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장 내게 마접(魔蝶)을 다오! -2
그의 등에는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겨울인데, 그는
지금 더위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몸이 용광로 안에라도 들어간
듯 후끈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하여간 너를 보고 싶다. 바란다면… 무엇이든지 내 놓겠다. 약속
한다!"
"정말이냐?"
"그렇다. 말만 해라. 뭐든지 대령시킬 테니까!"
"후훗, 그럼… 한 사람을 다오."
"사람?"
"마접(魔蝶)을 내게 다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도처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부…부단주(副壇主)를 달라고 하다니?"
"으으, 놈은 미쳤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놀라는 가운데 검공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
며 손발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마…마접을?"
그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한 곳을 보았다.
몽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여인. 그녀도 지금 경악한 나머지
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나를 달라고 하다니…….'
여인은 바로 마접이었다.
검공은 그녀를 힐끗 보다가 허공에 대고 말했다.
"마접을 달라고 하는 이유가 뭐냐?"
"그 계집은… 내게 빚을 지고 있다!"
"빚?"
"그 계집으로 인해 나는 무사가 되었다. 후훗, 그 계집은 내게 빚
을 갚아야 한다."
"어떻게 빚을 갚는단 말이냐?"
"그것은 내가 결정할 일이다. 훗훗……."
백리웅의 목소리가 거칠어지고 있었다.
감히 마접을 달라고 하다니!
검공의 눈알이 밖으로 튀어 나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었다.
'너는 나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
검공의 모공에서 다시 혈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대…대살수! 네놈의 껍질을 벗겨 버리겠다!"
검공은 눈을 부라리며 쌍장을 휘둘러댔다.
꽈르르-릉! 마라혈강수(魔羅血 手)라는 혈가람사의 독문수법이
시전되며 지반이 뒤집어졌다.
우르르-릉-꽝! 흙모래 바람이 뽀얗게 피어오를 때였다.
"훗훗, 제법인데? 내가 숨어 있는 곳이 지중(地中)임을 알다니!"
스슷…, 한 마리 흑룡(黑龍)이 날아오르듯 땅 속에서 솟구쳐 오르
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백리웅, 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는 어기충소(馭氣沖 )로 표표히 날아올랐다.
"저놈이 바로 자객방주 대살수다!"
"쓰러뜨려라!"
휘휙-휙! 검공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신검합일(身劍合一)해 일제
히 날아올랐다. 까마귀 떼가 돌팔매질에 놀라 날아오르듯 일제히
날아오르는 사람들.
쉬이이-잉- 츠읏-츳-츳! 허공이 검기로 난도질되는 가운데 검
파가 잇따라 피어났다.
"떨어져라!"
"하아-앗!"
검수들은 하나같이 초절한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백리웅
이 위로 날아올랐다가 떨어져 내리기를 기다리며 십 장 허공에 검
막을 펼쳤다.
"후훗, 이것을 아느냐?"
물샐 틈 없는 검기가 피어날 때, 백리웅은 지면으로 내려설 듯하
다가는 허공에서 몸을 뒤집으며 다시 위로 날아올랐다. 마치 창해
속에서 날아오르는 수룡처럼.
"어어-엇!"
"곤륜파의 신법이다!"
"저…저게 무슨 신법이냐?"
신검합일해 날아올랐던 자들은 닭 쫓던 개 꼴이 되고 말았다. 그
들은 날아오르다가 내력이 딸려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백리
웅의 신법을 얕본 것이 그들의 실수였다.
스슷- 슷-, 혈가람사에서 직접 무공을 배우고 중원에 나와 천하
혈맹으로 행세하고 있는 자들이 검진을 재정비하려 할 때, 허공에
서 비웃는 소리가 났다.
"쯧쯧, 늦었다. 너희 혈가람사 절기는 패도적이기만 하지, 정교하
지는 못하다."
백리웅은 또 한 차례 방향을 바꾸며 손을 허리에 대고 있었다. 직
후 스르르르-릉-, 그의 허리께에서 용 울음 소리가 났다. 시뻘
건 광망(光芒)이 갑자기 눈보라치듯 급히 일어났다.
