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배 시인이 만난 문인 . 55
농암 김중위 수필가
지난 5월 7일, 서울 프레스센터 19층에서 ‘김중위 칼럼집『눈총도 총이다』’ 출판기념회가 성대하게 열렸다. 그의 4선의원이라는 경력에 걸맞게 정계의 거물들이 주를 이룬 기념회에는 상당수의 문인들도 자리를 메꾸고 있었다.
내가 농암(聾岩) 김중위(金重緯) 장관(우리들은 통칭 장관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그가 초대 환경부 장관을 역임했기 때문이다.)을 만나게 된 것은 문인협회 시분과회장에 재임하면서 월간『문학저널』지의 편집위원에 위촉되고 이 잡지에서 시행하는 문학행사와 편집회의 등에서 서로 문학과 시사적인 문제에 까지 그의 해박한 지적 역량을 헤아리면서 부터였다.
그는 초대 환경부 장관을 거쳐서 서울 강동구에서 12, 13, 14, 15대 국회위원을 역임한 원로 정치인기도 하다. 그리고 『수필문학』에 수필작품을 발표하면서 수필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난 9월 2일의 햇살은 아직 정오도 지나지 않는 시각인데도 유난히 강렬한 빛으로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햇살에 비치는 사람들의 살갗은 영롱한 햇빛 때문인지 투명하기 조차 했다. 등허리와 얼굴로 쏟아지는 햇빛은 말 그대로 살(矢)이 되어 따갑기까지 하였다. 강우규 의사의 의거현장인 서울역 광장에서 그의 의거 9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맞이한 햇살이었다.
그는 2009년 10월호 『수필문학』에 「국치일과 마사다」라는 제하로 위와 같은 수필을 발표하고 있다. 그는 왈우(曰愚) 강우규(姜宇奎) 의사가 1919년 9월 2일 오후 5시에 일본 해군대장 출신 사이토라는 자가 조선의 총독으로 부임하기 위해 서울역에 내려서 쌍두마차를 타려는 순간 폭탄을 던져서 지금 꺼져가려는 한민족의 독립정신을 다시 불태운 사건을 기리는 자리에 관한 글이었다.
그는 그 애국지사의 기념식장에 정부 요인이나 정치인들은 한 사람도 참석하지 않았다는 요지와 언젠가 본 영화 ‘마사다’에서처럼 국치일을 기념하면서 새로움을 다지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강렬한 그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초가을 햇살은 곡식만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도 익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적시하고 있어서 감동적이었다.
그는 이처럼 애국적인 시사 칼럼을 많이 발표하고 있다. 대체로 살펴보면『문학저널』을 비롯해서 『수필문학』『좋은문학』『월간헌정』『문학과 현실』『대전일보』『경북신문』등 잡지와 신문에 많은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그 글들은 모아 발간한 책이『눈총도 총이다』이다.
칼럼은 시간이 지나면 생명력을 잃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없지 않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 없다. 역사적인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칼럼은 시대의 증언이라고 말하고 싶다. 먼 훗날 어느 누가 역사 에세이를 쓴다고 가정했을 때 없던 소재꺼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가 『눈총도 총이다』의 ‘머리말’에서 이처럼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그가 지난 젊은 시절에 역임한 유명한 『사상계』편집장다운 표현이며 필력이다.
농암 선생은 1939년에 경북 봉화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정경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정치학석사). 그의 정치적 경력은 다대하다. 전 고려대 총장 현민 유진오 박사의 비서관, 13대 대통령 대변인과 대통령 취임준비위원, 14대 대통령 후보 정무보좌역, 대통령 특사, 당 대변인, 정책연구실장, 정책조정실장, 당 정책위 의장, 당 민족사관정립특별위원장과 한나라당 당무위원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정치인생을 걸어왔다.
