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이탈리아는 국경을 가르는 알프스산맥으로 인해 프랑스와의 교류가 적기도 했고, 고대 로마의 본거지란 자부심이 대단했기 때문에, 그들의 문명을 베껴간 오랑캐 나라의 건물을 모방한다는 건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건축의 경향도 오로지 건물을 높이 짓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고딕과는 달리 이탈리아는 그리스 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비례와 조화를 우선시했고 로마의 전통인 실용성도 중요시했습니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고딕은 이탈리아 로마네스크의 건축 양식에 프랑스의 고딕을 부분적으로 차용하는 정도에 그쳐서, 우리가 생각하는 표준적인 고딕과는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만나게 될 대표적인 고딕 시기의 성당은 아시시의 산 프란체스코 대성당,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시에나 대성당, 피렌체 대성당, 밀라노 대성당 등이 있겠습니다.
밀라노 대성당(1386~1577, ~1965)
Duomo Di Milano,
Milan Cathedral
https://www.duomomilano.it/it/ 홈페이지
https://it.wikipedia.org/wiki/Duomo_di_Milano 이탈리아 위키
https://en.wikipedia.org/wiki/Milan_Cathedral 영어 위키
밀라노 대성당
사진 출처 : Jiuguang Wang
http://jw.nebulis.org/
고딕의 대미를 장식할 이탈리아의 마지막 성당은 밀라노 대성당이 되겠습니다.
밀라노 대성당은 이탈리아 내에서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 다음 가는 규모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서너 번째 정도의 규모를 자랑하는 거대한 성당입니다.
프랑스의 후기 고딕 시기인 1386년에 건설계획이 시작된 밀라노 대성당은 당시 새로이 권력을 잡은 밀라노 공국의 초대 공작이었던 지안 갈레아초 비스콘티(Gian Galeazzo Visconti)가 사촌인 대주교와 함께 당시의 유럽 최신 트렌드에 맞춘 웅장한 건축물을 짓고자 하는 야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고딕에 거부감이 크던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밀라노에 고딕 성당이 들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밀라노의 지정학적 위치와 당시 상황에 기인합니다.
우선 밀라노가 주도인 롬바르디아 지역의 유래는 로마 멸망 후에 들어선 게르만족 국가인 랑고바르드(롬바르드) 왕국입니다.
랑고바르드 왕국 이후에 이 지역을 차지한 나라도 역시나 게르만 국가인 프랑크왕국입니다.
그 뒤로도 19세기 이전까지 롬바르디아 지역은 계속 프랑크왕국의 후예인 신성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선조 때부터 밀라노를 통치하고 있었던 비스콘티 가문의 지안 갈레아초 비스콘티(Gian Galeazzo Visconti)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게 뇌물을 주고 공작의 지위를 획득해서 이때부터 밀라노는 밀라노 공국이 됩니다.
흔히들 고딕이라고 알고 있는 밀라노 대성당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3개 국가에서 초빙된 건축가, 수학자, 화가들이 모여서 치열한 회의를 거친 끝에, 오로지 규모를 위해 프랑스의 높은 높이, 이탈리아의 넓은 폭, 독일의 뾰족 첨탑을 다 갖춘 복합양식으로 결정되었고, 무려 600년에 이르는 오랜 공사 동안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딕이 다 들어가서 결국 복합양식(잡탕?)의 거대주의(gigantism) 건축물이 됩니다.
하지만 굳이 양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하늘을 찌르는 수많은 첨탑과 섬세한 장식들과 내외부에 아낌없이 사용한 화려한 대리석이 어우러진 거대한 건축물은 충분히 감탄하면서 감상할 만합니다.
다만 아무것도 모르던 15년 전에 방문했던 거라 거대하고 화려한 외관과 바닥의 대리석만 기억나는 게 많이 아쉽긴 합니다. ^^;
평면도
밀라노 대성당의 평면도
기본적인 라틴십자가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교회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신도석의 복도가 다섯 개인 5랑식을 채택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고딕 성당에 비해 뚱뚱해 보입니다.
프랑스의 고딕과 로마네스크 교회에 공통으로 보이는 전실이 없이 정면 출입구에서 바로 본당이 이어지는데, 이탈리아 성당은 초기 교회 시절부터 본당을 가릴 정도로 큰 전실이 없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성가대석은 오히려 3랑식인데, 동쪽 외벽이 반원형이 아닌 반 팔각형의 모양에다 외벽을 둘러싼 예배당도 가지고 있지 않고, 외벽의 정중앙에는 장미창을 포함한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놓입니다.
트랜셉트(익랑)도 3랑식인데, 양쪽 트랜셉트의 끝에는 출입구가 없는 대신에 예배당이 놓여 있습니다.
십자가의 중앙인 교차랑(크로싱)의 지붕은 이탈리아 성당에서 많이 보이는 팔각형 돔으로 되어있습니다.
참고로 1488년에 돔 공사를 위한 공모를 진행했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출품했다가 철회를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정면
밀라노 대성당의 정면
사진 출처 : Parsifall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title=User:Parsifall&action=edit&redlink=1
일단 성당 앞 광장에 도착하면 화려하고 압도적인 위용에 감탄부터 하게 됩니다.
