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 심든지
갈 6:7-9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해마다 온 나라가 치루는 홍역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치러지는 시험 중에 가장 규모가 클 뿐 아니라 그 중요성에 있어서도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 이 시험에 대해 미국의 저명한 신문인 월 스트리트 저널이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수능시험이 치러진 13일 한국인의 눈길은 온통 ‘수험생’에 쏠린다. 사회 전체가 수험생들이 높은 점수를 올릴 수 있도록 ‘비상체제’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수능 시험일이 되면 한국 사회 전체가 시험을 보는 것과 같은 비상 상황에 돌입한다. 영어듣기 평가 시간에는 소음 방지를 위해 비행기가 날지 않고 출근 시간이 늦춰진다. 주식시장도 평소보다 한 시간 늦은 오전 10시에 개장되며 정전사태에 대비해 4000명의 한국전력공사 기술진이 시험장 주변 전선을 점검하고 대기한다.” 그러면서 월 스트리트 저널은 이 같은 현상은 시험 한번만 잘 치르면 대학진학과 취업 등이 쉬운 제도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 기사 내용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것이어서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만 제가 주목한 부분은 [시험 한번만 잘 치르면]입니다. 제가 이 기사를 보면서 이 신문이 우리나라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복권 비슷하게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쾌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에 성실하게 공부하지 않다가 수능 시험 한번만 잘 치르는 것은 불가능한데도 ‘시험 한 번만 잘 치르면’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준비하고 공부한 학생이 그만큼 거두지 못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지만, 공부 안하고 매일 놀다가 우연히, 어쩌다가, 운이 좋아서 수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학생들이 뿌린 것과 다른 결과를 거두게 하는 시험이라면 대학에서도 사회에서도 이 시험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 납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은 천연계의 법칙일 뿐 아니라 인생의 법칙이고 나아가 신앙의 법칙입니다. 천하 만물에 이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복권, 경마, 도박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반드시 철저하게 적용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고, 당신이 세우신 법칙을 결코 어기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날마다 무엇인가를 심을 뿐 아니라 날마다 심은 것을 거두며 살아갑니다. 어제 심은 것을 오늘 거두고, 작년에 심은 것을 올해 거둡니다. 오늘 우리가 거두고 있는 것이 어제 심은 것이며, 지난해에 심은 것이며, 지난 세월 동안 심은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심은 것을 내일 거둘 것이며, 내년에 거둘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거둘 것입니다. 날마다 심고 거두며, 순간마다 심고 거두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리고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정해 놓으신 법칙입니다. 법칙이라는 말은 [반드시, 예외 없이 그렇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심은 것을 거두지 않을 수 없는 반면, 심지 않은 것을 거둘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권면의 말씀이 갈 6:7-9절입니다.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오늘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써 우리의 사명을 새롭게 하고 헌신을 다짐하는 안식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청지기로써 우리가 심고 거두어야 할 두 가지를 강조해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우리는 거룩한 안식일 준수를 심어야 합니다.
이사야 58:13-14절 말씀입니다. “[13]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우리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 즉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우리의 특징은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린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의 기념일인 동시에 구속의 기념일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우리를 세상과 구별되게 하는, 우리 신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결코 포기해서도, 소홀히 해서도 안 되는 재림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요즘 재림성도들의 삶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교회 남의교회 할 것 없이 대부분의 교회들에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안식일과 다른 날의 경계와 구분이 거의 사라지고 있습니다. 안식일에는 교회에 와서 예배드린다는 것이 여느 날과 다를 뿐, 예배 시간 그 이외에는 안식일과 여느 날 사이에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여러분도 각자 생각해 보십시오. 안식일의 대화의 평일의 대화에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오늘이 안식일이기 때문에 안하는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오락을 구하지 말고, 사사로운 말을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안식일 시간인 금요일 저녁을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많은 재림성도들이 안식일에 텔레비전을 켭니다. 많은 재림성도들이 안식일에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예배를 포기합니다. 많은 재림성도들이 금전적 이익을 위해 안식일을 양보합니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재림성도들이 안식일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물건을 삽니다. 이런 저런 구실과 이유로 시급하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에 하는 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안식일을 준비할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 안식일에 재림교인들이 어울려 족구하고 축구하는 일들도 심심찮습니다. 이것이 오늘 재림교회가 심고 있는 안식일의 현주소입니다. 우리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이 이런 안식일을 이렇게 심고 무엇을 거둘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삶에, 우리의 신앙에, 온전한 안식일을 심어야 합니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려야 했던 믿음의 사람들의 기개와 정신이 오늘 우리의 마음에 살아 있어야 합니다. 교회증언 1권, 287페이지에 있는 권면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라도 주님께서 성별하신 주님의 안식일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떠나게 하는 노동이나 사업상 거래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세상적인 사물에 머무는 것조차 허락해서는 안 된다.”
