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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outhi rebels
후티 반군은 예멘의 시아파 무장 단체이다. 공식 명칭은 안사르 알라(Ansar Allah)이다.
후티 반군은 2004년, 예멘 북부 사다 주에 거주하는 자이디 시아파 교도들이 후세인 바드레딘 알후티의 주도로 일으킨 반란으로 시작되었다. 후티 반군은 예멘 정부의 부패와 불평등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후티 반군은 2014년, 예멘의 수도 사나를 점령하고 사실상 정부를 전복시켰다. 이에 따라 예멘은 내전 상태에 빠졌다. 예멘 정부는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 후티 반군에 맞서 싸우고 있다. 하지만 후티 반군은 여전히 강력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예멘 내전은 쉽게 종식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후티 반군은 이란의 무기와 자금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티 반군은 이란의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사진을 자주 공공연하게 내걸고 있으며 이란 또한 후티 반군에 대한 공개적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란의 외무장관은 후티 반군을 "혁명의 동지"라고 부르며, 후티 반군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예멘 정부는 알리 무흐센 알아흐마르(Ali Mohsen Saleh al-Ahmar) 장군의 지휘 아래 후티 반군과 전면전에 돌입하였고, 2004년 9월 10일 알후티를 사살하였다. 2009년 8월, 예멘 정부가 사다 지역 및 북부 후티 반군 지역에 공세를 시작으로 수십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였다. 예멘 내 시아파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한 사우디아라비아는 2009년 11월 4일, 군대를 파견하여 사우디-예멘 국경 지역에서 반(反)후티 공세를 하였고, 2010년 1월까지 사우디아라비아군 113명이 전사하였다. 2014년 8월 18일, 사나에서 유가 인상 문제로 후티 반군은 반정부 시위를 벌였고 9월21일, 수도 사나를 정복하였다.
2015년 1월 20일, 후티 반군이 마시크 대통령궁을 점령하자, 압드 라부 만수르 알하디 대통령은 사임을 발표하고 남부 지역으로 피신하였다. 2월 6일, 후티 반군은 임시 헌법을 발표하며 의회를 해산하고 551명으로 된 새 의회를 구성하며, 151명의 대통령 위원회를 설치해 2년간 정부의 역할을 맡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란을 제외한 동아시아, 중동 및 서방 국가는 사나에 있는 대사관을 철수하고 남부 아덴으로 정부를 이전할 것을 촉구하였다. 2월 23일에 하디 대통령은 사임을 번복하고 아덴으로 정부를 옮겼다.
2015년 3월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의 군사지원을 받은 정부연합군과 지속적으로 대립 중이다. 현재 후티의 지도자는 압둘 말리크 알후티(Abdul Malik al-Houthi)이다.
후티(아랍어: الحوثيون) 또는 공식 명칭 안사르 알라(아랍어: أنصار الله, "알라의 조력자")는 예멘의 자이디야 시아파 이슬람주의 운동이자 무장 단체이다.
1990년대부터 자이디 종교 지도자 후세인 알후티를 중심으로 예멘 공화국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부패와 친서방 정책에 반대하며 등장하였다. 2004년 후세인 알후티가 정부군에 사살되자 후티 반란이 촉발되었고 이후 그 동생 압둘말리크 알후티가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다. 2011년 아랍의 봄 물결로 일어난 예멘 혁명에 관여하였고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과도정부 협상에 참여하였으나 결렬되어 떠났다.
2014년에는 후티 쿠데타를 일으켜 수도를 점령하고 2015년 1월에는 대통령궁까지 장악하며 반란을 성공시켰으나 하디 대통령이 남부 지역으로 도피하고 옛 남예멘 지역의 지방정부들이 후티를 따르기를 거부하자 예멘 전체의 주도권을 놓고 예멘 내전이 시작되어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이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이들과 대립하며 군사적 충돌이 이어지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이를 이란-사우디아라비아 대리 분쟁의 일환으로 바라본다.
2. 뉴스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가는 상선들을 공격하면서 유가와 다른 상품 가격을 끌어올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와 연결된 홍해를 통해 전 세계 해상 교역의 14%가량이 움직입니다.
홍해가 막히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최단 선박 항로인 수에즈 운하를 지나지 못합니다. 대신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가야 합니다. 수에즈 운하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이용되던 항로입니다. 배가 멀리 돌아가면 비용이 상승하고, 물가를 자극하게 될 거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그럼 지금 후티 반군의 공격은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 홍해는 얼마나 중요한 교역로일까?
