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당집 제17권[1]
[대자 화상] 大慈
백장百丈의 법을 이었고, 무주撫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환중寰中이다. 어떤 스님이 하직을 고하니,
선사가 물었다.
“어디로 가겠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강서江西로 가겠습니다.”
“노승을 데리고 갈 수 있겠는가?”
“화상뿐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이 있어도 데리고 갈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동산洞山에게 이야기하니, 동산이 말했다.
“그저 ‘데리고 가겠습니다’ 할 것을 그랬구나.”
선사가 상당上堂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길을 이야기하는 것이 한 자를 행하는 것만 못하고, 한 자를 이야기하는 것이 한 치를 행하는 것만 못하니, 행해야 할 곳은 말을 하고, 말한 곳을 행해야 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동산에게 이야기하니, 동산이 기뻐하면서 말했다.
“대자 화상이 중생을 위하여 너무 애를 쓰시는구나.”
그 스님이 얼른 물었다.
“거기는 그렇지만 여기도 그러합니까?”
동산이 대답했다.
“그러하니라.”
“그러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동산이 말했다.
“말할 수 없는 곳을 행하고, 행할 수 없는 곳을 말하느니라.”
동산이 이어 다시 물었다.
“이 두 가닥의 길을 떠나서는 어찌하겠는가?”
스님이 말했다.
“이 두 가닥을 떠난 도리를 스님께서 묻지 말아 주십시오.”
동산이 말했다.
“바다 위의 공덕이 뛰어난 것은 어찌하겠는가?”
그 스님이 대답했다.
“돌장승이 노래를 부르고, 허깨비가 손뼉을 칩니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운거雲居에게 이야기하니, 운거가 말했다.
“행할 때에는 말할 것이 없고 말할 때에는 행할 것이 없는데, 말하지 않고 행하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낙포樂逋에게 이야기하니, 낙포가 말했다.
“행함과 말함이 함께 이르면 본래의 일이 없고, 행함과 말함이 함께 이르지 못하면 본래의 일이 있느니라.”
낙포가 또 말했다.
“대자 화상은 옛 부처님이시고, 동산 화상은 세세히 꾸짖어 주신다.”
선사가 이 말을 전해 듣고 말했다.
“작가作家로다.”
선사가 행각을 할 때에, 세 사람이 동행을 하다가 길가에서 어떤 여자가 벼를 거두고 있는 것을 보자, 그녀에게 물었다.
“산에서 내려가는 길이 어느 쪽입니까?”
여자가 대답했다.
“곧장 눈에 보이는 길로 가십시오.”
선사가 다시 물었다.
“앞길에 물이 깊은데, 건널 수 있을까요?”
여자가 대답했다.
“발이 젖지 않습니다.”
선사가 다시 물었다.
“상류 쪽의 벼는 그렇게 잘 되었는데, 하류 쪽의 벼는 그다지 잘 되지 않았구려.”
“하류 쪽의 벼는 늘 가재가 먹어서 그렇습니다.”
“냄새가 참 좋습니다.”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습니다.”
“어디에 사시오?”
“바로 저기에 삽니다.”
세 사람이 집 안으로 들어가니, 그 여자가 따라 들어와서 차를 달여 와 차려 놓고 말했다.
“신통을 부려서 드십시오.”
세 사람 중 아무도 차를 들지 못하고 있는데, 여자가 나서서 말했다.
“제가 신통 부리는 것을 보시오.”
그리고는 잔을 들어서 차를 따라서 돌렸다.
이 밖의 전기는 전혀 상고할 길이 없고, 칙명으로 시호를 성공性空 선사라 하였고, 탑호를 정혜定慧라 하였다.
[복주 서원 화상] 福州 西院
백장百丈 선사의 법을 이었다. 선사의 휘는 대안大安이며, 복주福州의 복당현福唐顯 사람이라는 것 이외에는 행장을 보지 못해 성과 이름은 모른다.
어릴 적에 황벽사에 출가하였다가스님이 되고서는 경전을 익히기 위해 홍주의 초제사招提寺에서 지냈다. 우연히 행각하는 스님을 만나 그에게서 백장의 두서너 가지 현현한 기연機緣을 듣고 나서 약간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로부터 바로 백장에게로 가서 성대한 회상을 직접 보고는 뜻한 바의 경지境地에 부합됨을 알았다.
