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탐방기
나권
아빠, 호연이에요. 연락도 안 되더니 갑자기 웬 편진가 싶으셨죠? 걱정 많이 하셨어요? 죄송해요.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요. 차차 말씀드릴게요. 밥은 잘 챙겨 드시고 계세요? 아주머니와 다투시지도 않고요? 아주머니가 섭섭해하시던데 다정하게 잘 대해드리세요. 저야 아빠와 보낸 세월이 있으니까 척 보면 아빠가 어떤 마음인지 잘 알지만 아주머니는 모르시잖아요. 저한테 재혼 의사를 밝히면서 남은 생은 이 사람과 함께 보내고 싶다고 하셨던 것처럼 아주머니께도 그 마음 그대로 보여드리세요. 아주 기뻐하실 거예요.
저는 지금 캐나다에 와 있어요. 해외 출장 간다는 건 거짓말이었어요. 회사도 휴직 상태예요.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해요. 아빠는 항상 걱정이 많으셨죠. 아빠 눈 밖으로 벗어나면 무슨 봉변이라도 당할까 불안해하셨던 거 알아요. 아빠가 달려올 수 없는 자리에서 제가 다치기라도 할까 두려우셨겠죠. 하나 남은 딸이라 더 애지중지 키우신 것도 알아요. 그렇지만 저도 이제 스물아홉이잖아요. 언제까지나 아빠 곁에서만 살 수도 없고요. 캐나다에 간다는 걸 아빠한테 말하면, 그래서 아빠가 붙잡으시면 뿌리치고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무작정 떠나왔어요. 제 결심은 아빠의 반대에 늘상 쉽게 무너지니까요. 죄송해요. 핸드폰은 일부러 집에 두고 왔어요. 그동안 너무 핸드폰을 붙잡고 산 것 같아서요. 너무 많은 시간을 그 작은 화면이 보여주는 세상에 갇혀 살았어요. 잔뜩 꾸며낸 남의 인생에, 신뢰할 수 없는 정보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제 인생을 허비했어요. 그거라도 들여다봐야 이 늘어지는 무력함을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캐나다에 왜 왔냐고요? 음. 일주일쯤 된 것 같아요. 국가 감정 소실 연구소에서 공문이 왔어요.
국가 감정 소실 연구소는 들어보셨어요? 아마 못 들어봤을 거예요. 저도 공문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거든요. 재작년부터 작년까지 온 나라를 휩쓸었던 병 기억나시죠? 바이오라 말이에요. 호흡기를 통해 전염되고 확산 속도도 상당히 빨라서 갓 등장했을 때 난리였잖아요. 치사율이 낮은 탓에 여론은 금방 잠잠해졌지만요. 그 병의 부작용에 대해 아세요? 큰 문제가 없던 것처럼 보이던 바이오라의 부작용이 얼마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대요. 바이오라 종식이 선언된 지 반년이 지난 지금에서요. 바이오라의 부작용은 감정 소실이에요.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인가 싶으시죠. 아빠는 눈치가 빠른 편이니 이미 짐작하시려나요? 맞아요. 제가 바이오라에 감염됐었대요. 부작용도 겪게 되었고요.
공문은 바이오라 부작용이 의심되니 이른 시일 내로 국가 감정 소실 연구소에 방문하여 진찰을 받으라는 내용이었어요. 처음에는 새로운 유형의 사기 전법인가 싶었어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바이오라 부작용이니, 국가 감정 소실 연구소니. 꽤 정성스러운 사기라고 생각했죠. 아시잖아요. 저 아빠 닮아서 그런 거 잘 안 믿는 거. 의심이 많아서 남들보다 조금 더 피곤하게 살기는 하지만 그래도 경계해서 손해 볼 건 없더라고요. 그런데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정말 있었어요. 국가 감정 소실 연구소. 최근에 설립한 공공기관이었어요. 부작용에 관한 정보는 없었어요. 그래서 국가 감정 소실 연구소 사이트에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어요. 공문 내용이 사실이라더군요. 부작용이 심해질 수도 있으니 최대한 빨리 방문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당일에 연구소로 갔어요.