홍해를 통한 교역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컨테이너는 30%, 에너지는 15% 정도가 움직입니다. 특히 에너지 측면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더 중요해졌습니다. 유럽과 러시아의 가스관이 막히고,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에 제재를 가한 결과입니다.
러시아는 유럽으로의 수출이 막히면서 생산한 원유와 가스를 인도와 중국 등 아시아로 보내고 있습니다. 유럽은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던 에너지를 중동에서 들여옵니다. 자연스레 홍해를 오가는 에너지 물동량이 늘었습니다.
블룸버그가 유조선을 추적해 분석한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침공 전 러시아의 원유는 하루 12만 배럴이 수에즈 운하를 통해 수출됐습니다. 그런데 최근 6개월 동안엔 하루 170만 배럴로 급등했습니다. 같은 기간 중동에서 유럽으로 가던 원유 수송은 하루 87만 배럴에서 백30만 배럴로 늘었습니다.
세계 교역을 분석하는 케이플러(Kpler)에 따르면 휘발유나 경유 등 정제유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습니다. 물동량이 같은 기간 하루 120만 배럴에서 230만 배럴로 거의 두 배로 늘었습니다.
■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면 얼마나 더 걸릴까?
수에즈 운하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가게 되면 일주일에서 열흘가량 더 걸립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든 예를 보면 유럽의 주요 항구인 네덜라드 로테르담으로부터 싱가포르까지 수에즈 운하를 통하면 8천3백 해리의 거리로, 34일 만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대신 희망봉을 거쳐 가면 만 천7백 해리로 43일이 걸립니다. 거리상으로 3천4백 해리, 시간으로는 9일이 더 소요됩니다.
거리가 멀어지고 시간이 길어지면 원가 측면에선 당연히 해상 운임이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연료도 더 들고, 선박 운용 비용, 임금, 보험료 등도 더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직후 해상 운임이 급등했고, 물가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홍해가 막히면 비슷한 일을 겪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도 세계 컨테이너 교역의 5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머스크사와, 세계 2위의 석유회사인 BP가 홍해를 포기하고 희망봉으로 돌아가겠다고 발표했습니다.
■ 컨테이너 운송 비용은 얼마나 올랐을까?
후티 반군의 공격을 전후한 컨테이너 운송 비용은 실제로 올랐습니다. 해상 운송 컨설팅 회사의 드류리(Drewry)의 수치를 보면 세계컨테이너지수(World Container Index)는 40피트 컨테이너 한 개를 기준으로 11월 30일 천382달러에서 12월 21일 천661달러가 됐습니다. 20% 정도 올랐습니다.
그러면 홍해를 통과하는 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운임은 얼마나 올랐을까요? 중국 상하이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의 운임은 같은 기준으로 천171달러에서 천667달러가 됐습니다. 40% 넘게 올랐습니다. 상하이에서 미국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홍해를 통하지 않는 운임도 올랐지만, 아시아와 유럽 노선이 많이 오른 게 사실입니다.
다만 해상 운임은 실제 원가도 중요하지만, 수요와 공급에 따라 비용이 크게 출렁입니다. 최근 올랐다고 하더라도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 물류가 막혔을 때에 비하면 10%를 약간 넘는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중국의 교역량이 줄고 있는 영향도 있습니다. 아직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겁니다.
■ 그럼 유가는 어떨까?
세계 원유 가격의 지표가 되는 브렌트유 가격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후티 반군의 홍해 상선 공격이 이달 3일에 시작됐는데, 브렌트유 가격은 12월 1일과 12월 4일 사이 오히려 소폭 내렸습니다. 최근 장중 1배럴에 80달러 선을 넘기도 했지만 73달러 선까지 내려간 적도 있습니다.
중동, 특히 원유 생산국이나 호르무즈 해협처럼 주요 교역로가 불안해졌을 때 발작적으로 움직이던 유가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세계적으로 현재 원유는 공급이 많은 편입니다. 석유수출국기구 OPEC의 감산에도 그렇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을 유지하고 있고, 최근 OPEC이 추가 감산을 밝혔는데도 유가가 오르지 않은 이유와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종전보다 하루 백만 배럴을 추가 생산하고 있고, 가이아나와 브라질도 기록적인 양의 석유를 생산하고 있고, 이란의 원유 수출도 늘었습니다.