또한 그는 4선 의원을 지내면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국회 제도개선특별위원장,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장, 국회 정무위원장, 국회 도시문제연구회 회장과 국회 ‘암법’제정모임 회장을 지냈으며 그 외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과 강우규 의사기념사업회 회장, 포럼글로벌코리아 대표, 대한민국헌정회 편집위원장 등으로 사회단체에서도 지대한 활동을 해왔다. 현재에도 새누리당 상임고문, UNEP(UN환경계획)한국위원회 부총재와 대한민국헌정회 영토문제연구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그는 나와 의성김씨 종친이다. 그가 의성김씨대종회 회장 재임시에 나도 종친회 전국회의에 참석하면 한국문인협회 시분과회장인 나를 소개해서 박수를 받게 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심산 김창숙선생 기념사업회 회장도 역임해서 종친의 족의(族誼) 돈독(敦篤)을 위해서도 심혈을 기울였다.
여기, 포효(咆哮)하는 경인년 백호(白虎)의 기상이 / 한반도 강산 삼천리에 새해의 광명으로 감돈다 / 반만년 신비의 금수강산 옥토 위에 / 신라의 자랑스런 후예(後裔) 우리 의성 김문(義城金門)은 / 찬란히 비상하는 동방의 예지(叡智)로 / 동해에 넘실대는 일출처럼 / 백두 한라를 휘도는 무지개처럼 / 새 역사의 창조를 위해 / 족의(族誼)의 영원한 축복을 기원하리니 / 아아, 선조들의 인덕(仁德)과 예악(禮樂)의 은택(恩澤)으로 / 후손들은 그 영혼을 지혜롭게 계승하여 / 풍요로운 삶의 정신을 불변(不變)으로 누리니니 / 이 아침, 화사(華奢)한 새 희망을 담아 / 우리들의 우렁찬 합창을 울리리라.
나는 위와 같은 ‘庚寅年, 그 永遠한 祈願’이라는 신년시를 종보(宗報)에 게재하기도 했다. ‘우리들 생명의 뿌리 천년을 이어 / 그 은은한 화합과 화평의 메아리는 / 의성 문중(義城門中)의 광채(光彩)로 빛나는데 / 번영의 지평이여, 웅비(雄飛)의 기개(氣槪)여 / 천손 만대(千孫萬代)까지 면면(綿綿)히 흘러라 / 경인년 그 상서로운 슬기와 / 장엄한 불굴의 정신 그 정열은 / 이 땅, 이 역사의 진정한 향기로 남아 / 칠 천만 한 민족의 귀감(龜鑑)이 되리라 / 조국의 통일 성업에 동량(棟梁)이 되리라 / 아아, 우리 후손들의 영광으로 간직하리라.’는 ‘31세손 괴정공파’ 후손의 기원을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영광도 입었다.
그는 문학쪽에서도 수필뿐만 아니라, 『문학저널』을 통해서 시인으로 등단하여 계간『문학마을』이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강동문인협회 명예회장을 비롯해서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문학회 이사, 국제PEN한국본부 고문, 문학저널문인회 총괄회장 등을 맡아서 작품 창작활동도 활발하게 하면서 칼럼도 매회 연재하는 열성을 엿보게 한다.
그는 지난해 11월, 내가 발간한 제10시집『물의 언어학』과 시론집『감응과 반응』출판기념회에 참석해서 축사를 해주었다. 그의 칼럼이나 작품에서 보여주는 필력 못지않게 달변의 논리적인 언술에는 많은 참석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정감이 넘치고 나의 장도(壯途)를 기원하는 공감의 축사였다.
그는 철학 에세이집『목소리를 낮추어』를 비롯해서 에세이와 수필집『산 너머 산이지만』『순간을 위하여 영원을 위하여』『마음의 티끌을 닦으며』등이 있고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을 예리한 필치로 부석하거나 방향을 제시하는『권력과 부패』『정치와 반정치』『사회과학이란 무엇인가』『반정치와 정당위기』『의회주의의 몰락』『부와 빈고』『자유는 자유롭게』등 많은 저서를 출간하여 사회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리고 그는 요즘 ‘TV조선’ 등 종편체널에서도 시사적인 문제에 대해서 정론(正論)과 명민(明敏)한 언변으로 해답을 적시하는 논리와 달변이 시청자들의 박수를 받고 있어서 정치문제를 위시한 많은 사회문제에 대한 해법이 명쾌하다는 칭송을 들을 수 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칼럼 많이 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