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우리는 동안
강미정
물을 끓여서 뜸을 들여서 꽃잎을 넣고 기다리는 동안, 소낙비와 바람과 흙마당이 만들어놓은 그늘이 꽃담까지 빠르게 번지는 동안, 사네 안 사네 머릿속 들끓었던 온갖 소음이 거두절미하고 짧은 하나의 냄새를 갖는 동안,
― 그래 그럼 헤어지면 되겠네
소낙비와 바람과 흙마당과 마주 앉아 차를 우리는 동안, 딱딱하고 무거운 당신의 침묵을 잠깐 생각해보는 동안, 훌훌 떨쳐버리고 떠날 수도 없는 이 짠한 시간 동안,
― 그래 그만 헤어지지 말면 되겠네
다시 뜨거운 땡볕이 혀를 날름거리며 모시 발을 들추는 동안, 처마 끝 풍경이 혀를 날름거리며 모시 발을 들추는 동안, 처마 긑 풍경이 가늘게 인 바람을 날로 먹어 고요한 수면에 번진 둥근 파문 같은 소리를 한 번 피우는 동안, 눈에 고였던 물기가 목구멍으로 붉게 빨려 들어가는 동안,
― 사네 못 사네 하는 이 날들도 따지고 보면 다시 오지 않을 날들이네 두 번 못 올 날들이네
강미정 시집 <검은 잉크로 쓴 분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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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네 삶이 `차를 우리는 동안`은 아닐까요
사네 못 사네 하는 날들도 뜨겁게 달아오르다 식는 찻물처럼 식으면 불의 도움없인
다시 뜨거움으로 돌아갈 수 없는 무한이 아닌 유한이라 아껴쓰야하는데
못난 인간은 가장 가까운 반쪽을 깼다가 붙혔다가 합니다.
강미정 시집 <검은 잉크로 쓴 분홍>의 서정은 저랑 결이 맞아 뽀르륵거리는 발가락 사이 황토흙의 촉감으로
책꽂이에 고이 간직합니다.
2024년 5월 초록속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