또 홍해가 폐쇄되더라도 유조선의 항해 기간이 길어지지만, 생산량 자체가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후티 반군이 공격을 행하고 있는 곳의 지리적 특징 역시 이런 분석을 뒷받침합니다. 후티 반군이 공격하고 있는 곳은 홍해 남쪽 끝의 해협인데, 사우디아라비아가 홍해 쪽으로 수출하는 석유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걸프만 쪽으로 옮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스 분야 역시 유럽 등 여러 국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처럼 충격을 받았던 것을 피하기 위해 미리 비축해 둔 측면이 있습니다. 운송이 끊기지만 않으면 고비를 넘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 파나마 운하에는 가뭄이...
해상 운송에서 수에즈 운하와 더불어 중요한 곳이 파나마 운하입니다. 태평양과 대서양으로 오가는 통로인데, 세계 해상 무역의 6%를 차지합니다. 우기에 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으면서 파나마 운하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선박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고 있다. 파나마 운하는 여러 개의 갑문을 두고, 수위를 조절해가면서 배를 통과시킨다.
파나마 운하를 통해서는 하루 평균 약 40척의 선박이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숫자가 거의 절반으로 떨어졌습니다. 최근 몇 달 사이 통과 가능한 선박 수가 계속 줄고 있고, 내년에는 더 줄어듭니다. 이 길이 막히면 육상 운송을 택하거나 남아메리카 대륙 남단을 통과하거나, 대서양과 인도양을 거쳐야 합니다. 역시 비용이 더 듭니다. 운송료 상승이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 그럼 물가는?
앞서 보셨듯이 아직까지 물가를 자극할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선박 운송료는 해당 품목의 물가 가운데 일부를 차지하기 때문에 선박 운송료가 오른 만큼 제품의 가격이 오르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홍해 위기는 아직 초기입니다. 일부 유조선사들은 몇 달 안에 수에즈 운하가 다시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지속 되느냐에 따라 영향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2021년 수에즈 운하에서 컨테이너선인 에버 기븐 호가 좌초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통행이 재개될 때까지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그 공급망이 회복될 때까지 수개월이 걸린 적도 있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과 예멘 후티 반군과의 싸움에 깊은 고민에 빠진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미스터 에브리띵',
세계에서 가장 부자이자, 중동 최고의 권력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인데요.
미국 등 서방이 사우디가 후티와 싸워주길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직접 빈살만 왕세자를 만나 압박하고,
사우디에 무기 판매를 금지했던 독일도 유로파이터와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다시 팔겠다며 당근책을 제시했습니다.
사우디가 최근 이 무기로 후티가 이스라엘을 향해 쏜 미사일을 격추했죠.
'중동의 평화는 사우디만 지킬 수 있다'고 치켜세우며 은근히 후티 처리 문제를 떠넘기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사우디는 이미 후티에 크게 데인 적이 있습니다.
2015년부터 8년간 예멘 내전에 수십억 달러를 썼지만 후티를 척결하지 못한 겁니다.
무려 8년 전쟁 끝에 지난해 4월에서야 겨우 휴전에 합의했습니다.
미국과 영국이 후티 반군 근거지를 공습하자 "자제해달라"고 우려를 표시한 이유기도 합니다.
빈살만은 사우디를 세계 경제 중심지로 변화시키려는 '비전 2030'을 추진 중입니다.
후티와 또다시 전쟁을 벌였다간, 뜻하지 않은 지출이 커질 수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예멘과 전쟁 당시 팔짱을 낀 채 '강 건너 불구경'만 즐겼습니다.
이제 와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도와달라는 미국이 곱게 보이지만은 않는 겁니다.
더욱이 후티는 서방에서와는 달리 중동에선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시오니즘'에 맞선 지하드의 선봉장 자리를 꿰찬 겁니다.
후티의 수장이 직접 나서 "미국과 직접 대결하는 건 영광이자 축복"이란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사우디는 팔레스타인과 같은 수니파의 '맹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빈살만이 미국에 편에 설 수 있을까요?
전쟁 비용도, 여론도 쉽지 않은 결정일 듯싶습니다.