몇 주 전에 소개해 드렸던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님이 경험 일부를 다시 들려 드리겠습니다.
저는 이제 이런 공산주의자들의 감옥에 갇혀 있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신자들에 대해 잠시 몇 가지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믿기로는 많은 재림 신자들이 감옥에 있었습니다. 감옥에는 전도자(설교자)들뿐 아니라 일반 평신자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믿기로는 하나님께는 계급이나 서열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있어서 그들은 모두가 귀하며 계급으로 그분의 백성이 분류되지 않습니다. 저는 먼저 여러분께 우리 모두가 몇 제칠일 안식일예수 재림 교회 신자들 앞에서 크나큰 경외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말씀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있었던 강제 노동 수용소의 작업장에는 150,000명의 죄수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대 수로(水路)를 파는 공사에 배정되었습니다. 그곳에는 부활절도 없고 일요일도 없으며 일반 공휴일도 없어 하루라도 쉬는 날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하루 15-16시간씩 일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배가 고팠고 매도 많이 맞았습니다. 이 수로 공사장에는 6명의 재림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만이 “우리는 토요일(안식일)에는 일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유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일요일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 다른 그리스도인들도 일요일에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여섯 명의 재림 신자들은 “우리는 토요일에 일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그들이 매 안식일마다 얼마나 모질게 매를 맞았는지를 말로 묘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달력을 갖지 못했습니다만 어느 날이 토요일인지 알았는데 그 까닭은 이들 재림 신자들이 토요일에 매를 맞을 때의 울부짖음과 신음소리를 듣게 되기 때문에 그날이 토요일인 줄 알았습니다. 감독관들은 재림 신자들을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때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편안하게, 아무런 장애물도 방해도 없이 지키는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지금도 고통당하고 박해받는 수많은 재림성도들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큰 대가와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를 생각하십시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식일 신앙을 회복합시다. “제칠일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하신 넷째 계명에 순종합시다. 불편하고 힘들어도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킵시다. 손해를 입더라도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킵시다. 여러분의 삶에 거룩하게 지키는 안식일을 심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우리는 온전한 십일조와 성실한 헌금생활을 심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고백하는 신앙행위가 안식일 준수라면, 우리의 소유가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고백하는 신앙행위는 십일조와 헌금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과 십일조 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붙들어 주는 가장 중요한 제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책임지시고, 십일조를 구별하여 드릴 때 우리의 소유를 책임져 주십니다. 이것이 심는 대로 거두는 법칙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생명을 책임져 주시지기를 원하십니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소유를 책임져 주시기를 원하십니까?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의 창고에 들이십시오.
