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짐=장보따리
오늘은 순천 아랫장날이다.
버스를 타고오다 참 간만에 장보따리를 보고 가져간 디지탈 카메라로 두 장 슬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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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잘아는 분의 장짐이다. 버스에 오르는 저를 보자 먼저 인사를 건넨다.
저도 얼른 고개를 푹 숙이며 정중하게 답례를 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앞을 보니 장짐이 있다.
오늘은 5일장인 순천아랫시장날이다
이 장짐을 보니 옛 생각도 나고 자가용이 적을 때 장날의 운송수단은 오로지 대중교통 그것도 이 시외버스가 주를 이루었지 싶다.
콩나물시루처럼 사람반 장짐반 한사람이라도 놓칠세라 꽉꽉 눌러 포개고 또 포개고 이렇게 몇 km를 달려 오면 장짐은 다 뭉개지고 헐렁해져 물건이 상하거나 다치는 일이 허다했다.
아니 장날이면 발생하는 현상으로 그렇게 물건이 망가져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말았지 누구를 탓하거나 나무라는 일은 없었다.
어떻게든 이 버스를 타고 장엘 와야했기 때문에 장짐은 잠시 잊어 버린 것이다.
저 보따리속엔 물어보나 마나 지금 이 엄동설한에 무엇이 나겠는가!
가을에 시나브로 모아 놓은 따사로운 햇볕에 말려 저장한 마른 나물 종류겠지.
마른 푸성귀가 포장을 뚫고 삐죽 나와 있다.
이번 겨울처럼 혹한에도 우리 어머님들은 한시도 일손을 멈추지 않고 매번 장날마다 어디서 어떻게 만드는지 장거리를 만든다.
대단한 분들이다. 우리 눈에는 없을 것 같지만 어머님들의 눈에는 장거리가 보인 모양이다.
눈속에 파묻혀 잎 끝만 겨우 보여도 장거리로 만든 우리 모두의 시골 어머님이시다.
저 보따리 속엔 시장에 내다 팔 푸성귀만 있는 게 아니다.
평생을 살아온 삶의 흔적과 설움 눈물이 함께 담겨져 있다.
거칠고 숨가쁘게 살아온 지난날의 삶들이 투영되어 비춰지고 있다.
버거운 삶의 무게만큼이나 저 보따리 속에 든 내용물 역시 무겁게만 보인다.
내가 어렸을 적엔 교통편이 좋지 않아 칠흑같이 캄캄한 진새벽 장짐을 머리에 이고 5km이상을 걸어서 장엘 가셨다.
당시는 시골이라 하루에 오전 1번 오후 1번 그 뒤로 점차 차편이 좋아지긴 했지만 옛 일을 회억하자면 그랬다는 것이다.
리어카로, 우마차(일본말로 구루마)로, 자가용으로, 버스나 용달차로 말이다.
한 닢 두 닢 돈 모으려는 욕심으로 제때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고 먹는 둥 마는 둥 굶거나 끼니를 거르면서 우리 어머님들은 모질게도 살아 오셨다.
정말로 우리 어머님들은 장하고 위대한 분이시다.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바로 이 한국의 인고의 아픔을 안으로 삭이며 서럽게 분하게 살아온 우리 어머님들이 계셨기 때문이 아닌가!
이제는 저 장짐을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무엇하러 뼈빠지게 일하고 또 장엘 가는냐고들 한다.
아들 딸이 주는 용돈으로 편하게 살지 그러느냐고 한다.
그렇게 해도 되겠지. 그 돈으로 기분 좋다고 매일 소고기 사 먹으면서 잘 먹고 잘 살아 가겠지.
이런 생각이 바로 우리 어머님들을 진실로 이해를 못한 경우다. 왜 그럴까!
이건 우리 어머님들의 몸에 밴 생활의 일부분이다.
아니 생활 그 자체인 것이다.
이젠 의료시설의 확대수혜와 노인복지 정책(연금 등)의 다양성 실행으로 많이 좋아졌다.
경제적으로도 옛날보다는 월등히 나아졌다.
하지만 시집와서 부터 몸에 밴 그 일이라 섣불리 그만 둘 수가 없는 것이다.
좋게 보면 운동삼아라고 말을 그럴듯하게 하지만 그래도 노동은 노동이다.
저 장보따리엔 지난 세월이 묻어 있었다.
발없고 바퀴없는 보따리지만 저 보따리를 풀면 금방 우리 어머님들은 알아서 누가 먼저랄 거 없이 소통을 해버린다.
서로가 잘 알기에 단한마디 던지면 척척 알아서 서로가 값을 매기고 흥정이 끝난다.
비록 느리지만 빠른 소통으로 이날은 마냥 즐겁고 신바람 나는 날이다.
이때 막걸리가 어찌 빠질손가!
순대국물에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면 이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다.
장보따리 가장 흔하고 천하게 보일지 몰라도 당신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보물과도 같다
어머님의 땀과 눈물이 알알이 박혀 있는 듯하다.
어쩜 정겹고 친근감있게 보여지기도 하지만 한편 울엄마의 보따리 생각이나 많은 시선을 뒤로하고 이 장보따리를 담아왔다.
이 장보따리는 바로 우리 어머님의 장보따리였다.
따뜻한 국물이라도 드시고 오셨으면 한다.
보따리를 풀어 제끼면 지금까지 못다한 세월의 이야기 보따리가 줄줄이 신작로에 퍼져 나가리라
첫댓글 버스에 실린 장짐이 정감이 가네요. 지기님 글에서 오래만에 들어본 이름들( 장짐, 5일장, 푸성귀 ,구루마)로 인해 옛기억을 회상 하면서 부모님의 고생하신 모습들이 마음에 찡하게 다가옵니다. 철죽 지기님로 인해 잊고 살아온 부모님 옛모습을 다시 회상해 봅니다.이글을 인해 울 아버님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