연구소는 생각보다 따뜻한 분위기였어요. 동네 산부인과랑 비슷했어요. 다들 친절했고 햇볕도 잘 들었고 조명도 주광색에 가까웠어요.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었어요. 의사 가운 비슷한 걸 입은 연구원이 저를 방으로 불렀어요. 제가 한 달 전쯤에 두통이 심해져서 CT를 찍었던 거 기억하시죠? 끝내 원인을 찾지 못해서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으로 추측된다고 했었잖아요. 연구원이 그 얘기를 꺼내더라고요. 두통이 바이오라의 초기 부작용이라고요. 아마 저는 무증상환자여서 바이오라를 앓고 있을 당시에 몰랐던 것 같다고요. 그러면서 엄청 두꺼운 책을 꺼내서 읽혔어요. 저는 몇 시간 동안 방에서 책을 줄줄 읊기만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식한 방법이다 싶은데, 여전히 더 좋은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 걸 보니 그게 최선이었던 것 같아요.
두 시간이 좀 안 됐을 때였어요. 잘만 움직이던 입이 한 단어 앞에서 굳더라고요. 여러 번의 시도에도 그 단어를 발음할 수 없었어요. 지금까지도 여전히 발음되지 않아요. 연구원은 확신을 가지고 진단을 내렸어요. 감정소실. 사람의 감정을 담당하는 뇌 부분은 편도체래요. 편도체는 대뇌변연계 깊숙한 곳에 있어요. 변연계는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기쁨, 슬픔, 분노, 행복 등 다양한 감정을 관장하는 신경망이 고리처럼 연결돼 있대요. 그래서 편도체는 감정의 관문이라고도 불린대요. 갑자기 무슨 소린가 싶으시죠? 바이오라 부작용이 이 편도체 신경을 꼬는 거래요. 신경이 꼬이면서 감정의 일부분을 소실시킨대요. 네. 제 감정 중 하나가 소실되었어요. 뇌가 그 감정을 인지하지 못해서 입으로 내뱉을 수도, 손으로 쓸 수도 없게 되었어요. 그래서 아빠에게 어떤 감정이 소실됐는지 알려드릴 수가 없게 되었어요. 궁금하시죠? 되찾게 되면 아빠에게 가장 먼저 알려드릴게요.
할 말이 많이 남았는데 이만 편지를 끝내야겠어요. 오랜만에 볼펜을 잡으니까 손이 너무 저리네요. 어릴 때는 곧잘 편지를 쓰곤 했는데 핸드폰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는 문자가 더 편해서 손으로 쓰는 행위를 멀리하게 된 것 같아요. 그 시절 검지, 중지에 박혔던 굳은살도 이제는 많이 물러졌어요. 정말 손이 아파와서 그만 써야겠어요. 아빠 저는 잘 있어요. 그러니까 제 걱정은 마세요. 목도리를 같이 보내요. 하나는 아빠 거고, 하나는 아주머니 거예요. 날이 추우니까 꼭 따뜻하게 매고 다니세요. 감기 조심하시라고 아주머니께도 전해주세요. 또 편지할게요.
-캐나다 퀘벡에서, 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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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답장은 잘 전달받았어요. 저는 지금 게스트 하우스에 묵고 있어요. 생각보다 동양인이 많고 혼자 여행 온 사람도 많아요. 게스트 하우스 일 층에는 카페가 있어요. 햇볕이 잘 들고 한적해서 많은 시간을 거기서 보내요. 주로 책을 읽거나 거리의 사람들을 구경해요. 그러다 보면 시간이 잘 가요. 한국에서는 시간이 너무 안 가서 핸드폰만 들여다봤는데 여기선 아무것도 안 해도 시간이 잘만 가요. 신기하죠? 어제 저녁에는 근처 유명한 식당을 다녀왔어요. 폭립이라는 돼지요리를 파는 곳인데 여기서 사귄 친구가 퀘벡에 오면 꼭 가봐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먹고 돌아오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제 앞으로 편지가 도착했다지 뭐예요. 솔직히 좀 놀랐어요. 아빠가 답장을 보내주실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이었나. 그때 졸업 축하 카드를 받은 이후로 처음 받는 아빠의 글자들이었잖아요. 어른 냄새 물씬 풍기는 글씨체는 여전하더라고요. 어릴 때는 어른이 되면 다 그렇게 쓸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어른이 된 지금 제 글씨체는 보시다시피 여전히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어요.
