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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검은 짐승 Part I
- (2)
"일반적으로는 흡혈귀라 불리고 있어도, 우린 크게 두 종류로 나뉘어져. 태어날 때부터 흡혈귀였던 종과 흡혈귀가 된 종.
전자를 신소(眞祖), 후자를
시토(死徒)라고 부르지. 너희들이 흡혈귀라고 부르는 쪽은 시토야.
인간의
피를 빨고 이를 자신의 노예로 삼고, 그리고 태양 빛에 약하며 세례의식 앞에 패퇴하는. 우리들의 적도 시토로 구별되는 흡혈귀야."
어느 틈엔가 "내 적"에서 "우리들의 적"이 됐다. 뭐...지금 상황에서는 별로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으니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시토는 원래는 인간이었던 자들이야. 마술의 힘을 이용해서 불로가 된 자들이나 신소에게 피를 빨려 그 노예가 된 자들이 있어. 어느 쪽이건 간에,
흡혈귀가 된 자들은 불완전하지만 어쨌든 불로불사의 육체를 손에 넣을 수
가 있지."
처음부터 흡혈귀였던 것과 인간이었지만 흡혈귀가 된 것이 있다, 라는 이야기인가...뭐랄까...이 이야기 속에는 무엇인가 말도 안 되는 모순점이랄까,
구조적으로 커다란 결함이 있는 것 같다.
"저기 말야, 시키. 시키는 흡혈귀에 얽힌 이야기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있어?"
"글쎄...그냥 평범한 이미지 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처녀의 피를 빨아먹는
다든지, 노려보는 것만으로 상대를 못 움직이게 해버린다든지, 안개로 변하고 늑대로 변하고 한다든지 하는 게 뭐...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들인데?"
"응. 대체로는 다 맞았어. 처녀의 피를 빨아먹는 건, 아직 다른 인간과 체액을 교환하지 못한 순수한 세포와 혈액이 열등화 되어가는 자신의 유전자를 보충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 중에 가장 괜찮은 방법이니까. 시토 - 이차적으로 흡혈귀가 된 흡혈종은 불완전한 불로불사라 할 수 있지.
확실히
불로를 얻어냈기에 늙어서 죽는 일은 없어. 하지만 그 만큼의 에너지를 언제나 보충해 주고 있지 않으면 결국엔 죽게 되지. 그 어떤 생물이라도 영양을 보충해 주지 않으면 활동할 수 없게 되지? 그것과 같아. 다만 흡혈종은
영양만 계속 보충해 주는 한 수명을 갖지 않는다, 라는 것 뿐이야."
"시토에 해당하는 흡혈귀들은 말야, 스스로가 살아가는데 필요하기 때문에
피를 빠는 거야. 원래는 인간이었으니까 불로불사의 육체를 가지는 데에는
무리가 따르지. 그들의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유전자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그릇...흡혈종이 되면서부터 급속도로 열등화 하게 되지. 그렇기에 그것을 보충해 주려고 다른 사람의 혈액을 빨고 그 유전정보를 흡수해서 자신의 육체를 고정해 나가. 흡혈귀에게 있어서 피를 빤다는 행위는 식사가 아닌, 존재를 위한 필요최저한의 행위인 거야.
그럼, 다음. 노려보는 것만으로 상대를 옭아맨다, 라는 건 일종의 마안이라고 할 수 있어. 눈은 언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표적인 마술회로이기에 마안을 가진 흡혈종은 많아. 우리가 가진 건 보통은 매혹의 마안이지.
우리가 본 상대를 매혹시키는게 아니라 우리들의 눈을 쳐다본 상대를 매혹시키는 거야.
강력한 흡혈귀의 마안은 안구에서 상대의 뇌에 직접 자신의
의지를 심어넣어 상대의 사고를 완전히 장악하지만, 시토의 마안은 그 정도의 힘을 갖고 있지 않아.
또,
안개가 되거나 하는 건 사전에 분신 같은 걸 만들어내서 거기에 의식을 옮기게 되는 경우야. 볼 일이 끝나면 분신체를 조종하는 마력을 컷 해버리니
까 자동적으로 티끌로 되돌아가 버리는 거지.
늑대 - 다른 동물로 변화하는
능력 같은 건 파손된 육체를 사역마로서 보충한 결과라고 할 수 있어. 오랜 세월을 살아온 흡혈귀일수록, 통상의 생명력으로는 자신의 파손된 육체를
제대로 보수할 수가 없어. 인간은 동물 중에서는 기초능력이 떨어지는 생물에 속하니까 육체를 보수하기 위해서는 인간보다 우수한 종에 속하는 야생의 짐승을 흡수하는 쪽이 보다 나은 효율을 기대할 수 있지.
자신의 육체를
짐승으로 보충하고 있는 흡혈귀는 필요한 때에는 그 짐승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 사역마로서 쓰고 있어.
음...예전에 들었던 이야기인데, 자신의 몸 속을 모두 사역마로 채워넣은
천년 클래스의 흡혈귀가 있다는 것 같아. 그 녀석이 몸 속에 내포하고 있는
짐승의 수는 육백 육십 육 마리였다던가..."
" - "
알퀘이드의 이야기는 좀 아스트랄로 새나간 듯 싶다. 솔직히 내가 알아들을수 있는 세계의 이야기가 아냐...
"뭐, 대충 이 정도일까나? 대충 개요만 따와서 설명했는데, 이제 흡혈귀가어떤 건지 알겠어?"
"단어 상의 의미만으로는 대충."
아니 그보다, 알퀘이드가 흡혈귀라는 사실이 아까보다 더 가슴에 와 닿지
않게 된 듯한 기분이...
"자, 그럼 다음은 내 차례야. 사실은 나도 시키한테 중요한 걸 묻고 싶었는데 지금까지 까먹고 있었거든."
"? 뭐야, 나한테 묻고 싶은 건 아무 것도 없을텐데? 난 흡혈귀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학생이니까 말야."
"흐응~~그럼 시키한테 질문. 너, 어떻게 날 죽였어?"
"하아?"
