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다시 박달재를 가다
자연속으로 걷기 카페 알림에 “ 둘레길 2월18일(토) 제천 박달재 배론성지
트레킹과 5일 장터 한방마을 휴일 걷기” 가 떴다 제천은 Slow City로 선정
되었고 우리나라에서 철원 다음으로 추운 도시로 청풍문화재 단지가 있어
충주와 제천을 잇는 박달재를 넘으면서 “천둥산 박달재는 울고 넘는 우린
님아” 가요 한 구절쯤은 알고 있으려니와 누구나 한 번 쯤은 스친 도시로
내 예정표에는 3월24일~25일 들린다는 계획도 있고 이 대감도 살고 있어서
이 대감에게 연락하여 박달재에서 만나기로 언약부터 하였다
• 제천시의 걷기 코스
1. 자드락길 7코스 58Km
2. 백운산 임도길(덕동생태숲~박달재휴양림) 100Km
3. 금수산 둘레길 60Km
4. 청풍호 둘레길(자드락 6코스)
5. 의림지 둘레길
7. 리솜둘레길 1.4Km
8. 천등산 둘레길 35.16Km
그리고 충청북도 도계 2500리가 있다 들머리 박달재는 터널이 뚫려 옛 길이
되었지만 박달재를 둘러보는데도 많은 시간이 소요될 터-로
• 박달도령과 금봉낭자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숨어 있는 조각공원과 사당
• 1217년(고려 고종4년) 거란 10만 대군이 침공해 왔을 때 김취려 장군이 전승한 대첩비와 역사관
• 도깨비 방망이 집
• 오백나한상과 목굴암이 있는 목각공원이 있어 길손들의 발목을 잡지만 천
주교 신자들이 1801년 신유박해를 피해 배론 성지로 숨어들던 길이다
장봉도 산행을 한 다음날에 06시에 출가하여 만남의 장소로 갔더니 우리 차
량 박종수 기사는 07시20분 사당전철역 1번 출구 앞 공영주차장을 출발하
여 여주휴게소에 잠시 머물고 슬픈 노래를 들어도 즐거워지는 박달재에 10
시가 좀 넘어서 도착시켰는데 박달재에는 찬바람이 쌩쌩 불었고 이 대감이
나와 있었다
최근에 목각공원이 조성되어 고사한 수령 1000년의 느티나무에 새긴 오백나한 상과 목굴암 그리고 금봉낭자와 박달도령의 사당을 둘러 봤다
내 메모장에는-박달재를 다음과 같이 기록 되어 있다
“아리랑 쓰리랑 아라리요
천등산 박달재 넘어간다“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 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노랫말에 나오는데
금봉이와
朴達은
사랑의 종말을
가슴 아프게 남겨
“사랑이 뭐 길래~
슬픈 사연 남겼나“
차라리
평강공주의
신념으로
부왕의
食言에 항변하고
바보 온달을
선택한 고운 마음씨
아름답지 않은 가
하지만
천등산 박달재는
민초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남을 거 2014년2월23일 일요일
정미송은 “가지마라 세월아”
산기슭에 울어대는 산새들아
칼바람 부여안고 어디로 가느냐
그리움에 지쳐버린 나의 넋두리
아는지 모르는지 날아만 가느냐
부두가의 등불도 파도에 젖고
애타는 내 가슴은 눈물에 적시우네
가지마라 (가지마라) 세월아 (세월아)-라고 불렀으며-이하 생략-
최유정은 “박달재 아리랑을 다음과 같이 불렀다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으로 가던 길
금의환향 한을 풀고 고향으로 가던 길
개나리 봇짐지고 절룩대며 넘던 길
보고픈 님 만나려고 헐떡이며 넘던 길
아리랑- 쓰리랑- 아라-리요 천등산 박-달재 넘-어간다-이하 생략
이 대감은 금봉이가 떨어졌다는 바위 위치를 “저쯤에 있다고” 알려 주었지만 믿을 만한 근거는 미약한 것이고 우리는 다시 고갯마루로 올랐고 차량속에서 제천시 경제과에서 파견된 해설사(전통시장과 러부투어 운영실) 이도행씨의 오늘의 일정과 해설을 듣고 트레킹에 들었갔다
포장된 옛길을 조금 내려오니 이정목 있고 입산토록 되어 있다 주론산 4.2Km- 벌써 산악회들의 산제가 열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감시초소와 전망대가 있는 능선 길은 점차로 가파르다 하지만 0.9Km가 천리 길로 느껴지는 것은 체력 소모가 많았기 때문이다
박달재가 고도 430m이고 전망대의 고도는 750m-
박달재에서 감시초소 오르는 능선에서는 우람한 소나무들을 볼 수 있는데 소나무에는 아직도 아픈 상처가 남아 있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다 어제 피로가 덜 풀렸나-할닥할닥 올라야 했고 이 대감과 올라 감시초소 앞에서 봉양면을 바라보면서 봉지 커피를 마시면서 전방에 구학산과 주론산 그리고 아스라이 보여지는 월악산도 조망하고...