"십-방-혈(十方血)!"
백리웅의 몸은 핏빛 광막 속으로 사라졌고, 핏빛 광막은 다시 무
수한 핏빛 고리가 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위이이-잉-윙!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붉은 고리들. 혈가
람사 고수들은 거기에 휘감기며 싸늘함을 느꼈다.
"다…당했다!"
"흐윽!"
파팟-팟! 혈흔마검(血痕魔劍)은 도처에 혈흔을 남겼다.
"건곤진(乾坤鎭)!"
광막 안에서 기합 소리가 나며 검환은 갑자기 핏빛 무지개가 되어
사방으로 폭사되어 나갔다.
파팟팟팟!
"카아아-악!"
"웨에-엑!"
"고…고금제일검(古今第一劍)이다!"
혈우(血雨)가 눈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백리웅은 단 이 초로 오십사 명을 베어 버린 다음, 혈흔마검을 연
검으로 만들어 거두며 느릿느릿 떨어져 내렸다. 검을 뽑아 사람을
벤 사람 같지 않게 그의 옷자락에는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
다.
그는 구파일방을 포함한 중원 무림계의 모든 살인 수법에 통달한
사람이었다.
그가 사뿐히 떨어져 내리자, 검공은 시퍼렇게 질린 채 얼굴 한쪽
을 일그러뜨렸다.
"검초에서 혈가람사의 대연광불백팔검(大衍光佛百八劍)을 능가했
고, 신법에서 혈가람사의 천룡무(天龍舞)를 능가했다!"
그는 백리웅의 손속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본 유일한 사람이었
다.
그는 백팔 종의 마공에 능통했다. 그는 그것이야말로 천하제일의
수법이라 여기고 있었다. 한데 백리웅의 초식으로 인해 그의 자신
감이 허물어지고 만 것이다.
"너…너는 두 가지에서 천하제일이다!"
그가 더듬거리자 백리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후훗, 나는 한 가지에서도 천하제일이 아니다!"
"아…아니라니?"
검공이 물었다.
"천하는 넓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극히 미미한 것에 불과하
다."
"그…그렇지 않다. 천하는 좁다!"
검공이 대들 듯 말했다.
"네가 알고 있는 천하는 겉보기의 천하일 뿐이다."
"뭐라고?"
"너는 구파일방을 얕보았고, 천하의 기인이사를 얕봤다. 어디 너
뿐이겠느냐? 묘강독황부도 천하를 얕보았다. 그것은… 죽음을 자
초하는 실수이며 망상이다!"
"네…네놈은 입만 살았구나! 네놈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이곳에
는 나의 수하들이 무수히 많다. 네놈은 사면초가의 처지이다!"
검공은 손을 품에 넣었다. 그는 호각 하나를 꺼내 입술 사이에 빼
물었다.
백리웅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은 검공보다도
훨씬 오만해 보였다.
"여기 잠입하기 전, 이 근처를 샅샅이 살펴 보았다. 너의 수하 삼
천이 이십 리 안 곳곳에 매복해 있다는 것을 안다!"
"……."
"훗훗, 그리고 네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수많은 화탄을 만들어
두었다는 것도 알아냈다!"
"대…대살수!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검공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훗훗, 호각을 불어 수하를 불러 봐라. 나도 나의 다섯 수하를 부
를 테니까! 자아, 어서 불어라!"
백리웅이 외치자, 검공은 볼을 불룩하게 했다가 호각을 힘차게 불
었다.
"오냐, 이 오만한 도적놈!"
삐이이-이이-익! 호각 소리가 요란히 나자, 십여 리 안이 일시
에 들썩거렸다.
"우-우!"
"와아아, 맹주가 부르신다!"
"천화석전 쪽이다!"
천하혈맹에 충성을 약속한 사람들이 호각 소리를 듣자, 하던 일을
멈추고 급히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몸을 날리는 사람들의 수는
삼천여(三千餘). 하나같이 가공할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이 천화석전 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할 때였다.