"그러니까 어떤 방법을 썼냐고 묻는 거야. 룬이나 카발라 같은 비술에는 항체내성이 되어있으니까 나한테 안 들을테고, 항체내성이 되어있지 않은 것
- 내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마술이라고 하면 이 나라의 고신도(古神道)랑
남미의 비보(秘寶) 정도 뿐인데."
"...아냐, 그 정도로 저 지경으로까지 날 '죽여'놨을 수는 없어. 대답해,
시키. 너, 무슨 연대물의 비보로 날 저 지경으로까지 재기불능으로 만든거야?"
"연대물의 비보...가 대체 뭐야?"
"역사와 상념을 축적한 촉매 말야! 이 나라에도 신기(神器) 같은 게 있지?
보통은 법장(法杖)이나 검, 보석이나 가면을 사용하는 대 자연용 개념무장
을 말하는 거지만 - 봐봐, 시키. 너 정말로 그쪽 방면의 사람이 아냐?"
"그쪽 방면이고 뭐고, 난 그냥 평범한 학생이라니까. 그쪽으로 아는 건 아무 것도 없다구."
"거짓말. 마술사도 아닌 인간이 나에게 상처입힐 수는 없어...시키, 나한테
숨기고 있는 거 있지?"
알퀘이드는 성난 고양이처럼 날 노려본다. 하지만...그런 눈으로 쳐다봐도
나한텐 숨기고 있는 일 같은 건 - 아아, 있지 참.
"사실은 하나 있기는 한데...관계가 있을지 모르겠네."
알퀘이드는 아직도 날 노려보고 있다. 아무래도...이대로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있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럼 말할게...뭐라고 말하면 좋으려나...나 말야, 사물을 자를 수 있는선이 보여."
"에?"
멍한 표정이 되는 알퀘이드. 그렇겠지...이런 이야기, 보통은 아무도 안 믿어주니까.
"...무슨 의미야?"
하지만 알퀘이드는 진지한 눈빛으로 되묻는다. 과연 보통이 아니구만. 좋은
의미로 내 기대를 배신해 주다니.
"그러니까 나 말야, 사물을 자를 수 있는 선이 보여. 생물이라든지 지면이
라든지, 어쨌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거라면 모두. 검은 선 같은 건데, 거기에 칼 같은 걸 갖다대면 해당하는 사물이 깨끗하게 절단된다든지...이거,
의미가 있으려나? 쇠를 나이프로 자를 수 있는 건 편리한 일이지만 별로 마음대로 자를 수 있는 것도 아냐. 선이 보이는 곳 밖에 자를 수 없는데다 널
절단할 때에도 - 저기, 나이프라면 여자 피부 정도는 자를 수 있겠지?"
" - "
알퀘이드의 눈빛이 진지하게 - 딱 한 번 나한테 보여줬던 저 살기어린 눈빛
이 되어간다. 힐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 호흡을 멈추게 할 것 같은 시선.
" - 그래. 직사의 마안 같은 건 동화 속 이야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있기는 있는 모양이네. 너 같은 돌연변이 괴물이."
"그 - 그게 무슨 소리야? 나한텐 흡혈귀니 괴물이니 하는 소릴 들어야 하는
이유가 없다구!"
"괴물은 괴물이지. [사물의 죽음을 보는] 마안은, 우리들 중에서조차 보유하고 있는 자가 없을 정도니까."
"...? 사물의, 죽음을 본다...?"
알퀘이드는 마치 적을 대하고 있는 듯 눈을 치켜뜬 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시키. 네 눈은 말야, 틀림없이 회선이 열려져 있을 거야. 그 눈, 태어날
때부터 그랬어?"
"아니, 이렇게 된 건 꽤 옛날 일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이랬던 건 아냐."
"...흐응...그럼 예전에 한 번 죽어본 경험이 있지?"
"무슨 - "
확실히, 8년 전에 죽을 뻔한 사고를 당하기는 했지만.
"역시. 잠재적인 능력도 있었겠지만, 그게 계기가 됐군...직사(直死)의 마안, 이라...그거라면 확실히 날 죽일 수가 있어."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 나서 알퀘이드는 눈빛을 달리했다.
"알퀘이드...너, 이 선이 뭔지 아는 거야?"
"너 정도는 아니지만, 지식은 가지고 있어. 네가 보고 있는 건 만물의 결과, 사물을 쉽게 죽일 수 있는 부분이야.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모든 존재의 사기(死期)...'죽음'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지."
" - "
...생각났다. 확실히 그 때. 이 안경을 나한테 주셨던 선생님도, 알퀘이드와 같은 사실을 가르쳐주셨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말씀은 알퀘이드의 말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내가 보고 있는 건 단순한 선이며 그런, 죽음과 같은
거창한 것들이 아냐.
"무슨 소리야. 나한테 보이는 선들은 말야, 그냥 저기 자를 수 있겠다 싶은그런거 아냐?"
"그러니까 그 선이 '죽음'이라는 거야. 알겠어, 시키? 형체를 가진 모든 사물에는 그 끝맺음이 있어. 그것이 언제가 될 지는 개별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최후라는 건 있는 거야. 죽음은 찾아드는 것이 아닌, 탄생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내포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발현하게 되는 거지. 그것이
원인과 결과. 인과율이라는 말, 들어본 적 있지?"
"발생한 이상, 모든 사물에는 끝맺음이 있어. 그 끝맺음은 처음부터 '언제가 될지' 결정되어 있지. 그것이 사물의 [사기]라는 거야. 그래서, 처음부터 그런게 있기 때문에 [사기] 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기능과 회선에
맞는 뇌수, 안구가 있다면 그것을 눈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냐."
"그것이 네가 보고 있는 [선]의 정체야. 어디까지나 개념상의 지식일 뿐이지만 굳이 너희들 식의 이론으로 설명하자면 분자와 분자의 결합이 좀 더약한 부분, 쯤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 또는 그 개체의 사인(死因)을 발현시키는, 유전자에 준비되어진 붕괴의 스위치라든지."
"아, 하지만 그럼 좀 안 맞는 부분이...응, 나한텐 안 보이니까 단언할 수는 없지만 시키한테 보이는 건 [선] 뿐만이 아니지? [선]보다는 [점]이라고
생각하는데."