백장에게 절을 하고 물었다.
“학인이 부처를 알고자 하는데,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백장이 말했다.
“마치 소를 타고 소를 찾는 것 같구나.”
선사가 다시 물었다.
“안 뒤에는 어떠합니까?”
백장이 대답했다.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으니라.”
“시종 어떻게 보임保任하여야 상응할 수 있습니까?”
“소를 먹이는 사람이 채찍을 들고 지켜 서서 남의 곡식밭을 범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으니라.”
선사는 이로부터 현현한 진리를 깨달아 만 가지 반연을 모두 쉬었다.
성격이 부지런하고 말수가 적었으며, 다시는 경론을 뒤지지 않고 성정性情에 맡기어 살았으니, 밤에는 산과 들에서 정진하고 낮에는 또 고되게 일을 하였다.
나중에 영우靈佑 선사를 따라서 위산을 함께 창설하였는데, 십 수 년이 넘도록 대중大衆이 적었으므로 선사가 몸소 밭을 구석구석 갈고, 곳곳에서 몸을 수고롭게 하되 밤낮으로 수고로운 줄도 모르고 잠시도 쉬지 않으니, 위산이 보고 말했다.
“대안大安 수좌여, 그대는 너무 수고하지 말라.”
선사가 대답했다.
“화상께서 5백 명 대중을 거느리시게 되면 저도 쉬겠습니다.”
그런 지 오래지 않아서 과연 대중이 5백 명에 이르렀다.
선사가 그제야 일할 생각을 확 풀고는 방이나 마루에서 말뚝처럼 멍히 앉았거나, 혹은 텅 빈 골짜기에 들어가 열 달씩 돌아오지 않기를 30년이나 계속하였다.
제2좌第二座와 제3좌 사이에 동원同源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몰래 선사의 몸을 들여다보니, 온몸이 훤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뒤부터 대중들은 모두 선사를 두고 정광불定光佛이라 말하였다.
어떤 이가 물었다.
“황소黃巢의 군사가 침노해 오면 화상께서는 어디로 피하시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5온蘊의 산으로 피하리라.”
“갑자기 붙들릴 때에는 어찌합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장군을 혼란시키리라. 장군을 혼란시키리라.”
“이 몸이 죽고 다음 몸을 받기 전의 일이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이 몸이 죽기 전에는 어떤 것이 대덕인가?”
“모르겠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이 몸이 죽기 전의 일도 모르면서 몸 받기 전의 일은 물어서 무엇 하려는가?”
어떤 관리가 선사에게 물었다.
“부처가 어디에 있습니까?”
“마음자리를 여의지 않았느니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쌍봉雙峰 상인上人은 무엇을 얻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법은 얻은 바가 없느니라. 설사 얻은 바가 있다 하더라도 본래 얻을 것을 얻은 것뿐이니라.”
“대용大用이 눈앞에 드러남에 규칙이 없을 때는 어떠합니까?”
“작용하려 하면 바로 작용하느니라.”
그 스님이 발가벗고 선사를 세 바퀴 돌자, 선사가 말했다.
“보다 위로 향하는 일은 어째서 이르지 않는가?”
스님이 막 입을 열려는데, 선사가 때리면서 말했다.
“이 들여우 혼신아.”
나한羅漢 화상이 이 일을 들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이럴 때에는 어찌하여야 그의 꾸짖음을 면할 수 있느냐?”
스님이 대답했다.
“벌떡 일어나서 나가 버립니다.”
“등줄기에 내리치는 방망이는 또 어찌하겠는가?”
스님이 고개를 돌리고서 말했다.
“다행히 오늘 저를 만났습니다.”
이에 나한羅漢이 말했다.
“그대의 기개를 알아보았느니라.”
“온갖 활동이 모두가 법신의 작용이라 하는데, 어떤 것이 법신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온갖 활동이 모두 법신의 작용이니라.”
“5온蘊을 떠나 어떤 것이 본래의 몸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과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 이것은 5온이니라.”
