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다툼 사이에서
한국사의 중화주의(中華主義)를 극복하는 문제
신복룡 전 건국대학교 석좌교수
서희외교포럼 자문위원
신이 인간의 국가
문제에 관하여 내린 가장 무서운 저주는, 이 지구상의 어떤 인접 국가도 화목하지 않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미국과 멕시코, 중국과 소련, 인도와 파키스타, 그리스와 터키, 아랍과 유대, 한국과 일본, ---그 어느 나라도 화목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것은 인간의 원죄(karma)일 것이다. 국가
사회에서는 기뻤고 고마웠던 것보다 아프고 서러웠던 일을 더 오래 기억한다.
한-중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왜 우리가 중국에 고마워해야 할 일이 없겠는가? 아마도 한국이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는
나라가 곧 중국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학을 보면 수양제(隋煬帝), 당태종(唐太宗), 쿠빌라이(忽必烈), 용골대(龍骨大), 마오쩌둥(毛澤東)에 이르기까지 아픈 역사를 더 가르치고 오래 기억했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종교적 이상주의에서나 볼 수 있지,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은원(恩怨)의 5천 년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추억보다 쓰린 기억이 더 많다. 선린(善隣)이란 외교적 수사(修辭)일 뿐 한-중 관계에서 그런 일은 아주 드물다.
신라가 당(唐)나라에 청병(請兵)하면서 한국사에 싹튼 중화주의
중화주의의 시초는 신라 중엽, 고구려의 핍박을 받은 신라가 당나라에 기댄 때로부터 기산(起算)해야 한다. 백제와 고구려에는 중화주의나 사대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조선에 중화주의가 뿌리를 내린 것은 7세기 이후부터 이항로(李恒老)까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신라는 한 다리
건너 떨어진 당나라와 친교했고, 마찬가지로 백제는 한 다리 떨어진 일본과 친교했다는 점이다. 이웃은 결코 우방이 될 수 없다.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자 김춘추(金春秋, 태종)가 당나라에게 칭신(稱臣)한 때로부터 중한종속이 시작되었다. 고려의 건국은 신라 구신(舊臣)들의 생존 전략이었으므로 신라와 다를 것이 없었다. 거기에 이성계(李成桂)의 조선 건국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다. 이성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용비어천가>),
여진(女眞)의 후손인 그는 건국의 명분이 뚜렷하지 않았다. 고려로서의 쇠퇴라면, 500년의 왕조가 지난 다음에는 “왕국이 지루해지는 현상”이라는 역사의 사이클이었을 뿐이다. 외교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성계는 신흥 토지 귀족에게 “자주”를 표방했다는 이유로 쫓겨난 광해군(光海君)에 미치지 못한다.
오늘날 중국과 미국의 패권 다툼 사이에서 한국의 선택은?
봉신국이 되어 스스로 굽힐 뜻이 없는 한, 소국이 강대국의 이웃이 되어 좋을 것이 적다.
쿠키 몇 개를 얻을 수 있겠지만, 잃는 것이 너무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자주의 상실이고 그에 따른 모욕이다. 베네룩스 3국이나 오스트리아·스위스는 왜 행복한가? 강대국으로부터 조금은 빗겨서 있기 때문이다. 강대국의
이웃이 행복했다면 멕시코나 몽고나 동남아가 빈곤하고 불행했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리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Pericles)의 주장에 따르면, “강대국은 베푸는 것으로 동맹을 삼지 받는 기쁨으로 동맹을 삼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중국은 베푸는 나라가 아니다. 중국의 레이더는 한국을 속속히 들여다보고 있으면서, 우리는 왜 사드(THAAD)를 가져서는 안 되는가? 그들은 아직도 임오군란(壬午軍亂)과
갑신정변(甲申政變) 시대의 리훙장(李鴻章)이나 위안스키의 의식(意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통일이 되더라도 그러한 오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지금임에랴?
다만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서 누가 이길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사실이다. 이 싸움은 길게 갈 것이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중국에 유리할 것이다. 중국은 어떤 사태를 놓고 시계나 달력을 잘 보지 않는 민족이다. 이 점이 상대를 당혹하게 만든 역사적 사례는 허다하다. 그러나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미국이 사태의
해결을 서두를 수도 있고, 그 결과가 누구에게 유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한중 수교로 말미암아 중국의 구심력이 커진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연조(年條)나 거리의 지근성(至近性)으로 볼 때 중국에 유리할
것이다. 당장 지금의 현실이 그런 측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중국에로 한국의 쏠림 현상을 합리화하는 것은 아니다.
21세기 바람직한 한-중 관계와 중화주의를 극복하는 문제
충북 괴산 화양동에 있는 만동묘(萬東廟)의 사당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은 경사가 70도에 가깝다. 건장한 사람도 바로 서서 올라가기 어렵다. 왜 그랬을까? 소중화의 백성이 어찌 중국 천자를 뵈러 올라가면서 똑바로 서서 올라갈 수 있겠는가? “개처럼 기어 올라갔다가 기어 내려오라”는 뜻으로 그렇게 지었다. 우리의 조상들은 그것을 욕스럽지 않게 여겼다.
그렇다면 중국은 우리의 적인가? 외교에서 “적의 적은 동지요, 적의 동지는 적이다.”라는 말이 사실일지 몰라도, 이 말은 끝까지 참아야 한다. 중국이 우리를 “동맹”이나 “아픔을 나눌 형제”로 여길까? 그렇지 않다. 펑유란(馮友蘭)의 책 한 줄 인용했다고 우방이 될 만큼 중국은 그리 가볍지 않다. 후스(胡適)가
1935년 쌍십절 축사에서, “중국이 협상하러 올 때는 그들의 속임수(虛僞)를 조심하고, 일본이 협상하러 올 때는 그들이 당신을 무시(侮辱)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지식인은 민중의 눈으로부터 백내장(白內障)을 제거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 백내장의 정체는 무엇인가? 한-중 관계에서는 “큰 시장”이요, “통일의 지렛대”라는 몽환적(夢幻的) 대국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찌 보면 우리의 중화사상은 주자학이 낳은 갈라파고스 거북 증후군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가장 무서운 편견이 '동굴의 우상'이라고 설파했다. 동굴은 남향인데, 원시인들은 동굴 입구만 보고 저게 동트는 세상이라고 여겼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이제 우리의 살길은 강소(强小) 국가로 가는 것이다. 이제는 봉신의 시대도 아니고, 미국대사관 담장에 올라가 “주한미군철수반대”의 혈서를 쓰는 것이 우국이던 시대도 아니다. 우리의 운명의 주인은 우리밖에 없다. 우리의 국난기에 애국자가 넘쳐나는 때도 없었지만, 애국자가 없었던
시절도 없었다. 또 애국자가 넘칠 필요도 없고 애국자가 없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정치의 현장에는 지사(志士)도, 책사(策士)도 보이지 않는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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