" - 아"
그래. 처음 알퀘이드를 봤을 때. 내가 내가 아니었던 것 같았던 그 때. 안경을 벗은 나의 눈에는 언제나 봐 왔던 낙서들과 - 낙서자국이 흘러나오는
원인인 것 같은 검은 점 들이 보였다.
"...그래. 그 때 뿐이었지만 - 틀림없이 검은 점들이 보였어. 네 몸에도 몇군데 있었고...검은 점은 점과 점을 서로 잇는 듯 흐르고 있었어."
예를 들면, 마치 혈관 같은...
"...생각대로네. [사물을 죽이기 쉬운 선]과 [그 죽음] 인가...그런 상태로
용케 지금까지 살아왔군. 시키 너, 꽤나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네."
알퀘이드는 담담히 말한다. 나는 그녀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나름대로 파\악은 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 그 무엇 하나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 - 뭐야 그게. 그런 게 있을 리도 없고 정말로 보일 리도 없잖아...!"
"넌 보이는게 아냐. 생물은 보통, 머리를 잘리면 죽지. 이건 절단했기 때문
에 정지했다 라고 설명할 수 있어. 거꾸로 말하면 머리가 절단되지 않는 생물은 죽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 아, 이건 나에 해당하는 경우니까
예외라고 생각해줘."
"근데 네 경우에는 그 원인을 무시할 수가 있어. 그 어떤 외적요인을 무효화시키는 상대를 만나도 어쨌든 죽이지. 죽인 상대는 그 후에 '죽은' 상태
가 될 거야. 절단했으니까 정지했다라는게 아니라, 네 경우에는 사물을 정지시키고 그 결과로서 대상이 절단된다는 소리지."
"거봐. 이게 괴물이 아니고 뭐라는 거야? 단순히 사물을 자를 수 있는 선이라고는 말해도, 네 두 눈은 지금까지 존재해 왔던 그 어떤 초상현상 보유자
보다도 특이해. 너는 말이지, 시키. 그 어떤 사물이라도 죽여버리는, 사신
같은 눈을 가지고 있으니까."
할 말이 없다. 알퀘이드가 말한 대로, 내 눈이 그런 걸 볼 수 있다면. 내가
보고 있는 저 검은 선들은 세상 만물의 사기 그 자체였다는 것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내 주위는. 이다지도, 죽음으로 충만해 있었단 말인가.
"...그럼 뭐야. 네 말대로라면 나, 널 죽일 수 있다는 소리가 되잖아."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시험해 볼까?"
알퀘이드는 창가의 커튼을 열어젖힌다. 전기가 들어와 있지 않은 방 안. 창
너머의 달빛만이 약하게 실내를 비추고 있었다.
"자, 괜찮으니까 어디 한 번 죽이려고 해봐. 아, 설마 그 안경으로 보이지
않게 하는 거야?"
" - 괜찮겠어?"
물론, 그냥 보기만 할 생각으로 안경을 벗었다. 그와 동시에 방 전체에 걸쳐 검은 선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창 밖에 떠 있는 하얀 달. 낮에는 강한
햇빛 때문에 보기 힘들었지만 미약한 달빛 속에서 [선]은 빛나기까지 해 보인다.
그 안에서.
알퀘이드의 몸에 있는 [선]은 너무도 가늘어서 의식을 집중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시키한테 당하지만 않았어도 틀림없이 완전히 보이지 않았겠지만 지금
은 아마 좀 보일 거야.
나 말야, 밤에는 [사기]가 없지만 낮 동안에는 조금
생겨버리거든.
시키가 날 죽일 수 있었던 건 낮이었기 때문이었지만 그 후
에 소생을 위해 힘을 써버린 탓에 지금은 밤에도 [사기]가 생겨버리지.
-
말하자면 불로불사의 몸이 아니게 됐다는 소리지만...시키, 내 몸의 선을
자를 수 있겠어?"
...글쎄. 확실히 선이 있으니까 자를 수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때처럼
깨끗하게, 1초도 걸리지 않고 절단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힘들 거야. 선이 보이다가 안 보이다가 하니까 알퀘이드가 잠들어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해."
"그렇지? 그게 너의 최대의 결점이야. 아무리 [죽음]이 보인다고는 해도 그[선]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시키 자신의 능력이 반드시 필요해.
아무리 내가
약해져 있다고는 해도 시키한테 사로잡힐 만큼 운동신경이 저하되어있지는 않아."
지끈하고 두통이 밀려든다. [선]을 보고 있으면 두통이 일어나는 건 어렸을적하고 똑같다. 안경을 쓰고 시계를 원래대로 돌려놓는다.
알퀘이드는 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뭐야. 아직 또 뭐가 남았어?"
"아니, 그런게 아니라. 시키는 그 안경을 쓰고 있으면 [선]이 안 보여?"
"뭐, 그렇긴 한데. 옛날에 내 눈이 이렇게 됐을 때 만났던 사람한테 받은
거야. 지금은 렌즈 밖에 쓰고 있지 않지만 이것 덕분에 그럭저럭 보통의 생활을 살아갈 수 있었지."
"그렇구나. 그래, 아무리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언제나 죽음에 직면해
있으면 발광하던가, 아니면 눈을 으깨버릴 수 밖에 없을테니까."
그렇게 말을 하며, 알퀘이드는 내 곁으로 다가선다.
"잠깐, 그거 보여줘."
" - 싫어. 이건 나한테 소중한 물건이니까 안돼."
"망가뜨리겠다는 소리가 아냐. 진짜로 보기만 할테니까 좀 보여주라."
알퀘이드는 힘으로라도 빼앗으려는 듯 조금씩 조금씩 내게로 다가선다.
-알퀘이드는 포기할 것 같지가 않다.....
"...알았어. 다 보면 빨리 돌려줘."
안경을 건넨다. 알퀘이드는 뚫어질 듯이 안경을 바라보더니 무서운 눈빛이
되어서는 나를 노려본다.
"시키. 이거 만든 사람, 이 마을에 있어?"
"글쎄? 아마도 없을걸. 벌써 8년이나 된 일인데다 겨우 1주일 정도만 이 동네에 있엇던 것 같으니까."