어떤 스님이 대위산에 이르니, 선사가 눈앞의 개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분명하구나, 분명하구나.”
스님이 얼른 물었다.
“그렇게 분명한데, 어째서 머리를 깎고 여기에 있습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무슨 잘못이 있느냐?”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설봉에게 이야기하니, 설봉이 말했다.
“위산은 옛 부처님이시니라.”
한번은 선사가 상당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 그대들은 여기 와서 무엇을 찾는가?
만일 부처를 이루고자 한다면 그대가 부처여야 한다.
부처를 한 짐 짊어져다 놓고 옆집으로 설치고 다니면서 목마른 사슴이 아지랑이 쫓듯 설치니, 언제나 부합되겠는가?
그대들이 부처를 이루고자 한다면 그저 전도된 많은 반연ㆍ잘못된 생각이나 깨달음ㆍ더러운 욕심 등 중생의 마음을 없애라.
그리하면 바로 그대가 초심정각불初心正覺佛이 되는데, 더 이상 어디를 헤매며 찾으려 하는가?
그러므로 내가 위산에서 30년을 지내면서 위산의 밥을 먹고 위산의 똥을 싸면서도 위산의 선은 배우지 않았다. 그저 한 마리의 수고우水牯牛를 지키면서 그가 길을 벗어나 풀숲으로 들어가면 얼른 끌어오고, 남의 곡식밭에 들어가면 채찍을 쳐서 길들였다. 참 가엾더니만 지금은 사람의 말을 잘 들어서 한 마리의 노지백우露地白牛가 되어 항상 눈앞에 있되 종일토록 우뚝 드러나서 쫓아도 가지 않게 되었다.
그대들은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겠는가?
그대들은 제각기 몸 안에 값진 보물이 있어서 눈으로 광채를 뿜어 산하대지를 비추고, 귀로 광명을 뿜어 온갖 좋고 나쁜 소리를 다 듣는다.
이처럼 6문에서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항상 광명을 뿜어 방광삼매放光三昧라 이름하는데, 그대들 자신에게 있는 것을 어찌하여 알아차리지 못하는가?
그 그림자가 4대大의 몸 안에 있으니, 안팎으로 잘 보호해서 두 다리가 기울거나 쓰러지지 않게 하라.
그대가 두 뭉치의 큰 짐을 메고 외나무다리를 건널 때에도 그대를 쓰러지지 않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대들이 털끝만치라도 찾으려고 한다면 보지 못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지공志公이 말하기를,
‘안팎으로 더듬고 찾아도 전혀 없지만 경계境界 위에 활동할 때에는 분명히 있다’ 하였느니라.”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 석문石門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위산에서 30년을 지내면서 위산의 밥을 먹고 위산의 똥을 싸면서도 위산의 선은 배우지 않았다. 그저 한 마리의 수고우를 지키면서 길을 벗어나서 풀숲으로 들어가면 끌어오고, 남의 곡식밭에 들어가면 채찍을 쳐서 길들였더니, 지금은 신통스럽게도 사람의 말을 잘 들어서 노지백우露地白牛가 되어 항상 눈앞에 있되종일토록 뚜렷하고, 쫓아도 가지 않고 여전히 있다’ 한 뜻이 무엇입니까?”
석문이 대답했다.
“지난날에는 범 이야기만 들어도 놀랐는데, 지금은 진짜 범을 봐도 겁내지 않느니라.”
“옛사람의 경우에야 그럴 수 있다지만 저의 경우에는 어찌해야 합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나에게 밥을 먹여 달라고 하니, 나귀 해인들 맛을 알겠는가?”
선사는 민성閩城에서 20년 동안 교화를 폈다. 그러다 중화中和 3년 계묘년癸卯年 10월 21일에 입적하니, 칙명으로 시호를 원지圓智라 하고, 탑호를 정진正眞이라 하사하였다.
[처미 화상] 處微
서당西堂의 법을 이었다.
선사가 앙산仰山에게 물었다.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가?”
“혜적慧寂입니다.”
“어느 것이 혜慧이고, 어느 것이 적寂인가?”
“그저 눈앞에 있을 뿐입니다.”
“그대에게는 아직도 앞뒤 분별이 있구나.”