다시 출발하면 725봉을 넘어 파랑재에 도착되는데 초소부터 파랑재까지는 칼바람이 능선을 덮쳤고 가끔 빙판길을 만났고 북사면에는 잔설이 쌓였고 파랑재 내리막길은 급경사로 조심스러웠다
파랑재는 팔왕재라고도 하는데 왜 그렇게 부르는지 알 길이 없으나 다만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 그리고 충주와 단양을 잇는 중요한 오솔길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지금은 임도로 조성되었다 길손들이 많았던 고개였을 터-
파랑재를 서쪽으로 넘어 가면 리솜리조트와 박달재자연휴양림이 나오고 동쪽으로 진행하면 배론성지가 나온 다 그리고 이정목에 배론성지 3.4Km 관리사 2.6Km 주론산 3.0Km 전망대 1.3Km로 되어 있다 리조트쪽으로 걸었으면 체력 소모가 적을 터다
길손들은 끼리끼리 옹기종기 어울려 간식들을 먹었다 나와 이 대감은 먹을 것이 빈약하여 걸식으로 포식을 하고- 다시 임도를 따라 배론 성지로 방향을 잡으니 좌측으로 조백석골이다 이 대감이 말하기를 조백석골은 이곳에는 논이 없어서 조(禾)를 심어서 백석을 수확했다고 한 다- 옛날 이야기다-
쭉쭉 뻗은 낙엽송이 길 양옆을 호위하는 내리막길을 도란도란 걷는 다 1801 년(정조15년)에 일어난 신해박해 이후 천주교 신자들이 탄압을 피해 은신처로 배론에 숨어들어 화전과 더불어 옹기를 구원 충주에 팔기 위해 파랑재와 박달재를 넘어 다녔고 제천 단양 선비들이 과거보려 한양 가던 길이다
주론산은 고도가 903m이고 전면으로 보이는 九鶴山(971m)에서 학 아홉 마리를 날려 인근에 학(鶴)자가 들어간 동네 이름이 아홉이나 되었다는 스토리텔링이 있다 배론성지에 도착하여 황사영이 숨어서 백서를 쓰던 굴도 보고 옹기를 굽던 가마터와 배론신학교 모습도 살펴봤다
• 배론신학교
1855년(철종6년)에서 1866년(고종3년) 사이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근대식 교육기관
• 黃嗣永(Hwang Sa Yeong 1775년~1801년)- 백과사전
조선의 천주교 순교자다. 본관은 창원. 자는 덕소, 세례명은 알렉시오(Alexis)이다. 정약용의 큰 형인 정약현의 사위로 천주교도가 되었다. 알렉시오라는 세례명은 1794년 조선에 들어온 중국인 천주교 신부 주문모에게 받았다.
황사영 백서사건-백과사전
백서사건은 1801년(순조 1년)천주교 신자 황사영이 당시 베이징에 머물던 구베아 주교에게 편지를 보내려고 한 사건을 말한다. 백서란 명주천에 쓴 편지라는 뜻이다. 황사영은 신유박해의 경위와 실태, 순교자들의 약력, 청나라 천주교 선교사 주문모 신부의 처형사실, 조선 정치계의 실정, 전교하는데 필요한 방안등을 적었으며, 조선정부가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도록 중국 정부에 조선을 강소성이나 사천성 같은 청나라의 한 성으로 편입시키거나, 청나라의 황제가 간섭해줄 것을 요구했으며, 심지어는 서양 열강들이 군대를 보내 무력시위에 나설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편지는 편지를 보내는 도중 압수되었으며, 황사영은 1801년 신유박해때 처형되었다. 편지 원본은 1925년 당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이었던 뮈텔 주교가 교황 비오 11세에게 기증하였다.