생각해보니 캐나다에 온 이유를 지난번 편지에 쓰지 않았더라고요. 아빠의 답장을 받고서야 알았지 뭐예요. 그러니까. 음. 감정 소실 진단을 받고 치료를 권유받았어요. 이런 말도 안 되는 병에도 치료 방법은 존재한다는 게 참 신기하지 않아요? 사실 치료를 받을까 말까 고민했어요. 병이 있으면 당연히 고쳐야 하는 게 맞지만, 감정 소실의 경우에는 치료받은 이력이 기록에 남는다더라고요. 정신과 계열의 치료라 그런가 봐요. 그래서 망설였어요. 기록이 전과처럼 절 따라올까 봐요. 그런데 감정 소실은 제때 치료받지 않으면 연쇄적인 감정 소실을 불러온대요. 지금은 기껏해야 일상에 무리 가지 않는 감정 하나 잃었지만, 다음으로는 어떤 감정을 잃을지 알 수 없대요. 그러니까 적절한 시기의 치료가 필요하다더군요. 바로 치료를 받겠다고 했어요. 사랑이나 행복 같은 큰 부피의 감정을 소실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 삶은 아무래도 끔찍할 게 뻔하잖아요.
연구원이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어요. 수술을 통해 꼬인 신경을 인공적으로 푸는 방법과 자연적으로 신경이 풀리게끔 두는 방법이었어요. 전자는 들이는 시간이 짧은 대신 품고 가는 리스크가 컸어요. 정확히 어느 신경이 꼬인 건지는 뇌를 열어봐야 알 수 있대요. 또, 억지로 풀다가 다른 신경에 유착될 위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후자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는지 가늠할 수 없다는 게 단점이었어요. 대신에 감정을 되찾는다면 안전하게 신경이 풀린 상태일 거라더군요. 제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아빠는 짐작이 가시죠? 맞아요. 저는 자연적으로 풀기로 했어요. 아빤 항상 그런 선택을 했잖아요. 위험하고 빠른 길 보다는 안전하게 돌아가는 길을. 그런 아빠가 키웠는데 저라고 다를까요. 오히려 일상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 기회를 얻은 것 같아 좋았어요. 하연이를 그렇게 보내고 지난 오 년 동안 저는 늘 제자리였잖아요.
자연적으로 푸는 경우에 별다른 치료 방법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었어요. 대신 치료비를 지원받게 되었죠. 앞으로 할 일을 보고서로 작성하면 그에 맞는 금액을 일정 부분 지원해 줬어요. 연구원에게 제가 잃은 감정을 써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리고 그 종이를 친구들에게 보여줬어요. 지금 이걸 찾으러 갈 건데 좋은 방법이 있겠냐고요. 친구들이 아무 계획 없이 훌쩍 여행을 떠나보래요. 한겨울에 손이 부르트도록 눈싸움도 해보고, 한여름에 피부가 다 타도록 튜브에 누워 바다 위를 동동 떠다녀보래요. 집 가는 길에 놀이터에 앉아 별을 세어 보래요. 생일 케이크를 불기 전에 소원을 길게 빌어보기도 하래요. 이걸 왜 굳이 싶은 일을 굳이 해보래요. 그래서 캐나다에 왔어요. 제일 먼저 눈을 보고 싶어서요.
캐나다 퀘벡은 눈이 아주 많이 내리는 도시예요. 하연이가 늘 단풍국, 단풍국 하면서 노래를 불렀던 거 기억하세요? 언젠가 캐나다에 가게 되면 하연이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단풍잎을 하나 주워 하연이에게 가져다주려고 했었는데. 겨울에 오는 바람에 단풍잎이 다 떨어지고 눈만 무성하더라고요. 대신 예쁜 단풍잎 브로치를 하나 샀어요. 하연이가 좋아해 줄까요? 바스락거리지 않는다고 투덜대려나요. 그럼 뭐. 가을에 다시 오죠 뭐. 캐나다에서 실컷 눈싸움을 했어요. 아까 폭립 맛집을 추천해 줬다던 친구 있죠? 그 친구랑 오전 내내 손이 동상에 걸리기 직전까지 눈을 맞추고, 굴리고, 던졌어요. 아빠가 봤으면 아직도 나잇값을 못 한다고 혀를 찼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다 놀고 돌아오면 코코아를 타 주셨겠죠? 하연이랑 누가 코코아를 더 많이 마시나 겨뤘던 게 생각나네요. 아마 제가 졌던 것 같아요. 하연이는 내기에 강했잖아요. 사실 그게 다 제가 일부러 져주었기 때문이라는 걸 하연이가 알고 있었을까요? 가끔 생각해요. 단 한 번 하연이에게 져주지 않았던 그날을요. 만약 제가 늘 그랬듯이 져줬더라면 하연이는 죽지 않았을까요? 제가 대신 마트로 심부름을 갔더라면 하연이가 살았을까요?