" - 그래. 다행이군, 귀찮은 상대가 늘지 않아서...뭐, 하긴 상대가 블루라면 일단 후퇴하는게 무난하긴 하겠지만."
알퀘이드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어버린다.
"알퀘이드. 너, 선생님 - 아니아니, 그 안경을 만든 사람을 알아?"
"...어. 현존하는 4명의 마법사 중 한 명이지. 그 안경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엄청난 물건이야. 내 힘으로는 거의 망가뜨릴 수 없을 정도야."
알퀘이드는 점점 더 진지한 얼굴이 되어간다.
"...너, 이거 망가뜨리려고 했었던 거냐...?"
" - 에? 내, 내가 그런 소리 했었나?"
"...역시 망가뜨리려고 했었던 거구만..."
알퀘이드에게 건네줬던 안경을 도로 빼앗아온다.
"거참...이 안경이 없으면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다고 말한 건 너잖아. 아니면 나더러 그렇게 되라는 거야, 뭐야?"
"별로 그러려던 건 아니고...그냥, 시키가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는게 싫어서..."
" - 너 말야..."
...정말이지, 이녀석 사고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누가 제발 나한테 좀가르쳐 줘...
"확실히 선생님과의 추억도 소중하긴 하지만, 지금은 그 이상으로 이게 없으면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어. 하루 웬종일 선이 보이게 되면 미쳐버리기
전에 두통으로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릴 것만 같으니까."
"흐응~~[죽음]을 보고 있으면 뇌에 부담이 가해지는 모양이네...응, 시키눈에는 뭔가 원인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는건 이 정도까지야. 기회가 있으면 좀 더 자세하게 가르쳐줄게."
"됐시다. 안 됐지만 길게 이야기하는 건 체질에 안 맞아서 말야."
"그렇구나. 난 다른 사람이랑 이야기하는게 좋은데."
알퀘이드는 천진 난만하게 웃는다. 마치 정말로, 그저 이야기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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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간다. 알퀘이드는 침대에 걸터앉아있고 나도 마찬가지로 침대 위
에서 멍하니 시계만 바라보고 있었다. 오전 4시를 조금 넘긴 시각. 해가 뜰
때까지 앞으로 1시간 쯤 남았다.
"앞으로 1시간, 인가"
아직까지 이렇다 할 이상도 없었고 알퀘이드 본인은 긴장하고 있는 기색도
내지 않는다. 어쨌든 주위는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오늘 밤은 이대로 날이 밝는 것이 아닌가 하는 확신까지 들었다.
"저기, 시키"
알퀘이드가 벌써 몇 번 씩이나 나를 부른다.
"뭐야. 나 너랑 더 이상 이야기할 게 없는데."
"그래? 모처럼 물어보는데 아쉽지도 않아?"
"...야, 아까부터 너랑 몇 시간 동안이나 의미도 없는 이야기 나누고 있는
줄 알아? 6시간이야, 6시간. 나한텐 보초 서는 것보다 너 상대해 주고 있는게 더 피곤하다구."
알퀘이드의 시선이 불만에 가득 찬다.
- 그랬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요 6시간 동안 알퀘이드는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어대고 있었다.
몸이 약해져 있으면 그냥 자면 그만인 것을 '이야기하는게 즐거우니까' 라는 핑계를 대면서, 결국 이렇게 둘이 서로 마주 대하고
있는 꼴이다.
"...하아"
이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로선 정말 모르겠다.
- 꾸르르르륵
\덤으로 배까지 고파졌다. 생각해 보니 어제 아침식사를 먹은 이후 거의 만
하루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상태이다.
"배 고프면 뭐 좀 먹을래? 모처럼 괜찮은 호텔에서 묵게 됐으니까 룸 서비스를 쓰면 되는데."
"됐시다. 배가 부르면 긴장감이 없어져 버리니까. 그것보다, 그러는 너야말로 뭔가 좀 먹는게 낫지 않아? 약해져 있다는 주제에 잠도 안 자고 있고,
하다못해 식사라도 좀 하라구."
"시키가 안 먹으면 나도 안 먹을래. 보통의 식사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지만
혼자서 먹으면 심심하단 말야."
"보통의 식사라니, 식사에 보통이고 특별이고가 어디 있 - "
...아참, 그랬었지...알퀘이드는 흡혈귀다. 그렇다면 이녀석한테 있어서 인간의 피를 빠는 일 역시 [식사]가 된다는 소린가.
" - 을라나, 너한텐...흡혈귀니까 말야. 피 이외에는 거의 입에도 대지 않겠군."
아무리 봐도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알퀘이드는 흡혈귀다. 알퀘이드는,
흡혈귀는 살아가기 위해 인간의 피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 알퀘이드는 지금까지 누구의 피를 빨고 몇 명이나 되는 인간을 죽여온 거지?
" - "
힐끗 알퀘이드의 얼굴을 쳐다본다. 상상이 안 되는군...알퀘이드 역시 흡혈귀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째서인지 난 이녀석이 사람의 피를 빨고
있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
"왜?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시선이 마주치자 당황스럽게 눈길을 돌린다. 알퀘이드는 물끄러미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곧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신경 쓰여?"
"뭐, 뭐가"
"내가 얼마만큼의 사람들의 피를 빨았는지 말야."
"...그야 당연하지. 난 너랑 서로 협력하고 있는 사이야. 그럼 그런 것 정도는 알아둬야 언제 네가 마음이 달라져서 덮쳐오게 될지, 예측할 수 있을거 아냐."
그런 상황은 정말로 곤란하다. 알퀘이드는 '그렇군~~' 하며 납득한다.
"그럼 문제. 난 지금까지 몇 명의 피를 빨아왔을까요?"
가벼운 몸동작으로 침대에서 일어서서 창가 쪽으로 걸어가는 알퀘이드.
"몇 명이라니, 그건 - "
알퀘이드는 빙글빙글 웃으며 침묵을 지키고 있는 나를 유쾌한 듯 바라본다.
제길...이건 명백한 도전이야. 좋아, 그럼 대답해 주지. 그래 - 틀림없이
"그럼 백 단위, 정도 될까나?"
