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 갤러리아 글쓰기 회원분들과 함께 영화 '변호인'을 단체관람했다. 영화를 보기에 앞서 먼저 온 회원들이 늦게 오는 회원들을 기다리느라 매표소 앞 등받이 없는 소파에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그 모습들은 먼 유원지로 소풍 가는 날 아침, 선생님들의 출발 신호를 기다리며 설레던 학창시절의 한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그 때 우리들은 운동장이거나, 버스 정류장이거나, 아니면 기차 역 대합실에 나와 재잘대고 웃고 떠들곤 했다. 일상을 떠나 어디론가 간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익숙한 얼굴들이 매일 만나는 '여기'가 아닌 낯선 '다른 곳'에서 함께 모여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즐거웠었다.
그런 기분들, 마음만이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한참 먼 과거 학창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을 나만 받은 것일까. 우리 일행은 중년의 남녀들이니까 모두가 기억을 공유하는 학창시절로 되돌아 가자면 '국민학교'적일 수밖에 없으리라. 우리들 저마다가 나온 중고등학교의 성별구조는 '여학교', '남학교' 각자 다를 수 있겠지만 '국민학교'만은 예외없이 남녀공학(!)일테니 말이다.
이제는 없어진 명칭의 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나 와 있는 듯한 기분은 묘한 것이었다. 그 기분의 바탕에는 돈을 버는 일을 비롯한, 현실적인 이익 따위를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들뜬 마음으로 무언가를 함께 하고 있다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는 듯 했다. 이런 경우의 만남의 목적이란, 이를테면 무목적의 목적, 바로 그것일 터이다. 굳이 칸트가 말한 미의 본질에 대한 고전적 정의 중 하나인 '무목적성'을 들먹이지 않아도 좋겠다. 오늘 우리 글쓰기 회원들은 '미와 문화'의 본질을 몸으로 실천하는' 착실한 모범생이었으니 말이다.
우리 회원들은 이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국민학교 동창생이 된 기분으로 영화를 함께 보는 사이인 것이다. 여행인생 예술인생이란 바로 이런 것이야, 라고 자랑하고 싶은 걸 참고 꾹 참으면서.
연미영 선생님과 이재정 선생님이 미리 오셨고 나는 한연교 선생님과 백화점 정문 앞에서 우연히 만나 공동 5위로 약속장소로 올라갔다. 도착 순위를 명시하는 이유는 앞 문장에서 거론하지 않은 제임스 반장님이 1착으로 거기 와서 회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따로 적시하기 위해서다.
제임스 반장님은 미리 구해 둔 표를 배급하고 상영시작시간과 마침시간을 설명하고, 마치고 나서의 점심식사 장소와 일정까지를 미리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뿐인가. 이미 '변호인'을 관람한 회원 두분을 위해 따로 '용의자' 티켓을 예매해 놓는 꼼꼼함과 자상함이라니! '잘 둔 반장 하나 열부반장 안부럽다'고 며칠 전 공동 카톡방에 올렸는데, 오늘 이 문구에 뭔가를 더 첨가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우리는 영원히 여행초등학교 예술반 어린이들이지만, 나아가 제임스 반장님의 반 어린이들이고 싶다!'
김도희 선생님과 조미숙 선생님을 기다리며 옹기종기 모여 앉은 우리들은 담소를 나누었다. 이제 곧 관람하게 될 '변호인'이나 '용의자'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아침 일찍 나오기 어려운 일상의 바쁨과 번거로움에 대하여. 소소한 살림살이 속에서 이렇듯 짧게 누리는 영화관람의 즐거움에 대하여. 나와 한연교 선생님은 조금은 일을 삼아 영화 팜플릿을 몇장 모았다. 그것을 제본하면 그 자체로 훌륭한 영화 교과서가 된다는 제임스 반장님의 전언이 마음에 닿았고 몸을 당장 움직이게 한 것이다.
영화가 시작될 시간이 되었음에도 두 분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서, 반장님을 등대지기로 거기 남겨두고 한연교 선생님은 '용의자'관으로, 연미영, 김현옥, 이재정,선생님과 나는 '변호인'관으로 들어섰다. 나는 영화관에서 팝콘은 먹지 않으나 작은 생수병을 좌석 손걸이 앞 동그란 수납공간에 꽂아 두지 않으면 뭔가가 허전한, 그런 체질화된 심리가 있다. 검표대를 통과하고 나서 물을 찾으니김 선생님이 다시 매점으로 나가 생수 두병을 사오셨다. 그것이 나를 안심시켰고,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김도희 선생님이 도착하셔서 착석하셨고, 그 또한 마음을 든든하게 했다. 저쪽 '용의자'관에서는 한연교 선생님과 뒤늦게 당도했을 조미숙 선생님이 나란히 앉아 영화 관람을 시작했겠지. 이쪽 '변호인'관의 나란히 앉아 있는 우리의 모습을 궁금해 할까, 안할까.
어쨌든 영화는 시작되었고, 우리는 영화 속으로 빠졌다. 아니 영화가 금세 우리를 빠뜨렸다. 장막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천십사년에서 삼십년도 전인 먼 과거로. 결과적으로 생수병을 꽂고 영화를 본 건 아주 잘한 일이었다. 잘한 일은 또 있다. '변호인'을 함께 관람하기로 영화 목록으로 선정했다는 거.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생수 한병을 다 마셨다. 영화 얘기는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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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난 후, 우리들은 한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함께, 역시 제임스 반장님이 소개한 맛있는 밥집, 갈마동의 '밥생각'에 갔고, 거기서 곤드레 나물밥과 해초비빔밥과 제육볶음비빔밥과 매생이전과 맥주 몇잔과 누룽지 숭늉을 아주 아주, 매우 매우, 얌냠얌냠, 맛있게, 맛나게, 알콩달콩, 잘, 자알 먹었다. 이 문장을 쓰는 것은 오늘 못오신 최규난 선생님을 빼고, 다른 이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다.
첫댓글 ㅎㅎㅎ~~~웃음이 먼저 나오는군요^^
사실 영화 스토리는 이게 아닌데요
영화 무지무지 좋아하거든요
천진난만한 교수님 !!!
비오는 날 싫어하는데 웃고 지나가도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