백민경 기자 baek.minkyung@jtbc.co.kr
후티 "호데이다 공습받아"…美 "실시한 공습 없어"
美·英, 미사일·전투기로 후티반군 거점 28곳 타격
이란 대통령, 美공습 규탄…"美 본색 드러나"
수에즈 운하 위협에 국제적 경각심 커져…화물량 급감
◆…지난 12일 예멘 후티반군의 목표물을 겨냥한 미 주도 연합군의 작전 중 군함에서 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사진 로이터>
예멘 후티 반군이 14일(현지시간) 예멘 서부 항구 도시 호데이다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또 다른 공습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튀르키예 국영 아나돌루통신에 따르면 후티 반군이 운영하는 사바통신사는 이날 영국과 미국이 서부 호데이다 지역에 대한 새로운 공습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친후티 성향의 알마시라 TV 또한 이날 미 정찰기가 호데이다에서 비행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미국은 이러한 사실을 부인했다. 익명의 미 국방부 관계자는 AFP통신에 "오늘 미국이나 연합군이 실시한 공습은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과 영국은 전투기와 미사일을 사용해 예멘 영토 내 후티 반군의 거점 28곳을 타격했으며 다음 날에도 미국은 단독으로 후티의 레이더 시설을 겨냥, 추가 공습을 시행했다.
이 같은 공격은 미국과 동맹국들이 후티 반군의 불법 공격이 지속될 경우 추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한 후 이뤄졌다.
지난주 예멘 후티 반군은 홍해의 상업용 선박을 겨냥한 역대 최대 규모 공격을 강행했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후티 반군에 공습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최근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지역 내 안보 상황이 악화되면서 수에즈 운하를 지나는 화물량이 급감했다. 로이터는 이 같은 영향으로 2023년 11월부터 12월까지 세계 무역량이 1.3% 감소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미국의 예멘 공습을 비난하며 "이번 공격으로 미국의 공격적이고 인권에 반하는 본색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이러한 행동은 자유를 추구하는 세계 국가들에 의해 비난받을 것"이라고 규탄했다.
이란이 지원하는 반이스라엘 성향 무장 단체들을 일컫는 '저항의 축'에 속하는 후티 반군은 지난 10월 7일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에 가담하며 홍해를 지나는 선박에 대한 공격을 늘리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해운사들이 홍해와 연결된 수에즈 운하 운항을 중단하고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는 사례가 생기며 무역 차질뿐 아니라 공급 비용도 증가하고 있다. 수에즈 운하가 아닌 희망봉을 우회할 시 유럽과 아시아 항로는 무려 9,000km 늘어나며 운행 시간도 7~10일 추가된다. 이에 따른 전쟁 위험 보험료도 인상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과 영국, 독일, 호주, 벨기에, 네덜란드, 바레인, 캐나다, 덴마크, 이탈리아, 일본, 뉴질랜드 등 12개국은 성명을 통해 "홍해에서의 후티의 지속적인 공격은 불법적이고 용인할 수 없으며 안정을 크게 위협한다"라고 경고했다.
성명은 "세계 해상 무역의 약 15%가 홍해를 지나고 있으며 곡물 무역의 8%, 해상 석유 무역의 12%, 액화천연가스 무역의 8%가 여기에 포함된다"며 "국제 해운사들은 희망봉으로 항로를 변경하고 있으며 이는 배송에 상당한 비용과 지연을 초래하고 나아가 전 세계에 중요한 식량, 연료, 인도적 지원의 이동이 위협받고 있다"고 밝혔다.
3. 후티의 조직
애초 후티는 자이드파 청년조직 '믿는 청년들'(the Believing Youth)에서 비롯됐다는 게 정설이다. 이 조직을 만든 인물은 현 지도자 압둘 말리크 알후티(45)의 형 후세인 알후티다.
후티는 북부 유력 가문 알후티 가(家)를 구심점으로 하며, 스스로는 '안사룰라'(신의 지지자)라고 부른다.
후티 반군 조직을 결성한 후세인 알후티[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창시자 후세인 알후티는 당시 북예멘에서 수니파 근본주의 살리프파가 예멘 정부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등에 업고 세력을 넓히자 이에 대응해 '믿는 청년들'을 결성했다.
그러나 2004년 후세인 알후티가 정부군에 사살되자, '믿는 청년들' 조직은 아예 후티로 개명하면서 반군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지도자도 후세인 알후티의 동생인 압둘 말리크 알후티가 추대됐다.
후티 지도자 압둘 말리크 알후티[로이터=연합뉴스]
예멘도 2011년 아랍권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듬해 2월 2월 34년 동안 철권통치를 한 독재자 알리 압둘라 살레가 하야하자 부통령이던 압드라모 만수르 하디가 이끄는 과도정부가 출범했다.
