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 기초 1강 - 죽은 행실을 회개함 (히 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침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 라는 말은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의 기초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의 기초 원리들을 떠나서 완전함으로 나아가서 이제는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믿음)과 세례(침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리들이 이미 놓여졌다면 죽은 행실로부터의 회개, 하나님에 대한 믿음, 세례들, 안수 죽은 자들의 부활, 영원한 심판 이라고 하는 교리들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터가 되겠습니다. 쉬운 말로 하면 발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터가 놓여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터만 놓고 있을 수는 없어요. 집을 지으라고 맡겼는데 계속해서 바닥 다지기만 하고 있는거에요. 골조도 세우고 지붕도 세우고 안에다가 물건들도 채워야 될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기초 원리들을 놓았다고 한다면 이제 거기서 떠나서 이제 가르치는 자, 의의 말씀을 전하고 그것을 다루고 하는 자리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리라고 하면 기초원리, 교리라고 하면 많은 경우에 교회가 속한 교단에 대한 교리 가르침을 많이 다루기도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라든지, 대소요문답서 라든지 이런 것을 배울 필요도 있지만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기초의 교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죽은 행실에서의 회개, 죽은 행실에서의 회개라고 할 때 이 죽은 행실은요? 쉽게 생각하면 ‘죄’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죄라고 말하는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 특정한 사람들에게 말한 것입니다. 거듭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대상에게 회개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지 우리가 알고 회개라고 하는 단어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1. 회개는 감정이 아니고 결심입니다. 회개라고 할 때 회개는 뭐라구요? 결심, 결단입니다. 내 영의 상태, 내 마음의 상태와 연관 있는 것입니다. 어떤 행동에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연관 있는 부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쓰여지는 회개, 세례요한서부터 시작해서 예수님, 베드로와 사도바울까지 회개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그때 회개라고 할 때 그 회개의 뜻은 헬라어로 결심을 뜻하는 단어를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세요. 회개는 뭐라고요? 결심, 결심이고 결단입니다. 무엇으로부터요? 하나님의 말씀과 상이한 것으로부터의 결심과 결단이겠죠. 그것이 기본이 됩니다. 회개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1) to repent ‘회개하다’ 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metanoevw메타노에오 라는 의미를 쓰고 있어요. 동사(metanoein=메타노에인)=자신의 마음을 바꾸다. 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2) 구약에서의 회개는 되돌아가다(행위가 기준) 다른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되돌아가다. 행동, 행위에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회개라는 단어를 행위에 기준에 두고 있는 반면 신약에서 말하는 회개는 결단, 마음가짐. 여기에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3) 탕자의 비유(눅15:11-32) 18절“내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서” 20절“일어나서 아버지께로 가니라”
(눅 15:18개정)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서” 이것은 무엇입니까 그 탕자가 마음으로 돌이킨 것입니다. 본인이 잘못된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이제 어떻게 해요? 아버지께로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눅 15:20개정)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눅15:20) 일어나서 자기 아버지께로 가니라. 20절에는 “일어나서 자기 아버지께로 가니라” 결단에 대한 결과를 가져 옵니다.
첫 번째는 어떤 결단을 하게 됩니까? 내가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가야겠다고 하고, 그렇게 마음의 결단을 합니다. 내가 이와 같이 말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어요. 그리고 그 결단에 20절에는 “일어나사 자기 아버지께로 가니라” 결단에 대한 결과를 가지고 옵니다. 회개는 마음의 결심이고 결단입니다.
우리가 회개라고 이야기할 때 감정적으로 무엇을 뉘우치는 것을 회개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감정적으로 무엇을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는 거라구요?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결단 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고뇌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는거라구요? 마음으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그 결심은 행동을 가져 옵니다
4) 회개는 후회와 다릅니다. 가롯유다의 후회 (마27:3-4)“스스로 뉘우쳤다 (repentedhimself)” 헬라어 (metamevllomai메타멜로마이 metamelein=메타멜레인)=후회, 고뇌
회개는 후회와 다릅니다. 가롯 유다에 관한 이야기는 마27:3-4인데 어느 번역본에 보면 회개라고 번역한 성경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쓰여진 말은 회개가 아니라 후회라는 단어로 쓰여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 27:3)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뉘우치는 것은 회개가 아니라 감정적인 호소인것입니다. 뉘우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되는 무엇입니까? 마음의 결심이죠. 마음의 결심이 행동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5) 에서의 장자권 판매 (히12:17)“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에서는 성경에서 보니까 “버린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자기 마음을 바꿀 길을 찾지 못햇느니라)” 고 이야기 합니다.