"아쉽게도 정답이 아니군요."
"그럼 천 단위."
"예~~그것도 정답이 아니네요."
알퀘이드는 뭐가 그리도 우스운지 계속 웃고만 있다. 왠지...엄청 원통한데
이거...
"젠장...그, 그럼 그럴 리는 없겠지만...설마 십 단위야?"
"그것도 땡. 뭐야, 십 단위다 백 단위다 천 단위다, 시키는 날 그런 식으로
생각했단 거네? 너무해, 내가 그렇게 사리판단도 못하는 줄 알아?"
"그럼 아냐? 흡혈귀한테는 그런 거 없잖아. 인간도 살아있는 것만으로 배가
고프다구. 너희들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피를 빨지 않으면 안 되고, 그럼 그게 그거지."
"그래. 그건 그렇긴 하지만..."
"나 동물이나 사람의 피 같은 거, 지금까지 8백년 동안 한 번도 입에 댄 적없어. 평범한 인간을 죽여본 적도 전혀 없고."
"잠깐 - 너, 그게 정말이야?"
"응. 왜냐하면 나, 피를 빠는게 무서운걸."
- 하아?
피를 빠는게 무섭다?
"거짓말이지? 피를 빠는게 무섭다니 - 너 흡혈귀잖아, 근데 왜?"
"...나, 틀림없이 겁쟁이일 거야. 그러니까 언제까지고 흡혈종으로서 제구실도 못하고."
창 너머로 밤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알퀘이드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알퀘이드는 고개를 들어 계속 하늘을 바라본다. 하얀 뒷모습은 흐릿했고, 마치 환영처럼 희미하다.
"아 - "
가벼운 현기증이 일었다.
"시키? 왜 그래, 그렇게 이마에 땀까지 흘리고."
"아니, 머리가 좀 아파서 - "
알퀘이드에게 그렇게 대답하는 도중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알퀘이드 등
뒤의 창. 그 유리 너머, 아직 어둠에 잠겨있는 거리 한복판에.
푸른 까마귀가,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녀석은 - "
얼빠진 듯 창너머를 쳐다볼 수밖에 없다. 알퀘이드도 창가 쪽으로 시선을
향한다.
"...네로?"
[과연...겨우 찾았군, 신소의 공주여]
어디선가. 그런 뜻의 의사가 방 안에 흘러들었다. 알퀘이드의 눈에 적의의
빛이 감돈다. 창 밖의 까마귀는 까악 하고 목청껏 운다.
[이걸로 끝이다. 지금 곧, 그쪽으로 가지]
푸른 까마귀는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그리고는 그저 밤의 어둠과 하얀 달만이 남았다.
- 그 순간
쿵 하는 무거운 소리와 함께 방 전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의 진동은 호텔 전체를 흔들고 있었다.
알퀘이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분하다는
듯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을 뿐이다.
" - 알퀘이드 - "
불안한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분하기 때문인가. 알퀘이드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품기라도 하듯 무엇인가를 견뎌내는 눈치다.
알퀘이드는 이 방에서 나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 - 좋아"
내가 해야할 일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들고 방문까지 걸어간다.
" - 시키?"
"밖에 좀 보고 올게. 내가 돌아올 때까지 방에서 나가지 마."
뭔가 말하려는 듯한 알퀘이드의 시선을 뿌리치고 복도로 나섰다.
복도에 사람의 기척은 없다. 방 안에서는 들리지 않았었지만, 복도는 여럿이 떠드는 소리로 제법 소란스러웠다.
이 플로어가 소란스럽다, 는 이야기는 아니다. 소리는 발 밑에서 들려왔다. 아래층은 굉장히 소란스러웠고, 대충 몇 사람 쯤 됨직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아마 방금 전의 진동으로 자고 있던 손님들이 일어나서 호텔 측에 항의라도
하고 있는 거겠지.
"...이상은, 없으려나"
복도를 걷는다. 아래층에서 들리는 웅성이는 소리는 마치 파도소리에 닮아
있다.
소란스러운데도 - 지독할 정도의 고독함마저 느끼게 하는, 한산한 소음.
" - !?"
나이프를 쥔 손끝이 얼어붙는다. 머리 뒤쪽으로 싸늘한 한기가 돈다. 무엇인가, 관자놀이 근처에. 안구의 안쪽에서 통증이 밀려드는 듯.
이를 참아내며 일렁이는 복도를 걷는다.
아파. 눈이, 아파. 머리가 무거워지고 그대로 쓰러져 버릴 것만 같은 부유감. 그래, 알고 있어. 이건 틀림없이 빈혈로 쓰러지기 직전의 감각이야.
"하아 - 아"
아파. 아프기에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어 안경을 벗었다. 엘리베이터가
보인다. 긴 복도다. 여기서 엘리베이터까지 약 10미터 이상은 남아있는 것
같다.
- 그때
딩동, 하는 벨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는 11층에 멈춰섰다.
" - "
엘리베이터 문에 [선]이 보인다. 아니, 그건. 너무나 농밀(濃密)해서 완전히 새까맣게 보일 정도로.
문이 열린다. 좁은, 철 상자가 열린다. 상자의 안에는. 사람의 육체가.
엘리베이터라는 철로 된 상자. 인간의 붉은 살점이 압축되어 가득 채워져
있다. 그 안에 두 마리의 검은 개가 무엇인가를 게걸스럽게 뜯어먹고 있다.
" - !?"
호흡이 멈췄다. 뇌가 사고활동을 거부하듯 폐도 그 활동을 거부했다. 숨을
쉴 수가 없어.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시계가 붉게 변해간다. 무엇인가 터져 나오는 듯한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에서 피가 넘쳐나온다.
피와, 사람과, 팔과, 다리와, 뼈와, 뇌와, 손가락
과, 내장의 바다 속에. 두 마리의 검은 개들 만이 유일한 살아있는 생명이
었다.
이성이, 이 광경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복도 끝, 엘리베이터 안에
서는 두 마리의 검은 개들이 인간의 육체를 탐하고 있다.