“앞뒤는 그만두고라도 화상께서는 보시기나 하셨습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차나 마셔라.”
“3승乘 12분교分敎의 진리를 체험하여 오묘함을 얻는 것이 조사의 뜻입니까, 아니면 조사의 뜻이 아닙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3승 12분교의 진리를 체험하여 묘妙함을 얻으면 조사의 뜻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비록 그렇다고는 하나 모름지기 여섯 구절 밖에서 가려야 한다.
만일 가려내지 못한다면 성색聲色을 따라 돌고 도는 것은 면치 못하리라.”
스님이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여섯 구절입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말하는 것, 침묵하는 것, 침묵하지 않는 것, 말하지 않는 것, 모두 옳은 것, 모두 옳지 않은 것이니라.”
[설악 진전사 원적 선사] 雪嶽 陳田寺 元寂
서당西堂의 법을 이었고, 명주溟州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도의道義요, 속성은 왕王씨이며, 북한군北漢郡 사람이다. 임신하기 전에 그의 아버지는 흰 무지개가 뻗어서 방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고, 어머니는 어떤 스님과 잠자리를 같이하는 꿈을 꾸었는데, 깨어나니 이상한 향기가 방 안에 가득하였다. 부모는 깜짝 놀라 다음과 같이 의논했다.
“이런 상서로움을 보건대 반드시 성스러운 자식을 얻을 것이오.”
그 뒤로 반달이 지나자 태기가 있었는데, 태중에서 서른아홉 달 만에 태어났다. 탄생하던 날 저녁에 갑자기 이상한 스님이 석장錫杖을 짚고 문 앞에 와서 “오늘 낳으신 아기의 태를 강가의 언덕에다 두어 주시오”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마침내 스님의 말에 따라 태를 갖다 묻으니, 큰사슴들이 와서 한 해 내내 떠나지를 않고 지켰는데, 오가는 사람들이 보고도 해치려는 생각을 내지 않았다. 이러한 상서로 하여 출가하였기에 법호를 명적明寂이라 했다.
건중建中 5년 갑자년甲子年에 김양공金讓恭이란 호를 지닌 사신 한찬韓粲을 따라 바다를 건너 당으로 들어왔다. 당에 들어와 곧장 대산으로 가서 거기서 문수를 감응하여 허공에서 성스러운 종소리가 나더니 온 산을 울리는 메아리를 듣게 되었다. 또 신기한 새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는 바로 광부廣府 보단사寶壇寺에 가서 구족계를 받았다. 이어 조계에 가서 조사당祖師堂을 참배하려는데, 갑자기 문이 저절로 열렸고, 예배를 세 번 마치고 나니, 문이 전과 같이 다시 저절로 닫혔다.
다음에 강서江西 홍주洪州 개원사開元寺로 가서 서당西堂 지장智藏에게 머리 숙여 스승으로 모시고, 의심을 풀고 막힌 체증을 푸니, 서당 대사는 마치 돌 틈에서 옥을 고른 듯, 조개껍질에서 진주를 주워 낸 듯 기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실로 법을 전하고자 한다면 이런 사람이 아니고 누구에게 전하랴?”
그리고는 이름을 도의道義로 고쳐 주었다. 이어 두타頭陀의 길을 떠나 백장산百丈山 회해懷海 화상에게 가서 서당西堂 화상에게 한 것처럼 똑같이 하니, 백장百丈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강서江西의 선맥이 몽땅 동국東國으로 돌아가는구나.”
그 밖의 것은 비문과 같다.
[동국 동리 화상] 東國 桐裏
서당西堂 스님의 법을 이었으며, 휘는 혜철慧徹이요, 시호는 적인寂忍 선사요, 탑호는 조륜청정照輪淸淨이라 하였다.
[동국 실상 화상] 東國 實相
서당西堂 스님의 법을 이었고, 휘는 홍직洪直이요, 시호는 증각證覺 대사, 탑호는 응적凝寂이라고 하였다.