회개가 뭐라구요? 결심입니다. 에서가 어떤 일을 합니까? 야곱에게 장자권을 팔죠. 팥죽한 그릇에 장자권을 팝니다. 그리고 본인이 그런 행동을 하죠. 그 다음에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자기가 축복을 받으려 할 때 그가 어떻게 합니까? 그가 축복을 이어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가룟유다와 같이 후회하고 뉘우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뭐할 기회가 없습니까? 회개할 다른 말로 말하면요? 결심, 어떤 것을 결심해요. 내가 장자권을 되찾아오고 그것을 취할 수 있는 결심할 수 있는 기회는 지나가 버린 거에요. 그래서 회개의 때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세례요한부터 시작해서사도바울 까지 회개라는 단어를 어디에 쓰는지 보겠습니다.
2. 진정한 회개가 먼저이고 그 다음이 죄사함입니다. (막 1:4) 침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1) 진정한 회개가 없으면 진정한 믿음도 없습니다(공허한 고백). 2) 세례요한의 사역: (막1:4) 요한이 광야에서 침례를 주고,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회개의 세례-침례, 이 대상이 누군가요? 세례요한이 회개의 세례-침례를 전파하는 대상이 누구에요?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직까지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지 않으셨죠. 그리고 장사되고 부활하시기 이전의 일입니다. 요한이 광야에서 침례를 주고,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그때 너희들이 구원자를 맞이하게 될 것이고 너희들이 결단하고 돌이켜서 구원을 얻으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향하여서 어떤 말을 하고 있습니까? 회개의 세례-침례-를 전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단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떠나 있는 것을 결단하여서 어떻게요? 복음으로 돌이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첫 메시지 (막 1: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세례요한이 감옥에 잡혔을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회개하고 어떻게 하라구요? 복음을 믿으라 합니다. 회개하는 것이 뭐라구요? 결심하는 것입니다. 어떤 결심을 하는 거에요? 복음을 믿을, 하나님께로 나아갈, 이 복음으로 나아갈 결심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대상은 누구입니까?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고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대상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한 것이 아닙니다.
4)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 (눅 24:46-47) 또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하는 것과 죽은 자들로부터 셋째 날에 살아나는 것이 기록되었으며, 또 그렇게 되어야 마땅하니라.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민족 가운데 그의 이름으로 회개와 죄사함이 선포되어야 하리라.
주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 하신 명령입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아직 구원받지 못하고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을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결단하여서 복음의 자l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5) 베드로의 대답 (행2:38) 베드로가 그들에게 답변하기를 “회개하라. 그리고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베드로의 대답은 회개하고 결단하고 그 결과로 죄 사함을 이루고 그리고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으라 라고 말합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회개는 누구를 향한 회개이냐면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 향한 결단의 촉구입니다.
6) 바울의 복음 전파 개요 (행20:21) 유대인과 또한 헬라인에게도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증거하였노라. 사도바울도 회개라고 하는 단어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 하나님을 향한 결단을 전하면서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후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7) 그리스도인은?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리스도의 교리가 정확하게 공부되고 학습되고 조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상당한 혼란을 같습니다. 회개라는 말을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해서 사용해 왔습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회개라는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다른 말로 하면 결단함으로 말미암아 결심함으로 말미암아 내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영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 되었습니다.
신약에서의 회개는 아직 거듭나지 못한 다시 말해서 우리 본성, 거듭나지 못한 본성 또는 죄성에 있는 그런 세상과 사람들을 향해서 결단하여서 복음으로 돌이키라는 촉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회개하여 결단하여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그런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제 요일1:9절에서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자백은 헬라어로 oJmologevw (호몰로게오)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님을 믿고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을 영접, 받아들인 사람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을 받을 뿐만아니라 그 영이 새로운 탄생을 입어요. 그것을 가리켜서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born again’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3장에서 사람이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구원받지 아니하면 이라고 하셨나요? 아니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 구원과 함께 새로운 탄생을 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 하니까? 니고데모가 말합니다. 예수님 "사람이 늙었는데, 그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질문합니다. 아닙니다.
영적인 것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한 것 너희가 거듭나야 한다는 말은 우리 육체를 말하고 있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우리 혼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영을 가리켜서 하는 말입니다. 영적인 개념을 모른다고 한다면 거듭남의 개념도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할 때 구원받고 거듭났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일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것을 쓰는 것은 이유가 뭐라구요? 너희 안에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함이라 영생이라는 말과 생명이라는 말은 같은 단어입니다. 헬라어로 생명- zwh(Zoe 조에) 영생- vaijwvnio" zwh(아이오니오스 조에) 이 조에는 하나님의 생명 이런 뜻입니다.