높기만 한 프랑스의 고딕과는 달리 이탈리아의 특성이 가미되어서 폭도 넓고, 많은 첨탑과 첨탑 장식들이 수직적인 느낌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성가대석부터 공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정면부는 르네상스를 지나 바로크가 시작되는 시기인 1590년이 되어서야 공사를 시작하고, 17세기 즈음에는 다시 고딕으로 돌아가기로 하지만 공사는 지지부진하게 진행됩니다.
그러다 밀라노 대성당에서 이탈리아 국왕의 즉위식을 하고 싶었던 나폴레옹의 재촉으로, 정면부는 1813년에 결국 신고딕 양식으로 완공됩니다.
정면부의 출입문은 다섯 개의 복도에 맞춰서 다섯 개를 만들었는데, 정면부의 진정한 완공은 나무 출입문 다섯 개를 20세기에 청동 문으로 교체하면서 달성되고, 1965년에 마지막 출입문이 개통되면서 기나긴 성당의 공사도 비로소 끝이 납니다.
중앙의 청동문
사진 출처 : Parsi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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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신도석의 바닥
사진 출처 : Darafsh
https://commons.wikimedia.org/wiki/User:%D8%AF%D8%B1%D9%81%D8%B4_%DA%A9%D8%A7%D9%88%DB%8C%D8%A7%D9%86%DB%8C
사실 난 밀라노 대성당의 실내에서 유일하게 기억나는 부분이 이탈리아의 전형인 화려하게 채색된 대리석 장식의 바닥입니다.
이 바닥은 16세기의 작품인데, 당시에는 신도석에 의자가 없어서 신도들이 서서 미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의자가 가리지 않는 대리석 바닥은 아마도 더 돋보였을 것입니다.
밀라노 대성당 내부
사진 출처 : https://500px.com/hltrmnn
천장에는 프랑스 고딕의 표준인 첨두아치와 4분 리브볼트가 보입니다.
복도가 다섯 개인 5랑식을 채택하는 바람에 빛이 너무 멀리서 들어오고, 건물을 키우는 바람에 기둥이 굵어지고, 스테인드글라스 때문에 빛이 더 줄어들어서 고딕 성당치고는 실내가 다소 어두워졌습니다.
하지만 당시 건축의 목표가 무조건 규모였기 때문에 아마도 이 정도는 감수한 듯합니다.
측면 복도의 천장
사진 출처 : Gary Ullah https://www.flickr.com/people/96391186@N06
측면 복도의 천장
사진 출처 : © José Luiz Bernardes Ribeiro / CC BY-SA 3.0
중앙복도인 네이브의 천장은 표준 고딕으로 단순하게 처리했지만, 측면 복도인 아일의 천장은 리브 사이에 화려한 문양을 넣었습니다.
밀라노 대성당의 실내
사진 출처 : Darafsh
https://commons.wikimedia.org/wiki/User:%D8%AF%D8%B1%D9%81%D8%B4_%DA%A9%D8%A7%D9%88%DB%8C%D8%A7%D9%86%DB%8C
앱스 창문
사진 출처 : Andrzej Otrębski https://commons.wikimedia.org/wiki/User:Andrzej_O
동쪽 끝에는 예배당 없이 대형 창을 만들어서 마치 신이 강림하는 듯한 환한 빛의 효과를 보여줍니다.
신도석의 기둥
사진 출처 : https://www.flickr.com/people/7897906@N06
밀라노 대성당의 다발 기둥은 위로 쭉 뻗은 전형적인 고딕의 수직적인 느낌이 아니라 기둥머리에 화려한 장식과 조각상을 넣어서 보다 고전적으로 보입니다.
트랜셉트(익랑)
원래 밀라노 대성당에는 16세기까지 트랜셉트(익랑)의 양쪽 끝에 출입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근처의 시장으로 가기 위해 양쪽 트랜셉트를 이어주는 복도를 지름길로 애용하자 열 받은 당시의 카를로 보로메오(Carlo Borromeo, 1538~84) 밀라노 대주교 겸 추기경이 출입문을 막아버리고 대신에 그 자리에 예배당을 하나씩 설치했다고 합니다. ^^
두 개의 예배당 뒤에 자리한 각 세 개의 스테인드글라스는 19세기의 작품인데, 성당 전체로 볼 때 스테인드글라스의 역사는 15세기 초에서 20세기 말까지 걸쳐 있어서 유리 예술의 역사를 살펴볼 수도 있다고 합니다.
북쪽 트랜셉트 알베로 성모의 예배당
사진 출처 : Tango7174
https://commons.wikimedia.org/wiki/User:Tango7174
15세기의 스테인드글라스
사진 출처 : Carlo Dell'Orto
https://commons.wikimedia.org/wiki/User:Carlodell
16세기의 스테인드글라스
사진 출처 : Carlo Dell'Orto
https://commons.wikimedia.org/wiki/User:Carlodell
외부의 모습
밀라노 대성당의 북쪽 측면의 모습
사진 출처 : nimame
https://www.flickr.com/people/78919492@N00
밀라노 대성당의 플라잉버트레스
사진 출처 : G.dallorto
https://commons.wikimedia.org/wiki/User:G.dallorto
교차랑의 첨탑 꼭대기에 107미터 높이로 구리에 금박 3,900장을 입힌 황금 마돈나 상(마돈니나, Madonnina)
마돈니나
마돈니나
사진 출처 : © José Luiz Bernardes Ribeiro / CC BY-SA 3.0
마돈니나
사진 출처 : Emilio Garcia
https://www.flickr.com/photos/hermenpaca/4280936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