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림지는 상주의 공검지(恭儉池)나 밀양의 수산제(守山堤), 김제의 벽골제(碧骨堤)와 같은 시기의 것이지만 제방의 크기에 비해 몽리면적이 큰 것은 제방을 쌓은 위치의 수위가 높기 때문이다.
유리전망대에 오르면 용추폭포가 밑으로 까마득해 아찔하다
현재는 물의 주입부에서부터 토사(土沙)가 쌓여 작아진 것이다. 제방은 산줄기 사이의 낮은 위치에 자갈과 흙과 모래·벌흙을 섞어서 층층으로 다지되 제방 외면이 크게 단(段)을 이루도록 하였다.
憶林湖(의림지를 생각함)- 오상렴
舟井 茅仙洞에 舟井茅仙洞
푸른 산이 樓臺에 둘러있네 靑山振屧樓
아래에는 천길 폭포수 흐르고 下臨千丈水
그 호수엔 외로운 배 홀로 떠 있네 中有一孤舟
안개와 달은 아무도 돌보는 사람 없고 霞月無人管
호수의 하늘엔 이 해가 저무네 湖天此歲遒
서쪽 창가 어젯밤 꿈 속에선 西窓昨夜夢
얼음과 눈이 물가에 가득했네 氷雪滿汀洲
四月之晦遊林湖(4월 그믐에 의림지에서 놂) - 오상렴
호수는 깊어 끝이 없는데 湖水深無極
외로운 배는 낮과 밤으로 떠 있네 孤舟日夜橫
사람들은 한가로운 흥치 많아 游人多逸興
맑은 휘파람이 갓끈을 날리네 淸嘨散塵纓
가고 가서 홍유동에 이르고 行到紅流洞
누어서 꾀꼬리 소리를 듣네 臥聽黃鳥聲
고기잡이 보다가 좋은 생각 있어 觀漁未得意
말을 나란히 세워 집으로 돌아오네 並馬返柴荊
陪踈隱(許奎)滄浪(김봉지)遊林湖實七月旣望也(踈隱과 滄浪 두 어른을 모시고 의림지에서 놀았으니 때는 7월 기망이었다)- 오상렴
내 묻노니 林地의 즐거움이 借問林池樂
赤壁의 놀이와 비교해서 어떠한가 何如赤壁遊
蓂莢(堯임금때 조정의 뜰에 났다는 瑞草의 이름, 初一日부터 매일 한 잎씩 나서 자라고 十六日부턴 매일 한 잎씩 져서 그믐에 이르면 다 지기 때문에 이것에 근거해 달력을 만들었다 함)이 시들었는데 겨우 한 잎이요 蓂凋纔一葉
달은 밝아 스스로 千秋가 지났네 月白自千秋
서늘한 나무 그늘에 솔바람 불어오고 凉樾微風進
평평한 호수에 쌓인 기운 떠있네 平湖積氣浮
廬山(江西省 九江府에 있는 名山, 여기에는 큰 폭포도 있다) 이 여기에서 다시 멀지 않은데 廬山更不遠
나무 끝에 물이 날아 흐르네 林杪桂飛流
獨樂亭 亭上有四佳詩(정자 위에 徐四佳 居正의 詩가 있음)- 오상렴
산이 들을 둘러싸도록 넓고 山圍平野濶
정자는 큰 강물 흐르는 것을 눌렀네 亭壓大江流
先輩들의 文章은 예스럽고 先輩文章古
서쪽 바람에 풀과 나무가 시드네 西風草樹秋
어지러운 매미는 떨어지는 날 되기 전 울어대고 亂蟬鳴落日
성긴 갈매기는 차디찬 물가에서 서있네 疏鷺立寒洲
하늘 끝으로 돌아갈 것 생각하는 나그네가 天末思歸容
구름과 연기에 모든 시름 자아내네 雲烟倂起愁
四月之晦遊林湖(4월 그믐에 의림지에서 놂)- 오상렴
물가에 풀이 자라 오리와 갈매기가 흩어지는데 汀洲草長散鳬鷖
거꾸러진 물과 푸른 산이 그 모양 비녀와 같네 倒水蒼巒勢似笄
물가 마을에서 불을 빌어다가 흰 밥을 짓고 乞火沙村炊白粲
개암나무 우거진 산길은 푸른 진흙이 덮여 있네 披榛山路劇靑泥
숲의 雲氣가 흩어지지 않으니 蘿衣(이끼의 일종)가 젖고 林霏不散蘿衣濕
山峽의 해가 한 낮이 되니 나무 그늘도 정갈하네 峽日方中樹影齋
미친 바람이 병든 나그네에게 불까 두려워하여 肯怕狂風吹病客
洞天 깊은 곳에 돌로 방을 삼았다네 洞天深處石爲閨
湖上有作(호수 위에서 지음) -오상렴
솔솔부는 화창한 바람 가늘게 불어오는데 習習和風細細吹
꽃다운 들판 개인 하늘엔 제비가 못 위를 나르네 芳郊晴日燕差池
숲 사이 떨어진 낙엽은 봄인데도 아직 쌓였고 林間墜葉春猶積
호수 위의 가벼운 배는 늦게 다시 옮겨 가네 湖上輕舟晩更移
비가 산에 있는 석류나무에 내리니 붉음이 조각조각이요 雨裛山榴紅片片
연기가 제방 버드나무에 피었으니 푸른 빛이 아롱아롱 烟含堤柳綠僛僛
風流가 山公과 함께 다 같이 좋으니 風流合與山公並
말타고 모름지기 다시 돌아오리 騎馬應須倒接䍦(?)
식사시간이 되어 점심을 근처 두부마을에서 했다
그리고 박물관에 들어갔다 우리 선조들의 글이 전시되어 있을까 확인할 겸 들어갔다
제천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 가꿔나가기 위해 공립박물관을 건립하면서 제천지역의 대표 문화유산인 의림지를 큰 주제로 삼았다 홍보한 박물관이다.
그러나 박물관 내에는 김원행, 한원진 같은 서인학파의 글들만 전시되어 있었다 김원행은 조선후기 안동(장동)김씨 세도정치의 싹을 마련한 이고 한원진은 김원행의 조부인 김창협, 김창흡 학맥으로 서인 노론학파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나마 박물관을 나올 때 학고 김이만 공의 시 한 편이 전시된 것이 위안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