그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몇 시간 후에 비행기를 타야 하거든요. 아직 짐을 절반도 싸지 못했어요. 이 편지의 답장은 보내지 않으셔도 돼요. 이 편지가 도착할 때쯤이면 전 하와이에 있을 거거든요. 하와이에 가서 또 편지할게요. 감기 조심하시고요. 아주머니께도 전해 주세요. 이만 끝낼게요. 조금 이르지만,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캐나다 퀘벡에서, 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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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주머니께도 전해주세요. 작년 11월 초에 시작한 여행이 1월 둘째 날인 오늘까지도 끝나지 않았네요. 이맘때면 아빠가 또 어디선가 술을 진탕 마시고 계시지는 않을까 염려돼요. 제가 곁에 없으니까 더 걱정되네요. 그래도 아주머니께서 잘 챙겨주시겠죠? 아빠 때문에 고생할 아주머니를 봐서라도 술은 적당히만 드세요. 건강검진도 꼬박꼬박 받으시고요. 금연은 시작하셨죠? 올해부터는 꼭 끊겠다던 약속 잊으신 거 아니죠? 지키고 있다고 믿을게요. 돌아가면 더 건강한 모습으로 반겨주셔야 해요.
오늘 무슨 날인지 아세요? 맞아요. 제 생일이에요. 생일은 늘 가족들과 함께 보냈었는데. 타지에서 혼자 보내려니 적적하네요. 그래도 외롭지는 않아요. 여기서 또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거든요. 그 친구가 생일 케이크를 선물해 줬어요. 무려 직접 만든 케이크를요. 그래서 케이크를 불기 전에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어요. 아주아주 길게 빌었어요. 하나만 빈 게 아니라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몰라요. 욕심이 좀 많잖아요 제가. 그러고 보니 생일 케이크에 빈 소원은 누가 들어주는 거죠? 조상님이었나, 하느님이었나. 어릴 때는 아빠가 들어주셨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소리 내서 빌었어요. 갖고 싶은 거 사달라고. 이제 다 크니 제 소원을 들어줄 사람이 없네요. 이젠 소원이 물건이 아니라 그런가. 아빠 건강도 제 소원에 포함되어 있으니 여전히 아빠가 들어주세요.
오늘 꿈에 하연이가 나왔어요. 근래에 좀 뜸하더니 제 언니 생일이라고 특별히 나와줬나 봐요. 아니면 더 반가워하라고 일부러 안 나왔나. 우리 하연이 여전히 귀엽더라고요. 아빠 꿈에도 종종 나와요? 저는 너무 자주 나와요. 그래서 하연이가 아직도 살아있는 것 같아요. 눈 뜨면 짜잔 하고 나타날 것 같아요. 아직도 하연이 눈코입, 키, 웃는 얼굴 전부 다 선명해요. 도통 흐려지지 않아요. 근데도 잠에서 깨면 또 보고 싶어요. 아빠도 그래요?
저번 편지에서 말했듯이 저는 지금 하와이에 와있어요. 캐나다는 무척이나 추웠는데 하와이는 쨍하게 더워요. 추운 곳에 있다 와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습하지는 않아서 나름 견딜 만해요. 여기서 서핑을 배우고 있어요. 새로 사귄 친구가 하와이까지 왔는데 서핑도 안 배우고 갈 거냐고 보채서 시작했지만 금세 재미를 붙였어요. 아직 큰 파도를 타지는 못해요. 보드에서 일어나다 넘어지는 일이 더 잦아요. 그래도 가끔 얕은 파도를 탈 때면 상쾌한 기분이 들어요. 살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요. 그래서 서핑이 좋아졌어요.
며칠 전에는 튜브에 누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다 위를 동동 떠다녔어요. 겁 없이 선크림도 바르지 않은 상태로요. 덕분에 새까맣게 탔어요. 한국에 돌아가면 아빠가 저를 못 알아보실지도 몰라요. 아니라고요? 아빠가 딸을 어떻게 못 알아보냐고 하시려고 했죠? 그러게요. 사실 아빠가 저를 못 알아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빠는 사람이 미어터지는 대형 마트에서도 단번에 저를 찾아내곤 하셨잖아요. 비슷한 외형의 애들이 쏟아져 나오는 학교 교문에서도 저를 놓치지 않았고요. 근데 그거 아세요? 저도 아빠는 금방 찾아져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빠가 한눈에 들어와요. 아빠만 눈에 들어와요. 신기하죠. 다음에 내기할까요? 누가 더 먼저 찾나? 마트에 가서 서로 찾아가는 걸로 해요. 늦은 사람이 그날 장 본 거 결제하기 어때요? 받아들인 걸로 알게요.