가만히 귀를 기울
여보니 아직 아래층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 잘 들어보니. 우적우적 대며 고기를 씹어먹는 소리, 살려달라는
비명소리, 더 이상 사람의 언어라고는 할 수 없는 인간의 단말마.
어떻게
이런 일이...보이지도 않는데 내 눈에는. 몇 십 마리나 되는 짐승들에게 산
채로 잡아먹히고
있는 호텔 사람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복도를 도망쳐 달리는 남자. 하지만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는 표범의 발톱이
남자의
코에서 후두부까지를 마치 젤리처럼 갈라놓는다. 방에 틀어박힌 채 목놓아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소녀. 하지만 객실 문은 사자에게 있어서 마치 종잇장과도 같았고, 그리고 몇 초도 걸리지 않고 소녀는 형체를 알 수 없는 모습으로 변해버린다. 저기 복도 끝 엘리베이터로 몰려드는 사람들. 하지만
엘리베이터 안에는 몇 십 마리나 되는 검은 개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어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바로 그 순간 전원의 머리가 잘려나가 버린다.
어쨌든 어느 누구 한 사람의 예외는 없다. 내 발 밑의, 호텔이라는 거대한
상자 속. 그곳이,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에 있는 지옥의
풍경이었다.
"웁 - "
토할 것 같다. 하지만 토하면 안 돼. 그렇게 되면 - 나도 저 붉은 바다와
한 덩어리가 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하 - 아. 하. 아. 하,"
멈추어 있는 호흡을 재개한다. 이를 서로 꾹 악물었다
엘리베이터 안의 개들이 나의 존재를 알아차린다.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더
이상 아래층에서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하"
그 말은. 더 이상 살아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는 뜻인가.
-크르르르르르르르... 두 마리의 검은 개가 달리기 시작한다. 당연히 최후의 사냥감인 나를 향해서.
"하 - 아"
검은 개가 달려오고 있다. 그 몸에는 무수한 선이, 그 이마에는 죽음의 점
이 보인다.
- 그럼에도. 마비되어버린 머리는 내 몸에 싸우라고도 도망치라고도 지시를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한 마리의 검은 개가 뛰어오른다. 검은 개들의 스피드는 인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십 미터 정도의 복도 쯤, 거의 2초도 걸리지 않았다. 검은 개가 입를 벌린다.
내가 가진 나이프보다 몇 배나 더 날카로운 이빨이 톱날처럼 늘어서 있는 입이,
정확히 내 목덜미를 향해 달려든다. 확실히, 그리고 신속하게. 검은 개들이 덮쳐온다고 인식한 순간.
검은 개의 이빨이 내 목에 파고들었다.
토노 시키는 죽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이 정도로는 죽을 리도
없고, 죽을 수도 없어. 난 사람이 죽는 것 정도에는 망설이지 않아.
- 여름의, 어느 더운 날. 오래 전, 혹은 8년도 더 된 옛날. 난 이보다 더
끔찍한 광경을 직접 목도하고 있지 않았던가
- 푹.
목덜미를 물고 있는 검은 개의 이마에 나이프를 찔러넣었다. 검은 개가 내머리를 물고는, 그대로 머리를 물어뜯으려 하기 바로 직전의 순간 팔이 움직였다. 나로서도 정신이 없다. 마치 사물을 자르는 기능 밖에 없는 기계와도 같이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바로 앞의 개의 미간에 나이프를 찔러넣는다.
거기가 첫 번째 개의 [점]이었으니까. 보통, 뇌가 파손되더라도 전신의 근육들은 뇌가 내린 명령을 실행하려고 한다. 아무리 뇌가 꿰뚫렸다 한들 검은 개의 아가리는 내 머리를 물어뜯어버리겠지.
아아, 뭐 - 그, 보통이라면. 하지만 검은 개는 [죽음]에 이르렀다. 죽음은 정지다. 검은 개는 내게 죽임을 당한 시점에서 모든 효력을 잃고 말았다.
첫 번째 개가 지면에 뒹군다. 이와 교대라도 하듯 - 두 번째 개가 이번엔
내 얼굴을 향해 달려든다.
쩍 벌린 입안에 나이프를 찔러넣는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행동이었다. 이 녀석의 [점]은 얼굴이 아닌 가슴에 있다. 아가리를 찔렸다 한들 즉시 죽음에는 이르지 않을 것이다.
나이프는 검은 개의 아가리에서 후두부까지 관통했다. 자연히 나이프를 쥔손은 검은 개의 아가리 안에 들어가 있다.
검은 개는 아직 살아있다. 턱이 닫힌다. 나이프를 쥐고 있는 손과 팔 사이의, 연골이라고 하는 부드러운 조인트 부분이 그대로 잘려나가려 하는 순간이다.
그 통증으로 겨우, 사고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 - 아 - !"
- 이게 뭐야! 어째서 - 어째서 내가 개의 아가리에 나이프를 찔러넣어서는
자신의 팔을 뜯어먹히게 하려는 거냐고!
"큭...!"
쿵 하고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래도 팔은 빠지지 않는다. 검은 개는 나이프에 꿰뚫린 채 더욱 더 턱에 힘을 준다.
"~~~~~~~~~~~!"
파, 팔이 끊어질 것 같아 - ! 말도 안 돼, 개라는 동물은 이런 상태에서 먹이를 물고 늘어지는 생물이 아닐텐데...!
"윽, 이, 이자식이...!"
미끈한 감촉. 자세히 보니 검은 개의 입가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다.
나이프로 머리를 꿰뚫린 검은 개의 피인가. 아니면 개에게 뜯어먹히려 하는 내 팔에서 흐르는 피인가.
- 솔직히 그런 것 따위, 아픔보다 머리가 혼란스러워서 아무래도 상관없는
문제였다.
- 괜찮아, 진정해 시키. 우선 자세히 보고 그 다음 일을 생각하자. 그런 가르침을 지금까지 쭉 지켜왔잖아.
그럼 - 어떻게든 될 거야. 자세히 보니, 검은 개의 뒤통수 쪽에 꽤 많은 수의 [선]이 보인다. 검은 [점]은 이녀석의 가슴에 있다.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너무도 심플하다. 하지만 그걸 실행하기에는 조금 망설임이 있었다. 아무리 흉폭해도, 아무리 악한 생물일지라도.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가쁜 숨을 내몰아쉬며 살아있는 동물을 죽인다는 것은 - 절대로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로서는 힘든 일이다.