다시 말씀드립니다. 십일조는 내 소유의 전부가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고백하는 신앙행위입니다. 십일조만이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전부가 하나님의 것임을 십일조를 통해 고백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하늘 은행에, 결코 손해가 나지 않는 하늘 펀드에 저축하는 것입니다. 요즘 주가가 폭락하면서 주식과 펀드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입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하늘 은행에 투자하고 저축하는 모든 것은 안전합니다. 결코 손해가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말라기 3:10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얼마나 든든하며 자신 만만한 말씀입니까? 세상의 어느 펀드 매니저가, 어떤 주식 중개인이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이며,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려면,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삶을 살고 싶으시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십시오. 하나님의 백성으로 떳떳하게 살고 싶으시다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당당하게 살고 싶으시다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십시오. 하나님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당신의 약속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십일조와 함께 우리가 심어야 할 것이 헌금입니다. 헌금에는 감사헌금, 예배헌금, 외방 선교헌금 등이 있지만 특별히 월정헌금에 대해 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구별해야 하는 것이 십일조라면, 우리가 마포교회 교인이기 때문에 드려야 하는 것이 월정헌금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는 합회라는 큰 하나님의 창고에 드려지는 것이고, 월정헌금은 교회라는 작은 하나님의 창고에 드려집니다. 그러므로 모든 마포가족은 하나님의 창고에 월정헌금을 기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월정헌금이야말로 우리가 마포가족이라는 가장 확실하고도 분명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성실하고 넉넉한 월정헌금이 하나님의 창고에 드려질 때 우리의 복음사업이 더욱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마포가족들이 월정헌금을 성실하게 드리고 있음을 인해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올 한 해 동안 우리교회는 아주 기본적인 교회 운영 외에 어떤 특별한 사업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것처럼 큰 전도회도 없었고, 구역반 전도회도 하지 않았습니다. 외부 강사를 초청하는 주말 부흥회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드린 월정헌금과 감사헌금으로 교회 운영한 것이 전부입니다. 각종 공과금 내고, 밥 먹고, 필요한 물품 조금씩 산 것이 전부입니다. 대외적인 선교활동에 들어간 것이라고 해봐야 빵 나누는 일에 비용 조금 든 것이 전부입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럴 경우에 교회 재정이 상당히 비축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현재 우리교회 재정 잔액이 얼마나 되는 줄 아십니까? 이 십 만 원 정도입니다. 지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 년 내내 몇 십 만 원 범위 안에서 적자와 흑자를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가스 요금이 많이 나오는 계절에는 적자였다가 봄이 되면 약간 흑자로 돌아섭니다. 그러다가 여름이 되어 에어컨을 켜면 다시 마이너스가 되고 서늘해지면 아주 약간 플러스가 됩니다. 하지만 그것도 합회에서 보내준 선교 지원금이 있기에 가능한 상황이고, 그것이 없었다면 이미 200만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주 헌금 결산서를 볼 때마다 참 마음이 아픕니다. 이것이 여러분과 제가 섬기고 있는 우리교회의 현실입니다.
여러분, 2009년도에도 하나님의 교회의 살림을 이렇게 두시겠습니까?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은 법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의 재정을 이렇게 심어서 무엇을 얼마나 거둘 수 있겠습니까? 월정헌금에 대한 깊고 넓은 헌신, 대대적인 개혁이 있어야 합니다.
우선 모든 성도들이 월정헌금을 드려야 합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배를 대신 드릴 수 없는 것처럼 헌금도 대신 드릴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가족 대표로 월정헌금을 드리는 것은 잘못된 헌금 생활입니다. 헌금은 철저히 개인적인 신앙고백입니다. 어린 아기라도 개인적인 헌금을 드릴 수 있도록 부모가 계획하고, 돕고, 가르쳐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헌금 드리는 것이 익숙하고, 자연스럽고, 즐거워야 합니다. 그래야 어른이 되어서도 그와 같은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2009년도에는 마포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십일조와 월정헌금에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는 월정헌금의 표준을 높여야 합니다. 물론 우리교회의 많은 성도님들이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십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심는 대로 거두는 법칙을 믿는다면 더 많이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헌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헌신하는 만큼, 우리가 심는 만큼, 하나님께서 거두게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포가족 여러분, 월정헌금의 표준, 월정헌금의 헌신도를 높이도록 합시다. 지금처럼 드리면 우리교회는 내년에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합니다. 예배드리고, 밥 먹고, 각종 공과금 내는 것이 전부인 교회가 되고 맙니다. 이 얼마나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사업에 필요한 재정은 우리의 지갑에서, 우리의 예금통장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책임인 동시에 특권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다시 한 번 갈 6:7-9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대로 심고, 말씀대로 거두는 우리 마포교회가 됩시다. 안식일을 심어 존귀함을 거두고, 십일조를 심어 풍성함을 거두는 마포가족이 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청지기직분을 믿음으로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 상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