백서의 내용
백서의 내용은 1785년(정조 9) 이후의 교회의 사정과 박해의 발생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한 다음, 신유박해의 상세한 전개과정과 순교자들의 간단한 약전(略傳)을 적었다. 그리고 주문모 신부의 활동과 자수와 그의 죽음에 대하여 증언하였다. 청나라 황제에게 청하여 조선도 서양인 선교사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할 것을 요청하였고, 아니면 조선을 청나라의 한 성(省)으로 편입시켜 감독하게 하거나, 서양의 배 수백 척과 군대 5만∼6만 명을 조선에 보내어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도록 조정을 굴복하게 하는 방안 등을 제시하였다.
• 배론성지- 백과사전
충청북도 제천시(천주교 원주교구 소속)에 위치한 대한민국의 천주교 성지로, 계곡이 깊어 배 밑 바닥 같다고 하여 '배론'이라 불린다.
배론성지에는 황사영이 백서를 쓴 토굴이 복원되어 있으며, 옛 성 요셉 신학교 터가 복원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또한 해마다 원주교구 사제, 부제 서품식이 거행되고 있으며, 최양업신부와 원주교구 초대 교구장을 역임한 지학순 주교의 묘소도 이곳에 있다. 성지 인근에는 순교자 남상교의 유택과 봉쇄 수녀원이 자리 잡고 있다.
성지 잔디밭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제천역 앞에 있는 전통시장으로 차량으로 이동하니 마침 오늘이 제천 장날이라 한 다 이끄미 닉네임 노루지가 점심시간으로 한 시간을 준 다 이 대감 그리고 복덕아와 수원식당을 찾아들어 갈만탕(갈비탕+만두)을 맛있게 먹고 이 대감은 喪家로 서둘러 갔고 복덕아와 시장을 어슬렁 거리려니 김 선생으로부터 3월3일의 언약 트레킹을 문화쪽으로 바꾸자는 연락을 받았고 길거리에서 맨발 엔젤 설송의 영접을 받고 음료수를 몇 모금 마시려니 객지에서 반겨주는 그들의 고운 마음씨가 너무나 고마웠고 감사하니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가 되었다
제천에는 약초시장이 있는데 대구 약령시장 서울 경동시장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약초시장이다 하여 한방마을로 이동하여 족욕을 하고 사상의학 체질 검사를 무료로 받고 발 맛사지를 받았는데 베트남 식으로 아가씨들이 예뻤으니... 하루가 너무나도 짧게 흘렀다 보고 듣고 배우고 이래서 걷기는 좋은 것이다
보충
제천시에는 삼국시대부터 의림지(저수지)가 조성되었고 아리랑 공연도 열린 다
도란도란 걷는 다
자연속으로 걷기 카페 회원들과
길손이 되어
박달재
목각공원에서
1000년 느티나무 고사목에 조각된
아미타불 부처와
오백나한상에 소원을 빌고
주론산 능선
750m에 올라
전망대(초소도 있음)에서
구학산과 월악산을 조망하고
파랑재에서
끼리끼리
간식을 나누고
조백석골 끼고
임도 따라
배론 성지 들려
황사영 백서 쓰던
토굴을 살펴보고
전통시장 한방마을 들리는
나들이에 잊혀질 수 없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2017년2월18일 일요일
첫댓글 토요일 하룻길이 주마등처럼 그려지는 글입니다
박학다식하시고 해박하심에 글솜씨 또한 훌륭하십니다
좋은글 감사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르막이 많이 힘들었지만 행복한 시간이 더 길었던 봄마중 길이었습니디
바람은 매서워도 봄바람 이었습니다
조용원님의 글 팬이 되겠습니다 ㅎㅎ
과찬-분수에 넘치고요 감사합니다
소중하신 글 덕분에 마치 내가 다녀온듯 하였답니다. 고맙습니다
모르고 지나쳣던 길에 대한 이야기 잘듣고 다시 한번 그길에대해 생각 해봄니다. 세세한 설명 감사 드리고 늘건강하셔서 자주뵙길 기대합니다 ~~~^^
어쩜 이렇게 글을잘 쓰시는지 넘 부럽사와요~잘보고 갑니다~^^
항상 좋은 길 함께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걷기 후기글을 점차 자수가 많아지는 것은 우리에게 주시는 정보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의미겠지요.
좋은 정보 감사히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