"카카카카카!"
"끄으으- 끄으으-!"
천화석전 근처 다섯 군데에서 괴성이 일며 다섯 그림자가 하늘 높
이 날아올랐다. 천왕처럼 떠오르는 사람들. 그들은 바로 오대공적
이 아닌가!
휘-익-! 그들은 허공에서 다섯 방향으로 흩어져 신형을 폭사시
켜 나갔다. 그들의 신법은 백리웅보다도 오히려 빨랐다.
휘휙- 휙-! 그들이 사방으로 날아오를 때, 둥-둥-둥-둥! 어
디선가 갑자기 전고(戰鼓) 소리가 들려왔다.
도박장 있는 데서 북소리가 나며 도박에 심취해 있던 천화쾌활림
의 손님 중 이백여 명 정도가 벽을 부수고 달려나오는 것이 아닌
가!
"으핫핫, 방주(幇主)! 하명(下命)도 없었는데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어 미안하오!"
"방주, 속하들이 미리 와 있었소이다! 방주가 속하들을 두고 단신
으로 여기 올 줄 미리 알고 닷새 전부터 와 기다리고 있었소이다.
모두 일보해(一步解) 노야(老爺)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라오!"
그들이 드넓은 천화쾌활림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할 때, 이번에는
기루(妓樓) 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푸핫핫, 북천성부(北天星府)의 노야 생각이 내 생각과 마찬가지
였을 줄이야!"
꽈꽝-꽝! 벽이 무너지며 백여 명이 몸을 날렸다. 맨 앞, 붉은 죽
립을 쓴 사람 하나가 쌍검을 들고 표표히 날아오르고 있었다. 바
로 혈천대장(血天隊長)이었다.
스슷-, 가장 빠르게 치달리는 백의인. 그들은 바로 일백팔 혈살
수들이었다. 그들은 구파일방에 끼여들어 구파일방을 부흥시키는
데 전념하라는 백리웅의 명을 어기고 그를 뒤쫓았던 것이다.
"우-우!"
"쳐라!"
"중원 무공의 매서운 맛을 보여 줘라!"
휘휙-휙! 혈살수들은 역전의 노장들답게 노련하게 싸움을 전개해
나갔다.
파팟-팟! 암기가 소나기처럼 퍼부어지는 가운데 죽어가는 사람들
이 부지기수로 생겨났다.
"으으윽, 자…자객방 무리가 여기 다 모여 있다니!"
"아이구우, 차라리 자객방에 들 것을!"
"혀…혈가람사가 이렇게 당하다니!"
"웨에-엑!"
피보라가 일어나며 수많은 사람이 쓰러졌다.
검공은 호각을 떨어뜨린 상태였다.
"……!"
그는 물 밖으로 끌려 나온 붕어처럼 입만 벙긋거렸다.
'자객방을 너무 과소평가했군. 자객방은… 바로 대중원 고수들의
진짜 연맹이었다. 그것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그는 비지땀을 쉼 없이 흘리고 있었다.
"우우, 하나도 남기지 마라!"
"천하혈맹에 든 자들은 중원의 변절자들이다!"
"휘이-익-휙!"
비명 소리, 고함 소리, 휘파람 소리! 쾌활림의 밤은 아수라(阿修
羅)의 밤으로 화하고 말았다.
백리웅은 고개를 젓고 있었다.
"고집스러운 사람들. 내가 오지 말라고 했거늘, 나를 속여 가면서
까지 이렇게 찾아오다니!"
그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수하들의 충정이 그를 감동시
킨 것이다.
검공은 차츰차츰 냉정을 되찾았다.
'천여 일 전, 나는 억만금에 일천 라마고수를 이끌고 중원으로 왔
다. 나는… 나보다 먼저 중원으로 와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마접
사매와 합류해 천 일 사이, 혈가람사를 이전보다 백 배 강한 세력
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는 손을 허리께로 갖고 갔다. 상아(象牙) 칼자루 하나가 손바닥
에 쥐어졌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