그제는 친구랑 캠핑을 했어요. 캠핑카를 빌려서요. 하루 종일 바다에서 서핑하다가 배가 고파지면 돌아와서 고기를 구워 먹고 다시 바다를 뛰어다녔어요. 해가 지고 나서는 캠핑카 천장에 누워서 하늘만 쳐다봤어요. 아빠가 봤으면 위험하다고 끌어내렸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친구가 캠핑카 위에서 보는 하늘이 끝내준다는데 안 볼 수는 없잖아요. 기회가 있을 때 눈에 담아둬야죠. 어땠냐고요? 고요했어요. 모든 조명이 다 꺼지고 빛이라고는 하늘에 떠 있는 별빛이 유일했어요. 넘실거리는 파도 소리만 귓가를 스쳐 가고 눈에는 별이 박혔어요. 검은 도화지에 흰색 물감을 흩뿌린 것 같은 별이 크고 작게 반짝였어요. 우두커니 바라보는데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이었어요. 그제야 알 것 같더라고요. 제가 잃어버린 감정이 뭔지요.
아빠, 저는 낭만을 잃었던 거예요. 좁은 방 안에, 그보다 더 좁은 화면이 보여주는 세상에 스스로를 가둬두고서요. 놓친 세월을 그리워만 하면서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후회만 하면서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데. 바이오라는 제 낭만을 소실하지 않았어요. 제가 놓아버린 거였어요. 그걸 이젠 알겠어요. 아빠, 저는 돌아가기로 했어요. 언제인지는 정하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갈 거예요. 곧 하연이의 제사잖아요. 이 편지가 도착할 때쯤에는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타고 있을지도 몰라요.
돌아가면 제일 먼저 운전면허를 따보려고요. 원래 대학교 졸업하기 전에 따려고 했었던 거 기억나세요? 운전 연수를 해달라며 아빠를 졸랐다가 혼났잖아요. 그런 건 가족에게 배우는 게 아니라면서요. 하윤이가 교통사고로 죽고 난 뒤에는 차가 무서워져서 그만뒀지만 다시 해보려고요. 면허를 따서 하윤이가 가보고 싶다고 했던 곳을 제가 다 가볼 거예요. 강원도에 가서 그럴듯한 눈사람도 만들 거예요. 집 가는 길에 놀이터에 앉아 질릴 때까지 별도 세어 볼 거예요. 생일이 아니더라도 케이크를 불 때마다 꼬박꼬박 소원을 빌 거예요. 바람이 선선한 날에는 차로 20분이면 갈 거리를 자전거 타고 1시간 들여 갈 거예요. 크리스마스에는 잘 만들지도 못하는 쿠키를 구워서 나눠줄 거예요. 아빠는 건포도를 좋아하시니까 특별히 잔뜩 넣어드릴게요. 그러다 여름이 되면 서핑을 다시 시작할 거예요. 굳이 싶은 일을 주저하지 않고 할 거예요. 이제 그렇게 살 거예요. 더 넓은 곳으로,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거예요.
아빠. 우리 그렇게 살아요. 과거를 붙잡지 말고 지금을 살아요. 이제는 지금을 더 소중하게, 후회 없게 그렇게 살아요. 나중에 하연이 만나면 실컷 떠들어줄 수 있도록. 그렇게요. 그렇게 해주실거죠? 저는 조금만 더 하와이의 여름을 보내다 돌아갈게요.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떨어져 있던 건 처음인데,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요. 돌아가면 더 건강해진 모습으로 반겨주세요. 환하게 웃으시면서요. 그러면 정말 집으로 돌아온 실감이 날 것 같아요. 사랑해요 아빠. 아주머니께도 보고 싶다고 전해주세요. 사랑한다고는 아빠가 하시고요. 아 참. 선물 사갈게요. 여긴 멋진 선글라스가 아주 많더라고요. 기대하셔도 좋아요. 그럼 나중에 봬요.
-하와이 와이키키에서, 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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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제목을 짓는 건 글을 구상하는 것보다 배로 어렵다. (눈치가 보인다.)
둘, 글은 꾸준히 써야 감각을 잃지 않는다. 고로 꾸준히 써오지 않았던 나는.. (생략)
셋, 읽는 것과 쓰는 것은 천차만별이다.
넷, 사랑해요 사방이들. 조만간 만나요. 움쪽쪽. 다들 고생했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