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아물지 않는 상처
*강화 평화 전망대에서
정성영
우리는 오늘 전선(前線)으로 간다. 그렇지만 군용트럭을 타고 포연(砲煙)이 자욱한 전쟁터인 전선(戰線)을 누비러 가는 것은 아니다.
서울 강서 문협에 소속된 등단 작가들이니 비록 손에 총은 들지 않았지만, 총이나 검(劍)보다 무섭다는 펜을 들고 글을 쓰는 병사(兵士)아닌 문사(文士)들의 문학기행이다.
때는 바야흐로 녹음방초 승화시라. 나날이 푸르러 가는 조국의 아름다운 산하를 차창으로 바라보며 관광버스를 타고 잘 닦여진 고속도로를 달려간다.
영문 모르는 독자는 뜬금없이 웬 전선(前線) 타령이냐 하시겠지만 혈기왕성한 현역 군인도 아니고, 제대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이 지긋한 예비군 아저씨도 물론 아니다. 백발이 성성한 이 땅의 자랑스러운 퇴역 노병들이며 시와 수필을 잘 쓰는 내로라하는 여류 문인들이 기꺼이 함께 동행한 문학기행이다. 삼천리 금수강산에 동족상잔의 전쟁이 휴전 된지 어언 70여년이 되도록 서부전선의 최전방지역인 강화도 평화전망대는 분명히 이 땅의 최전선(前線)이다. 아침 8시15분경 서울 강서에서 출발했다. 서울의 도심을 빠져 나온지 불과 1시간 40여분 만에 전망대 아래 해병 초소를 거쳐 주차장에 오전 10시경에 도착했다. 이처럼 우리의 서울과 가까운 거리에 북한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선(前線)의 사전적 의미는 적을 앞에 둔 아군의 부대가 형성하는 최전방의 가로로 이어진 선(線)이라고 그 뜻이 설명되어 있으니 오늘 우리가 찾아온 평화전망대는 분명코 최전방 전선이 틀렸거나 과장된 말은 분명코 아니다.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 서해로 흘러가는 강 하나를 경계로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으니 최전선이 맞다.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반도의 허리가 잘린 휴전선 155마일의 전선(前線)이 상존하고 있다. 더군다나 전쟁이 종식된 것도 아니고 휴전이라니 그렇다면 일촉즉발 가장 위험한 곳이 전선(前線)이다. 한시도 경각심을 잊어서는 안 되는 곳이다.
전망대 아래에는 해병의 초소가 있었다. 군복을 입은 패기에 찬 젊은 현역 해병들의 늠름한 모습을 보니 한결 마음 든든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전선(前線)에 나와 봐야만 첨예한 긴장감을 그나마 조금은 느낄 수 있으니 축 늘어져 나사 풀린 국가 안위의 안보문제를 조금은 냉정하게 바라 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이런 문학기행 아니면 쉽지 않은 일이다.
어느 외국인 관광객은 휴전선 양측의 첨예한 현대 무기가 대치한 삼엄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이처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평화롭게 나날의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시민들을 보면서 놀라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다. 평화스런 분위기에 괜한 위기감을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지만 과연 우리는 이렇게 무심하게 평화 무드에 도취 되어 있어도 되는가 하는 문제는 분명 생각해 볼 일이다.
남북한을 사이에 두고 흐르는 강폭이 가장 가까운 곳은 1.8km이라고 전망대 해설사의 설명을 들었다. 휴전선 전체구간에 여러 곳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지만, 남북한이 가장 가깝게 바라 볼 수 있는 곳이 이곳 강화의 제적봉(制赤峰) 평화전망대라고 한다. 더군다나 그 사이에 시야를 가리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으니 흘러가는 강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북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은 북한 쪽 강물 위로 뿌연 안개가 끼어 시야가 흐리고 전망이 좋지 않았다. 다행히 나는 몇 년 전에 가족과 함께 맑은 날 이곳을 다녀간 기억이 있다. 그 때는 청명한 날씨라 전망대 3층의 설치된 망원경에 동전 500원을 넣고 강 건너 북한 땅을 바라보면 논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을 선명하게 볼 수가 있었고 북한 주민들이 거주하는 주택이나 마을 주변의 생생한 북쪽 산하를 흥미있게 둘러 볼수가 있었다.
그 때 보고 느낀 감회를 <평화 전망대>라는 시 한편을 써서 어느 계간 문예지에 투고 했다. 그 일부를 인용해 보면
시선은 이미 강을 건너 가건만/ 발길을 가로 막는 철책선/
갈라진 한 겨레 쪼개진 땅 덩어리/ 국경도 아닌 곳에 삼엄한 철조망/
<중략>
민둥산의 드러난 검붉은 흙은/ 아직도 아물지 않은 깊은 상처/
두고 온 산하 고추 심고 참깨 심던 텃밭은 / 지금껏 누가 부치나/
<중략>
강건너 수풀 속에 숨겨진 검은 포신/ 참외밭 원두막은 아득한 날의 기억일 뿐/ 총을 든 초병이 초소에서 낯선 땅/이곳은 한강 하구/
망배단이 있고 평화를 염원하는 곳/ 눈 부릅 뜬 해병의 전차 두 대가/
끝나지 않은 긴장의 숨결을 토해 낸다/
총탄이 비 오듯 퍼붓는 전쟁터에도 군인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종군 기자들도 있고 시와 소설 수필을 쓰는 작가들도 있다. 이처럼 여러 분야에서 일하는 전문적인 예술인들이 살벌한 파괴와 살상의 전쟁 문화를 예술로서 승화(昇華)시켜 나가는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분야에서 일익을 담당했다. 우리 문인들이 총이나 검보다 무섭다는 펜을 든 자부심과 소명의식을 언제나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문학기행을 통해 국가의 안보문제나 전선(前線)에서 고생하는 우리 의 자녀들인 젊은 군인들의 노고를 문학이라는 예술로 아름답게 꽃피워 내기를 한 번 기대해 볼 일이다.
<끝>
( 참고 사항) 문학기행 일정.(2024년4월25일)
*서울 강서 출발>>.평화 전망대>>교동(대룡시장)>>강화 풍물시장 2층 점심식사(밴댕이 주막)
>>광성보>>전등사 일대 삼랑성 등 둘러 보고>>귀로
*2024년 서울 강서문협 춘계문학기행을 마치고 정성영 씀
첫댓글 그곳에 가서 분단 현실에 약간 긴장감이 있었는데,
그곳을 떠나와서는 또다시 잊고 말았네요. 선생님 글에 쓰신 평화와 안보가 있기를, 시선이 닿은 곳에 발길도 닿을 수 있는 날을 기원하고 기다려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정성영선생님 평화 전망대에서 보신 생생한 느낌을 벌써 올려주셨네요 이나라 안전을 걱정하시는 선생님의 글 한참을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길 빕니다
벌써 문학기행에서 얻은 글감으로
글을 쓰셨군요.
여러 곳을 둘러보았지만
운무로 인해 절반의 기억밖에 없는
통일전망대의 순간 포착을 잘해내셨네요.
그것을 분단의 아픔과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님을
다시 느껴봅니다
지방에좀 다녀 왔더니 그새 댓귿을 다셨군요. 정명옥님 김희진 님 감사합니다.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세요.
권옥희 님은 또 언제 글을주셨네요. 감사하옵나이다. 복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