민주화 시위가 유혈사태로 번진 이집트, 바레인, 리비아 등과 달리 예멘은 튀니지와 함께 아랍의 봄 결실을 맛보게 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기대는 이내 사라졌다. 장기 독재와 빈곤의 깊은 뿌리는 예멘의 민주주의 발아를 순순히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멘의 반군세력 후티[EPA=연합뉴스]
살레 시절 부통령이던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가 2년 임기의 과도정부의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하디 정권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고 합법성을 갖췄다. 그러나 정작 권력을 지탱하는 정치·군사적 기반이 취약했다.
하디를 둘러싼 정치·경제적 여건도 민주화를 꽃피우기엔 열악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살레의 지속적인 '상왕노릇'이었다. 의회 다수당 국민의회당(GPC)과 군부는 여전히 살레의 영향력하에 이었다.
아랍권의 민주화 열풍을 촉발한 2011년 1월 튀니지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EPA=연합뉴스 자료 사진]
이런 가운데 이슬라당, 남부 사회주의 정파 등 야권은 정치 개혁과 민생보다는 정부 요직에 자신의 세력을 심는 눈앞의 이득에 더 관심을 가졌다. 이에 당연히 민심이 끓기 시작했다.
◇후티, 2015년 내전으로 본격적 주목을 받기 시작
후티는 이런 민심을 놓치지 않았다. 자신들의 공식 명칭으로 '신의 수호자'(안사르 알라)를 채택한 후티는 반정부 시위에 선봉장으로 나섰다.
후티 반군[EPA=연합뉴스]
후티는 전략적이었다. 예전에는 적대적이었지만 정권 획득이라는 공동 목표 아래 살레 전 대통령과 손을 잡고 지속적으로 하디정권을 흔들어댔다.
이에 후티 반군이 2014년 9월 수도 사나로 진입했을 때 예멘 정부군은 이를 막을 전투력을 보유하지 못했다. 오히려 군 일각에서는 이들의 진군을 환영했다.
후티가 손쉽게 민심을 얻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민생 문제였다. 하디정권은 재정개역을 빌미로 2014년 7월 정부 재정의 3분의 1(연간 약 20억달러)을 차지하는 연료 보조금을 축소했다.
[그래픽]예멘 푸티 반군[연합뉴스]
이 조치는 들끊는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겻이었다. 휘발유는 60%, 경유는 95%나 각각 가격이 치솟았다.
당연히 반군측에 민심이 몰렸다. 후티 반군과 하디정권은 연방제식 정권 이양 절차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로 이해관계가 엇갈린 탓에 합의가 결렬됐다.
11일(현지시간) 예멘 수도 사나 시내에 모여있는 후티 반군 대원들[EPA=연합뉴스]
결국 후티는 2014년 9월 예멘 수도 사나를 점령했다. 이어 이듬해인 2015년 1월 쿠데타로 예멘 정부를 남부 아덴으로 밀어냈다.
후티는 여세를 몰라 예멘의 물류 요충지인 남서부 호데이다항까지 장악했다. 이후 예멘 북부에서 후티가 실제 정부 역할을 수행한다.
후티는 이란과 더욱 관계를 돈독히 했다. 가뜩이나 후티의 권력 장악으로 위협을 느낀 와중에 '불구대천'인 이란과 밀접해지자 사우디는 2015년 3월 수니파를 중심으로 아랍동맹군을 결성, 내전에 직접 뛰어들었다.
후티반군 장악 예멘 수도 사나의 시위대[AFP=연합뉴스]
애초에는 압도적인 공군력을 앞세운 사우디의 승리로 쉽게 끝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후티는 끈질기게 저항했다. 가끔 사우디가 '뻘짓'을 하는 바람에 국제적인 망신을 초래하기도 했다.
예멘의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를 향해 발사하는 탄도미사일[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이에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는 후티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했다. 또 미국도 2015년 4월 지도자인 압둘 말리크 알후티를 특별지정 제재대상(SDN)에 올렸다.
반면 서방은 사우디에 망명 중인 하디 정부를 공식 정부로 인정하지만, 이란은 후티 반군만을 정부로 대하는 게 차이점이다.
◇탄도미사일, 드론 등 웬만한 국가 능가하는 후티 전력
후티의 전력은 웬만한 국가를 능가한다. 후티는 내전 기간 쌓은 실전 경험을 축적해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라는 게 관계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수도 사나에서의 무력을 과시하는 후티[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후티의 병력은 현재 20만여명 규모로 '성전위원회'(Jihadist Council) 직속하에 △최고사령부 △육군사령부 △지상군사령부 △국내보안부 △특전사령부 △병력동원부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여겨볼 것이 바로 특전부(Special Forces Branch)로 탄도미사일과 드론 부대들이 포함돼 있다.
