해왔고, 그런 사색의 흔적을 사진 곳곳에 혼곤히 심으려 애썼다고 한다. 어느 곳에나 다 있는 하늘·땅·물·개울이지만, 특정한 장소에 따라 다른 결로 빚어지는 기운을 담아내겠다는 시도. 보이지 않지만 침묵 속에서 사진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실체가 없는 기운이 인연으로 모여 형체를 만들고 다른 형체로 옮겨가는 것들…. 형체이자 기운이기도 한 빛의 파장과 불꽃 따위를 사진의 소재로 집어넣은 시도는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반면 대구 팔공산 동화사 길을 올라가는 불자들과 스님들의 상체 뒷모습을 찍은 작업은 마치 스멀스멀 올라오는 생명의 영기싹 같기도 하고, 스님의 뒷머리를 턱하니 찍은 사진은 불교의 우주적 진리를 그림으로 풀이한 만다라도 같기도 한 착시를 안겨준다. 거칠게 화면을 툭 자르거나, 사선으로 구도를 잡는 기법은 여전하지만, 광각렌즈로 사물에 밀착해 흔들리는 이미지를 추상화처럼 변모시키는 작업들이 새롭게 등장했다.
“그전부터 특정한 제목을 달지 않고, 찍은 장소와 시점만 사진 제목으로 달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그런 게 더욱 미묘하게 다가옵니다. 어디서든 보는 자연이고 사람인데, 특정 지역에서는 마치 거기에 걸맞은 기운이 도드라지게 사는 것 같아요. 의도하지 않은 사진들이고, 내 몸속에서 직감이 꿈틀거려 나오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 이갑철의 사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방랑하다 직감으로 찍는 것이 생활
미리 생각하고 구상하는 다른 사진가들의 작업에서는 그만의 찍기 버릇은 거의 나오기 어렵다. 줄곧 언제 어디서든 헤매면서 직감의 내용물을 시선과 의식에 채우는 것이 생활로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잡지 등에서 풍경 사진 등을 찍으면서 10년여 이땅의 굿판, 망자와 산자가 어우러지는 상가, 수려한 산골, 바다, 들판을 돌았다. 신명, 정한의 기운 넘치는 곳에 카메라를 포개고 삶을 포갰더니, 이제는 찍는 과정이 정말 삶처럼 즐기게 되어버렸노라고 이씨는 말한다.
진주 출신인 이 작가가 까탈스런 평단의 호평을 받은 것은 육명심 작가의 말대로 ‘사진을 통한 뚜렷한 자기 발견’으로 작업의 지평을 넓혀왔기 때문이다. 80년대부터 ‘거리의 양키들’ ‘도시의 이미지’전들을 통해 공간과 시간, 작가의 존재를 일치시키는 스냅 촬영의 테크닉을 발견했고, 88년 ‘타인의 땅’전에서 사물의 기운을 흔들리고 풀린 앵글로 포착하는 소신을 확고히 챙겼다. 뒤이은 ‘충돌과 반동’전에서 이땅 곳곳의 전통 정한의 세계, 원초적 샤머니즘의 혼돈을 ‘본능적 생명충동’(사진가 강운구의 평)으로 포착해 작업의 화두까지 틀어쥐었다. ‘결정적 순간’으로 유명한 브레송, 대도시 뉴욕의 암울한 서정을 거친 스냅 사진으로 찍은 클라인의 성취까지 그 과정에서 자기 것으로 녹여냈다. 그런 면에서 이 전시는 그 뒤 좀더 산만해진 자기 모색의 혼돈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선문답 같은 세계 속으로 좀더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주는 풍경이 있고, 이전과 같은 한국적 정서가 넘실거리는 사람들 초상도 있으며, 전위적으로 형상을 흔들어 해체하는 정물 작업도 있다. 저녁 하동 들녘에서 미친 듯 타오르는 장작 불꽃과 문경 고찰의 새벽녘 치미에 앉은 까마귀의 모습 등에서 무엇을 생각했던 것일까. “눈앞이 캄캄한 게 좋다”는 작가는 말한다. “렌즈 앞의 정물에 더 밀착한다는 것 외엔 여전히 아무 생각 없이 찍으려고 해요. 타히티 대자연 속에서 고뇌했던 화가 폴 고갱 생각이 요새 부쩍 납니다. 나도 그렇게 묻힐 수 있을까요.”
출처 / 시간과 공간
[이갑철을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