- 안구의 안쪽에 붉은 빛의 어둠이 퍼져간다.
의식이, 멀어진다. ...하지만 나는, 살아있는 생물을 죽일 수 없다.
- 같잖은 위선. 그런 네놈은 그런 개뼉다귀 따위보다 더 큰 동물을 죽였었잖아.
아아, 그랬었지. 하지만 그 때와는 달라. 알퀘이드를 죽였을 때의 토노시키는 제정신이 아니었어. 좀 전에 검은 개를 죽였을 때 역시 내 의사와는
아무런 관계 없이 이루어진 일이었어. 하지만 지금은 나 자신의 의사를 확실히 가지고 있어. 선생님이 말씀하셨잖아, 시키. 이 힘은 다른 사람도 아닌, 토노 시키 자신의 의사로 행사하라고 말야.
그러니까. 내가 나 자신으로 있는 한, 절대로 생명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돼.
- 그것도 위선. 왜냐하면, 넌 아주 오래 전에 -
그건 어렸을 적에 꿨던 악몽.
- 야, 뭘 망설이는 거야.
그건 더운, 여름날에 일어난 일이었다.
- 죽이지 않았으면 내가 죽었을테고. 눈 앞에는 피로 얼룩진 소년의 그림자. 넌 이미
내 손에는 뜨겁디 뜨거운 붉은 피가.
- 한 번, 사람을 죽인 적이 있잖아 - !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찔렀다. 팔을 빼는게 아니라 더욱 검은 개의 머리를 찔러댔다. 형용할 수
없는 신음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려온다. 검은 개가 우는 소리겠지. 입 안에
팔이 들어가 있어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하는 주제에 울고 있다. 분명히 그
만큼 아프다는 거겠지. 상관없어. 물려있는 팔 째로 나이프를 더 깊숙히 찔렀다.
소리 없이 나이프의 날이 검은 개의 후두부에서 튀어나온다. 마치 뿔이 난
개 같다. 두개골을 깨고 가죽을 손쉽게 절단하고. 피와 뇌수를 산산이 흩뿌리며 나이프는 완전히 검은 개의 후두부에서 튀어나온다.
참고로, 나이프를 쥐고 있던 토노 시키의 팔도 머리를 완전히 박살내며 그
뒤를 따랐다.
"하 - 하, 아"
하지만 검은 개는 아직 살아있다. 그렇다면 남은 일은 하나 뿐이다. 다른
쪽 팔을 뻗는다. 피범벅이 된 손가락에서 나이프를 떼어내 자유롭게 움직이는 팔로 나이프를 고쳐잡는다. 그대로 검은 개의 가슴에 난 [점]을 찔렀다.
"하 - 아"
검은 개는 그대로 죽었다. 턱을 죄고 있던 힘도 사라져 팔은 싱겁게 쑥 빠져나온다.
"뭐야 - 하나도 안 먹혔잖아."
피투성이가 된 팔을 본다. 확실히 이빨 모양의 상처는 남아있지만 살점은
거의 뜯겨나가있지 않다. 이 피는 머리를 꿰뚫린 검은 개의 것이겠군. 개에게 물린 통증은 매우 사소한 것으로, 내가 느낀 공포가 아픔을 몇 배로 부풀려 느끼게 했던 것 뿐이다.
" - 하, 하하, 하하하"
웃을 수밖에 없어. 왜냐하면, 이건 현실이 아니니까. 이런게 현실일 리가
없어. 난 언제부터 눈 뜬 채로 악몽을 볼 수 있게 되어버린 거지 - ?
딩동.
"에 - ?"
전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밝은 벨소리가 들린다.
"제길, 뭐야 이 두통은 - "
날카로운 물건으로 여기저기 찔려대는 듯한 두통을 견뎌내며 자리에서 일어
선다.
"엘리...베이터...?"
방금 전의 소리는 또 다른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 소리인 것 같다.
문이 열린다. 그 안에는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 두통이
한층 더 심해진다.
"저놈은 - "
그래, 본 적이 있어. 아마도 나는 저 남자를 본 적이 있을 거야.
" - "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이쪽으로 향한다.
"너 이자식 - !"
나이프를 거머쥐고 남자를 노려본다.
하지만 남자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걷기만 한다. 나 같은 건
완전히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거리가 좁혀진다. 거의 - 약 1미터 정도 떨어진 곳까지 다가와서야 남자는
겨우 내 존재를 알아차린 것 같다. 핏발이 선 눈. 인간의 눈이라고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남자의 눈을 본 순간, 내 몸의 자유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몰살시킨 줄 알았더니 아직 남아있었나."
남자는 복도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두 마리의 검은 개의 시체를 쳐다본다.
"쓰레기 같은 놈들. 고깃덩이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내 육체에 머물 자격은 없다."
남자는 불쾌한 듯 중얼거리며 한 손을 들어올린다. 코드가 마치 망토처럼
펼쳐 올라간다.
- 무너지고 있어.
검은 개들은 마치 무엇인가 녹아내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액체가 되어 남자의 코트 속으로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남자의 코트 아랫부분은 칠흑같이 검었고 대강의 윤곽 밖에 잡히지 않았다. 거기 있는 것은 다만 검은 어둠이었다.
"제기 - "
위험해. 이유야 어찌됐든 이놈은 너무 위험해 - 본능이 그런 위험신호를 울대고 있음에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조차 없다.
검은 코트가 다가온다.
이대로 여기 있으면 안 돼. 아까부터 계속되고 있는 두통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해지면서 여긴 위험하다고 계속 외쳐대고 있다. 어떠한 수단,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빨리 여길 벗어나지 않으면 다 죽은 목숨이라고.
- 하지만, 이미 늦었다.
눈 앞에는 남자가 있다. 그 눈동자는 날 바라보고 있지 않다.
"삼켜버려"
코트의 한쪽 팔이 위로 올라간다. 그 아래의, 혼돈과도 같은 어둠. 거기서
거대한 물체가 나타났다.