2022년 수도 사나에서 공개된 후티 반군의 대함미사일[The War Zone 캡처]
후티가 서방까지 위협할 정도의 군사력을 갖추게 된 1등 공신은 당연히 이란이다. 내전 과정에서 후티는 전 정권이 땀흘려 확보한 옛 소련제 로켓과 미사일을 수중에 넣게 됐다.
후티는 사거리 250-400km 표적에는 '콰헤르-1'(Qaher-1)과 '콰헤르-2'(Qaher-2) 미사일을, 550km가량의 목표물은 '스커드-C'(Scud-c) 미사일을 각각 사용해왔다. 또 70-120km 표적에는 '토치카'(Tochka) 미사일을 동원한다.
후티의 미사일 발사 장면[후티 공보조직 SNS 캡처]
그러나 이란의 지원이 본격화하면서 후티는 '바데르'(Bader, 최대사거리 160km), '부르한-1'(Burkhan, 최대사거리 800km), '부르한-2'(Burkhan-2, 최대사거리 1000km), '부르한-3'(Burjhan-3, 최대사거리 1200km), '쿠즈-1'(Quds-1, 최대사거리 700km), '쿠즈-2'(Quds-2, 최대사거리 1300km), '쿠즈-3'(Quds, 최대사거리 2000km) 등을 실전배치해 사용 중이다.
후티 반군이 운용 중인 대함탄도미사일[IISS./The Warzone 제공]
국제전략연구소(IISS) 소속 파비언 힌즈 연구원은 이란제 부품으로 후티가 자체제작한 탄도ㆍ순항미사일 가운데 '태풍'(Typhoon)으로 부르는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주목해야한다고 지적한다.
최대사거리 1180km의 이 미사일은 이란의 '카드르'(Qadr)를 토대로 한 것으로 "정확도 측면에서는 매우 떨어지지만, 유일하게 이스라엘을 직접 사정권에 둔 탄도미사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란은 2016년 카드르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후티 반군이 운용 중인 대함순항미사일 종류[IISS/The Warzone 제공]
또 순항미사일은 쿠즈도 주목할만다고 강조한다. 후티는 2022년 사나에서 1100km 이상 떨어진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의 석유시설에 쿠즈-2를 발사해 피해를 주기도 했다.
드론 전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후티는 2016년부터 드론을 실전사용해왔다. 이 가운데에는 '라키브'(Raquib 최대비행거리 15km), '라세드'(Rased, 최대비용거리 30km), '콰세프-1'(Qasef-1, 최대비행거리 150km), '사마드-1'(Samad-1, 최대비행거리 500km)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멘 수도 사나의 광장에 전시된 후티 반군의 드론과 미사일 모형[EPA 캡처]
후티는 이란제 부품을 이용해 일부는 자체제작한다고 힌즈 연구원은 설명했다.
이들 중에는 우크라이나전에서 러시아군이 사용 중인 최대비행거리 2000km의 '샤헤드-136' 드론이 포함된다. 또 최대비행거리 1600km로 UAE와 사우디의 주요 시설물 타격에 사용한 '사마드-3'(Samad-3) 드론도 있다. 사마드-3는 18kg의 고폭탄도 장착한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2020년 보고서에서 후티가 사용하는 드론은 GPS를 사용하며 "표적을 따라 사전에 입력해놓은 비행로를 따라 자율비행한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공격하는 러시아군의 샤헤드 드론[AP 자료 사진]
후티는 또 북한으로부터무기를 지원받는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중국에서 수입한 부품을 제작에 사용한다는 주장도 나오기도 했다.
후티 지도자 알후티는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언론 접촉을 피하는 건 물론 공식 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 '수수께끼 지도자'로 불린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2014년 예멘 내전 발발 당시부터 후티를 상대했던 외국 관계자들도 알후티를 직접 만난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티 지도자 압둘 말리크 알후티의 대형사진 옆을 지나는 후티 병사들[AFP=연합뉴스]
그를 만나려면 예멘 수도 사나에 있는 요새 내 은신처로 가야 하는데, 알후티는 이곳에서도 스크린을 통해서만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알후티는 또 조직 내 반대 의견을 탄압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예멘 전문가는 "후티는 매우 잔인한 내부 정보기구에 의존해 모든 종류의 반대 의견을 억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출처 : 글로벌경제신문(https://www.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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