12절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너희 가 영접하였다고 한다면 그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너희 안에 뭐가 있다고요? 생명이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없다면 생명이 없다.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여기 너희는 구원받고 거듭난 우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이라는 말을 잘 아셔야 합니다. 생명이라는 말과 씨라는 말을 같이 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씨앗 안에 뭐가 있어요?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너희가 썩어질 씨로 나지 아니하고 썩지 아니할 씨라고 말씀합니다.
썩어질 씨라고 하는 것은 남자의 정자를 가리켜서 하는 말입니다. 일반씨도 다 썩어질 씨죠. 썩지 아니할 씨는요? 하나님의 말씀, 생명, 어떻게 썩지 아니할 씨가 하나님 말씀인가요?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말씀합니다. 씨를 뿌릴 쌔 더러는 길가에 더러는 돌밭에 더러는 가시밭에 더러는 좋은밭에 비유하시면서 그 씨는 말씀이라고 말해줍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거듭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가졌다는 이야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졌다는 이야기이고 그분의 말씀으로 태어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태어나셨나요? 마리아로부터, 마리아로부터 태어났지만 마리아의 그 모태는 남자를 모릅니다. 그래서 동정녀 마리아라고 이야기 합니다. 요1:14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 말씀은 요1:1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예수님도 그분의 태생이 어디입니까 말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도 거듭날 때 내 영은 어디서부터요? 말씀으로부터 누구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근원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내 육체와 혼은 변한 것이 없어보이지만 나의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썩지아니 할 씨를 받아서 기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씨를 가리켜서 우리가 생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 다른 말로하면 ‘조에 생명’ 다른 말로하면 DNA입니다. DNA는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달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씨로 거듭나나 자들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DNA인자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어떠하심과 같이 너희도 그러하니라 이 말씀 이상하지 않습니다.
(요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당연한 일 인것입니다. 그보다 더한 일, 큰 일을 할 것이다. 마땅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에는 독생자이셨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독생자 예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부활하신 직후부터는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독생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뭐라고 이야기해요? 맏아들, 첫째아들 이라고 부릅니다. 주님이 맏아들이 되셨다면 그 밑에 줄줄이 사탕, 그들이 누구인가요? 우리들입니다 할렐루야!
제가 해피타임에서는 누구에게 형제님 자매님으로 부릅니다. 아닙니다. 그냥 하는 용어가 아닙니다. 우리 아버지가 누구에요? 하나님 그러니 우리는 자녀이고 형제입니다. 자녀이자 형제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거듭난 영이며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영이며 하나님의 씨이며 하나님께서 디자인 한 본성과 생명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독생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계신 예수님을 죄로 삼으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서 그리고 우리가 믿지 않았던 우리가 하나님으로 멀어져 있던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 멀어져 있던 우리가 어떻게 되었나요? 회개함으로 어떻게요? 결심함으로 우리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뭘로요? 주님으로 그리고 부활하신 것을 우리가 믿고 결심한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느냐하면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내 안에 있고 내가 그분의 말씀 가운데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죄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의가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의이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되었나요? 행위로 되었나요? 노력으로 되었나요? 아닙니다.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믿음으로 의에 이른 것입니다. 어떻게요? 내가 죄인이었으나 회개를 통하여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에 이르게 된 것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성취하고 누리는 자가 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몸에 행위의 실수를 가지고 우리를 불의하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면 내 영이 의롭게 된 것과 내 행동과는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하는 잘못을 행실들로 인하여서 정죄 받습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여기 우리는 구원 밖에 있는 사람들을 가르켜서 한 말이 아닙니다. 구원 안에 있는 사람들을 가르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요?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잘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서 뭐라고 합니까? 회개하면 아니고 자백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깨끗케 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혹 우리가 잘못을 저지른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요? “자백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죄 용서와 깨끗케 하심을 뭐하면 될까요?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무엇으로요?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느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내가 잘못한 행실이 생각난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요? 자백하는 것입니다. 자백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내가 만약에 남의 것을 훔쳤다면 내가 훔쳤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자백하는 것인가요?아닙니다. 내가 돌이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고 나는 하나님의 의라고 나는 이런 일을 다시는 하지 않겠어 말하면서 결단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주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정죄감)로부터 깨끗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롬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어린아이들은 실수를 많이 합니다. 일부러 또 모르고 어린아이들은 자전거 타다가 잘 넘어집니다. 그러나 장성한 자들은요? 잘 넘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성장을 도모해야 합니다. 의의 감각을 달련 시킨 사람들은 죄를 짖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