날카로운 바람 가르는 소리가 울린다. 남자의 코트 밑에서 나타난 '그것'은
인간을 한입에 집어삼킬 수 있을 것 같은 악어의 입이었다.
죽어. 휴지 구기듯 한 방에 찌부러질거야. 그렇게 확신한 바로 그 순간, 누군가의 손이 내 몸을 뒤쪽으로 잡아끌었다.
" - !?"
이럴, 수가. 악어의 턱은 내가 아닌, 내 몸을 잡아끈 알퀘이드의 배를 덮쳤들었다.
"윽 - !"
알퀘이드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알퀘이드는 악어 아가리에 완전히
물려버리기 바로 직전 뒤쪽으로 몸을 빼냈다.
"........."
남자는 말없이 알퀘이드를 응시한다. 시뻘건 피로 흥건히 젖어든 배를 부여
잡고, 알퀘이드는 괴로워하며 증오에 찬 시선으로 남자를 노려본다.
" - 웃기지도 않는군. 혼돈이라고 이름붙여진 흡혈종이, 이런 무가치한 게임 같은 걸 걸어올 줄이야. 무슨 지독한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것 같아, 네로 카오스."
"동감이다. 나도 신소의 생존자를 손에 넣는다는, 그런 무모하기 짝이 없는
축제의 집행자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지. 나에게 있어서도, 이건 악몽이야."
네로, 라는 남자는 조용히 팔을 내린다. 코트는 원래대로 돌아갔고 악어의
아가리도 코트 아래로 모습을 감추었다.
남자는 알퀘이드만을 바라본다. 알퀘이드에 가려져 그 뒤에서 나이프를 꼬나쥐고 서 있는 내 모습 같은 건 전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듯이.
"그런데, 이건 어떻게 된 일이지? 내 앞 대의 집행자는 네놈한테 상처 하나
입히지 못했다고 하던데 그것 참 이상한 일이로군. 지금 네놈의 존재규모는 너무나도 취약하기 짝이 없어. 일개 망자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그 쇠퇴한모습 - 내가 오기 전에 교회 놈들에게 습격이라도 당했나, 알퀘이드 브룬스터드."
"........."
알퀘이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남자는 감정이 메말라버린 듯한 눈으로
알퀘이드를 응시한다.
"...이해를 할 수가 없군. 네놈에게 해를 입힐 수 있을 정도의 개념무장은
극히 제한되어 있을 터. 그러한 것들을 보유하고 있는 건 교회의 놈들 뿐이지. 허나 이런 극동의 땅덩이에 매장기관 놈들이 파견되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는데
허나, 이유야 어찌됐든 내게 있어서는 천재일우의 기회다. 네놈이 그렇게까지 약해지게 된 시비는 가리지 않겠다. 승기가 있을 때 그 머리를 가져갈뿐."
나이프를 고쳐잡고 남자의 공격에 대비한다. 그러나 - 그 머리를 가져가겠다고 말했으면서 남자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한다. 남자는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유유히 엘리베이터에 탄 채 그대로 우리가 서있는 복도에서 퇴장해 버렸다.
뭐,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네로 카오스란 남자에 대해서도, 날 덮친
두 마리의 개에 대해서도, 이 호텔을 덮친 악몽같은 현실도!
"시 - 키"
알퀘이드가 내 몸에 기대어온다.
상처가 깊다. 배의 상처의 출혈은 이미 멎었지만 알퀘이드의 표정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다. 그건 겨우 몇 초 전 - 저 사나이에게서 날 감싸려다가
입은 상처였다.
"너 - 왜"
"...응, 좀 방심했나봐. 저 정도라면 시키를 구하고 나도 가볍게 피할 수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 과연...시키한테 입은 상처,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던 모양이야."
알퀘이드는 고통으로 일으러진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지어보인다.
"바.. " - 보고 있을 수가 없어. 그런 - 나를 감싸려다 입은 상처에, 거기다 그 원인마저 나한테 있는데 - 그런 바보 같은 웃음을 지어보이면 어떻게 하라고.
알퀘이드는 내게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으려 한다.
"...자, 잠깐...어째서 눈을 감는 거야, 이 바보야! 정신차려! 너, 밤에는
안 죽는 흡혈귀잖아...!"
"...그렇긴 하지만 말야...나, 아무래도 한계인 것 같아..."
"무슨 - "
"미안한데, 집까지 좀 데려다줄래?"
내 몸에 알퀘이드의 체중이 실린다.
" - 자, 잠깐...그런 - "
멋대로 죽어버리면, 나는 -
"야 - !"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알퀘이드를 소리쳐 부른다. 그때.
"...쿨 - "
너무도 행복한듯이 느껴지는 숨소리가 들려온다.
"........."
...하아...괜히 걱정했네. 알퀘이드는 아무래도 그냥 잠이 든 모양이다.
"...집까지 데려다달라고? 또 제멋대로 그딴 소리나 하고 - "
정말로 멋대로 내뱉은 소리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더 이상 호텔에 있으면 뭔가 엄청나게 안 좋은 사태에 휘말릴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큭"
두통은 멈추지 않는다. 아무래도, 나도 좀 쉬지 않으면 곤란한 지경에 처해질것 같다.
"...알퀘이드 네 집이라 - 아아, 거기군."
한 번 밖에 가본 적은 없지만 장소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오래 머물러 있어 봤자다. 나는 알퀘이드를 끌어안고 서둘러 호텔을 빠져나섰다.
거리는 조금 밝아져 있다. 운 좋게도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이른 시각
이라 알퀘이드의 집에 도착할 때까지 다른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 그래서였군."
거기까지 와서야 겨우 네로 카오스가 자리를 뜬 이유를 알게 됐다. 거리엔
희미하게 새벽동이 터오르고 있었다. 어느 틈엔가, 벌써 날이 밝은 듯 하다
<3. 검은 짐승 I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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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된내용- 알퀘이드에게 흡혈귀에대한 강의(?)를듣고. 그날 네로 카오스 라는 알퀘이드 조차두려워하는 상대와 대면.
카오스! <-우리 학교 써클 이름..; <-헛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