[동국 혜목산 화상] 東國 慧目山
장경章敬의 법을 이었고, 휘는 현욱玄昱이며, 성은 김金씨로서 동명東溟에서 으뜸가는 씨족이었다. 아버지의 휘는 염균廉均이고, 벼슬이 병부시랑兵部侍郞에 이르렀다. 어머니 박씨는 임신 중에 이상한 꿈을 꾸고 정원貞元 3년 5월 5일에 선사를 낳았다. 어릴 적부터 불법을 좋아하여 매양 물을 길어다가 물고기에게 주었고, 모래를 모아서 탑을 만들더니, 장년壯年이 되자 출가할 뜻을 품었다. 그는 바다를 건널 보따리를 마련한 뒤 머리를 깎고, 원화元和 3년에 구족계를 받았다.
장경章敬 4년 대당大唐의 태원부에 이르러 두 절을 번갈아 살면서 뜻하던 바를 모두 이룬 뒤에는 본국의 왕자인 김의종金義琮이 전하는 왕명에 따라 본국으로 돌아갔다.
개성 2년 9월 12일 본국에 이르러 무주撫州 회진會津의 남악 실상사實相寺에 머무르니, 민애敏哀 대왕大王ㆍ신무神武 대왕ㆍ문성文聖 대왕ㆍ헌안憲安 대왕이 잇달아 제자의 예를 다하여 공경하였으므로 선사로 하여금 신하의 예를 지키지 못하게 하였고, 왕궁에 들어올 때마다 반드시 자리를 펴게 하여 설법을 들었다.
개성 말년 경에 혜목산慧目山 기슭에다 토굴을 지으니, 경문왕景文王이 고달사高達寺에서 살게 하였다. 경문왕은 선사가 대궐에 들를 때마다 기이한 향과 묘한 약을 공양했고, 더울 때에는 베옷, 추울 때에는 갓옷 등 때를 맞추어 바쳤다.
9년 가을, 여름 안거 해제 직후에 갑자기 문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금년 안에는 법연法緣이 다할 것이니, 너희들은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열어 백암百巖의 전수 은혜를 보답케 하여다오. 그것으로 나의 소원은 끝나는 것이다.”
11월 14일 밤중에 갑자기 산골짜기가 진동하더니 새와 짐승들이 슬피 울고, 절의 종은 사흘 동안 두드려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15일 새벽에 갑자기 시자에게 무상종無常鍾을 치게 하고는 겨드랑이를 자리에 대고 누워서 입적하니, 춘추는 82세요, 승랍은 60세이다.
[공기 화상] 公畿
장경章敬의 법을 이었고, 하중부河中府에서 살았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어떤 것이 선禪이며,어떤 것이 도道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이름[名]이 있으면 대도大道가 아니요, 시비是非가 있으면 모두가 선禪이 아니다.
이 경지境地의 뜻을 알고자 하는가?
단풍잎은 우는 아기를 달래는 거짓 돈이니라.”
[관남 화상] 關南
염관鹽官의 법을 이었고, 양양襄陽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도상道常이며, 다음과 같은 낙도가樂道歌를 지었다.
삼계三界는 아지랑이 같고
6도道는 허깨비 같고
성현이 세상에 나오심은 번개와 같고
국토는 물 위의 거품과 같다.
무상의 생멸은 자주자주 변하는데
오직 마하대반야摩訶大般若만은
굳기가 금강 같아 부럽기 그지없고
보드랍기 도라 솜 같아 허공을 뒤덮나니
지극히 작아서 볼 수가 없네.
쥐어서 모으려 해도 모이지 않고
휘저어서 흩으려 해도 흩어지지 않는다.
귀를 기울여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고
눈을 부릅떠 보려 해도 보이지 않네.
노래하고 또 노래하면서
반석 위에서 깔깔 웃고
웃고는 또 웃으면서
푸른 다래넝쿨 밑에서 큰 소리로 외친다.
이 밝은 구슬을 갑자기 얻은 뒤로는
제석도 전륜왕도 전혀 필요 없노라.
나 혼자 멋대로 지은 곡조 아니니
예부터의 현인들 모두가 이 곡조 불렀네.
좌선도 않고 도도 닦지 않고
되는 대로 소요消遙하여 그저 그대로가 좋다.
만 가지 법을 생각에 끼우지 않을 줄 안다면
그 언제 생로병사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