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연 둘째딸(김순남)[1].hwp
<어머님 백수연에 부치는 둘째딸 글>
푸르름이 가득한 유월
옛날 우리들이 크고 자란 집터 소토골가든에서 어머니 백수잔치를 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뒤란 감나무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보이는 것들이 숨은 보물찾기처럼 새롭고 정겹습니다. 어머니 이 좋은 계절에 영광의 백수를 맞으셔서 축하드립니다. 바쁜 일 뒤로하고 참석해주신 대소가 어른들과 정다운 이웃 친지들을 모신 자리에 어머니의 종족들이 총동원 하였습니다. 아직까지도 총명한 기억력과 건강하심을 모두들 부러워하는 시선과 열망이 더욱 축복을 해주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이 뜻 깊은 행사를 추진한 장손 김창섭의 효심은 못 말리지요. 마치 신바람이라도 난 것처럼 연초부터 잔칫날을 잡겠다는 둥 손부는 한술 더 떠 단체 한복을 입자는 둥 전해오는 파발에도 딸이랍시고 귓등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정확히 57년 온갖 정성으로 모셔온 올케언니 공여사님의 노고를 생각하노라면 그저 죄인인데 말입니다. 이 자리에 어머니를 같이 할 수 있도록 언니의 지극한 보살핌이 고맙기만 할 뿐입니다.
전설 같은 역사의 뒤안길에서 살아오신 세월을 짐작이나 해보지만 그 어려운 일제 강점기를 거쳐 6.25전쟁을 겪으시며 혹독하게 치러낸 삶이 오죽하셨을까요?
없는 살림에 주린 배를 움켜쥐고 우리 4남매를 키우셨다지요.
그 모진 질곡의 생활 속에서 쉼 없이 열심히 일하시며 동기간 우애를 최우선으로 지켜 오시며 어쩌다 안부 전화를 할라치면 “나는 괜찮다 내 걱정은 말아라.” 늘 장부처럼 답을 하셨지요.
저도 가정을 꾸려 살아가는 동안 지치고 힘들 때 부모님께서 살아오신 모습을 떠올리며 바로 몸을 추스를 수 있었고 새로운 용기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고 하나 봅니다.
어머니 제가 어머니께 잘못한 게 있어 말씀 드릴려구요. 너무 죄송한 얘기입니다.
아버지가 세상 뜨시던 해는 어머니 한참이신 쉰아홉 살이셨지요.
저는 갓 결혼한 철없는 스물다섯 살이었어요.
아버지 병수발을 놓으셨으니 조금은 한가해지셨거니 생각하고 어머니가 힘드시고 외로우실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힘들다는 푸념 한번 들어본 적 없으니 그저 괜찮은 줄 알고 제 생활만 했을 뿐이지요.
제 나이 이제 예순 다섯 살 어느 날 들에 나간 이 서방이 뜻하지 않게 많이 다치고 들어온 적이 있어요. 마치 죽을 위기상황 이였음에도 상처투성이로 돌아온 그의 모습을 보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지요. 아찔했어요. 절대로 이서방이 없으면 난 못 산다고, 집안일 어느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제서야 어머님은 나보다 여섯 살이나 젊은 나이에 혼자 되셨으니 얼마나 막막하고 힘이 드셨을까? 어머님 마음 헤아리지도 못하고 띡띡거리며 살갑게 대해드리지도 못한 철없이 살아온 저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있어요.
어머님 말씀 중 “난 며느리 마흔넷에 들이고 구루무 바르던 것도 딱 끊었다.”고 하시는걸 몇 차례 들은 적이 있었어요.
그때 저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흘려듣고 보냈어요.
지난 해 우리 집에 오셨을 때였어요. 쪽머리 기름이 필요하시다기에 집에 있던 헤어젤 한 병을 머리에 바르라고 가방에 넣어드렸지요.
집에 가신지 며칠 후 로션으로 착각하시고 얼굴에 바르셨나 봅니다. 얼굴에 심한 발진이 생겨 견딜 수 없어 급히 병원에 모시고 가는 소동이 벌어졌다고 전해 듣는 순간 아차 싶었어요. 엄마가 백세 다 하는 노인인데 주의사항을 체크해 드리지 못한 후회가 막급했어요.
얼마나 아프고 겁이 나셨을까 생각하니 바보 같은 제가 한심하고 후회가 되었습니다.
그 후 곰곰이 생각하니 어머님의 말씀이 떠올랐었지요.
아, 엄마는 노인이 아니라 여자였구나!
자식을 위해 가난한 생활을 피하며 자식을 챙기느라 여자의 로망과 소중한 순정을 내려놓으시고 살아오셨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허기야 저는 지금도 외출 시에는 거울을 봅니다.
뽀얀 분을 바르고 주름을 얼굴 밖으로 당겨보기도 하고 립스틱을 진하게 바르고 있지요. 세월이 간다 한들 내심이 치장을 쉽게 끊고 포기할 것 같지 않으니까요.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여자는 예뻐지고 젊어지고 싶은 거지요. 나도 여자이면서 엄마가 여자라는 걸 잊고 살았다는 게 밉도록 아이러니합니다.
오늘 뒤늦게 엄마의 로션을 샀습니다. ‘얼굴’이라고 진하게 매직으로 썼습니다.
여자로서 행복해하는 어머니 모습을 보고 싶은 소망일뿐 매우 늦은 선물을 들고 잘한 것 같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옵니다.
어머니 남은 세월도 지금처럼만 건강하게 사세요.
이 지구에 어머니가 살아계셔서 만날 수 있어서 우리들은 정말 행복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2013년 6월 2일
둘째딸 순남 올림
첫댓글 순남씨,
친정어머니의 백수연을 진심으로 축복드립니다
어머니를 향한 딸의 애틋한 사랑이 절절하네요
순남씨, 부러워요
저는 일찍 친정어머니를 여의었거든요
백수까지 건강을지켜오신 어머님을 존경합니다
모처럼 사람의 냄새가 풀풀나는 글 잘 읽었어요
순남님,![축하](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48.gif)
드립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건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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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어머님의 백수연을
딸로써 친정 어머니가 살아계심은
편안한 안식처가 되는 겁니다.
친정 어머님께서 늘